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2.02 10:46 수정 : 2013.12.03 13:45

장미희는 데뷔 때부터 작품 속 캐릭터에 맞는 의상을 직접 준비해왔다. ‘의복’을 마치 ‘배역’ 다루듯 진지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가 프랑스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처럼 섹시하게 늙어가는 건 옷에 대한 이런 태도 때문인지도 모른다.한겨레 자료
프랑스 루이 14세가 ‘짐이 곧 국가다’라고 한 것처럼 ‘내가 곧 스타일이다’ 했던 여자가 있다. ‘코코 샤넬’이라고 불렸던 가브리엘 샤넬. 아마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이 영화화된 실존 여성일 거다. 그도 그럴 것이 고전적이되 영원히 현대적인 느낌의 멋진 외모와 흥미진진한 인생 드라마, 그리고 자기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지닌 여자라 영화라는 매체가 특별히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이 여자는 ‘스타일’ 하나로 ‘신화’를 만들고 ‘전설’이 된 여자다. 그런데 만약 서울 충무로에서 코코 샤넬의 일대기를 각색한 영화를 만든다면 그 주인공을 연기할 여배우로 나는 단 한 사람밖에 떠오르지 않을 것 같다. 장미희. 다른 대안은 있을 수 없다. 코코 샤넬이 내세운 스타일은 그 시대 사람들로서는 미처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내게는 장미희라는 여배우가 그렇다.

정확히 2007년 부천 판타스틱영화제에서였다. 머리를 과감히 짧게 자른 모던한 한 중년 여배우가 심플한 블랙 슈트 안에 검정색 브래지어가 프린트된 살구색 저지 셔츠를 입고 레드 카펫을 경쾌하게 걷고 있었다. 놀라운 풍경이었다. 1910년대 파리의 양갓집 규수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허세스럽게 과장되고 거추장스러운 풀 푸아레의 드레스를 코르셋과 함께 입느라 진땀을 빼고 있을 때, 샤넬이라는 짧은 머리의 말라깽이 아가씨가 거의 혁명적이다 싶을 만큼 실용적이고 단순한 저지 원피스를 입고 나타났을 때만큼이나. 이제까지 우아하거나 아름답다고 여겨온 다른 여성들(레드 카펫 위의 다른 여배우들)의 패션을 느닷없이 구닥다리로 만들어버릴 만큼 아주 독창적일뿐더러 세련되게 재치가 있었다. 그 스타일 감각에 관해서라면 세상에서 가장 오만했던 여자 코코 샤넬조차 사심 없이 박수를 보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레드 카펫 위 중년의 파격

그때까지 장미희라는 배우는 내게 조금도 매혹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1992년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에서 <사의 찬미>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뒤 특유의 고음으로 “아름다운 밤이에요”라고 수상 소감을 밝히는 장면을 바라보며, 한 시대를 풍미한 고전적인 여배우의 아우라란 저토록 고색창연한 낯섦인가 싶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1998년, 잡지사 5년차 기자의 눈으로 드라마 <육남매>를 보며 떡을 파는 장미희가 왜 이토록 어색하게 느껴지는지 생각해본 일이 있다. 우아함 때문이었다. 억척스럽게 떡을 팔아 육남매를 기르는 행상 과부의 삶을 리얼하게 연기하기엔 그녀는 지나치게 우아했다. 한 시절을 풍미한, 한 세대를 대표했던 여신으로서의 고고한 우아함이 이제는 시대착오적인 것이 됐구나 싶을 정도로.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걸 그녀는 단 한 벌의 옷으로 증명했다. 부천영화제에서 보여준 그 전복적인 의상은 장미희라는 여배우가 동시대 어떤 여배우보다 더 젊고 진보적이며 독립적일뿐더러 지적인 여자라는 걸 보여주는 확실한 기호였다. 과연 그럴까?

그랬다. 지금까지 수많은 배우를 인터뷰해왔지만 장미희만큼 지적이고 진취적이며, 심지어 진지하면서 유연하기까지 한 사람은 본 적이 없던 것 같다. 그녀는 ‘판타스틱’한 영화제 콘셉트에 맞춰 선택한 마르틴 마르지엘라 옷을 두고 자크 데리다나 자크 라캉의 해체주의를 말할 수 있는 여자였고,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샤갈의 꿈의 세계를 사랑했던 여자아이가 어린 나이에 어떻게 <색, 계>의 탕웨이를 연상시킬 만큼 성적으로 매우 파격적인 여성 이화(<겨울 여자>)를 자청해서 연기할 수 있었는지 너무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여배우였다. 예컨대 이런 식으로 말이다.

“저는 그런 면에서 굉장히 리버럴해요. 어쨌든, 내 몸은 내 악기잖아요. 배우의 몸은 개인에게 예속해 있는 몸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인 윤리적 가치로 평가할 수 없는 거예요. 도구로서 있는 거죠. 당시 신문에 연재되던 <겨울 여자>를 읽으며 이건 꼭 내가 해야 한다고, 내가 대한민국에서 ‘이화’를 제일 잘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제가 먼저 감독을 찾아갔고. 그렇게 선택한 작품에서 옷을 입고 벗는 것 따위의 문제에 대해선 더 이상 의문의 여지 없이 하는 거지요.”

나는 정확히 그녀가 몇 살인지 모른다. 중요한 건 지금도 여전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될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거다.

“40대, 50대에게도 사랑과 욕망과 관능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런데 왜 늘 중년의 여배우들은 생계에 매달려 살거나 가족에게 헌신하며 잔소리나 늘어놓는 닳고 닳은 역할만 해야 하는지요? 저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포로노그라피 어페어>나 <타인의 취향> 같은 색깔 있는 멜로영화도 하고 싶고, 심지어 액션영화의 자객이나 검객 같은 역할도 하고 싶어요.”

물론 마음만으로 준비가 되는 건 아니다. 도구로서의 몸이 먼저 준비돼야 한다. 나이를 초월한 듯 보이는 그 날씬한 몸매와 탄력 있는 피부 관리. 하지만 그 비결에 대해서 물으면 미안하다는 듯 한숨을 쉰다. “뻔하죠. 절식하고, 운동 열심히 하고….” 그러면서 배우로서 ‘도구로서의 몸’을 갈고닦는 자신을 보며 평범한 여성들이 좌절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는 말도 했다.

“마네킹처럼 느낌 없이 매끈해선 안 되죠”

스스로 ‘영원한 젊음, 날씬함, 여성스러움, 섹시함과 같은 불가능한 목표를 강요당하면 불행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늘 지치지도 않고 그에게 늙지 않는 비결을 묻지만 사실상 그녀는 그런 질문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주름살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 감추지 않는다. 보톡스 한 번 맞지 않아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을 들여다보며 한번은 내가 무슨 놀라운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그 얼굴의 주름을 유심히 들여다보자 장미희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요. 그래서 눈가에 주름이 이렇게 많아요. 그만큼 나이가 들었으니 당연한 거고 공평한 거라고 생각해요. 결코 탄식할 일이 아니죠. 특히나 배우의 몸은 자신의 생각과 마음, 모든 정서를 반영하는 그릇이기 때문에 마네킹처럼 아무 느낌 없이 매끈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다만 제가 운동을 열심히 하는 건 배우의 몸은 기계와 같은 거라 항시 쓸 수 있도록 평소 잘 관리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지론 때문이죠. 그래서 평소에 열심히 관리하는 거지, 그게 단지 미용 때문이라면 허망해서 어떻게 해요. 안 그런가요?”

장미희 지론에 따르면 피부는 일종의 ‘포대’다. 밀가루 포대 같은…. 밀가루가 담기면 포대가 하얀 거고, 안에 녹두가 담기면 녹색으로 변하는 건데, 내가 무엇을 담느냐가 그 스킨 톤에 비쳐 나타나는 거라고. 그러니까 아름다움이란 결코 겉표면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중요한 것은 매일매일의 삶인 거다. 달리 표현하면, 밀가루 포대에 녹두가 담겨도 포대가 어떻든 그건 녹두인 거다. 우리의 살가죽이 아니라 우리가 먹는 음식, 먹는 방법, 읽은 책, 경험과 생각이 우리를 규정하는 것처럼.

장미희처럼 패션에 대해 활짝 열려 있는 여배우도 드물 거다. 캐릭터에 맞는 의상 준비를 데뷔 때부터 스스로 해왔기 때문일까? 특히 패션 화보를 찍기 위한 현장에서 보는 장미희는 매혹 그 자체다. ‘의복’을 마치 ‘배역’을 다루듯 진지하게 대하며 자기 안의 새로운 이미지를 끌어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감탄하게 될 거다. “매혹도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매혹됐다면 아마 제 진지함 때문이었을 거예요. 어떤 사물이나 현상, 답변에도 결코 가볍게 대하는 법이 없는 진지함 같은 거죠. 전 매사를 진지하게 대하고 진실하게 자문하고 묻고 선택하게 되면 그냥 저를 던져버리는 타입이에요.” 그게 바로 그녀만의 스타일이다. 단순히 옷이나 액세서리가 아닌,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삶의 방식으로서 ‘스타일’ 말이다.

그 비범한 스타일 때문에 코코 샤넬도 장미희도 결혼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코코 샤넬은 고아였고, 장미희도 어릴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케이스다. 아버지 부재는 처음엔 다소 우울한 유년의 분위기를 띠었는지 모르지만 자라면서 오히려 수동적인 여성성의 한계를 가뿐하게 뛰어넘을 수 있는 자양분이 됐다. 게다가 아버지 대신 올려다볼 만한 더 큰 존재를 찾게 되면서 야심은 점점 커졌을 거고. 누군가의 아내로 존재하기보다 자기 안의 남다른 창조성을 발견하려는 야심 말이다. 그래서도 남자들한테 많은 걸 내줄 수 없었을 거다.

“맞아요. 독신을 고집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됐죠. 내가 유일하게 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건 작품 속에서의 삶이었으니까. 후회는 없어요. 그 속에서 무모함이 열정으로 변신하고, 호기심이 창조성으로 변화할 때 희열이 있었고 다른 사람을 탐구하면서 자신을 알아가는 자기 인식의 길이 있었기 때문에.”

내면을 스타일로 표출하는 멋진 여자

특유의 신중함 때문에 작품 편수가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탄복할 만한 열정 아래 <겨울 여자>(1977)부터 시작해 <깊고 푸른 밤>(1985), <황진이>(1986), <사의 찬미>(1991), <엄마가 뿔났다>(2008)까지 장미희는 쉬지 않고 대표작을 내놓은 케이스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소박하게 서정적인 드라마 <맏이>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고. “요즘 보기 힘든 훌륭한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소음에 가까운 자극적인 음악이 홍수처럼 넘실대는 세상에서 오랜만에 듣는 클래식 음악 같다고 할까요? 제 대표작이 될 수 있는 작품은 아니겠지만 오랜만에 제 도전 의식을 고취시킨 작품이긴 했어요. 물론 아직도 기다리고 있어요. 날 집어던질 수 있는 더 큰 도전이 오길….”

카트린 드뇌브나 샬럿 램플링, 그리고 장미희처럼 우아하고도 섹시하게 늙어가는 여배우를 지켜보는 일은 분명 즐겁고도 놀라운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장미희는 박수갈채를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이 여자는 마치 예술가처럼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스스로 창조하고 성장할 수 있는 비법마저 알려준다. 속과 겉이 일치하는, 진정 멋진 여자다.

글 김경 패션지 에디터로 17년을 살았다. 2003년부터 <한겨레21>에 ‘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를 연재하며 칼럼니스트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지금은 강원도 평창에서 살며 생애 첫 번째 소설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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