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2.28 21:59 수정 : 2013.03.04 13:15

2009년 7월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파크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는 여성 노숙자. / 프란코 폴리니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미션 네이버후드 건강센터’는 아침 7시에 문을 연다. 토요일 새벽 5시 30분쯤 그곳에 갔을 때, 이미 12명이 줄을 서 있었다. 최고급 레스토랑 매니저로 일하다 잘린 중년의 백인 남성과 빳빳한 경호원 정장 재킷을 입은 흑인 남성은 낮 12시까지 일하러 가야 한다. 거기 모인 사람들은 하룻밤 지낼 잠자리를 바라고 온 것이다. 도시의 노숙자 숙소는 대부분 선착순으로 잠자리를 준다. 이들이 이른 새벽 모습을 드러낸 데는 이유가 있다. 침대 배정이 10분 만에 마감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행운이 비켜간 56살의 여성 마르시아는 6년째 노숙하고 있다. 제법 깜깜할 때 도착했지만, 잠자리를 얻지 못했다. 주말이기 때문이다. 이틀간 어디선가 시간을 때워야 한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토·일요일은 우리처럼 노숙하는 이들에겐 지옥이에요. 노숙자 지원센터 대부분이 문을 닫으니까요. 나는 특히 일요일이 싫어서 일요일마다 바트를 탑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열차인 바트(BART, Bay Area Rapid Transit)는 낮에는 값싸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다. 마르시아는 종종 기차에서 잠을 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1시간 이상 떨어진 곳에서 잠이 깨는 일도 흔하다.

밤을 보낼 수 있는 곳으로는 샌프란시스코 보건부가 운영하는 오션(Oshun) 지원센터의 플라스틱 의자가 있다. 마르시아는 종종 거기를 선택했다. 이상적인 곳은 아니지만 최소한 안전하다고 느꼈고, 잠을 청해볼 수 있었다. “바닥에 누울 수는 없어요. 눕는 건 금지돼 있거든요.” 마르시아는 불편한 의자에서 쪼그리고 밤을 보내 등이 아파 죽을 지경이다. “그래도 누울 생각은 안 해봤어요. 얼마 지나면 괜찮아져요.”

예전에는 50살 넘은 여성 노숙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마리 오코너는 1992년부터 샌프란시스코 미션 지구(히스패닉 문화로 유명한 지역)의 나이 든 노숙자들에게 거처를 찾아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오코너는 “당시만 해도 나이 먹은 노숙자를 보면 놀랐다”고 말했다. 그녀는 현재 노숙자에게 거처·식사·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영리단체인 성안토니재단에서 봉사하고 있다. “요즘은 그저 일반적인 일이지만요.”

2005년 7월 17일 샌프란시스코의 한 폐쇄 건물 앞에서 쉬고 있는 노숙자. / 위키미디어
 

눕지 못한 채 의자에 앉아 밤 지새워 

노숙자 문제는 얼마나 심해졌을까? 노숙자 단체와 쉼터의 담당자들은 샌프란시스코 내 고령 노숙자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저소득층 생활보조금, 재가(在家) 복지서비스, 성인 건강보험센터 등의 예산을 계속 삭감해 노인들은 집세 내기가 점점 더 버거워지고 있다. 노인 노숙자 문제를 근절하기 위한 조직인 ‘하스’(Hearth)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2012년 미국 내 62살 이상 노숙자는 4만750명이다. 인구 고령화를 감안하면 그 수는 2050년까지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본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매일 노숙자를 마주치는 사람들에게는 이 수가 너무 적은 것처럼 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 수가 어떻든 집 없는 노인에게 삶이 고달픈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옷가방을 여러 개 끌고 쉼터와 무료 급식센터를 찾아 몇 구역씩 전전하는 것은 젊고 건강한 이에게도 고달픈 일이다. 50대 이상에게 장애와 질병이 흔한 걸 감안하면 만성적인 허리 통증이나, 관절염으로 부어오른 발목, 통풍 등을 앓는 노인에게는 더욱 고된 일일 것이다. 게다가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에서 몸을 구기고 밤을 보내는 것이 그나마 안전하다고 느끼는 여성들의 삶은 오죽하랴.

오랫동안 노숙자를 위해 일해온 제임스 파월은 내가 “플라스틱 의자에서 자는 여성을 봤다”고 하자 되려 맘이 놓인 듯이 보였다. 어쩌면 지금쯤 누군가 무슨 일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파월은 “여성이 의자에서 자는 것은 위험한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얼마 뒤 오션의 플라스틱 의자는 편안한 쿠션이 있는 의자로 바뀌었다.

미션 지구의 노숙자 쉼터는 커다란 방 2개가 붙어 있는 형태다. 벽 한쪽에는 커다란 텔레비전이 있다. 오션에 갔을 때 나는 45명의 여성을 만났다. 그들은 각자의 소지품을 빙 둘러 쌓아놓은 채 의자에 앉아 있거나 자고 있었다. 일부는 고장 난 지퍼가 달린 낡은 여행 가방을 갖고 있었고, 일부는 찢어진 쓰레기 봉지 안에 물건을 넣어 들고 있었다. 운이 좋은 사람들은 벽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담요를 벽에 대고 머리를 기대어 쉴 수 있었다. 나머지는 기댈 곳도 없이 고개를 떨군 채 있는 수밖에 없었다.

성안토니재단의 오코너는 노령 여성 노숙자 수가 급증하고 있지만 이들을 도울 방법은 별로 없다고 한다. 구호단체인 서부 해안지역 노숙자 조직 연합의 이사 폴 보덴은 “여성 노숙자는 길거리에서 폭행 등을 당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했다. 보덴은 노숙자 출신인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16살부터 노숙을 했다. “여자들은 안전을 위해 남자 노숙자들과 함께 다니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남자들에게 폭행당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낮엔 스타벅스, 밤엔 노숙자 센터 

줄레마는 오션에 자주 오는 아르헨티나 출신 여성이다. 65살인 그녀는 6년째 플라스틱 의자에서 자고 있다. “이 센터에 머무른 지 4개월 됐어요. 그런데 절차가 비효율적인데다가 안전하다고 느껴본 적도 없어요.” 줄레마가 말했다. “센터는 여성에게 절대 좋은 곳이 아니에요. 특히 나이 든 여성에게는.” 그녀는 이제 딱딱한 플라스틱 위에 앉아서 자는 데 익숙해졌다고 한다. “노숙자 지원센터에서는 내 맘대로 행동할 수 없어요. 나는 그저 오션에 들렀다 가곤 하지요.”

만약 당신이 거리에서 줄레마를 본다면 그녀가 매일 밤 의자에서 자는 노숙자라는 사실을 전혀 알아챌 수 없을 것이다. 줄레마는 잡티 하나 없는 황갈색 피부에 빛나는 회색 고수머리를 하고 있다. 진한 와인색 립스틱을 바르고, 카키색 바지에 흰 단추가 달린 스웨터와 청재킷을 즐겨 입는다. 운동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거리에서 꽃을 팔아 한 달에 400달러(43만4천 원)의 수입을 얻는다. 종종 스타벅스에서 차를 마시며 성경을 읽는다. 봉사활동가들은 그녀를 오션에 정기적으로 오는 사람 중 영혼이 다치지 않은 몇 안 되는 사람이라고 한다.

군대에 복무한 적이 있다는 나이 많은 한 여성은 영혼이 다친 사람이다. 그녀는 벌써 수십 년째 노숙하고 있다. 그녀는 내가 대화한 이들이 모두 거짓말을 한다고 경고했다. 그녀는 “그들을 왜 믿는 거지?”라고 소리쳤다. “1931년부터 이 빌어먹을 세상은 변한 게 없어. 변하지도 않을 거야. 당신, 시간 낭비 하고 있는 거야.”

거리에서 지내면 노화가 빨리 온다. 오코너는 “대부분의 노숙자 여성은 40~50대에 70~80대처럼 보인다. 노숙이 여러모로 영향을 준 탓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노숙자를 보면 그가 50살인지 80살인지 도통 감이 안 옵니다.”

미션 네이버후드 건강센터 앞에서 만난 마르시아는 56살이다. 그녀는 제 나이로 보였다. 아마 비교적 늦은 50살에 노숙 생활을 시작해서일 것이다. 흑인인 그녀는 지팡이를 짚는다. 두꺼운 초록색 재킷 위로 검은색 가방을 메고, 청바지를 입고 검정 두건을 둘렀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2005년, 마르시아는 이 혼란스럽고도 거친 노숙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그녀와 언니는 가족이 살던 집을 팔아 돈을 나누기로 했다. 그런데 마르시아가 발작으로 시각장애가 생기자 언니가 돈을 챙겨 떠나버렸다. 그 후 노숙하게 된 마르시아는 그 충격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마르시아가 말을 이었다. “내가 이곳의 일부가 되기 전까지 이런 세상이 존재하는 줄도 몰랐어요. 노숙자가 되면 그때부터는 자신의 환경을 어떻게 할 수 없어요. 내가 만난 대부분의 노숙자들은 정신 질환을 앓고 있어요. 언제 갑자기 폭발할지 몰라요. 조용한 방이 몇 분 만에 대혼란에 빠져들 수 있어요. 나는 잠을 거의 안 자요.” 지난해 마르시아는 샌프란시스코시의 보호시설감찰위원회 앞에서 시설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요구했다. 그중 하나는 여성들의 안전을 위해 남녀공용 수용 시설을 없애는 것이었다. 또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이들은 격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지금도 다들 한 묶음으로 취급해요.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2009년 7월 21 샌프란시스코 거리를 걷는 여성 노숙자. / 크리스토퍼
 

남성 노숙자에게 성폭행당해 

마르시아는 6개월간 1인용 객실의 숙박업소에 투숙하며 살았다. 하지만 숙박료가 올라 매달 900달러(98만 원)씩 받는 사회보장연금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가 되었다. 1인용 객실에는 주방이 없다. 나머지 돈은 조리된 음식을 사 먹는 데 썼다. 3주째 접어들었을 때 그녀의 현금카드에는 10달러도 채 남지 않았다. 그녀는 “그 정도로 가난해본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남자들과 같은 층에 머무는 것도 불안했어요. 벽은 얇고 더러웠고요. 결국 그곳을 나왔어요.” 2009년 교통사고를 당한 후 삶은 더욱 나빠졌다. 친척과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어디서도 답이 오지 않았다.

“뭔가 필요할 땐, 모두가 사라져버려요.” 당시 마르시아의 꿈은 리노(미국 네바다주의 서부 도시)로 가는 버스표 살 돈을 모으는 것이었다. 리노에 가면 살 만한 곳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살은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정말 우울해지거든요. 난 포기하는 법을 알았기 때문에 그나마 분별력을 유지할 수 있었어요. 많은 여성 노숙자들처럼 나도 어렸을 때 추행을 당했어요. 그래서 나는 내 안으로 숨는 법을 알지요.” 여성 노숙자들이 성폭행과 물리적 폭행을 당하는 비율은 매우 높다.

시의 노령화 및 성인 지원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15만5천 명의 노령 인구 중 1만9천 명 정도가 연방 기준 65살 이상 1인 최저생계비인 연 1만326달러 미만으로 살고 있다. 경제적 안정성 기준에 비춰보면,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노인의 61%가 삶의 기본적 욕구를 채울 수 없는 정도의 소득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한편 미국은 몇 해째 트리클다운 경제(대기업의 성장을 촉진하면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가 총체적으로 경기가 활성화된다는 경제 이론), 복지 예산 삭감, 소득 격차 심화, 노동조합에 대한 억압과 공공 서비스의 민영화를 겪어왔다. 이런 것들이 노숙자 문제의 원인이다.

샌프란시스코시는 치료가 필요한 노숙자를 위한 거주지 지원 방안을 모색 중이다. 노숙자들은 임시 보호소가 수용할 수 있는 수를 이미 넘어섰다. “가장 약한 사람들은 제시간에 줄을 서서 기다릴 수도 없어요.” 주택(Housing), 기회(Opportunity), 동반(Partnership), 참여(Engagement)의 첫 글자를 딴 시의 관계기관 호프(HOPE)의 정책국장 아만다 칸 프리드가 말했다.

몇몇 노숙자 지원사업 관련자들은 최근 시의 노력을 희망적이라고 평한다. 하지만 캐논 킵 센터의 제임스 파월 등은 이미 전에 시도했지만 절망적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여러 가지 제안을 하고, 회의를 열고, 해결책을 논의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파월은 “우리는 지금 폭발 직전이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계속 무시하면서 나아갈 수는 없다. 이젠 그들에게 귀 기울이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글 로즈 아귈라 Rose Aguilar 공공라디오방송 KALW 프로그램 유어콜(YourCall) 진행자

 번역 하수정 위원

 ⓒ The 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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