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0.07 17:03 수정 : 2013.10.10 18:12


할리우드가 위키리크스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이 영화 <제5계급>에 조연으로 등장하는 <슈피겔> 기자 마르셀 로젠바흐와 홀거 슈타르크의 평은 “볼 만한 가치가 있다”이다.

지난주(현지시각 9월5일) 목요일, 캐나다 토론토에서는 굉장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 한 편이 성대한 개봉 잔치를 치렀다. 사실 우리는 5년 전부터 알고 있던 이야기다. 지금의 어마어마한 센세이션과 달리 그때 이 이야기는 야단법석을 떨 만한 이슈가 아니었다. 그 발단은 평범한 전자우편 한 통에서 시작됐다.

당시 지명도가 전혀 없던 인터넷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독일 비밀정보국의 내부 문서를 막 공개했다. 그리고 위키리크스는 성탄절을 하루 앞둔 날, 우리가 보낸 전자우편에 답신을 해왔다. 이 전자우편 뒤에 숨은 인물을 우리가 개인적으로 알게 될 때까지 그로부터 1년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010년 초 여름, 독일 베를린의 어느 일본 식당에 안경 끼고 턱수염을 기른 모습의 표정이 진지한 젊은이가 나타났다.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 색깔처럼 아래위 모두 까만 옷을 입은 그는 ‘다니엘 슈미트’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날 우리의 만남은 피상적인 이야기만 나누며 서로 탐색하기 위한 ‘길 닦기’ 선에서 머물렀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주가 채 지나지 않아 그의 USB(정보 저장 스틱)가 우리 사무실에 도착했다. 베를린의 파리 광장, 미국 대사관을 비스듬히 마주한 우리 슈피겔사에 말이다.

2인자 ‘슈미트’의 내부 폭로

이 USB에는 9만 건에 이르는 아프가니스탄전쟁에 관한 미국 문서 자료가 보관돼 있었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슈피겔>은 위키리크스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 최초의 특보를 낼 수 있었다. 1년 뒤엔 이라크에서 나온 전쟁 보고서를 추려 발표했고, 극비 외교문서 전문도 공개했다.

위키리크스를 폭로한 영화 제5계급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위키리크스의 2인자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의 책 위키리크스를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는 할리우드식 픽션을 가미해 재미를 더했다.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 일명 ‘슈미트’에게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위키리크스와의 결별을 의미했다. 위키리크스의 창립자 줄리언 어산지와의 사이에 파인 깊은 골이 낳은 결과였다. 이 골은 오늘날까지 메워지지 않고 있다.

돔샤이트베르크는 위키리크스와 관련된 책 출간을 계기로 이 사건을 나름대로 극복해냈다.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작성된 이 책은- 그와 마찬가지로 어산지와 사이가 틀어진 영국 <가디언> 기자 2명이 쓴 또 다른 책 한 권과 함께- 캐나다 토론토영화제에서 처음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영화 <제5계급>(‘위키리크스의 내부-제5폭력’)의 시나리오를 쓰는 토대가 되었다.

기획 단계부터 이 영화는 많은 논란을 낳았다. 가장 크게 격앙한 사람은 어산지다. 여전히 영국 런던의 에콰도르 대사관에 머물고 있는 그는 영화 촬영 중일 때부터 “엄청난 정치 선전용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슈피겔> 역시 위키리크스와 어산지, 돔샤이트베르크에 관한 견해를 표명한 바 있는데, 영화에서 우리는 ‘홀거’(아나톨레 타우프만 역)나 ‘로젠바흐’(알렉산더 바이어 역) 같은 조연으로 등장한다.

제작자인 리처드 샤키와 빌 콘던 감독은 영화 촬영 전 우리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후 베를린에서 두 번 만났는데, 대화 주제는 주로 우리가 어산지를 어떻게 보는지였다. 햇살이 좋은 1월의 어느 날, 촬영장 중 하나인 베를린의 콩크레스센터를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센터는 2007년 개최된 카오스 커뮤니케이션 콩그레스 방문자를 연기하는 조연배우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어산지가 자신의 작업을 소개했던 바로 그 장소다. 그 와중에 2명의 주인공도 보였다. 마른 체격에 턱수염을 기르고 안경을 쓴 젊은 친구는 돔샤이트베르크 역을 맡은 다니엘 브륄이었고, 그 옆에 서 있는 머리카락이 희고 체구가 당당한 거인은 줄리언 어산지 역의 베네딕트 컴버배치였다.

컴버배치는 어산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어산지의 수많은 동료, 친구와 적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어산지에게 개인적인 만남을 청하기도 했으나, 이 부탁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전자우편을 통해서만 연락할 수 있었는데, 어산지는 자기 이미지를 파괴하는 작업에 더 이상 협조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자신을 반대하는 독일 사람의 시각에서 만들어질 게 뻔한 영화인데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콩그레스센터에서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컴버배치는 우리에게도 어산지에 대한 의견을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질문을 많이 했고 우리의 대답을 주의 깊게 들었다. 그는 자신이 연기해내야 하는 인물을 어떻게 봐야 할지 아직 마음의 정리를 하지 못한 것 같았다. 조바심이 난 감독이 어산지의 말을 인용하며 일을 재촉했다. “이제 정말 일을 계속해야 한다니까!”

영국에 피신해 있는 위키리크스의 창립자 줄리언 어산지(오른쪽)는 영화에 대해 “배신이다. 잘못된 결정”이라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어산지라는 사람이 얼마나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인물인지 우리는 나름대로 여러 번 체험했다. 2011년 가을, 위키리크스는 당시 미국 외무성의 극비 외교 전문 25만 건을 막 인터넷에 올리려던 참이었다. 이 자료를 공개하기 전 <슈피겔> <뉴욕타임스> <가디언>은 제보자를 보호하고 자료 공개로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있는 이들의 실명을 지우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어산지는 이와 다른 결정을 내렸고, 세 신문사의 편집진은 공동성명을 내어 이를 비난했다. 이때 우리는 런던에서 어산지를 만났다. 스웨덴에서 성폭행 혐의로 제소가 들어와 수사를 받고 있던 때였다. 그때만 해도 어산지는 농가에 머물면서 런던 시내로 당일 외출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저녁이면 경찰에 귀가 신고를 해야 할 의무가 있었지만 말이다.

어산지 “잘못된 결정이다” 영화화 반대

우리를 만나자마자 어산지는 “배신이다, 잘못된 결정이다”라며 분을 참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담소라기보다는 그저 욕설로 점철된 발언이었다. 토론할 때 어산지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기를 좋아한다. 공격할 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토론 중에는 목소리 톤이 점점 높아져간다. 이럴 때면 그는 상전처럼 교만한 태도를 취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반대쪽에서 말을 꺼내기 쉽지 않다.

이날도 우리와 대화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산지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곁을 지나치던 사람들이 몸을 돌려 우리를 쳐다볼 정도였다. 덕분에 우리는 대로 한복판에서 구경거리 신세로 전락했다. 어산지의 여자 동료가 그의 팔을 잡으며 “줄리언, 제발 좀!”이라며 사정하고 나서야 겨우 입을 다물었다.

영화에서 컴버배치는 어산지가 분통을 터뜨리는 장면들을 상당히 사실적으로 연기해낸다. 또한 지배적이면서 때로는 자제심이 부족한 어산지의 성격을 잘 소화해냈다. 어산지의 상대역인 다니엘 브륄은 지방 출신의 정보기술 전문가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를 연기한다. 현실의 돔샤이트베르크는 단순하고 소박한 면이 엿보이는 사람이지만 투명성과 민주주의를 열렬히 지지하는 신봉자다. 위키리크스의 로고 문신을 등에 새길 정도로 한때 어산지에게 무조건 빠지기도 했다. 영화에서 보면 어산지가 그를 칭찬하면서 동시에 경고하는 장면이 나온다. “무언가를 시도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참된 헌신”이라고 말이다.

브륄은 마치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한 행동주의자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배우 같았다. 심지어 스크린에 나타난 돔샤이트베르크는 늘 쿨하고 호감이 가는 인물이다. 영화에서 그의 여자친구인 앙케가 “어산지는 조작에 능한 더러운 자식”이라고 소리치자, 돔샤이트베르크가 이해심 깊은 표정으로 “그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어”라고 대꾸하는 장면이 있다. 관객이 영웅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도록 돼 있는 이 할리우드 영화에서 브륄이 영웅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빌 콘던 감독은 초반에 어산지와 돔샤이트베르크가 다투는 장면을 베를린 콩그레스센터 복도에서 연출했다. 그 장면을 직접 보는 동안, 마치 런던에서 어산지와 만났을 때 껄끄러운 기억이 속속 다시 상기되는 듯했다. 우리는 이날 이 영화가 무척 재미있을 뿐 아니라 영화에 대한 논란 또한 격렬하게 일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허풍쟁이로 그려진 1인자

영화는 ‘야수의 가슴속에 들어 있는 정보 제공자’라는 아이디어에 관해 이야기한다. 현대 과학기술 덕에 신분이 완벽하게 보호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제보자는 그에게 보장된 익명성을 바탕으로 사회 지배층의 범행을 폭로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위해 말할 때 자신의 원래 모습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 영화 속에서 인용된다. “그의 얼굴에 가면을 하나 씌워줘보라. 그러면 그는 너에게 진실을 말할 것이다.” 어산지는 이 혁명에서 사람들에게 가면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새로운 ‘제5의 폭력’의 최초 대표자로서, 자기 재량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정보의 문지기로서 말이다.

이 영화에서 고전적 의미의 기자들은 단지 조연일 뿐이다. 어산지가 경력을 쌓던 초기 그의 숨 막히는 출세 가도에서 그를 도와준 사람들로 콘던 감독은 기자들의 역할을 규정해놓고 있다. 영화는 관련 매체의 편집국 장면이 순간순간 급속도로 교차하면서 시작된다. “로젠바흐 연결해줘요”라고 <가디언>의 한 직원이 말하는 동안 베를린에 있는 <슈피겔> 편집국에서는 급히 ‘홀거’를 찾느라 부산하다. 영화의 처음 몇 분만 보더라도, 이 영화가 배우 선정과 무대장치의 세세한 부분까지 사실적으로 재현하느라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벨기에 브뤼셀에 만들어진 슈피겔사 사무실 세트에는 잡지 <슈피겔> 표지가 크게 확대돼 걸려 있다. 위키리크스에 관한 자료를 상당 부분 다루고 있는 베를린 본사 건물과 똑같이 말이다.

조연들에 이르기까지 원래 인물의 유형에 꼭 맞게 설정된 점이 특별히 눈에 띈다. 무뚝뚝한 <가디언> 기자 닉 데이비스 역의 배우부터 <가디언> 편집국장 앨런 러스브리저 역, 심지어 아이슬란드의 여성 국회의원 비르기타 욘스도티어 역을 맡은 배우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실제 인물과 흡사하다. 위키리크스를 도와 안전한 사서함 시스템을 개발하는 천부적인 프로그래머로 나오는 모리츠 블라이트로이, 조연인 제보자 역을 맡은 악셀 밀베르크 등을 비롯해 그런 예는 이밖에도 많다.

제작에 결정적 도움을 준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왼쪽)는 “좋은 의미로 놀랐다”고 말했다. 할리우드 영화라는 건 진실의 ‘퇴행’을 의미하지만 핵심 메시지인 ‘투명성의 가치’가 잘 전달됐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수염이 덥수룩하고 안경을 낀 젊은 남자들이 주조를 이룬다. 이 젊은이들은 랩톱이 든 배낭을 늘 어깨에 메고 다닌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노트북 앞에서 며칠이고 밤을 새우는 국제적인 해커 세대를 그려낸 초상화이기도 하다. 물론 그런 장면들은 강렬하며 과장되게 묘사돼 있기는 하다. 그러나 베를린 구석구석에 적어도 얼마 동안 그런 하위 문화가 존재했던 건 사실이다.

영화의 대본은 줄거리 중 일부 무대를 돔샤이트베르크가 당시 살던 고루한 비스바덴에서 독일의 수도 베를린으로 옮겨놓았다. 실제로는 컴퓨터 채팅을 하던 중 의견 충돌이 생겨 결국 돔샤이트베르크가 위키리크스에서 쫓겨나는 것으로 일단락됐는데, 영화에서는 두 적수가 우연히 만났다가 소리 지르며 싸우게 되는 것으로 바뀌어 있다. 시나리오를 작성하면서 이렇게 일부 조건을 변경하는 것이 영화 자체나 실제 있던 이야기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다. 정작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건 사건 내용 자체가 변하는 경우다. 이 영화에서 그 변화는 어산지에게 불리한 쪽으로 진행됐다. 돔샤이트베르크가 겸손한 동조자로 그려지는 반면, 어산지는 병적이리만치 자기중심적인 허풍쟁이가 돼 있으니 말이다.

조금은 과장된 할리우드식 스토리

제작사 드림웍스는 이 영화가 고전적 할리우드식 스토리를 전부 갖춘 작품이 되도록 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 말하자면 (짧은 섹스 장면을 포함하는) 사랑 이야기, 절박한 도주와 무자비한 추격전 같은 요소가 들어가게 말이다. 이 추격전에서 미국 정부에 정보를 제공하는 어느 리비아 제보자는 위키리크스가 그의 이름을 공개하기 직전, 가까스로 정보를 반출해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는 도덕적 영웅과 휘황찬란한 악당의 대조다. 이 점을 살리기 위해 시나리오는 내용을 줄이고 섞으며 인물들을 새로 조합했다. 어산지와 결별한 사람들의- 특히 돔샤이트베르크의- 시각이 이 과정에 제일 큰 토대로 사용됐음은 물론이다.

정치스릴러는 주인공인 두 사람의 갈등이 예리할수록 더 심리드라마에 가까워진다. 위키리크스 행동가인 두 주인공이 돔샤이트베르크의 부모를 방문했을 때 한창 대화하는 중에 어산지가 마치 정신병 환자처럼 얼빠진 표정으로 인사 한마디 없이 그 집을 나오는 장면이 있다. 현실은 어떠했을까? 그날 이들은 평화롭고 세련되게 함께 케이크를 먹고 있었다.

위키리크스를 보는 여러 시각을 대하면서 처음에는 얼떨떨했다고 브륄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는 이 연기를 준비하기 위해 돔샤이트베르크를 여러 번 만났는데, 최근 한 인터뷰에서 그의 이야기를 했다.

“그를 직접 만나고 나서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었어요. 행동가로서 그의 순수함을 그대로 믿게 되었지요.”

이와는 반대로 할리우드는 어산지의 이미지를 특히 영화의 마지막 3분의 1 부분에서 ‘인터넷이라는 암흑 세상을 지배하는 제왕’으로 표현했다. 친구라고는 아예 없고 오로지 부하만 있는 인물, 암호화된 계산법으로 점철된 주문을 외우는 마법사로 그려졌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어산지는 “진실을 알고 싶으면 네가 직접 길을 떠나서 진실을 찾아!”라고 말하며 악마처럼 히죽거린다.

7월에 개봉한 알렉스 기브니의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비밀을 훔쳤다>와 달리 ‘위키리크스의 내부’는 이 사건에 관한 객관적 기록을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처음부터 아예 세우지 않았다. 이 작품은 사실에 바탕을 둔 드라마일 뿐이라는 것이다.

영화에서 흑백으로 색이 분명히 나뉘는 건 무엇보다 주인공인 두 인물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꼭 그렇지만은 않다. 현실의 위키리크스에는 ‘이 사람이 확실히 영웅이다’라고 할 만한 인물이 없다. 영화에서는 폭로자 보호 의식이 결여돼 있다는 이유로 어산지와 다툰 끝에 결별하는 다니엘 브륄이 도덕적 모범이 돼 있다. 그런데 이 역의 원래 인물인 돔샤이트베르크는 한 신문기자에게 국가의 긴급 전문에 대해서도 인터넷에서 떠도는 다른 데이터들과 똑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선 모든 문서가 전혀 검토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제보자의 이름까지 포함해 곧장 외부로 공개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무인폭격기로 어산지를 없애버리라고 요구하는 정치가와 논설가의 수가 만만치 않은 나라가 미국이고 보면, 그런 나라에 회색 의견이 여럿 있기를 바라는 건 무리한 요구일 듯싶다.

돔샤이트베르크 “좋은 의미로 놀랐다”

토론토에서의 첫 상영을 며칠 앞둔 2013년 가을, 베를린에서 돔샤이트베르크와 만났다. 그는 브란덴부르크의 한 시골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그는 지역 해적당의 간부인 아내 앙케와 더불어 토크쇼에 자주 초대되는 손님이다. 하지만 그는 <제5계급>의 첫 개봉을 위해 토론토에 가지는 않을 것이다. 마침 선거 때가 아닌가.

그는 이 영화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좋은 의미로 놀랐다”고 대답했다. 물론 할리우드 영화라는 건 진실의 ‘퇴행’을 의미한다. 하지만 영화의 핵심 메시지인 ‘투명성의 가치’는 전달될 것이다.

이 영화를 계기로 자신이 위키리크스에 몸담고 있던 시기에 대해서도 새로운 논의가 일게 될 것임을 그는 잘 알고 있다. 현재 그는 해적당에서도 손꼽히는 유명 당원이고 그의 책은 어마어마한 금액에- 하필이면- 할리우드에 팔렸다.

제작 스튜디오의 의상팀이 ‘그런 곳에서는 평소 어떤 옷을 입느냐’고 돔샤이트베르크에게 물어보았을 때 그는 티셔츠를 몇 가지 추천해주었다. 그 결과 영화 안에서 등장인물들이 독일 해적당의 셔츠를 입고 화면 안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해적당 광고를 하는 장면이 탄생하게 되었다.

우리가 베를린 촬영장에서 보았을 때, 다니엘 브륄이 해적당원 옷을 입고 상징적으로 위키리크스를 때려 부수는 장면이 있었다. 돔샤이트베르크는 이 장면을 다시 제작하도록 요구했다. 이제 영화가 개봉하면, 브륄은 검은 셔츠를 입게 될 것이다. 위키리크스를 파괴하는 ‘해적’의 장면은 이 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무척 언짢게 할 것이니 말이다.

글 마르셀 로젠바흐 Marcel Rosenbach

홀거 슈타르크 Holger Stark <슈피겔> 기자

번역 장현숙 위원

ⓒ Der Spieg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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