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7.03 13:41 수정 : 2014.07.03 13:41

우리 사회는 힘없고 가난한 이들에게서 가장 많은 것을 착취하고 억압한다. 그럼에도 주류 언론은 주류적 이슈에만 관심을 두고 재현한다. 은 그 대척점에 서려 했던 언론이다. 한겨레 박승화
<나·들>은 내 책상에 뒤집어져 놓여 있다. 응시하는 얼굴이 부담스럽다. 새벽녘, 잠들 때면 그 얼굴이 구름처럼 떠올라 눈·코·입으로 조형되는 상상을 한다. 얼굴이 잠자는 나를 내려다본다. 누인 몸을 다시 일으켜 책 표지가 보이지 않게 뒤집어져 있는지 확인한 밤도 있었다. 그마저도 꺼림칙해 <나·들> 위에 두꺼운 책을 얹어놓는다. 얼굴이 떠오르지 못하게.

나는 장애인 인터넷 언론 <비마이너>(Be Minor)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2년4개월가량 됐다. ‘기자로 활동하다’라고 표현한 것은 <비마이너>라는 매체의 특수성과 구성원의 특이성 때문이다. <비마이너>는 장애인 뉴스 중에서도 장애인 당사자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찾아나가는 소식을 주요하게 다룬다. 기자 3명 중 2명은 장애인야학 교사다. 나는 그 2명 중 한 명이다. 올해부터 인천에 있는 장애인야학에서 연극 수업을 하고 있다.

야학 교사를 하고 싶게끔 날 추동했던 가장 큰 계기 중 하나는 <비마이너>의 장소 특이성이다. <비마이너>는 (<나·들>에도 몇 번 소개된 바 있는) 노들장애인야학과 한 공간에 있다. 노들야학은 학령기 때 교육받지 못한 성인 장애인들의 교육이 이뤄지는 곳이다. 노들야학 맨 끝방에 <비마이너>가 있다. 수업이 있는 저녁엔 학생들의 전동휠체어로 복도가 가득 차 지나가기도 어려울 정도다. 노들야학에선 기본적인 한글 문해와 수학 등을 비롯해 음악·미술·연극 등 특별활동 수업이 진행된다. 2년여간 노들야학에 있으면서, 난 수업이 이뤄지는 교실 문 너머 이야기들이 궁금했다.

<비마이너>에 들어온 건 우연이었다. 그전엔 언론 공부와 전혀 상관없는 연극 공부를 했다. 하여, 기자 생활은 낯설었다. 내가 경험한 기자 생활은 ‘경계인’ 같았다. 안으로 깊숙이 빠지지도, 완전 외부에 있지도 않은 그 경계는 혼란스러웠다. 수첩과 펜, 카메라를 들고 가장자리 어딘가에서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딱 그 물리적 위치가 말하는 경계선상의 경계인.

그러나 경계인으로만 존재하기엔 현장에 모인 이들의 얼굴이 내게 너무 가까웠다. 야학에서 얼굴을 마주 보고 함께 밥 먹던 이들이 집회 현장에서 경찰에게 두들겨 맞고 끌려가고 연행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적응되지 않았다. 초반엔 ‘기자’라는 걸 잊고 같이 싸우던 날도 있었다. 아는 이들이 휠체어에서 내려와 바닥을 기던 날에는 온몸이 무너져내릴 것 같았다. 아는 얼굴이 영정 속 사진이 되어 나타날 때는 무참했다. 그들은 불타 죽고 제때 병원에 가지 못해 죽었다.

이곳에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아는 얼굴은 늘어만 가고 관계의 밀도는 높아졌다. 그럴수록 그들 삶이 궁금했다. 때마침 야학 교사들로 이뤄진 극단이 인천에 있었고 그렇게 그들과 연극 수업을 하게 됐다.

<비마이너>에 오기 전까지 ‘장애인’은 내 삶에서 고려되지 않은 별개의 집단이었다. 아니, <비마이너>가 노들야학과 한 공간을 쓰지 않았다면 장애인 소식을 주요하게 다루는 언론사였어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마이너>는 노들야학에 있었고 나는 그들과 너무 친밀해져버렸다. 이젠 되레 사회가 ‘장애인’이라고 범주화한 이 이름에 불편함을 느낀다. 그 호칭이 벗겨진 자리에 드러난 것은 사람이다. 우리는 각자의 이름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만나고, 나는 당신의 이름을 부른다.

내가 주로 만나는 이들은 장애인, 발달장애인 가족, 성소수자, 빈민, 기초생활수급자 등이다. 자기 몫의 목소리를 갖지 못한 이들이다. 사회에서 배제된 이들은 언론에서 주로 익명으로 자리한다. 중증장애인 김아무개, 노숙인 박아무개, 발달장애 아동을 둔 일가족 등으로 신문 한쪽에 존재한다. 나는 내 활동이 이들의 얼굴을 드러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나·들>을 좋아했다.

이 사회는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서 가장 많은 것을 착취한다. 사회의 부조리와 억압이 씨줄과 날줄처럼 그들 일상을 엮는다. 그들 일상의 텍스트는 그렇게 짜여 있다. 그 텍스트를 읽어내야 한다. 하지만 주류 언론은 주류적 이슈에만 관심 있을 뿐이다. 기존 언론은 자신들의 시각에서, 즉 주류적 관점에서 사건을 설명했다. 사람은 익명으로 존재했고 내부는 외부에서 해석됐다. 당사자들의 목소리보다 속칭 ‘전문가’의 발언을 캐스팅했다.

<나·들>은 “사건이 아닌 사람을 재료로 삼는다”고 했다. 한 사람의 삶에 얽혀 있는 텍스트를 풀어 사회구조를 직조해낸다. 당사자의 삶 자체가 증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3차원 인터뷰’ ‘나들의 초상’ ‘아파트 키드의 생애’ 같은 글은 흥미로웠다.

이 사회는 다름의 양극단에 서 있는 것 같다. 긴장은 곧 끊어질 듯 팽팽하다. 한 야학 교사는 “ㄱㄴ을 가르치기 위해 때로는 그 사람 인생 전체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해본다. 당신을 이해하기 위해 때로는 당신 삶 전체가 필요하다고. 나는 국가정보원에서 33년간 일하고 정년퇴직한 내 아버지의 그 삶에 동의하지 못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삶을 아프게도,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동의와 이해는 다르니까. 나는 이 수많은 ‘다름들’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서 외부에 의해, 타자에 의해 해석되고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직접 이야기하는 그 삶을 듣고 싶었다. 끝내 동의하지 못하더라도 이해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때, 당신과 나의 대화는 시작될 것이다.

난 <나·들>이 그 생의 이야길 듣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생을 두 사람이 실어 날랐다. 한 사람은 객관화를 위해 현장의 질감을 그대로 담으려 했고, 또 다른 이는 자신의 논평을 적절히 섞어 전하려 했다. 마지막엔 인터뷰이 혹은 그와 가까운 이의 글이 실렸다. 그렇게 ‘3차원 인터뷰’가 구성됐고, 이는 마치 <나·들>의 척추 같았다.

삶의 시간은 입체적으로 흐른다. <나·들>은 내 삶과 세계가 맞닿는 피부의 전 영역, 그 다면성을 지면에 최대한 펼쳐 보여주려 노력했을 것이다. 그 노력의 주어엔 글 쓰는 이와 사진 찍는 이가 있었다. 말하기보다 듣기 위한 노력, 내가 당신이 되기 위한 노력, 마침내 가닿으려고 노력한 이들이었다. 이 지면이 끝나더라도 이곳에서 스물한 달간의 경험이 그들 신체에 남아 있길 기대한다. 근육으로 배어 이곳 아닌 저곳에서도 그 신체로 글을 이어나갈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그리하여, 읽기 전에 마주해야 했다. 종이 지면에 박혀 있는 큼지막한 당신의 얼굴을. 응시하는 눈을, 접힌 주름을. 밑줄 치며 읽었다. 그 생의 이야기들을. 내 삶을 기어코 살아낸 것은 자신이기에 스스로 가장 잘 이야기할 수 있었고 그 안에 응집된 이 세계의 총체성도 기어이 들을 수 있었다. 머무르고 사유해야 했고, 머물렀을 때 연결됐다. 연민을 회복해야 한다. 나도, 당신도, 오늘의 언론도.

그러나 이제 그 얼굴이 떠난다.

글 강혜민 장애인 인터넷 언론 <비마이너>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인천 민들레장애인야학에서 연극 수업을 한다. 연극을 좋아한다. 곧 군에서 제대할 정인과 어떻게 놀고 먹고 공부하며 재미있게 살 수 있을지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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