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27 20:37 수정 : 2012.12.28 00:05

어릴 적, 내 꿈이 대통령이라는 것을 믿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은 부모님밖에 없었다. 강원도 정선의 광산촌 막장에서 탄 캐는 광부던 아빠는 볕 좋은 일요일이면 마루에 앉아 “우리 수정이가 대통령이면 내가 대한민국 최초로 여자 대통령의 아버지가 되는구나!” 마치 청와대로 이사할 날 받아놓은 듯이 웃으셨다.

학교에서는 내 꿈이 대통령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여자는 공부를 잘해봤자 시집가면 그만”이라고 했다. 같은 반 남자아이를 가리키며 “지금은 쟤가 속을 썩여도 너보다 더 훌륭하게 자랄 거다”라고 했다. 그런 선생님에게 “난 대통령이 될 거예요. 대통령보다 더 높은 게 있으면 그거 할 거예요. 나를 여자라고 선생님이 무시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하고 싶어졌어요”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노골적으로 드리워진 차별을 뚫고 내가 대통령이 되어도 좋은 이유가 선생님에 대한 반항심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실에는 햇살이 곱게 비쳤다.

 내가 대통령이 되어도 좋은 이유는, 이웃 아저씨들에게서 “수정이 아빠가 막장에서 일을 젤 잘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 익숙했기 때문이다. “권형을 위해, 우리 수정이 아프지 말고 밥 많이 먹어라. 소처럼 묵묵히 일 잘하는 권형은 공부 잘하는 딸을 두었으니 좋겠다.” 그러면 나는 ‘네 아저씨. 저는 공부 잘해서 대통령이 될 거예요. 우리 아빠는 대통령 아버지가 될 거예요’라고 속으로 말하며 웃으면서 열심히 밥을 먹었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권수정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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