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27 16:13 수정 : 2012.12.27 19:55

안영춘 편집장
‘다르다’는 건 무엇일까? 이를테면 빨간 비디오에서 노출 수위를 더 높이면 다른 걸까? 다 가리고 있어도 춘화로 보이거나 모두 드러내도 성스러워 보일 정도는 돼야 다른 것이다. 뷔페 음식에서 다른 맛이 나던가? 단품요리도 다른 맛을 낼 수 있고, 잘 차린 한정식도 몇 첩이냐와 상관없이 다른 맛일 수 있다. 다르다는 것은 물리적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의 실상이다.

 다름을 표방하는 매체는 많다. 아니, 같다고 말하는 매체는 없다. 다르다는 언설이 난무하는 매체 환경에서 무엇이 어떻게 달라야 다를 수 있는지, 깊게 파기 위해 넓게 파고들었다. ‘왜 사람들이 매체로부터 멀어져가는지’부터 물었다. 메뉴가 수십 가지인 프랜차이즈 분식점에 앉아서도 골몰했다. 메뉴를 수백 가지로 늘린들 다른 맛을 기대하기는 힘들 터였다.

 재료를 바꿔본다. 사건에서 사람으로. 매체들이 사건 사고에 열을 올린다고 해도 정작 하나같이 사람의 일이다. 물난리가 나도 언제나 사람 탓이라고 한다. 다름은 사건이냐 사람이냐의 이분법보다 둘의 관계를 어떻게 놓느냐에서 나온다. 개인의 삶뿐 아니라 직·간접적으로 관계되는 사람들, 그를 둘러싼 구조와 질서, 심지어 사물과 공간까지 살펴야 사람을 온전히 볼 수 있다.

 레시피를 바꿔본다. 이야기 방식으로. ‘읽는다’는 행위는 ‘본다’는 행위와 확연히 다르다. 읽으면 서사가 되지만, 보면 직관이 된다. 읽는다는 건 스며들기도 하고, 가다 서다도 하는 것이다. 이야기가 읽혀지는 대신 보여지고자 한다면 맛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야기 방식의 글을 읽으면 식감도 함께 느낄 수 있다.

 편집진은 이런 고민을 실험으로 옮기며 끝이 없을 것 같은 창간 작업으로 날밤을 새워왔다. 다름에 대한 우리의 천착은 편집증이 아니었다. 독자들이 무엇을 읽고자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였고, 오늘날 읽는 이들은 과연 누구인지부터 집요하게 물었다. 마침내 우리는 그들을 1인칭 복수형의 ‘나들’이라 부를 수 있게 됐다. 그렇게 태어나는 한 권의 월간지는 겉보기엔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무엇이 다른지는 독자들께서 직접 읽고 판단해보시기 바란다. 다만 우리는 믿는다. <나·들>의 독자들은 읽는 눈이 뭔가 다르다고.

안영춘 편집장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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