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4.03 15:57 수정 : 2013.04.08 19:06

이원영 대표는 올해 초 한 방송에서 “좀 놀면 안되나요, 회사에서?”라는 말로 제니퍼소프트를 운영해온 철학을 공개했다. 한겨레 박승화 기자
경기도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그를 만난 건 지난 3월 14일 오후 2시 무렵이었다. 세련된 사파리 재킷에 청바지, 캐주얼 모자를 쓴 그가 사옥 1층 카페의 문을 밀고 들어섰다. 어디론가 훌쩍 떠났다가 막 돌아온 것 같은 차림이다.

“지금 출근하시는가 봐요?”

“….”

출퇴근 시간이 자유롭다고 들은 터라 아는 척했다가 이내 무안을 당했다. 언제 출근할 건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따위의 질문은 해선 안 되는 게 이 회사의 불문율이라는 것까지는 몰랐다. 그는 그저 “봄 햇살이 따사로워 기분이 좋다”고만 했다. 좀전에 ‘삶의 여행자’(김윤희 차장·마케팅 담당)라고 적힌 명함을 내민 직원이 그를 소개했다.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고. 스스로 지은 별칭이라고 했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사장님’ 혹은 ‘김 차장’이란 직함은 나오지 않았다. 수평적 관계와 원활한 소통을 위해 자기들끼리는 영어 이름(앤디·아이린)으로 부른다고 했다.

그는 제니퍼소프트의 대표이사 이원영(43)이다. 지난 1월 한 방송 프로그램 1 에 나온 뒤로 유명세를 탔다. 이 회사가 공급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아니라 독특한 기업 문화 때문이다. “좀 놀면 안 되나요, 회사에서?”라는 어록을 남겼고, “복지는 그냥 복지”라는 새로운 개념도 퍼뜨렸다. 프랑스 수준인 주 35시간 근무제에 기본 연차휴가 20일, 자녀 출산 축하금 아이 1명당 1천만 원….

이 회사의 복지제도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사옥 지하 수영장에서 머리를 식히는 것도 근무시간에 포함된다. 아이린은 “출퇴근할 때 드는 휘발유값에다 쉬는 시간에 먹는 간식비까지, 그러니까 회사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퇴근해서 귀가하는 순간까지 모든 비용을 회사에서 댄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입사 지원 문의가 쏟아졌고, 또 다른 쪽에선 “저러다 망하는 거 아니냐”는 의구심을 드러냈다.

우선 세간의 화제가 된 ‘복지제도’에 대해 물었다. <포춘>이 선정하는 ‘일하고 싶은 기업’ 순위에서 해마다 상위권에 드는 미국의 IT 기업 SAS 2 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 직원 수 26명에 불과한 제니퍼소프트가 벤치마킹하기엔 너무 벅찬 일이 아니었을까.

복지는 ‘도어 투 도어’

“개인의 최대 도덕적 덕목은 ‘이타성’이고, 국가의 최대 도덕적 덕목이 ‘정의’라고 한다면 기업이 갖는 도덕적 덕목은 뭘까요? 제가 나름 찾아낸 해답은 구성원(직원)에 대한 물질적 풍요를 주는 거였어요. 그것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합의한다고 봤고요.”

‘복지는 그냥 복지’라는 말에는 심오한 뜻이 담겨 있었다. 앤디는 직원들에게 복지를 베풀면 생산성 향상으로 보답해줄 거라는 식의 논리를 거부한다. 삼성 같은 굴지의 대기업에서 하는 것처럼 복지를 ‘수단’으로 삼지 않겠다는 말이다.

“인간을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정언명령’이 있습니다. 그것을 기반으로 인간을 수단화할 수 있는 배경이 만들어졌고, 자본주의가 태동했어요. 그런데 오로지 수단으로만 쓰지 말라고 했지만 현대 자본주의는 그렇지 않잖아요. 인간을 그 자체의 목적으로 대하라는 의미를 되찾는 것이 자본주의의 원래 취지고, 제대로 갈 길인 거죠.”

복지는 한 사람이 삶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기본 사항인데, 그걸 수단으로 대해선 안 된다는 논리다. 이런 인식은 직원에 대한 보상 수준을 결정하기 위한 ‘평가’를 없애겠다는 방침으로 이어졌다. 업무 성과를 평가하는 대신 직원의 자발적 기여로만 회사를 운영하겠다는 취지다.

“성과 보상을 주창해온 미국에서도 이미 그 한계를 이 야기한 지 오래됐어요. 물질적 보상으로 사람들의 자발적 열정을 이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많이 있 고요. 가령 아이들에게 ‘종이접기를 잘하면 게임하게 해주 마’ 약속한다면, 아이들의 정신적 혼란만 야기시키는 결과 를 초래한다는 식이죠. 오히려 내적 동기를 유발하는 게 이 상적이라는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국내에선 여전히 돈으로 보상해 성과를 끌어내겠다는 발상이 지배적 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구성원의 자발적 기여는 어떤 방식으로 이끌 어내는 걸까. “에이, 그걸 제가 어떻게 끌어내겠어요. 그냥 알아서 하는 거죠.(웃음)”

좀더 흥미로운 대목은 물질적 풍요를 공급하는 방식이 다. ‘필요한 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주자.’ 그것이 가장 ‘공정 한’ 분배의 방식이라는 게 앤디의 지론이다.

어떤 직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는 연봉을 ‘협의’할 때 파악한다. 우선 연봉은 대부분 직원의 희망 수준에 가깝게 맞춰준다. 다만, 왜 그만큼 필요한지 정황을 묻는다. 마찬가 지로 복지 항목도 각자 사정에 따라 정한다. 지방에서 올라 온 직원에게는 월세 주거비를 절반가량 지원해주는 식이다.

“똑같은 돈 500만 원이 있어도 자산이 있는 사람과 그 렇지 않은 사람에게 다가가는 가치가 다르거든요. 그런 정 황을 살펴서 당사자에게 가장 귀중하게 생각되는 부분을 제공하도록 노력해요. 그런데 연봉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조심스러워요. ‘너희는 고액 연봉자냐, 공정하게 주고 있는 거냐’는 식으로만 관심이 집중될 우려가 있어서….”

그는 연봉이나 복지제도 등 외적 요소에 관심이 쏠리 는 것을 마뜩잖아했다. 그런 질문을 받는 게 영 불편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인터뷰가 한때 중단되기도 했다. 기자가 궁 금한 걸 채우고 가는 게 아니라 교감을 이루고 싶다는 뜻을 여러 차례 전달해왔다.

“근사하지 않나요? 계속 고민하고 사유해가고 있는 단 계입니다.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지만, 단지 만들어가려 고 노력할 뿐이잖아요.”

금기어 ‘언제 출근했니’, ‘있다가 통화하자’

제니퍼소프트는 2005년에 설립된 소프트웨어 기업이 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뒤 LG EDS(현 LG CNS), 한 국 IBM 등에서 월급쟁이로 일하던 이 대표가 일군 회사다. 애플리케이션 성능 관리 솔루션(APM) 판매가 주된 비즈 니스다. 쉽게 말해 인터넷 뱅킹 등 웹 기반 서비스를 모니터 링해 시스템이 다운되거나 지연되는 걸 예방하는 프로그램 이다.

‘이러다 망하지 않느냐’는 질문은 인터뷰할 때마다 받 는다고 했다. 대답은 한결같다.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잘될 겁니다.”

실제로 제니퍼소프트의 영업 실적은 곤두박질 친 적이 없다. 고객사가 640여 곳에 이르러 관련 분야에서 국내 시 장 점유율 70%를 유지하고 있다. 2011년에 매출 100억 원 을 달성했고, 순이익도 한 해 전보다 55% 올랐다. 지난해 역시 실적(매출 기준)이 24% 상승했고, 올해는 매출액 140 억 원을 바라보고 있다.

‘망하지 않을 것’이란 근거를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1970~80년대는 산업생산의 시대였어요. 노동시간 이 곧 생산으로 이어지던 때였죠. 그래서 아침에 일찍 일어 나고 성실과 복종을 중시했어요. 그런데 정보화 시대에 와 서는 창의와 열정이 중요해졌습니다. 자율성을 보장해주고 스스로 자기 역량을 끌어올려서 창의적 결과를 이끌어내 야 생산성이 담보되는 시대가 온 거죠. 앞으로는 진정성의 시대이자 감성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사람들이 인 간적인 것, 진정성 있는 것에 감동을 받고 몰려가요. 그래서 구성원 개개인의 자아실현과 희망 같은 걸 보장해주는 게 중요한 거예요.”

앤디도 창업 초기엔 다른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남들처럼 기업을 성장시 키는 데 매진했다. 그러다 보니 의도하지 않게 “구성원을 많 이 괴롭힌 것 같다”고 했다.

“회사를 만들고 나서 5년쯤 지나자 그런 생각이 들었 어요. 내가 하고 있는 기업경영이란 뭘까. 나와 함께 일하 는 동료와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뭘까. 근원적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지기 시작하면서 이 윤 추구에만 매달리던 기존 기업관과 다른 사유를 하게 된 거죠.”

방송을 통해 유명세를 타면서 제니퍼소프트엔 함께 일 하고 싶다는 사람들의 입사 문의가 빗발친다. 전자우편은 물론이고, 우편으로 배달된 손편지, 직접 회사를 찾아온 이들도 있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쿠키를 계속 집어먹던 앤 디의 손놀림이 갑자기 더뎌졌다. 뭔가 ‘짠한’ 사연이 떠오르는지 눈가도 촉촉해졌다.

“(방송 직후) 제가 미국에 출장 가 있었는데 400여 통 의 이메일을 받았어요. 사연을 읽어보니 눈물이 쏟아지더 라고요. 혼자서 통곡하며 울었어요. 일일이 답장을 다 써드 렸고요.”

“기억에 남는 분이 있나요?”

“15년 정도 직장을 다닌, 두 딸을 둔 아빠라고 본인을 소개한 분이 있어요. 7차례나 회사를 옮기셨대요. 아직 단 칸셋방에 살고 있고 현재는 일자리가 없는 상태고. 사람답 게 살고 싶다고 하더군요. 우리 회사에 들어오면 그런 대우 를 받을 것 같다면서 청소라도 하고 싶다고 했어요. 표면적 으로는 많은 이들이 제니퍼소프트의 복지제도 등에 관심 갖게 된 거지만 그 밑바닥에는 자신들이 몸담은 회사에서 겪은 무시무시한 경험을 내려놓고 싶은 게 아닌가 싶었어 요. 늘 눈치 봐야 하고 자신이 수단화되고 있다는 자아상실 감 같은 거요.”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역할이 뒤 바뀌는 시간 말이다. 앤디가 정색을 하고 기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무장해제된 상태에서 받는 기습공격이 이런 걸까.

“저도 하나 물어볼게요. 지금 다니는 회사가 어떤 회사 면 좋겠어요? 마음껏 상상해보세요. 난 이 회사에 왜 다니 고 있고, 어떤 삶을 누리고 싶고, 개인의 삶과 사회적 삶의 균형을 어떻게 가져가고 싶은지. 내 인생의 관점에서 이 공 동체(회사)가 어떻게 되면 좋을지. 생각해본 적 있으세요?”

“음… 그게… 어떻게 하면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순식간에 식은땀이 비질비질 났다. 더듬거리는 기자에 게 앤디가 곧바로 ‘정답’을 들이민다.

“우선 근무시간부터 좀 줄여야 하지 않을까요? 돈 버 는 목적이 자기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일 텐데, 돈 버는 일 에 시간을 전부 갖다 바치는 건 문제가 있잖아요. ‘열정노동’ 이라는 위험스러운 단어가 있어요. ‘당신이 좋아서 하는 거 아니냐’는 식이죠. 열정을 이용해 노동으로 치환하려는 노 력, 정말 위험한 발상입니다.”

제니퍼소프트의 노동시간은 주 35시간이다. 회사가 처음 생겼을 때만 해도 주 40시간이었다. 노동법상 점심시 간이 노동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나서, 이 대표 가 주 35시간으로 바꿨다. 휴가 일수도 계속 늘려왔다. 신 입사원이 입사하면 기본 연차 휴가가 20일이고, 2년마다 하루씩 늘어난다. 5년 근속을 하면 2주, 10년 근속을 하면 2개월의 안식휴가를 쓸 수 있다. 회사는 아예 휴가관리 애 플리케이션 ‘노라’(Nora·‘놀아’를 소리나는 대로 발음한 것) 를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남은 휴가 일수를 관리할 수 있 고, 다른 직원이 휴가를 언제 사용하는지 공유할 수 있다.

“회사를 옮길 때 해외여행 가는 분들 있잖아요. 저는 그러지 말고 회사 다니면서 가라고 해요. 연차 휴가 다 쓰고 휴가 일수가 모자라면 무급휴가로 최대 8주까지 다녀올 수 있도록 해주고 있어요. 올가을에도 직원 한 명이 인도에 갈 거라고 하더군요.”

회사 규모가 크지 않지만 육아휴직도 마음놓고 쓸 수 있다. 두 아이를 둔 아이린도 그랬다. 첫아이 때 1년, 둘째 때 6개월을 썼다. 육아휴직을 해도 눈치 주지 않는다. 회사 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일 가운데는 집에서 아이들이 전화하 면 ‘회의 중이니까 좀 있다가 통화하자’고 말하지 않기가 포 함돼 있다.

알려진 대로 제니퍼소프트 구성원은 근무시간을 각자 알아서 채우고 있었다. 한창 일해야 할 오후 2~4시에도 사 무실 곳곳엔 드문드문 빈 자리가 보였다. 아침에 일어나 보 니 날씨가 좋아서 휴가를 낸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일하다가 테니스 치러 간 이들도 있었다. 해가 지면 사무실은 텅텅 빈 다. 밤샘작업을 비롯해 야근이 관행화된 다른 IT 기업과 확 연히 달라 보였다. 무엇보다 사무실 책상머리에 앉아 있어 야 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있다. 몰입과 휴식(여유)을 적 절히 조화시킬 때 일도 더 잘된다는 믿음이 있다. 수영하는 시간을 근무시간에 포함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

노동자 총회서 대표를 뽑고 싶다

앤디의 기업철학은 미래 지향적이다. ‘미래에서 온 사 람’이라는 그의 별칭과 잘 어울린다. 인터뷰 내내 그는 회사 혹은 조직을 ‘공동체’로, 직원이란 말 대신 ‘구성원’이라는 표 현을 썼다.

“조직·집단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어요. 첫 번째는 시 계처럼 부품 하나가 망가지면 작동이 아예 멈춰버리는 메 커니즘입니다. 두 번째는 생태학적 용어에서 오는 오거니 제이션이 있죠. 동·식물처럼 세포가 살아 있고 양분을 주 고 받지만 나뭇가지 하나, 뿌리 하나가 잘려가도 나무 자체 는 살아 있게 되지요. ‘너 하나 잘려도 우리 조직은 망하지 않는다’는 걸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조직 사회가 그런 경우 입니다. 세 번째는 각기 희로애락의 감정을 갖고 있는 인격 체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라는 게 있어요. 기존에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쓰는 ‘조직’이란 말에는 각 개인이 조직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만 따지지, 그 사람의 희로애락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잖아요.”

그는 현대사회에서 진정 되찾아야 할 것은 ‘공동체성’ 이라고 말했다. 한 사람 한 사람 어떤 희망과 꿈을 갖고 있 는지 물어봐줄 수 있는 틀이 공동체라는 것이다. 마침 그가 요즘 읽고 있는 책도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라고 했다.

“공동체주의자가 자유주의자를 비판하는 내용인 데…. 근데 아이린, 저 책 너무 어려워. 짜증 나.”

“앤디, 번역이 잘못됐다는 이야기가 있어요.(웃음)”

앤디와 아이린뿐 아니라 제니퍼소프트 구성원은 서로 읽은 책을 권하거나 흥미로운 내용이 있으면 즉석에서 토 론을 벌이기도 한다.

평소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훗날이라도 제니퍼소 프트를 상장하거나 (다른 기업을) 인수·합병할 계획이 없 다”고 밝혀왔다. 주식 상장을 하면 기업 가치를 불려서 기업주가 지배력을 더 많이 발휘하거나 현금을 확보하는 수 단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주된 이유다. 앤디는 “미 국과 한국에서 작동되는 주주 자본주의에 대해 제대로 바 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미국에선 관행적으로 직원 수보다 주주 수가 더 많아 요. 소액 주주가 많은 상황에서 제대로 권한을 행사하지 못 하고, 경영자가 회사의 권력을 장악하는 셈이죠. 그래서 미 국에서는 주주 행동주의같이 주주의 권리를 되찾자는 게 좋은 걸로 비쳐져요. 한국은 상황이 정반대죠. 굳이 아무 개 회장의 이야기를 들지 않더라도 순환출자를 통해 적은 지분으로 실질적 경영권을 다 갖고 있는 식이죠. 중소기업 도 설립자가 최대 주주이자 경영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어요. 오히려 노동자들의 참여를 독려해야 할 상황이라는 거죠.”

이런 맥락에서 독일처럼 이사회에 주주 대표뿐 아니라 노동자 대표도 참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 다. 그는 자신도 제니퍼소프트 안에서 너무 큰 권한을 갖고 있다고 시인했다. 이 때문에 회사 안에선 5명으로 구성된 ‘불레’(Boule·직장평의회) 팀을 두도록 했다. 이 기구는 노 동환경과 복지제도 등을 검토하고 의견을 낼 뿐만 아니라 직원 해고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궁극적으로 기업의 대표는 노동자 총회에서 선출해야 한다는 게 앤디가 지향하는 바이다. “주식회사의 주인이 오 로지 주주일 수는 없어요. 사람에 주인이 없듯이 법인체도 주인이 없다는 점을 자각하면 기업의 역할이 뭔지가 뚜렷 하게 나오는 거죠. 현재는 대표이사를 이사회에서 선출하 고, 이사회는 주주 총회에서 선임하도록 돼 있는데 그걸 바 꾸자는 겁니다.”

하지만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과연 그런 방식이 이상적일지에 대해선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회사 대표를 직원이 선출한다고 했을 때 단지 자신에 게 급여를 가장 많이 줄 사람을 선출하거나 극단적으로 회 사를 망칠 수 있는 이를 뽑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지속 가능한 기업을 만들기 위해 그런 균 형점을 어떻게 찾아가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는 말이에 요. 그런데 민주주의는 어차피 최선을 하자는 게 아니라 최 악을 막자는 거니까요.”

제품을 개발할 땐, 다른 공동체에 속한 구성원을 배려 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제니퍼소프트가 개발하는 소프트 웨어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IT 기업 노동자들의 일을 지원하되 지나친 자동화로 그들의 일자리를 없애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균형점을 찾자는 취지다.

“해당 업무의 전문성을 살릴 솔루션을 개발하는 게 목 표지, 모든 문제를 자동화시키지 말자는 거죠. 기술 개발도 점차 진화할 수 있도록 이끌어가는 게 중요해요. 사실 사업 적으로도 완벽한 제품을 만드는 순간, 그 시장은 끝나버리 는 거잖아요.” 엔지니어 사이에 이런 공감대가 형성되기까 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아이린은 “구성원이 일상적으 로 이런 식의 대화와 토론을 이어가기 때문에 언제부터인 지 모르지만 서로가 닮아 있더라”고 말했다.

“좀 놀면 안 되나요”, 나를 찾는 과정

“좀 놀면 안 되느냐”는 앤디의 말에는 강한 ‘울림’이 있 다. 회사에서 논다는 건 어떤 걸까. 그는 지난 1월 21일 창립 8주년 기념 파티를 한 예로 들었다. 2주에 걸쳐 준비한 이 날 파티에는 인디밴드 공연팀이 함께 놀았고, 직원들이 다 양한 예술작품을 같이 만들면서 어우러졌다. 맛있는 음식 을 먹고 수영과 스파를 즐기는 여유도 부렸다.

“논다는 게 뭘까요. 저는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닌 가 싶어요. 상상과 의식이 온전히 자유로워질 때까지 함께 놀자고 말한 것도 그런 취지에서 나온 거고요. 이건 유흥과 는 달라요. 저는 삼겹살 굽고 술 마시는 회식은 회사에서 하 지 말아야 할 일에 포함시켰어요. 대신 파티하자고 하죠. 인 간은 생각하는 동물 이전에 놀이하는 동물이잖아요. 놀이 를 통해 인간이 온전하게 자유로워질 때 자아를 찾게 되고 삶을 누릴 줄 알게 돼요.”

회사를 관통하는 일관된 열쇳말은 ‘자유로움’이다. 제 니퍼소프트가 ‘포이에시스’(Poiesis) 3 를 지향한다고 대외적 으로 밝혀온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넓게 보면 포이에시 스는 인간에게 필요한 걸 만들어내는 기술 일반을 가리키 지만, 좁게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모방하는 게 아니라 스스 로 참되다고 느낀 세계를 표출하는 활동을 뜻한다. 이는 간 섭하거나 지시하지 않더라도 직원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업무 환경을 조성해주겠다는 앤디의 뜻 과 맞닿아 있다.

그에겐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몸소 느끼게 해준 기 억이 하나 있다. 경북대 수학과에 입학한 1990년, 포항교도소에 3개월을 갇혀 있었다. 세계무역기구(WTO) 반대시 위에서 ‘꽃병’(화염병)을 던지다 잡혔다.

“이 세상을 위해서 정의로운 게 뭘까 고민하던 시절이 었어요. 행동으로 옮겨야겠다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 이 들던 때였고요. 미결수로 지내면서 자유가 주는 가치가 얼마나 큰지 그때만큼 크게 느낀 적이 없었어요. 쇠창살 너 머로 눈이 오고 아이들이 눈싸움하는 걸 보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더군요. 그런 자유는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 오랜 인류의 역사 속에서 투쟁해 얻어냈다는 것을 깨닫는 시기였어요.”

이야기를 나눈 지 1시간쯤 지났을까. 앤디는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오겠다고 했다. “여기서는 사계절을 전부 느낄 수 있어요. 서울에서는 잘 못 느끼지요. 풀밭에서 바람을 맞으 면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있으면 모든 게 치유되는 듯할 때가 있어요. 상상이 가세요?”

헤이리 예술마을의 사옥으로 옮긴 건 지난해 4월이었 다. 그 전에는 서울 구로 디지털단지에 사무실이 있었다. “공장형 빌딩 아시죠. 지하철 게이트에서 우르르 쏟아져 내 려오는 수많은 IT 노동자를 볼 수 있죠. 점심시간 딱 1시간 동안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기를 반복하고. 하늘 한번 제대 로 올려다보기 힘든 그런 곳의 생활에서 우리 모두 탈출을 꿈꿨던 것 같아요.”(아이린)

앤디는 미국 구글 캠퍼스나 이탈리아 숲 속의 한 건축 사무소 등을 둘러보고 큰 자극을 받아, 사옥 이전 계획을 구체적으로 하게 됐다. ‘수영장이 있는 회사, 직원이 아이를 데리고 회사에 올 수 있는 회사, 문화강좌가 수시로 열리고 늘 좋은 음악이 흐르는 회사, 매달 가정으로 제철 과일을 배달해주는 회사….’ 그가 사옥을 설계하면서 떠올리던 것 들이다.

‘땅콩집’으로 잘 알려진 이현욱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 뢰했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한 땅 콩집이 제니퍼소프트의 지향과 닿아 있다고 봤다. 일반인 에게 개방한 1층 카페는 일상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간 이자 사유하는 공간이다. 점심식사와 간식을 이곳에서 해 결하고, 사장실이 별도로 없는 앤디의 작업 공간이 되기도 한다. 정기적으로 파티가 열리고 때때로 인문학자를 초청 해 오픈 세미나를 열기도 한다. 1층부터 3층까지 연결되는 계단 가운데에는 책장을 길게 넣어 자유롭게 책을 꺼내 볼 수 있게 했고, 옥상에는 텃밭과 천문관측대를 뒀다. 1층에 는 키즈방을 두고 직원 자녀들과 놀아줄 교사를 정규직으 로 채용했다. 아이들은 옥상 텃밭과 지하 수영장 등을 언제 든지 이용할 수 있다.

회사를 서울에서 경기도로 옮겼지만 그만둔 직원은 없다. 오히려 새로 지은 사옥 부근으로 이사해온 이들이 더 많다. “이상적 공동체 모델로 삼고 있는 게 바로 ‘유목 생존 공동체’입니다. 그에 대한 첫걸음을 헤이리 사옥에서 내딛 게 된 거고요. 앞으로도 더 나은 공간과 환경을 찾아서 무 리 지어 옮겨 다닐 겁니다.”

스펙만 쌓는 현실 “진짜 슬퍼요”

앤디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모순을 해결할 중심에 서 있는 게 기업 사회”라고 잘라 말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 느냐고 물었다.

“흔히 교육이 문제라고 하는데, 저는 기업이 문제라고 봐요. 노동시장에서 근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모순이 풀리지 않거든요. 당장 직원을 채용할 때 학벌이나 지연, 혈연 같은 걸 중시하는 관행부터 끊어야 해요. 얼마 나 슬픈지 알아요?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네이버 지식인에 글을 올려요. 제니퍼소프트에 들어가려면 어떤 스펙을 쌓 아야 하느냐고요. 경쟁 기반의 사회적 성공, 정확하게는 돈 버는 일이 중요하다는 각인이 아이들에게까지 심겨 있는 겁니다.”

‘경쟁보다 협력하라.’ 제니퍼소프트 구성원들의 행동 준칙 가운데 하나다. 그는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고 자아를 상실하게 만드는 경쟁을 혐오한다”고 했다. “우리 멤버들은 경쟁을 안 해요. 이건 진짜 자신해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른 일을 하고 있어요. 협력하지 않으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놨고요.”

학벌이나 스펙을 중요시하지 않는다면 직원 채용은 어떤 기준으로 하는 걸까. 면접 인터뷰는 앤디뿐 아니라 해당 업무에 관련된 구성원이 공동으로 참여한다고 했다. 그의 단골 질문은 뭘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뭔지 물어봐요. 그 사람의 결핍이 어떤 수준인지 보게 되죠. 적절한 결핍은 엄청난 에너지로 작동하거든요. 근데 지나치면 자기 존재감을 그걸로 채우려 해서 위험할 수 있어요.”

묵묵히 대화를 듣고 있던 사진기자가 한마디 던진다.

“사진을 찍다 보면 렌즈 속에서 보이는 관상이 있거든요. 이 대표 웃음 뒤에 알 수 없는 고통 같은 게 보여요. 욕심이 많아서 큰 고통을 안고 사는 사람처럼.”

“좀 그런 거 같아요. 과거를 죽 돌이켜 보면 무엇을 위해 그랬나 싶을 만큼….”

그는 자신의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실은 앤디를 비롯한 제니퍼소프트 구성원들은 8개월째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고 했다.

“제 경우에는 누군가에게 조롱이나 비아냥을 받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더라고요. 그래서 더 강한 척하려고 했고. 심리상담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존감을 갖게 되고 타인을 포용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교육이 사유하는 법을 안 가르치잖아요. ‘왜 사느냐’는 단순한 질문에도 답을 못하게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그래서 제니퍼소프트는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1년간 어떤 업무도 맡기지 않고 책이나 신문을 읽고 사유하는 시간을 갖도록 한다. 이 기간에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왜 하고 싶은지 등을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것이다.

인터뷰 말미에 훗날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물었다. 뭔가 좀 거창한 꿈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싱거운 답변이 돌아왔다. 어찌보면 끝까지 일관된 화두다.

“평범한 자연인으로 살고 싶어요. 자유롭게. 근데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네요, 진짜.”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게 아닌가요?”

“글쎄요. 나와 관계된 사람들로부터 나는 진정 자유롭던가. 부모님이나 아내, 아이들, 동료…. 때때로 무거운 짐으로 다가올 때가 있어요. 나는 내 사고를 온전히 내 삶을 위해 쓰고 있는지 묻게 되고. 개인주의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나를 위해 그동안 뭘 해왔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더라고요.”

아이린이 끼어든다. “(요즘) 딱 사춘기 모습이세요. 봄을 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게요. 세상이 막 슬프고 눈물 나기도 하고…. 봄이 너무 따뜻해서 그런 걸까요?(웃음) 내겐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다채로운 자아가 있을 텐데요. 우주 공간에 물방울이 몽글몽글 맺어 있듯이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진 물방울들이 내 주위에 동동 떠다니는 것 같아요. 모두 하나하나의 스토리를 담고 있는 또 다른 내 모습일 텐데. 자의식을 찾아가는 과정이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1 제니퍼소프트는 지난 1월 6일 SBS TV 스페셜 <리더의 조건>에 소개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2 SAS는 2010년, 2011년 <포춘>이 선정한 ‘일하고 싶은 기업’ 1위에 오른 회사다. 직원 복지를 지원하기 위한 인력만 200여 명에 이른다. 이 회사의 짐 굿나이트 회장은 “내 자산의 95%(직원)가 매일 밤 운전해서 회사 정문을 빠져나간다. 다음날 그들이 다시 회사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 내 임무다”라고 말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구조조정 없이 회사를 운영하며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3 그리스어로, 본뜻은 ‘제작·생산’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지적 활동을 ‘관조, 실천, 제작’으로 나눴다. 첫째는 이론적 탐구를, 둘째는 정치를 포함한 윤리적 행동을, 셋째는 생산기술 활동이나 예술 활동을 가리켰다. 포이에시스가 주로 예술 활동으로 생각되면서 제작학은 ‘시학’이 되고 나중에 ‘시’라는 개념이 됐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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