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27 20:41 수정 : 2012.12.28 00:05

우리는 대통령, 그리고 대통령제가 ‘처음부터 여기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인류의 번식을 관장해온 ‘성애’에 대해 인식하거나 반응하는 것과 많이 닮았다. 정염에 빠져들어,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짝짓기에 성공했으나, 정염은 곧 권태와 실망으로 부식되고, 둘은 지지고 볶다가 마침내 갈라서기까지 한다. 물론 모두 같은 과정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정염에 빠졌다고 누구나 승리할 수는 없는 법. 경쟁에서 탈락하면 권태와 실망의 기회마저 소멸한다. 대신 불타는 분노 속에 갇힌다. 하지만 그 분노가 채 사그라들기도 전, 세상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정염의 주기는 다시 찾아온다. 바로 지금이다.

대통령제는 결코 처음부터 여기 있지 않았다. 우리가 선출 절차의 정당성이 확보된 대통령 선거를 경험한 건 25년 전인 6·10항쟁 (1987년) 직후다. 4·19혁명(1960년)의 성과로 내각책임제가 시행된 1년을 빼면 건국 이후부터는 늘 대통령제였지만,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된 대통령제는 오히려 예외적이었다. 제대로 된 게임의 법칙을 얻어내는 데만 해도 우리는 너무 많은 피를 흘려야 했다. 더 거슬거올라가, 상하이 임시정부 때는 어땠을까? 단 한 번도 대통령제인 적이 없었다. 한국은 그렇다고 치고 지구상에 이 제도가 처음 출현한 것은 언제일까? 불과 200여 년 전인 1787년 미국 필라델피아 헌법 회의에서다.

대통령제는 민주주의적인가

 이렇듯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대통령제는 예외의 산물이다.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요지부동의 신성이다. 대통령제와 민주주의는 동격이다. 직선제를 쟁취하기 위해 피를 흘린 이들이 아니어도, 대통령에 의해 민주주의가 유린될 때조차 대통령제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의심하는 이는 드물다. ‘다수의 지배’ ‘모두의 지배’를 의미하는 민주주의가 한 사람에 의해 제도의 안정성이 오락가락한다면 두 제도의 부정교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때만 되면 과거를 잊고 회귀성 어류처럼 일생일대의 새사랑을 찾아가는 고단한 과정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가.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안영춘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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