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4.03 16:28 수정 : 2013.04.08 19:35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

우스개스럽지만, 이 키워드가 오랫동안 우리 교육 현실을 대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녀의 성공, 적어도 입시에 있어서 아버지의 존재가 무의미했다는 방증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불문율이 깨지고 있다. 최근 화제리에 방영된 <그녀들의 완벽한 하루>(KBS2)를 보자. 월 교육비가 200만 원에 달하는 서울 강남의 유명 영어유치원 학부모인 그녀들은 자신의 네트워크와 정보력만 맹신한다. 자녀의 성공을 위해 24시간 발로 뛰지만, 결과적으로 득보다 실이 더 많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굳이 드라마를 들춰내지 않더라도 ‘치맛바람’ 무용론이 현장에서 터져나왔다. 사교육계 전설로 꼽히는 손주은 메가스터디 대표는 지난해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일갈했다. “최근 2~3년에 엄마의 정보력은 무력화됐다. 재수생에 비해 고3의 명문대 진학 비율이 준 것도 그래서다. 할아버지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대입 성공의 3박자 시대는 끝났다. 엄마의 어설픈 정보가 자녀의 입시를 망친다.”

공교롭게 이러한 ‘치맛바람’ 무용론 틈새를 ‘바짓바람’이 파고들었다. 아버지가 자녀의 교육 문제에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런 추세는 3~5년 전부터 두드러졌다. 출발은 인터넷 카페다. 2008년 개설된 파파안달부루스(cafe.daum.net/papa.com)를 거점으로 수만휘(cafe.naver.com/suhui), D스쿨(dschool.co.kr), 스터디홀릭(studyholic.com) 등의 커뮤니티가 바짓바람의 진원지로 꼽힌다. 인터넷 카페만의 매력이자 장점인 익명성과 정보의 취사 선택 용이성이 아버지들의 교육열과 맞물려 나타난 결과다. 아버지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고급 입시·교육 정보, 학원이나 강사 정보와 학습지도법 등에 대한 갈증을 해결한다.

‘4학년이 된 아들의 예·복습, 노트 필기법 등을 도와주고 있는데, 옳은가?’, ‘지금은 집에서 영어책을 읽는데, 영어학원 꼭 보내야 하나?’, ‘외고나 특목고 입학을 위한 조언이 필요하다’ 등 아버지가 직접 쓴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치고 빠지기’는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파파’들의 공통된 습성이다. 닉네임으로 등장해 ‘눈팅’ 하고, 원하는 정보를 ‘스크린’한 뒤 자취를 감추는 식이다.

이런 카페에서 열혈 회원으로 활약 중인 오아무개씨(49·회사원)는 “아빠들의 참여가 점점 두드러지고 있는 건 게시물과 덧글이 생명인 카페 특성답게 얼굴과 실명을 드러내지 않고도 의견을 나누고, 필요한 정보를 취사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아버지는 엄마와 달리 인맥이나 네트워크 쌓기, 오프라인 참석 등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귀띔했다.

바짓바람은 입시제도가 갈수록 복잡해지는 경향과 맞물려 있다. 대입 전형 방법만 3천여 가지라고 한다. 교육평론가 이범씨는 “입학사정관제 영향으로 자녀 진로와 행복을 고민하는 아버지가 늘어나고 있다”며 “인터넷 카페는 남성들이 입시 설명회 등으로 발품을 팔지 않아도 직장에서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줬다”고 설명했다.

입시에서 내신과 수능 비중이 줄고 특기 적성, 사회적 배려 대상자(사배자) 전형 등 성적 외의 요소가 중시되면서 ‘정보력 격차=입시 성패’라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아버지의 역할론이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한 것도 한 배경이다. 김현정 D스쿨 대표는 “여성이 상대적으로 감정과 절대적 인맥,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면, 남성은 입시를 프로젝트 과정처럼 객관적·체계적·논리적·분석적 관점에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전업주부가 이러한 남편의 강점을 자각하기 시작하고 입시와 관련해 남편 의존도를 높이면서 바짓바람 확산에 일조했다”고 설명했다.

전통적으로 아내에게 떠맡겨진 보육과 교육 책임이 맞벌이 부부가 늘고 가구당 자녀 수가 줄면서 부부 공동 몫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김호진 하이논술 대표는 “5년 전부터 직접 학원을 찾아 상담받는 아버지가 크게 늘었는데, 진로 탐색 과정이 중시되면서 아버지들의 멘토 욕구가 커진 것 같다”며 “가사 분담이 보편화되듯 육아와 교육 면에서도 역할 분담 또는 공동 책임이라는 긍정적 인식이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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