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0.07 15:26 수정 : 2013.11.05 16:33

1. 취사장의 불평등한 규칙

취사기가 있는 공간 한쪽에는 수도꼭지가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서 양치를 하면 알맞은 높이의 수도꼭지였다. 이 평범한 수도꼭지도 접근하려면 권한이 필요했다. 취사장에는 그런 식의 암묵적인 자잘한 규칙이 많이 있었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필요한 것도 더러 있지만, 대개는 노동 규율과 무관하게 재소자들이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처음에 나는 다른 재소자들의 행동을 따라하려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모방만 한 전략이 없기 때문이다. 규칙을 어기지 않으면서 눈에 안 띄려면 모방밖에 없었다. 그러나 동등하게 적용되지 않는 이런 규칙 때문에 불가능했다.

수도꼭지와 그 주변 영역에 대한 독점권을 지닌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그들은 여타 재소자들과 구별이 됐다. 신분은 재소자지만 마름질한 듯한 빳빳한 옷(그래봤자 죄수복이다)을 입고 윤기 나는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나는 상·하의 치수가 제각각인데다 음식물 때에 전 작업용 수의와 고무장화를 걸치고 있었다. 그들은 음식도 따로 해먹었는데 심지어 금속으로 된 수저를 사용했다. ‘빵잽이’라 불리는 부류였다. 빵잽이는 징역을 오래 살거나 감옥에 여러 번 수감된 사람들을 일컫는 은어다. 빵잽이를 정의하는 핵심은 자원이 제한된 감옥에서도 생활의 편의를 도모할 수 있는 수완이다.

2. 재소자 통제 위해 빵잽이 묵인

재소자들 간에 공식적인 위계는 없지만 빵잽이들로 인해 감옥 내 권력관계가 만들어진다. 그렇지만 이 권력관계를 범죄자들의 문제적 성향이 표출된 것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범죄 성향을 거론하기 전에 두 가지 점을 지적해야 마땅하다. 첫째, 빵잽이들의 지배는 열악한 교도행정과 맞물려 있다. 교도관들은 하루에도 수많은 재소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노동조건에 놓여 있다. 노동강도를 낮추면서 수월하게 통제하려면 몇몇 재소자에 의한 관리를 묵인하는 방법밖에 없다. 상관에게 보고할 정도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한 문제는 없는 것이다.

둘째, 빵잽이들의 지배는 형과 동생을 정의하는 데서 출발한다. 형이 아니면 빵잽이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이 형-동생 관계 또한 범죄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나이주의가 재소자들이 관계를 맺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당연히 교도관들에게도 재소자들 간의 형-동생 관계는 질문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보통’의 재소자들이 징역을 살면서 겪는 어려움은 많은 경우 고약한 흉악범의 돌발행동이 아니라 형-동생 관계에서 비롯된다. 이 중요한 사실이 간과돼서는 안 된다.

빵잽이를 포함한 많은 재소자들이 자신보다 어린 재소자와 나누는 전형적인 대화는,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형’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모습을 띤다. 이때 ‘형’은 3인칭이 아니라 1인칭 대명사로 쓰인다. 나는 이런 풍경이 매 순간 자신을 형으로 정의하지 않으면 형의 일상적 권위를 유지할 수 없는 역설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조직폭력배들끼리의 대화를 제외하면) 자신을 ‘동생’이나 ‘아우’라고 칭하는 재소자는 본 적이 없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현민 자존심이 강하고 자존감은 낮은 사람, 거기서 자의식이 생긴다. 자의식이 한낱 자의식에 그치지 않고, 머무른 자리를 통해 내면성을 갖추기 바란다. 그 내면성에 대한 고찰이 사회에 대한 공부가 될 것이라 믿고 있다. 병역을 거부해 1년4개월간 옥살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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