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2.28 22:03 수정 : 2013.03.06 02:34

2010년 3월 4일 상파울루대학 현대예술박물관을 방문한 오노 요코. / 마르셀라 카탈디 치폴라
 지난 2월 18일은 오노 요코의 여든 번째 생일로 그녀의 예술, 음악, 사회활동을 축하하는 날이었다. 그녀는 지난 한 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10년 동안 한 것보다 많은 일을 했다. ‘프래킹’(Fracking·수압 파쇄)* 반대운동 ,줄리언 어산지(인터넷 매체 ‘위키리크스’설립자) 지지, 그리고 지난해 여름에는 영국 런던의 고급 갤러리 서펀타인에서 자신의 예술 작품을 모아 회고전을 열었고, 이어서 올 2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쉬른 쿤스트할레에서도 대규모 전시를 했다. ‘플라스틱 오노 밴드’(1969년 존 레논과 오노 요코가 중심이 돼 결성. 지금은 아들 션 레논 등을 중심으로 활동)와 음악 활동도 펼쳤다.

 프래킹 반대운동은 그녀가 몇 년째 활발하게 지속해온 정치 활동이다. 처음에는 옥외 광고판에, 다음에는 <뉴욕타임스>에 전면광고를 했다. 광고에는 존 레논의 곡 ‘이매진’에서 문구를 빌려 “Imagine There’s No Fracking…”(프래킹이 없다고 상상해보세요)라는 내용과 함께, 받는 사람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 보내는 사람 요코와 션(존 레논 사이의 아들 션 레논)이라고 썼다.

 프래킹 반대 캠페인은 단순한 광고 이상이다. 오노는 ‘프래킹에 반대하는 예술가 모임’을 조직했고 약 200명이 동참을 선언했다. 작가 살만 루슈디, 현대미술 작가 제프 쿤스, 영화배우 알렉 볼드윈과 앤 해서웨이, 라이프 코디네이터이자 기업인 마사 스튜어트, 영화 제작자 데이비드 게펜, NBC 토크쇼 진행자 지미 팰런, 심지어 가수 레이디 가가와 그녀의 3400만 트위터 팔로어도 함께하기로 했다. 지난 2월 미국 뉴욕의 알바니에서 오노는 5만 명의 서명이 담긴 프래킹 반대 청원을 뉴욕주지사 쿠오모에게 전달했다. 요즘 오노는 텔레비전에도 광고를 내고 있다.

 오노는 지난해 12월 <뉴욕타임스>에 프래킹의 문제점을 설명하는 글을 기고했다. “규정을 아무리 구체적으로 정해도 프래킹의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은 여러 사고를 통해 증명됐다. 가스 추출을 위해 뚫어 놓은 구멍 중 6%에 바로 균열이 생겼다. 시간이 지나자 60%의 구멍이 식수원을 오염시켰으며, 온실가스인 메탄의 대기 방출량이 치솟았다. 프래킹은 물을 오염시킨다. 우리는 진정 깨끗한 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

 2월에 진행한 캠페인은 성공적이었다. 쿠오모 주지사는 프래킹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좀더 연구해야 한다며 프래킹 허용 결정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글에 도널드 트럼프는 프래킹 찬성론자의 대변인으로, 요코는 반대파의 목소리로 등장했다.

 “프래킹이 없다고 상상해보세요.”를 듣자마자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보세요”(Imagine there‘s no heaven) 하고 시작하는 한 노래가 떠오를 것이다. 사실 그 노래는 오노가 1964년 발행한 개념미술 책 <그레이프프루트>(Grapefruit)의 ‘사용설명서’ 중 “하늘에 해가 천 개라고 상상해보세요”에서 나온 것이다. 프래킹 반대 광고는 그녀의 반전 활동을 떠올리게 한다. 오노 요코와 존 레논은 1969년 뉴욕 타임스퀘어에 반전 광고를 냈다. “전쟁은 끝난다. 당신이 그것을 원한다면”이라는 문구는 전세계로 퍼졌다.

2005년 12월 8일 뉴욕 스토로베리필즈에 있는 존 레논 기념관에 꽃을 바치는 오노 요코. / 햄릿페이스
 그녀는 지난 2월 3일 맨해튼에서 열린 대중 행사에서 줄리언 어산지를 기리는 담대함을 보였다. 해마다 개최되는 ‘용감한 사람들’(Courage Awards) 시상식장에 참석한 그녀는 수많은 시민단체 활동가, 예술가, 몇몇 외교관 앞에서 “어산지는 공적 영역에 속해 있던 것을 마땅히 돌려줌으로써 그의 용기 있는 첫걸음을 뗐다. 우리는 그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산지는 자신을 돕는 두 명의 법률 자문관을 통해 상을 받았다. 자문관 중 한 사람은 스페인의 발테사르 야르손 레알로,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전 대통령)를 반인도주의적 범죄 혐의로 구속시키려 했던 검사 출신이다. 나머지 한 사람은 기본권보장센터(Center for Constitutional Rights)의 전설적인 명예 회장 마리클 래트너로, 어산지의 수상 연설을 대신 전했다.

 지난해 초, 오노는 러시아의 페미니스트 펑크 밴드 ‘푸시라이엇’을 지지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판한 이후 멤버 중 두 명이 현재 감옥에 있다.

 오노의 이력에서 예술가로서의 경력을 빼놓을 수 없다. 비틀스가 결성되기 전부터 지금까지 예술가로 살고 있다. 오노는 초기부터 개념미술과 행위예술을 혼합했다. 그녀의 작품은 재미있고, 때로는 보는 것이 고통스럽다. 영상작품이나 ‘사용설명서’처럼 관중의 참여를 필요로 하는 것도 있다.

 지난해 로스앤젤레스의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대지미술(Land Art) 단체전‘땅끝’에서 그녀의 최근 작품을 보았다. 마음에 꼭 들었다. 오노는 1966년 <스카이TV>라는 이름으로 이미 대지미술을 선보였다. 오래된 텔레비전 수상기를 통해 전시장 지붕에 설치한 비디오 카메라로 찍은 하늘의 모습을 실시간 방영하는 것이다. 놀랍고 기분 좋은 작품이었다. 전시장 안에 있는 다른 어떤 작품과도 달랐다는 점에서 “진정한” 작품이었다.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격이다. (<스카이TV>는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 박물관의 영구 전시작이다.)

1969년 3월 5일 오노 요코와 존 레논의 '베드 인 피스' 퍼포먼스. / www.gaheten.nl
 지난 한 해가 오노에게 뜻깊었던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정말 그녀 때문에 비틀스가 해체됐는지 궁금해하던 사람들을 향해 폴 메카트니가 공식적으로 아니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1966년 존이 오노를 만났을 때 “그녀는 아방가르드한 면에서 매력적이었다. 오노는 존에게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걸 보여줬고, 그는 거기에 강하게 끌렸다. 어차피 존이 떠날 시점이었다. 그는 결국 떠날 거였다.” 폴 메카트니 발언 내용은 그날 신문의 머리기사였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존 레논이 그녀를 위해 쓴 아름다운 곡이 있다. ‘사우샘프턴의 부둣가에 서서’(Standing on the dock in Southampton)로 시작하는 1969년 그들의 결혼에 대한 노래부터, 1971년 ‘이매진’(Imagine) 앨범에는 ‘한밤중에 나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네’(In the middle of the night I call your name), 1980년에 나온 ‘더블 판타지’(Double Fantasy)의 “몇 년이 흐른 뒤에도/ 여기에 없는 당신을 그리워하네”(Even after all these years/ I miss you when you’re not here)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오노는 아들 션과 플라스틱 오노 밴드가 그녀의 여든 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베를린에 있는 전설의 ‘민중극장’ 포크스뷔네에 마련한 무대에 나와 함께 라이브로 공연을 했다.

 

 존 위너 Jon Wiener UC어바인대 교수

 번역 하수정 위원

 ⓒ The Nation

 

 * 프래킹: 암반에 구멍을 내고 물과 화학물질을 고압으로 주입해 셰일가스를 추출하는 방법. 환경운동가들은 프래킹 방식이 수질을 오염시키고 지진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반면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몇몇 나라는 공정관리만 잘 하면 위험성이 거의 없으며,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고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적극적으로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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