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9.02 11:48 수정 : 2013.09.03 14:31

아마존닷컴 창립자인 제프 베조스가 <워싱턴포스트>(WP)를 사들였다. 업계는 발칵 뒤집혔지만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은 여기서 희망을 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자부심 강한 미국 신문이지만, 지 난 몇 년간 신문사의 사원총회 분위기는 암울했다. 경영진 이 비용 절감을 원해 사원총회의 결말이 종종 기자 또는 신 문 면수를 줄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워터게이 트 사건을 보도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자리에서 물러나 게 한 전설적인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슈타인의 글을 싣 는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할리우드를 취재하는 리포터들 의 글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지난 월요일(현지시각 8월 5일) <워싱턴포스트> 발행 인 캐서린 웨이머스에게서 이메일을 받은 직원들이 워싱턴 DC에 있는 본사 편집국 회의실로 향했다. 그들은 무슨 일 이 벌어질지 짐작하지 못했다. 또 늘어지게 비용 절감에 대 해 이야기를 들어야 하나 싶었다. 단지 몇몇 사람만이 아마 신문사 건물을 매각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이야 기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백악관에서는 멀지만 좀 더 싼 곳으로 말이다.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은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 다. 도널드 그레이엄 회장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워싱턴포스트>가 아마존 창립자인 제프 베조스에게 팔렸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합니다.”

제프 베조스는 누구인가? 그는 온라인 유통업체 아마 존닷컴을 세계적인 서적 유통업체로 키워낸 사람이다. 데이 터에 따라 움직이는 이 회사에서 직원들은 기술적인 서비스 를 제공하며, 이를 통해 서적이나 음반 같은 문화 상품을 대 량판매하게 되었다. 아마존 같은 사업 모델은 미래가 밝다.

“‘뭐라고?’라고 했지요.”

이름을 밝히기 꺼린 한 기자가 말했다. 그는 지난 몇 년 간 동료들과 “신문에는 미래가 없으니 새로운 직장을 찾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하지만 베 조스라니! 그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고 말했다.

 

‘디지털 엘리트’ 아마존닷컴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워싱턴 포스트>를 단돈 2억5천만 달러에 매입했다. 250억 달러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베조스는 재산의 1%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 중 하나를 사들인 것이다
최고의 비평가인 WP 기자들의 긍정

사람들이 놀란 이유는 <워싱턴포스트>를 사들인 제 프 베조스가 성공이 보장된 미래 세계의 사람이기 때문이 다. 판매부수·수익·매출이 하향세를 그리기 시작한 이래 기자들 대부분은 신문과 밝은 미래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없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은 미래를 기회라기 보다는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단기간에 신문 산업 전체를 바꾸어놓은 디지털업계 사람들에게서도 위 협을 느꼈다. 전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기업 중 하나인 아마존닷컴 창립자이며 250억 달러의 재산을 소유한 베 조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11월 베조스는 독 일 주간지 <베를리너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신문을 향 해 사망 선고를 했다. “20년 안에 인쇄된 신문은 다 사라 질 것입니다.” 그는 많은 신문사들이 희망을 품고 있는 인 터넷판 유료화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사람들은 인터넷 뉴스에 돈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미래에도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제프 베조스는 2억5천만 달러에 <워싱턴포스트>뿐 아니라 같은 그룹에 속한 몇 개의 다른 신문도 함께 사들였다. 비관적인 관점으로 유명한 <워싱턴포스트>의 기자조차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미래를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주일 전이라면 이렇게 말할 수 없었겠죠.”

 

새 주인 찾는 아날로그 신문사들

사실상 이 빅딜은 아이러니이다. 베조스는 디지털 세계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신문이라는 아날로그 세계 사람들이 디지털 세계에 대해 가지고 있던 두려움을 해소시킨 것이다. 하지만 신문업계가 궁금해하는 질문에 대해 그는 아직 답을 주지 않고 있다. 도대체 그는 왜 신문사를 인수했을까? 디지털화에 적극적이었고, 인터넷 TV를 시도하는데도 <워싱턴포스트>는 수익성 있는 미래를 준비하는 데 실패했다. 이런 막막한 상황에 놓인 <워싱턴포스트>에 왜 미래에서 온 사람인 베조스가 손을 뻗었을까?

베조스 같은 신문업계 외부인이 신문사를 인수하고 자신의 행운을 시험해보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다. 미국 투자가 워런 버핏도 투자 목록에 미국 지방 신문들을 올려놓고 있다. 그는 이 투자가 과거에 대한 향수 때문이라고 말했다. 며칠 전에는 사업가 존 헨리(보스턴 레드삭스 구단주)가 <보스턴글로브>를 7천만 달러에 사들였다. 이는 1993년 <뉴욕타임스>가 11억 달러를 주고 매입한 것이다. 미국 언론 지형이 못마땅한 보수 우파가 정치적 목적으로 신문사를 매입하려는 경우도 있다. 캔자스 출신 사업가 데이비드 코흐와 찰스 코흐 형제는 ‘하드코어 사회주의자’인 버락 오바마와 맞서기 위해 <시카고트리뷴>이 속한 그룹을 사들이려고 공을 들이고 있다. <필라델피아인콰이어러> 같은 전통 깊은 신문도 비용 절감을 하다가 거의 반 토막이 났고, 이 신문사가 여러 번 퓰리처상을 탔다는 사실도 자랑스러운 과거로 기억될 뿐이다.

인터넷 시대에 적합한 사업 형태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신문사가 재정난을 겪으며 새 주인을 찾고 있다. 미국

신문업계가 겪는 일은 유럽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몇십 년 동안 두 자릿수 수익을 유지했지만, 광고는 인터넷으로 다 옮겨 갔고 인터넷상에서 기사를 읽는 독자들은 돈을 내려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신문사들은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사이 발행인들이 더 많은 권력을 쥐게 되었다. 하지만 발행인들도 구조적 문제, 즉 줄어드는 판매부수와 광고수익을 해결하지 못했다. 도널드 그레이엄은 이 상황을 직원총회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비용을 줄이는 데 답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우리가 계속 소유해도 <워싱턴포스트>가 어떻게든 살아남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워싱턴포스트>가 그 이상을 성취하기 바랍니다. <워싱턴포스트>가 성공적인 신문이 되기 바라는 것입니다.”

이런 발언은 <워싱턴포스트>를 소유한 그레이엄 집안이 더 이상 어떤 아이디어도, 어떤 전략적 비전도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지난 80년간 4세대에 걸쳐 <워싱턴포스트>를 소유한 그레이엄 집안이 손을 든 것이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로만 플레터 Roman Pletter 자유기고가

번역 이상익 위원

ⓒ Die Ze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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