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28 11:24 수정 : 2012.12.28 11:28

모든 공동체는 독특한 표현 양식을 갖고 있다. 이 독특함은 동시대의 사회적 합의를 기준으로 하는 데서 발생하고, 그래서 매우 특화되어 진화하기 마련이다. 때론 대단히 억압적인 ‘규율’에 의해 불가피하게, 또 어떤 경우 지극한 ‘자율’에 따라 무분별할 정도로. 표현이란 결국 이 두 개의 ‘율’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불화하며 결코 합의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층적인 암묵을 만들어내는 행위인지도 모른다(‘그러려니’와 ‘그럼, 그렇지’).

 예를 들어보자. 대단히 한국적인 표현 수단 가운데 지상파 방송이란 것이 있다. 벌써 몇 해 전, <개그콘서트>의 강유미는 지상파 방송의 표현 양식을 한마디로 압축해냈다. “당연한 말씀, 감사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지상파 방송의 표현은 딱 그 기준을 표준으로 한다. 뉴스, 드라마, 예능 다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더 중요하고, 훨씬 독하고, 정말 어이없는 일들이 넘쳐나지만 지상파 방송은 그 가운데서 표준적으로 보여줄 만한 질서를 최대한 가려내려고 한다.

 그래서 지상파의 뉴스만 봐서는 세상을 알 수 없다. 늘 엇비슷한 수준의 이야기와 소재에서 승부를 봐야 하니 한국 드라마는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획일적인 이야기 구조를 수출하게 됐다. 예능 프로그램은 그나마 변주의 폭이 상대적으로 넓지만, 시청률 제일주의의 족쇄에서 스스로 벗어나려 하지 않는 바람에 서로 닮았다. 2000년대 초·중반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살벌한 각축장이던 예능은 최근 몇 년간 오디션 프로그램의 범람을 거쳐 다시금 춘추전국시대로 돌입하고 있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김완 <미디어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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