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4.02 14:03 수정 : 2014.05.02 15:40

29살에 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하자마자 취업이 아닌 창업의 길을 택한 김윤환(42) 피투피시스템즈 대표는 2002년 1월 국내에 처음으로 모임 전문 공간 ‘토즈’를 선보였다. 처음 소비자에게 낯설었던 모임공간은 어느새 주요 상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대중적인 장소가 됐다.피투피시스템즈 제공
모바일 게임 ‘애니팡’ 열풍을 일으키고 코스닥 시장에 기업을 상장해 수천억원대 자산가가 된 젊은 창업가들이 있다. 바로 선데이토즈의 공동창업자인 이정웅 대표와 박찬석·임현수 이사다. 이들은 불과 6년 전만 해도 주말을 쪼개 창업을 준비하던 직장인이었다. 네이버(전 NHN)에 다녔던 이정웅 대표와 엔씨소프트에서 일했던 임현수 이사, 티쓰리엔터테인먼트에서 근무했던 박찬석 이사는 일요일마다 서울 강남역 인근에 있는 ‘토즈’(TOZ)라는 모임 전문 공간에 모였다. 기업 이름이 ‘선데이토즈’(SundayTOZ)가 된 이유다.

‘선데이토즈’ 창업가들이 모인 장소

이들이 토즈에 모인 데는 이유가 있었다. 독립된 공간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무선인터넷과 빔 프로젝터 등의 사용이 가능했다. 카페처럼 원하는 차를 마실 수 있으면서도 전원 콘센트를 찾아헤매거나, 오래 머문다고 눈치 볼 필요도 없었다. 토즈는 카페나 식당과 달리 모임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토즈에 오는 모임의 목적은 다양하다. 선데이토즈처럼 창업을 준비하기 위해 모이기도 하고, 영어 원서를 읽거나 독서토론을 하는 학습 모임도 있다. 인터넷 동호회의 오프라인 모임이 열리기도 한다. 이용 고객도 다양하다. 정보기술(IT) 기기 사용법을 익히거나 역술책 <주역>을 읽는 실버세대도 있고, 조모임이나 취업스터디 등을 하는 대학생도 있다. 성우나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사람들을 위해 방음시설이 완비되고 전신거울이 설치된 공간도 있다. 심지어 기업에서도 회의나 면접 장소로 토즈를 이용한다. 이렇게 모임공간 토즈를 이용하는 사람이 지난해 129만 명에 달했다.

최근 토즈 홍대점에서 만난 김윤환(42) 피투피시스템즈 대표는 공간 임대 사업의 성격과 토즈의 성장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김 대표가 2002년 시작한 모임공간 토즈는 현재 전국에 22개 지점이 있고, 2009년엔 사무공간인 ‘토즈 비즈니스센터’를 열어 5년간 지점을 8개로 늘렸다. 2010년엔 독서실로도 사업영역을 확장해 현재 56개의 ‘토즈 스터디센터’ 지점을 두고 있다. 모임공간과 사무실, 독서실은 성격이 각기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바로 공간을 빌려주는 사업이라는 점이다.

“우리 사업의 본질은 부동산 임대업이에요. 건물주에게 빌린 공간을 다른 사용자에게 재임대하는 것이죠. 하지만 단순히 공간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목적에 맞게 공간을 재구성하는 것이 중요해요. 정확히 얘기하면 목적에 최적화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죠. 예를 들어 카페나 음식점은 모임에 적합한 공간이 아니에요. 이곳의 주인들은 손님에게 음료나 음식을 파는 것이 목적이에요. 공간은 음료나 음식을 팔기 위한 수단이죠. 토즈는 반대예요. 모임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고, 음료나 음식을 제공하는 이유는 모임을 돕기 위해서예요. 모임공간 사업을 안착시킨 뒤 사무공간과 독서실 쪽으로 사업을 확장한 이유도 비슷해요. 도심에 소규모 사무실을 임대하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토즈 비즈니스센터는 1~6명 규모의 소규모 사업체를 위한 사무공간을 마련했죠. 토즈 스터디센터는 어두컴컴한 칸막이 독서실이 아닌 쾌적하고 다양한 학습공간을 만들었어요. 모두 공간을 사용자의 목적에 맞게 재구성한 거죠.”

피투피시스템즈는 사업 시작 12년 만에 직원 170여 명, 매출 135억원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김 대표는 “모임공간을 전면에 내걸고 사업하는 곳은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토즈가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에선 토즈 이전에 ‘민들레영토’가 세미나실을 운영했지만, 카페 내 일부 공간에 지나지 않았다. 김 대표는 ‘모임공간’이란 사업 모델을 어떻게 착안했을까.

1호점 뒤 2년간 적자… 지금 직원만 170여 명

“대학 시절 회계사 자격증을 따기 위한 수험 생활을 7년이나 했어요. 여러 그룹 스터디에 참여했고, 그때마다 장소를 잡기가 무척 어려웠어요. 어떨 땐 장소를 잡지 못해 카페나 식당에서 모임을 했는데,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죠. 그래서 늘 쾌적한 모임 장소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그러던 중 어렵사리 회계사 시험에 붙었고, 연수를 삼일회계법인에서 받았어요. 그때 삼일회계법인이 서울 삼성동 아셈타워에 있었는데, 잘 구획된 사무실과 쾌적한 회의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로 내가 원하던 공간이었죠. 그때 마음을 굳혔어요. 이런 공간을 일반인에게 제공하는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죠.”

스물아홉 살에 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하자마자 안정된 길을 뒤로한 김 대표는 철저히 사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마침 프리챌 커뮤니티와 다음카페에 인기를 얻으면서 온라인 모임이 활성화되던 시기였다. 김 대표는 온라인 커뮤니티 운영자와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에게 모임공간의 수요를 묻는 전자우편을 보냈다. 김 대표가 보낸 전자우편은 총 2600여 통에 달했다. 이 중에서 400여 명이 답장을 보내왔고, 100여 명 정도는 직접 만나서 조언을 얻었다. 대부분 모임공간이 절실하게 필요하고, 이런 공간이 생긴다면 돈을 내고 사용할 의사가 있다는 반응이었다. 그는 자신감에 충만했다.

신촌의 토즈 1호점이 문을 열면서 1인당 4천원으로 2시간 동안 쾌적하고 조용한 공간을 빌릴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인터넷과 빔 프로젝터, 전원 콘센트 등을 무료로 사용하고 커피나 차 등의 음료도 양껏 마실 수 있었다. (이 가격은 12년 동안 겨우 1천원이 올랐다.) 김 대표는 신촌 1호점을 내고서 내심 “물밀듯이 손님이 올 것”이란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첫 달 이용 고객이 300명을 넘지 않았고, 하루 평균 토즈를 찾는 모임도 세 팀을 넘지 않았다. 공간 임대료에도 한참 못 미치는 처참한 실적이었다.

“처음 사업을 할 땐 크게 두 가지 실책이 있었어요. 모임공간 자체가 사람들에게 낯설다는 것을 간과했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알아서 손님이 찾아올 것이라 기대했죠. 그래서 얼른 전략을 바꿔 적극적으로 모임을 유치하기 시작했어요. 거리로 나가 수만 장의 전단지를 뿌렸고, 온라인 커뮤니티마다 돌아다니며 무료이용권과 할인권 등을 나눠줬어요. 그렇게라도 사람들이 모임공간을 경험해보길 바랐죠.”

모임을 유치하려고 열심히 뛰었지만 적자를 면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김 대표는 사업에 대한 확신을 굳혔다.

“한번 이용한 분들이 나가면서 ‘잘 이용했다’며 인사했고 재방문을 했어요. 1년이 지나 재방문율을 추산해보니 90%에 가까웠죠. 그때부터 이 사업은 시간과의 싸움이란 것을 직감했어요. 한동안 적자가 나더라도 잘 버티면 결국 성공할 거란 확신이 생겼죠. 토즈가 2년여간 적자가 나면서도 버텨온 것은 그 때문이었어요.”

고등학교 학생회장의 ‘하숙비 동결’ 공약

모임공간이란 생소한 사업영역을 개척한 김 대표는 경남 남해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생 때는 단거리 육상 선수였고, 이 시절 운동을 통해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승부욕을 배웠다”고 김 대표는 전한다. 김 대표는 2남2녀 중 셋째였다. 누나가 둘 있고, 3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다. 아버지는 책걸상이나 씨름대 등 전문가구를 제작하는 사업가였다. 경남 지역에서만 50년간 가구사업 한길을 걸었다. 김 대표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당시 교육환경이 좋은 진주로 유학을 갔고,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학창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시기는 전교 학생회장을 하던 고등학생 3학년 때다.

“지금 생각해도 남다른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당시 우리 학교는 주변의 다른 학교와 달리 학생회장을 학생들 직선투표로 뽑았는데요. 친구들과 공약을 만들고 선거운동을 해서 학생회장에 당선됐습니다. 그때 한 공약 중에 하나가 하숙비 동결이었어요. 당시 진주엔 시골에서 유학 온 하숙생이 많았어요. 처음엔 하숙비 올린 집주인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했고, 나중엔 지역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왜 하숙비를 동결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며 여론을 만들었어요. 우리 학교만으론 힘이 부족해 진주 지역의 고등학교 연합을 만들기도 했죠. 이런 활동을 통해 앞에 나서서 사람들을 조직하고 이끌어보는 값진 경험을 했어요. 하지만 동시에 ‘약속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절감했죠.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하숙비를 동결하지 못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무리한 공약이었지만, 그땐 그게 납득하기 어려웠죠. 그걸 계기로 진짜 책임지는 자세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어요.”

고등학생 때와 달리 대학교 시절은 단조로웠다. 한국외국어대 무역학과에 진학한 김 대표는 대학 시절의 대부분을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는 데 쏟았다.

“어찌 보면 재미없는 대학 시절이죠. 다른 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시험 공부에만 전념했어요. 엠티를 가본 적도 없고, 미팅도 안 해봤어요. 아버지가 사업을 했기 때문에 기업 경영에 관심이 있었고, 대학에 진학하면서 회계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회계사 공부를 시작했는데 시험에 많이 떨어졌어요. 남들은 2년 정도 준비하다가 안 되면 진로를 바꾸잖아요. 저는 7년 동안이나 매달리면서 될 때까지 공부했죠. 어린 시절 운동하면서 익힌 근성이 크게 작용했어요. 덕분에 웬만한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는 회복탄력성이 체질화됐고, 이런 성향이 사업에도 큰 도움이 돼요.”

토즈가 높은 층에 자리잡은 이유

모임공간 토즈는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의 신촌, 강남, 삼성동, 홍대 앞, 대학로, 건대 입구, 경기도 분당 등지에 있지만, 건물 1∼2층이 아닌 비교적 높은 층에 자리잡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토즈 강남점은 3∼4층에 있고, 선릉점은 9층에 있다. 강북의 신촌점은 지상 4층, 홍대점과 건대점은 5층이다. 접근성이 좋은 낮은 층이 아닌 높은 층에 자리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토즈는 충동적으로 오는 곳이라기보다 목적을 가지고 찾아오는 공간이에요. 또한 재방문 고객이 중요하고요. 그래서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면 이면도로에 고층이어도 상관없어요. 굳이 임대료가 비싼 대로변 저층을 고집할 필요가 없죠. 오히려 안정적으로 장기 계약을 맺을 수 있느냐가 입지 선정의 중요한 기준입니다.”

사무공간인 비즈니스센터 역시 모임공간과 입지 선정 기준이 비슷하다. 독서실인 스터디센터는 유동인구보다는 교육환경과 인근에 주거하는 인구가 중요하다.

모임공간과 비즈니스센터 사업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린 김 대표는 스터디센터와 스마트워크센터라는 신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토즈의 공간대여사업의 노하우를 독서실에 적용해 성격이 다른 5가지 학습공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기존 독서실은 대부분 어두컴컴한 곳에 칸막이 책상이 늘어선 형태지만, 토즈 스터디센터에는 카페처럼 개방적인 공간부터 기존 독서실보다 더 밀폐된 공간까지 총 5종류의 학습공간이 있다. 그룹 스터디나 온라인 학습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여러 종류의 학습공간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곳을 택해 사용하면 된다. 이용 금액은 기존 독서실보다 다소 비싸다.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중·고등학생은 한 달에 14만~18만원, 성인은 17만~20만원이다.

“스터디센터는 4년 만에 54개로 늘었어요. 다소 비싸도 호응이 좋은 편이죠. 기존 독서실보다 성인이 많다는 점도 고무적이에요. 성인 고객 비중이 30% 정도예요. 다른 데는 대부분 10%를 넘지 못해요. 기존 독서실을 찾지 않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한 셈이죠. 한국의 독서실은 30년 넘게 변하지 않았어요. 토즈 스터디센터는 전국의 4500여 개에 이르는 독서실 업계에 새 바람을 일으킬 거예요.”

토즈는 2011년부터 정부가 발주한 스마트워크센터를 구축해 위탁운영하고 있다. 서울역, 경기도 과천, 분당, 세종시 등 전국 14곳에 만들어진 스마트워크센터는 공무원들이 청사를 벗어나서도 행정망에 접속해 업무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화상회의가 가능한 시스템도 구축돼 있다.

김 대표에겐 공간이 언제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수단이다. 모임공간을 만들어 시간 단위로 빌려주거나, 작은 사무실을 만들어 월 단위로 임대하기도 한다. 학습공간이나 특수한 업무를 보는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어떤 목적으로 재가공하느냐에 따라 공간의 활용 가치는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김 대표는 사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글 윤형중 <한겨레> 토요판팀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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