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1.05 17:28 수정 : 2014.02.04 10:48

맞벌이·저소득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상시적인 방과후 프로그램인 돌봄교실에서는 개인별 학습지도와 특기적성 등 다양한 교육 활동이 진행된다. 유희수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숙제 지도를 하는 모습.
# 1

“엄마, 우리 학교에 진짜 선생님도 있고 가짜 선생님도 있는 것 알아?”

지난해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초등학교 2학년 큰딸 수아의 질문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9살 아이한테까지 ‘가짜 선생님’으로 오인받아야 하는 선생님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정말?”

“담임은 진짜 선생님이고, 돌봄교실하고 영어 방과후 선생님은 가짜 선생님이래.”

“누가 그래? 너를 가르치는 분들은 모두 진짜 선생님이고, 존경해야 할 분들이야.”

“어, 그래? 알았어. 친구들한테도 그렇게 말할게.”

유희수(33)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현재 수아가 속해 있는 돌봄교실 담임이다. 2년 전 수아가 영서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돌봄교실 안내와 입소 원서 배부·접수, 오리엔테이션에 이르는 온갖 잡다한 행정 업무를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분이다. “전보다 활달해졌어요.” “책 읽는 습관을 갖게 해주세요.” “글씨를 예쁘게 쓰라고 따끔하게 충고했어요.” 수아를 데려갈 때면 먼저 아이의 생활과 학습 태도를 수시로 알려줄 정도로 아이들한테 열과 성을 다하기로 유명하다. 나는 유 선생님을 신뢰하고 존경한다. 정규 교원이냐, 무기계약·비정규 교사냐는 중요하지 않다. 교사의 사명감과 본분에 충실한가, 그렇지 않은가가 우선이니까 말이다.

# 2

“초등 돌봄교사 선생님 이야기를 다루면 어떨까요? 학교에서 하루 8시간 근무하는데, 짝퉁 교사 취급이나 받고, 급여도 교사보다 훨씬 열악하잖아요. 방학 때 교사들은 쉬기도 하는데, 이분들은 방학 내내 근무해야 하고요. 방학 때 가장 힘든 선생님들이거든요. 무기계약직이면 사정이 나은데, 계약직인 경우엔 이쯤 되면 재계약 때문에 안절부절못하고….”

겨울방학을 앞두고, 안영춘 편집장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오케이” 답신이 돌아왔다.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이은희 돌봄분과장에게 연락했다. “취재에 응할 선생님을 찾아볼게요. 섭외가 안 되면 제가 하겠습니다.”

며칠 뒤, 회의 도중 답신 문자가 도착했다. ‘서울 영서초 유희수 선생님, 010-✽✽✽✽-✽✽✽✽. 취재에 적극 응하시겠답니다.’ 낯익은 이름이다. 연락처를 검색해보니, 이미 내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는 분이다. “이번에 취재하기로 한 선생님, 제가 아는 분이에요.”

교원과 회계직, 정규직과 비정규직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해서 전부 ‘교사’가 아니다. 교사에도 ‘급’이 있다.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라 직종과 처우가 달라진다. 근무시간과 형태, 급여와 제수당, 경력 산정과 호봉 등에서도 차이가 크다. 법은 이들의 직종을 ‘교원’과 ‘학교회계직’으로 구분한다. 정규직 교사가 아닌 도서관·과학실·전산실·돌봄교실 등에서 수업을 담당하는 이들이 대표적인 회계직 교사다.

전국의 학교에는 7944명의 ‘돌봄교사’가 있다. 돌봄교사는 2004년 시작돼 상시적인 방과후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은 돌봄교실을 전담한다. 이들은 방과후에 주로 1·2학년 등 저학년 아동들을 돌본다. 근무시간은 시·군별로 차이가 있는데, 대체로 낮 12시부터 저녁 8시까지다. 수업을 준비하고 가르치는 것 외에 간식 준비, 청소뿐만 아니라 각종 행정 업무까지 담당하는 탓에 초과근무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무엇보다 고용불안 상태에 놓여 있다.

유희수 선생님과 ‘공적인 만남’이 있었던 2013년 12월10일 오전, 근무시간이 아니었음에도 그는 교실을 지키고 있었다. 어색한 웃음이 오갔다. 교사와 학부모로 대면하다 인터뷰이와 인터뷰어로 대면하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괜히 발제했다’는 생각이 순간 머릿속을 지나갔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있어서 준비해야 할 것도 있고, 교실 정리도 해야 해서요. 그래도 지난해에 비하면 행정 업무가 많이 줄었어요.”

현재 그는 영서초 돌봄교실 3반을 맡고 있다. 점심 식사 뒤 귀가하지 않고 돌봄교실로 오는 22명 아이들의 방과후 수업 스케줄 관리와 개인별 숙제 및 학습 지도 등을 담당한다. 오후 3시 간식 시간 이전엔 주로 숙제 지도, 간식을 먹고 난 뒤엔 특기적성 교육이 진행된다. 5시 이후엔 독서·놀이 등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월요일엔 생활안전 동화 프로젝트, 화요일엔 수학과 한자, 수요일엔 창의미술, 목요일엔 이야기 논술, 금요일엔 창의도형 수업을 합니다. 영화를 볼 때도 있고, 날씨가 좋을 때는 야외 활동도 하지요. 가급적 아이들의 입장에서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쪽으로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그가 몸담은 영서초등학교에는 1·2학년을 대상으로 총 3개의 돌봄교실이 운영되고 있다. 그는 “돌봄교실 운영 초기만 해도 부모들의 만족도가 낮고 신청을 꺼리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저소득층과 맞벌이로 자격을 뒀는데도, 올해는 유독 신청자가 많아 대기만 18명이 된다”고 귀띔했다.

돌봄교실을 찾는 수요가 증가한다는 건 해당 교사와 교육에 대한 신뢰와 만족도가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는 “지난해엔 한 학부모가 담임 평가를 할 때 ‘유희수 선생님만큼 해달라’고 써서 민망했다”며 “힘들지만 이럴 땐 보람을 느낀다”고 멋쩍어했다. “제 반에서 지도했던 친구들이 3·4학년이 돼서도 인사하러 찾아오고, 스승의 날에 편지도 전해주고, 학부모가 종종 안부 전화라도 해줄 때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어요.”

곧 겨울방학인데, 그는 앞으로 두 달간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꼬박 아이들과 생활해야 한다.

“이제 적응이 되어 괜찮아요. 제가 워낙 건강 체질이기도 하고. 호호.”

정식 교원들에게 방학은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이다. 하지만 돌봄교사에게 방학은 체력적·정신적으로 가장 고된 시기다. 정규수업이 진행되지 않는 탓에 근무시간이 8시간을 훌쩍 넘는다. 그는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학교를 지켜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최근엔 예산 부족으로 보조 선생님도 대폭 줄었다. 이번 방학 때 예정된 영화 관람과 눈썰매 타기 등 두 번의 체험학습도 돌봄교사들의 몫이다.

그런데 초과근무수당은커녕 경력과 근속을 인정받지 못한다. 2년 이상 근속자를 무기계약직으로 고용한 서울시를 제외하고 대다수 지자체들은 단기계약직으로 교사를 선발하거나 주 15시간 미만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해 노동자로서의 기본권조차 보호해주지 않는다. 은수미 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3년 전체 돌봄교사 7944명 중 26.3%인 2093명이 이러한 초단기 시간제 근로계약을 하고 있다.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될 뿐 아니라 고용·산재 등 각종 사회보험과 퇴직금 등에서도 제외된다. 계약직 교사들은 해마다 이맘때쯤 계약 해지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실제로 일자리를 잃는다. 은 의원에 따르면, 돌봄교사의 일자리는 상시적 일자리임에도 54.5%가 1년 이하의 기간제 근로계약을 맺고 있다.

“그나마 저는 무기계약직 신분이라 형편이 낫지요. 그럼에도 고용불안이나 저임금에 시달리는 건 별반 다르지 않아요. 지난해 제 급여가 얼마 올랐는 줄 아세요? 790원. 경력이 쌓여도 호봉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처지이기도 하지요. 1년 경력이든 10년 경력이든 급여는 비슷해요.”

현재 임금이 얼마나 될까?

“월 160만원 수준이에요.”

그가 보여준 돌봄교실 운영계획에 따르면, 2013년 돌봄교사 1인당 연간 2359만5천원의 예산이 책정돼 있었다. 임금이 1906만300원, 퇴직금 및 4대보험 기관부담금 381만2060원, 제수당 52만2200원, 명절휴가보전금 20만원이었다.

“남자 돌봄교사는 거의 못 본 것 같아요.”

“네. 전무하다고 보면 돼요. 열악한 근무 환경과 조건 때문이기도 하지요. 안정적인 일자리가 아니니까요. 돌봄교실 확대 방침과 맞물려 초단기 계약직으로 돌봄교사를 채용하게 되면, 남성 돌봄교사를 구하기가 더욱 힘들어질 거예요.”

박근혜 정부 ‘돌봄교실 확대’의 진실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보육교사 1급, 유치원 정교사 2급 자격증을 소지한 유씨는 3년차 돌봄교사다. “2000년 졸업 이후 10년 남짓 어린이집 교사로 일했다”는 그는 “아이를 보육하는 일이 아니라 아이를 교육하는 일을 하고 싶어 이직했다”고 말했다. “여행을 좋아해서 세계 방방곡곡을 여행했는데, 그 경험을 학생들과 나누고 싶은 욕구가 컸어요.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돌봄교사 채용 공고를 접하게 됐어요. 3년 전만 해도 가정주부들의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생긴 직종이라 중년 여성이 많았는데, 보육보다 교육이 점차 강조되면서 젊은 교사들이 대거 이쪽으로 유입되고 있다더군요.”

현재 돌봄교실 교사는 시도 교육청이 아니라 각 학교에서 수요가 있을 때 선발한다. 교원 임용에 결격 사유가 없고, 보육교사 및 기타 교사자격증을 소지한 이들이라면 지원할 수 있다. 보수는 근무시간과 근무형태에 따라 다르다. 최근 분위기는 월·수·금, 화·목으로 나눠 돌봄교사를 배치하는 방법으로 주당 15시간 미만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유씨는 “아이들과의 유대감·친밀감 측면이나, 교육의 일관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는 고용 형태”라며 “항시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하는 이들이 책임과 소신을 갖고 아이들을 교육하고 지도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가 일과 중에 가장 행복감을 느낄 때는 언제일까.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함께 몸을 부딪치며 뛰어놀 때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제는 아이들이 제 동생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해요. 사방치기와 줄넘기를 하고 눈싸움을 하다보면 이런 게 보람이고 행복이구나 싶죠. 제가 먼저 아이들한테 다가가고 벽을 허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컬러 비즈, 종이접기, 팝업북, 레고 활동 등을 아이들과 함께 하다보면 낮시간이 금방 지납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동경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박봉과 고된 노동, 고용불안 속에 놓여 있지만 평생 이 일을 하고 싶다. 돌봄교실을 정규 교육의 보완재가 아니라 제대로 된 공교육 모델의 하나로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다. 돌봄교실의 역할과 운영이 중요하다고 그는 믿는다.

“2012년 제 돌봄반 학생이던 친구가 있어요. 지난해 교내 돌봄반 추첨에서 떨어졌는데, 최근 그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접했어요. 수업 시간에 땡땡이를 치기도 하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린다고. 활달하지만 참 착한 친구였는데, 속상하더라고요. 만약 돌봄교실에 계속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돌봄교육이 왜 중요한지, 우리가 왜 잘해야 하는지 다시금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는 돌봄교실의 취지와 운영이 단순히 갈 곳 없는 아이를 학교에 가두겠다는 개념이 아니라 정서·인격·학습 차원에서 ‘교육’이 행해지는 장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돌봄교실 확대 정책은 그런 점에서 환영할 만하지 않나요?”

“글쎄요. 그렇게만은 볼 수 없을 것 같아요.”

2014년부터 초등학교 1·2학년 희망자 전원, 2015년 4학년, 그리고 2016년엔 초등생 전원에게 방과후 무상돌봄 서비스를 확대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교육부 안에 따르면 오후돌봄을 오후 5시까지 실시하되, 맞벌이·저소득층·한부모 가정 학생 중에서 추가 돌봄이 필요한 학생에게는 밤 10시까지 저녁돌봄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자체 수요 조사에 따르면, 2014년 돌봄교실 참여 학생은 오후돌봄 33만 명, 저녁돌봄 12만 명 등 약 45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2013년 5784개 학교에서 맞벌이·저소득·한부모 가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는 돌봄교실 참여학생 15만 명에 비하면 3배 가량 늘어난 수치다.

“단순히 돌봄시간을 늘리겠다는 발상이죠. 이는 ‘돌봄’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학생들을 ‘수용’하겠다는 것밖에 되지 않아요. 지금도 저녁 6~7시만 되면 아이들이 대부분 귀가하는데, 밤 10시까지 아이를 학교에 잡아둔다고요? 제대로 된 돌봄도, 교육도 이뤄질 수 없는 시스템이라서 우려스러워요. 또 여기엔 나름 꼼수도 있어요. 박근혜 대통령의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확보’ 직종 1순위로 돌봄교사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이죠. 다시 말해 오후 12~5시, 5~10시로 나눠 교사를 뽑아 운영하겠다는 건데, 아이들을 생각하면 바람직한 시스템은 아닌 거죠. 또 밤 10시까지 돌봄교실이 확대되면 교사 수급뿐 아니라 학내 시스템도 전반적으로 바뀌어야 해서 외주화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기도 하고요.”

돌봄교사 권리 찾아 비정규노조 가입

정치나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던 그는 최근 학교비정규직노조에 가입했다. “아이들을 더 잘 가르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권리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학생들의 일탈과 왕따 분위기 조성 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탈 학생들은 대개 가정과 학교에서 버림받거나 소외된 경우다. “돌봄교실 내에서도 스승과 제자 사이의 유대감이나 친밀감이 커야 양질의 돌봄이 가능하거든요. 정서적 교감이 중요한데, 이를 염두에 두지 않고 졸속으로 추진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인터뷰가 진행된 날은 1·2학년이 5교시 수업을 했다. 4교시를 할 때보다 다소 시간적으로 여유로운 편이었다. 시곗바늘이 1시30분을 가리키니 아이들이 하나둘 교실로 몰려들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래, 너희들도 안녕? 오늘도 우리 잘해보자!” 인터뷰 내내 진지했던 유씨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적막감이 흘렀던 교실에도 생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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