등록 : 2012.12.27 21:04 수정 : 2012.12.27 21:58

김종인 1940년 7월 11일생. 독일 뮌스터대 경제학 박사.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제11, 12대 민주정의당 국회의원. 제14대 민주자유당 국회의원. 17대 민주당 국회의원. 노태우 정부 제24대 보건사회부 장관. 노태우 정부 청와대 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국민은행 이사장. 헌법연구자문위원회 위원장. 현 새누리당 국민행복특별위원회 위원장. 저서 (경문사), 공저서 (메디치미디어)
경제민주화에 저항하는 새누리당의 대표적 인물인 이한구 원내대표와 내부 신경전 끝에 박근혜 후보로부터 정기국회에서 관련 입법 두 가지 처리를 약속받고 당무에 복귀했던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그가 지난 13일 한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다시 한번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박근혜 후보가 “선거대책위원회에 공약위원회를 설치한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며 “공약위원회 설치는 측근들 개입 여지를 열어두는 것”이라고 다시 반발하고 나서, 앞으로 그의 행보가 다시 주목받게 됐다. 이는 경제민주화 공약이 그만큼 민감하고 폭발적인 사안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6개월 전 위기에 처한 새누리당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박근혜 후보가 총선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경제민주화의 상징적 인물이랄 수 있는 김종인 전 민주당 의원을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하고 당 강령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도입함으로써 총선에서 승리한 바 있다. 하지만 정기국회 기간 동안 관련 입법 과정에서 재계와 보수 진영의 반발 등이 이어질 경우 김종인 위원장과 반대 세력 사이의 갈등은 언제든지 다시 폭발할 가능성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라인강의 기적·뉴딜정책 공부

그만큼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에게 경제민주화는 뜨거운 감자인 셈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공약은 실천 가능하도록 만들면 되는 것이고, 공약 실행은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 하는 건데 왜 공약위원회를 만드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이렇게 옥상옥을 만들면 일을 하지 못한다. 그냥 후보가 다 하라고 하면 된다”며 박근혜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도 숨기지 않았다.

여기서 두 가지 궁금증이 제기될 수 있다. 하나는 왜 김종인은 경제민주화에 그토록 집착(?)하느냐이고, 다른 하나는 박근혜 후보의 진심에 관한 것이다.

우선 김종인의 인생 역정을 돌아보자. 그는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경제 참모와 경제 각료들 중에서 드물게 독일에서 공부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이 패전의 잿더미에서 이룬 ‘라인강의 기적’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고, 1929년 발생한 세계대공황과 이를 극복한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뉴딜정책을 포함하는 자본주의 발달사를 독일의 경제체제 등에 비추어가며 공부한 사람이다.

할아버지 김병로 비서로 정치 배워

필자가 1980년대 중반 5공화국 시절 민주정의당(현 새누리당)을 출입할 때 그는 민정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의 핵심 경제 참모였다. 그는 당사 안팎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기자들에게 독일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사례를 들어가며 한국 사회가 초고속 성장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치르게 될 엄청난 대가와 이에 따른 정치·경제·사회적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에 관해 역설하고 다녔다. 그는 나중에 노태우 정부의 보건사회부 장관으로 8개월가량 지낸 뒤 바로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일하는 동안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처리 등을 강도 높게 밀고 나간다.

이에 앞서 그는 독일에서 귀국한 뒤 서강대 교수로서 1980년에 국가보위입법회의(신군부가 12·12쿠데타를 통해 국회를 해산하고 설치한 임시 입법기구) 전문위원을 지내는 동안 나중에 대통령이 된 전두환 당시 국보위 위원장에게도 같은 취지로 역설한 경험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 직후인 1981년 그는 민정당 소속의 11대 국회의원(전국구)이 되었고, 1987년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헌법을 개정할 때 경제분과위원장을 맡아 경제민주화 조항이라 불리는 헌법 119조 2항을 직접 입안한 인물이다. 그는 헌법 119조 2항을 도입할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을 설득해 재벌 등의 반발을 누른 경험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진 듯하다.

김정렴 비서실장의 조카사위

20년의 세월이 흐른 2008년 7월, 필자는 김종인 의원을 만나 헌법 119조 2항의 취지 등에 관해 3시간 동안 다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헌법 119조 2항, 자본주의 지키는 안전장치’, <미디어스> 2008년 7월 25일치 참조)

김종인은 깐깐하고 강골로 보인다. 이런 기질은 어디서 오는 걸까? 아마도 그의 할아버지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에게서 영향받은 듯하다. 신년이 되면, 거의 모든 입법부와 행정부 수장들, 심지어 대법원 판사들도 이승만 대통령에게 세배를 갈 때 김병로 대법원장은 사법부 대표로서 권력 분립 등을 이유로 세배를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김종인은 그의 할아버지가 한때 야당 지도자로 일할 때 비서로 정치를 배웠다고 한다.

그를 아끼거나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한보사태 때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에게 뇌물을 받고 기소된 것을 ‘옥에 티’처럼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한다.

울산 김씨로, 할아버지의 고향은 전북 고창이며, 동아일보 설립자인 김성수 전 부통령(김재호 동아일보 사장의 증조할아버지이자 이명박 대통령의 초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김병국 한국외교아카데미 원장의 할아버지)의 집안과 오랜 친분과 혼맥으로 얽혀 있다.

아울러 김종인의 친인척 중에는 헌법재판소장, 청와대 비서실장, 경제 각료와 참모 등이 두루 포진해 있다. 우선 그의 처삼촌이 박정희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8년 9개월이나 지낸 김정렴씨다. 김종인의 장인은 한일은행장을 지낸 김정호(작고)씨다.

그의 매형은 박봉환 전 동력자원부 장관이고, 4촌 처남이 노태우 정부 시절 건설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이진설씨다. 4촌 처남이 같은 대통령 밑에서 경제수석을 지낸 것이다.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윤영철씨, 얼마 전 작고한 이택돈 전 신민당 국회의원(변호사)도 4촌 처남이다.

그의 친인척 중에는 이명박 정부에서 고위직에 오른 이도 있다. ‘강만수(현 산은금융지주 회장) 사단’의 일원으로 청와대 경제수석, 필리핀 대사, 지식경제부 장관직을 잇따라 지내며 ‘최틀러’(‘최’씨와 독재자 ‘히틀러’의 합성어)라고 불리던 최중경씨가 5촌 조카사위다. 아랍에미리트 대사로 있는 권태균 전 조달청장도 5촌 조카사위다.

하지만 김종인이 자신의 지위나 영향력을 이용해서 친인척을 정부 고위직에 추천했다는 얘기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한때 야당인 새천년민주당(후에 민주당으로 당명 변경) 비례대표 국회의원까지 지낸 그가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과 박근혜 캠프의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맡은 것을 볼 때, 앞에서 소개한 그의 처삼촌 김정렴 청와대 비서실장과 박정희 대통령의 ‘특수관계’가 떠오른다. 인연이란 참으로 무섭고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족으로 덧붙이자면, 그가 서강대 교수 시절에 처삼촌인 청와대 비서실장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이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도록 만들었던 것처럼 박근혜에게도 통할 수 있다는 그만의 자신감이 작용했는지 알 수 없다.

여와 야를 넘나드는 그의 정치 일생의 성공 여부를 가를지도 모르는 마지막 승부수(?)가 두 달 뒤 국민과 유권자들의 결정에 의해 판가름 난다. 다만 박정희 대통령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결정되던 그 시절의 재벌과 지금의 재벌, 그리고 대한민국과 국민은 완전히 달라져 있고, 박근혜 후보는 보수 세력의 정중앙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학림 : 전 <코리아타임스> 기자, 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2003~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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