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5.08 10:58 수정 : 2014.07.03 11:10

위화가 쓴 <제7일>은 사후 세계를 통해 중국의 현실을 고발하는 내용이다.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사는 양페이는 건물이 폭발하는 바람에 죽는다. 누구도 그의 죽음을 챙겨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양페이는 문에 붙은 쪽지를 발견한다. “빈의관으로 와서 화장에 임하라.” 빈의관에 가니 대기자가 54명이나 된다. 문제는 대기자 수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 한 대기자가 불평을 한다. 다음은 그 대기자와 직원의 대화다.

“이렇게 한참을 기다렸는데 번호 부르는 소리는 한 번도 못 들었어요.”

“시장님 시신 앞에서 고별식이 열리고 있거든요. 시장이 가마에 들어갔다 나와야 여러분 차례가 될 겁니다.”(22쪽)

알고 보니 시의 관리는 물론이고 각 현의 관리까지 1천 명도 넘게 몰려서 한 사람씩 시신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단다.

“빨리 걷지도 않아요. 느릿느릿 가면서 흐느끼는 사람들끼리 있으니.”(24쪽)

양페이는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자기 차례를 맞는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에게는 유골함도, 묘지도 없었던 것. 빈부 격차는 살아서뿐 아니라 죽은 뒤에도 영향을 미쳐, 돈이 많은 귀신들은 667m²가 넘는 묘지에 묻히는 반면, 없는 사람들은 잘해야 1m²의 묘지를 갖는 게 고작이었다. 묘지가 없어서 떠도는 귀신도 한둘이 아니다. 양페이는 “내가 왜 여기에 왔지?”라고 한심해하며 빈의관을 나서고, 그때부터 양페이의 기나긴 방황이 이어진다.

방황의 여정에서 양페이는 수많은 사람과 귀신을 만나는데, 오늘날 중국의 현실을 말해주는 듯, 그 사연들이 하나같이 딱하다. 예를 들어 폐허가 된 집에 앉아 있는 한 여자아이는 “아침에 학교에 갔다가 오후에 수업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집이 사라졌”고, 부모의 행방은 알 수가 없다. 알고 보니 그녀의 집은 정부에 의해 강제로 철거됐고, 부부는 그 집을 지키려다 무너지는 집에 깔려 죽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아이는 계속 그 폐허 앞에 앉아 기다리는데, 이유는 “아빠·엄마가 돌아왔을 때 저를 못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투신자살한 여자친구의 묘를 마련해주려고 신장을 판 남자의 얘기도 가슴 아프다. “살아 있을 때 슈메이(여자친구)는 원하는 게 아주 많았지만, 그는 거의 들어주지 못했다. 이제 무덤이 그녀의 마지막 소원일 것 같았지만 그는 여전히 그걸 들어줄 능력이 없었다.”(260쪽) 결국 그는 3만5천위안에 신장을 팔지만, 안타깝게도 수술 뒤 처치가 잘못돼 죽고 만다.

주인공 양페이의 삶도 짠하긴 마찬가지다. 철도기관에 근무하던 아버지는 어느 날 밤 철로에 놓인 양페이를 발견해 집으로 데려온다. 양페이가 철로에 있던 까닭은 다음과 같다. 그의 생모가 기차에서 변을 보려다 그만 양페이를 출산했는데, 화장실에 뚫린 구멍 때문에 아이가 철로로 떨어진 것. 그 사실을 알 턱이 없는 아버지는 양페이가 생모한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그 뒤 자신의 결혼을 포기하면서까지 양페이를 기른다. 양페이에 대한 그의 마음은 친아버지보다 훨씬 더 각별했으니, 양페이는 사실 복 받은 아이였다.

“아버지는 생명의 마지막 즈음까지 평생 제일 잘한 일이 양페이라는 아들을 거둔 거라고 생각했다.”(129쪽) 아버지의 다음 말도 감동적이다. “나는 죽는 게 두렵지 않아. 내가 두려운 건 다시는 너를 못 보는 거야.”(135쪽)

양페이가 묘지와 유골함도 없이 죽은 이유는 암에 걸린 아버지를 간병하기 위해 집을 팔고 직장도 그만둔 탓이었다. 자신이 양페이에게 부담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아버지는 집을 나가고 마는데, 이후 양페이는 남은 삶은 물론이고 귀신이 된 뒤의 날들을 아버지의 행방을 쫓는 데 바친다. 결국 7일째가 되는 날 양페이는 귀신이 된 아버지를 만난다. 아버지는 슬픈 목소리로 말한다. “이렇게 빨리 오다니.” 약간의 대화가 오간 뒤 아버지는 울기 시작한다.

“텅 빈 아버지의 눈에서 두 줄기 눈물이 흘렀다. 당신이 나보다 먼저 왔는데도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사람을 보낼 때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300쪽)

하지만 양페이가 2014년 4월의 한국 땅에 있었다면 훨씬 더 기구한 사연들을 만났으리라. 17살의 젊은 남녀가 우르르 몰려 있는 것을 본 양페이는 이렇게 묻는다. “아니 젊은 애들이 대체 무슨 일이야? 왜 여기 있어?”

한 명이 답한다.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데 배가 뒤집혔어요.”

양페이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래, 배가 뒤집혔는데 왜 이렇게 많이 왔어? 구조장비가 다 있을 텐데?”

또 다른 학생이 답한다. “선장이 꼼짝 말고 선실에 있으라고 했어요. 선장 말을 듣지 않고 갑판으로 나갔다면 살았을 텐데, 우리가 너무 순진했어요.”

양페이가 주먹을 불끈 쥔다. “아니 배가 뒤집히는데 배 안에 있으라고 했다고? 선장 어딨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한 학생이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소용없어요. 여기선 아무리 헤매도 선장을 찾을 수 없을 테니까. 선장은요, 다른 승무원들과 함께 1등으로 구조됐거든요.”

양페이가 한숨을 쉬었다. 한참이 지난 뒤 양페이는 입을 열었다. “학생들을 버리고 혼자 구조되다니, 그런 선장은 내가 사는 중국은 물론이고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찾을 수 없을 거야.”

양페이는 학생들에게 다가가 어깨를 감쌌다. “너희를 그런 나라에서 태어나게 해서 내가 다 미안하구나.” 양페이의 눈에서 두 줄기 눈물이 흘렀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젊은 사람을 보냈을 때의 눈물이었다.

글 서민 수줍음이 너무 많아, 같은 사람을 다시 볼 때도 매번 처음 보듯 쭈뼛거린다. 하지만 1시간 이상 대화하다보면 10년지기처럼 군다. 기생충학을 전공했고, 현재 단국대 의과대학에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기생충의 변명>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대통령과 기생충> 등이 있다.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