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1.05 16:51 수정 : 2014.02.04 10:48

주현우(오른쪽)씨와 강태경(왼쪽)씨는 각각 첫 번째, 세 번째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썼다. ‘안녕들’ 온·오프라인 행사와 모임에 매달리고 있는 이들은 “향후 계획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안녕들’의 의견을 묻겠다”고 말했다.
“이제 언론과의 인터뷰는 하지 않겠습니다.”

2013년 12월16일 주현우(27·고려대 경영 4)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글을 남겼다. “대자보 현상보다 자신이 부각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주현우씨를 꼭 만나보고 싶었다. 자의든 타의든 그는 대자보 열풍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기자와 맞대면하지 않아도 그는 항상 뉴스의 한가운데 있었다. 고려대, 서울역, 명동, 동국대, 강남역, 서울시청 앞, 청계광장, 정동, 대전, 광주, 부산 등 ‘안녕하지 못한’ 이들이 있는 곳엔 언제나 그가 있다. 혹자는 그를 “신출귀몰한 모양새가 1989년 임종석을 닮았다”고 평했다. 내가 봤을 땐 과한 해석이다. 단지 ‘안녕들~’ 현상을 일으킨 발화자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싶어서일 게다.

인터뷰 중단 선언 이후, 실제 그는 기자들과의 접촉을 철저하게 차단했다.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은 물론 문자와 페이스북 메시지에도 회신을 주지 않았다. 힘들게나마 현우씨를 섭외할 수 있었던 건 강태경(25·철학 4)씨 덕분이다. 언론 홍보와 취재, 일정 공유 등을 담당하는 대외 소통 창구인 듯했다. 평범한 취업준비생이었던 이들은 이제 거리로 나섰다. 글이 아닌 몸으로, 말이 아닌 행동으로.

세 청춘남녀가 이끌어낸 ‘놀라운 변화들’

“첫 대자보를 제가 쓴 건 맞지만, 지금은 저만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니라서요. 학내 친구들과 페이스북 등을 통해 많은 분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거든요. 굳이 저를 콕 집어서 인터뷰하는 게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그는 인터뷰를 거절했던 사연을 이렇게 밝혔다. 그럼에도 그는 체력적·정신적으로 벅찰 정도의 강행군을 소화하고 있다. 인터뷰가 진행된 지난 12월23일에도 현우씨는 ‘안녕’ 관련 회의 등 일정이 빼곡했다. 그는 “돈 버는 일에 종사하는 시간을 빼고는 ‘안녕들’과 관련한 무언가를 하고 있다”며 “12월28일 ‘응답하라 1228’ 행사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인터뷰는 서울 안암동 고려대 학생회관 3층 동아리연합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안녕들’이 모일 마땅한 장소가 없어 자주 이용하는 곳이라고 했다. 태경씨뿐 아니라 동아리연합회 부회장이면서 태경씨의 제안으로 대자보 열풍에 동참한 유진(23·환경생태공학부 4)씨도 동석했다. 현우씨는 “힘과 의지를 북돋워주는 고맙고 든든한 친구들”이라고 이들을 소개했다.

사실 이들은 대자보 정국 이전엔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현우씨는 오래전 동아리연합회 회칙 개정 논의에 참여하면서 택견 동아리 회원인 태경씨, 한국근현대사연구회 회원인 유진씨와 만났을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공·나이·성별이 다른 세 사람은 요즘 공통의 관심사와 목표를 갖고 있다. 더 많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안녕하지 못함’을 말하고, ‘안녕하지 못한’ 사회를 변화시키는 노력에 동참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일개 대자보가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낸 건 그만큼 우리 사회가 억압돼 있고,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제가 워낙 비관적인 사람인데, 두 사람과 함께 분위기를 만들면서 자신감을 많이 얻고 있어요. 이 흐름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요.”(유진)

“‘안녕하지 못한’ 일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고, ‘안녕들’ 대자보를 계기로 역사상 최장기 철도 파업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이 바뀌었지요. 대자보 열풍이 불러온 성과라고 생각해요. 계속 이렇게 사회와 소통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해요.”(태경)

주현우 “빡치면 무슨 일이든 한다”

현우씨는 왜 대자보를 썼을까.

“빡쳤죠. 80% 울분, 그리고 20% 기대.”

2013년 12월9일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대규모로 직위해제됐다. “파업은 정당한 권리인데, 이해가 안 됐죠. 이런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말하는 자유만큼은 스스로 만들어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나온 게 ‘안녕들 하십니까’였고요.”

화가 치밀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컴퓨터를 켜고, 생각을 정리했다. 철도 파업, 부정선거 의혹, 경남 밀양 송전탑, 비정규직, 정치적 무관심 등의 키워드로 초안을 만들었다. 새벽 4시30분까지 수십 차례 문구를 수정했다.

“처음부터 ‘안녕들~’이 떠오른 건 아니었어요. 어느 순간 빵 터졌고, 이때부터 문장을 술술 써내려갔어요. 무언가를 추동하기보다는 대화하듯 담담하게 생각을 담고 싶었죠. 애초엔 경어체도, 질문을 던지는 형식도 아니었어요. 실제 전날 페이스북에 올린 초고에 대한 친구들의 반응은 ‘재수 없다’거나 ‘빈정 떤다’였고요. 여러 차례 퇴고를 거치면서 차분한 어조가 나온 거죠.”

대자보를 손으로 쓰는 것 역시 처음부터 정한 건 아니라고 했다.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려고도 했지만, 휘발성이 크고 진정성이 없어 보일 것 같아 접었어요. 글씨체에는 그 사람의 인격과 성품이 담겨 있다고 하죠? 제 진심을 100% 전달하고 싶어 직접 쓰는 방식을 택한 겁니다. 실명을 쓴 건 국가정보권 댓글에서 보듯 익명성의 폐해가 우려됐고, 무엇보다 제 이름 석 자를 걸고 책임지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언론과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대자보를 붙인 12월10일 이전까지 현우씨 일상은 여느 대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학점과 스펙 쌓기 등 취업준비생으로 충실했다. 2012년 가족으로부터 독립한 그는 아르바이트도 닥치는 대로 했다. “돈이 되는 일은 다 했는데도, 학자금 빚이 800만원이에요. 다른 친구들보다 적은 편이지만….”

그는 왜 독립을 했을까. “우리 집 상황이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마이너스만 있고 플러스는 없는 형편이에요. 부모님 노후 준비도 해야 하는데, 제가 언제까지 등골 빼먹을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강태경 “책임감 있는 분노가 필요하다”

12월9일 밤, 태경씨도 철도노조 조합원 직위해제 뉴스에 분개했다. 이튿날인 10일 학교에 갔다가 현우씨의 대자보를 보게 됐다. 진심이 느껴졌고, 가슴 절절히 와닿았다. 이날 추가로 철도노조 조합원 1500여 명이 직위해제됐다. 더는 침묵할 수 없었다. 고민 끝에 11일 밤 11시 그저 얼굴만 아는 현우씨한테 연락했다. 태경씨는 “대자보만 붙이는 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고 싶었다”고 했다.

“저는 화난 상황을 해소하려는 실천을 하지 않으면 말짱 황이고, 현 시국이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고 판단했어요. 현우씨가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고 사람들이 호응하는 현실에서 책임감 있는 분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태경)

“애초 출발이 물음이었고, 그 물음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여겼어요. 하지만 언제까지 물음만 계속 던질 수 없다는 걸 조금씩 인식하던 차에 태경씨가 결정적으로 확신을 준 셈이죠. 현재 상황에서 의견만 표출하고 끝낼 것이 아니라 각자 1인분 몫을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현우)

이들의 이야기는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이어졌다. 이렇게 의기투합한 이들은 12월12일부터 ‘안녕들 하십니까’ 푯말을 들고 1인시위와 선전전을 벌였다. 태경씨는 이날 현우·춘희씨에 이어 세 번째 대자보를 붙였다. ‘안녕들 하십니까’로 시작하면서도 내용은 달랐다. “14일 서울역에서 열리는 철도노조 집회에 함께 가자, 그곳까지 걸어가는 퍼포먼스를 하자”는 구체적인 행동 제안까지 담았다. 대자보에 공감하는 이들이 만나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날 현우씨는 아침 8시30분부터 저녁 6시30분까지 학내에서 1인시위를 했다. 오후엔 태경씨도 합류했다. 이들의 1인시위는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무관심했던 학생들조차 ‘힘내라!’며 음료수와 간식거리, 손난로 등을 건넸고, 몇몇은 이들과 함께 선전전에 동참했다. 대자보 행렬도 눈에 띄게 늘어, 12월12일에만 20개가 붙었다. 이날 저녁 포털 사이트 ‘다음’엔 ‘고대 대자보’가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세 사람의 만남이 대자보 정국에서 분명히 드라마틱한 상승 효과를 일으켰을 것이다.

“처음엔 이렇게 큰 판을 생각하지 않았어요. 반향이 클 줄 알았다면 무서워서 대자보를 쓸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 같아요.”(현우)

대자보라는 형식이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큰 구실을 했지만 이를 공유·확산·발전시킨 일등 공신은 페이스북 ‘안녕들하십니까’(facebook.com/cantbeokay)다. 지난 12월 말까지 26만여 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시민들은 이곳에 자신의 ‘안녕들’ 대자보 인증샷을 올리고, 댓글 등을 통해 이를 공유하고 있다. 어떻게 페이스북을 활용할 생각을 했을까.

“해장국집에서 밥 먹다가 우연히 만든 거예요. 1인시위를 끝내고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14일 모임에 많이 참석할까, 인원을 사전에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 얘기를 나누다 페이스북을 떠올렸죠. 곧바로 노트북을 꺼내 페이지를 개설했어요. 1시간 만에 1천 명이 ‘좋아요’를 눌렀더군요.”(태경)

“하룻밤 지날 때마다 ‘좋아요’가 수만 건씩 늘었으니까 폭발적이었죠. 광고회사에 다니는 친구가 ‘대체 뭘 한 거냐?’고 물어올 정도였어요. 지금도 워낙 많은 사진과 글, 쪽지와 댓글이 넘쳐나고 있어요. 평균 조회 수 3만 건, 평균 ‘좋아요’ 1천 개니까.”(현우)

“지난 12월22일 경찰이 민주노총에 난입한 날, 한 시민이 경찰 트럭에 ‘폭력경찰 부끄럽다’ 글을 적은 사진을 올렸어요. 12만 명이 봤고, ‘좋아요’가 8300여 개가 달렸더군요.”(유진)

12월14일에는 안녕하지 못한 고려대생들이 정경대 후문에서 첫 모임을 열었다. 태경씨는 “대학교 1학년 때인 2009년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학내 등록금 투쟁 때도 고작 30여 명이 모였는데, 이날 350명이 모인 걸 보고 무척 놀랐다”며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소통의 문화가 사라졌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유진씨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이슈가 더 큰 반향을 일으킨 이유에 대해 뜻밖에도 시험기간이라는 타이밍으로 꼽았다.

“아무리 공부해도 돌파구가 없다는 걸 몸소 절감하고 있을 때여서 학우들한테 더 큰 의미로 다가온 게 아닌가 싶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안녕하지 못한 현실이니까요.”

그래도 손에 꼽히는 유력 대학의 재학생들이 아닌가.

“고려대 경영학과만 해도 취업 때문에 난리예요.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하는데 안정된 직장이 없으니 정상적인 게 아닌 거죠. 저는 한국외국어대 일본어과에 다니다 삼수를 해서 이곳에 왔어요. 사정이 더 나을까 싶어서. 그런데 지금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취업이 힘든 건 비슷하니까요.”(현우)

이제 보니, 세 사람 모두 취업이 코앞에 닥친 4학년이다. 걱정되지 않을까. 현우씨가 한숨을 내쉬며 말문을 열었다. “누가 뽑아주기나 하겠어요? 얼굴도 팔릴 대로 팔려서…. 기사 댓글에도 있더군요. 나중에 강성 노조원의 기질이 보인다고. 하하하. 외국에 있는 친구는 우스갯소리로 그 나라로 오라고도 하고요. 앞으로 먹고살 걸 생각하면 갑갑하고 잠이 안 와요.”

“저는 올 2월 졸업인데, 경제학과로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해요. 이번엔 준비 부족으로 떨어졌거든요. 다음에 다시 도전하려고요.”(태경)

인터뷰 당시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응답하라 1228’ 모임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는 것이었다. 전국 곳곳의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이 대자보 1228개를 붙인 뒤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라 의미가 크다. 12월28일로 못박은 이유가 있을까. 유진씨는 “별 뜻 없다”며 “주말인 21일과 28일 중에서 시험과 준비기간 등을 고려해 정했다”고 말했다.

“남들 짬뽕 시킬 때 자장면 시킬 수 있어야”

그렇다면 이들은 향후 대자보 열풍을 어떻게 이어갈 생각일까. 현우씨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현재로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요. 어떻게 분위기가 이어질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시민들이 의견을 나누고, 이를 토대로 향후 목표를 세우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구체적으로 뭔가를 얻어내지 않더라도 각자가 ‘안녕’을 잘 정리하고 넘어가면 성공이라고 봅니다. 이를 계기로 내 스스로의 정치, 내가 몸담고 있는 작은 공간에서의 생활 정치, 일상의 정치, 즉 ‘자기 정치’가 복원됐으면 해요.”

그의 표현을 빌리면, 그가 대자보를 붙인 행위, 누군가 안방에 대자보를 붙이는 행위, 식당에서 음식을 시키는 행위도 자기 정치에 속한다.

“다들 짬뽕을 시킨다고 해서 내가 먹고 싶은 자장면을 못 시키면 되겠습니까. 개인이 속한 사회에서 공론의 장이 만들어지고, 어떤 식으로든 각자의 모순된 상황을 해결하려고 실천하는 게 바로 자기 정치입니다.”

‘안녕들’ 대자보 열풍의 끝이 어디인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확신할 수 있는 건 현우·태경·유진씨가 그랬듯 달라지고 있고, 달라져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주현우씨는 페이스북 친구가 300명에서 1500명으로 늘었다고 했다. 인터뷰 당일 늦은 밤, 그의 페이스북(facebook.com/chance2change)을 엿봤다. “스스로를 마주하는 것, 그로부터 모든 게 출발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스스로 마주해야 개인과 사회의 모순을 대면할 수 있다. 그 모순을 말할 수 있는 건 ‘자기 정치’다. 궁극적으로 ‘안녕들’ 대자보가 꿈꾸는 지향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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