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28 04:09 수정 : 2012.12.28 04:09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박세호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강단철학’을 하지 않으면 다른 진로가 없었다. 현실과 거리가 있는 현학적 학문은 하고 싶지 않았다. 제대 말년에 진로를 영화 연출로 정했다. 공교롭게 대기업 2차 면접과 제작사 면접이 같은 시간에 잡혔다. 제작사 쪽으로 갔다. 운명 같은 거? 이런 이야기를 제작사 면접에서 하니까 ‘왜 그랬냐?’며 놀라더라. 그때 대기업으로 갔으면 지금쯤 명퇴해서 자영업하고 있을 거다.

 이후에 ‘푸른영상’(독립영화단체 다큐멘터리 제작 집단)에 들어가 김동원 감독과 여러 작품을 같이 했다. 내 작품 중에 강신무의 기구한 인생에 관한 <영매: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가 있다. 대박난 작품이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관에서 2만 명이 들었다. <우리는 전사가 아니다> <냅둬!> 등 내 관심은 주류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밥벌이는 되지 않았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도 생기면서 돈 좀 벌어보려고 충무로 상업영화 쪽에서 몇 년간 시나리오를 썼다. 지금도 제작자가 투자자를 찾아다니는 작품도 한 편 있다. 그런 점에서 정치를 정면으로 파고든 <거대한 대화>*는 내 전작들과 전혀 다르다. 난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잘 모르기도 했다. ‘정치’를 주제로 삼은 건 뒤늦게 본 두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그려보다 나 어릴 적과 큰 변화가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아서다. 다음 세대에게 좀더 나은 세상을 물려줘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그래서 충무로에서 발을 빼고 다큐멘터리 영화로 돌아왔다. 투표권 행사를 빼고는 첫 정치 행위가 <거대한 대화>다.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박세호
 이번에 개봉하는 것은 2011년 3~9월 촬영분이다. 진보 성향 정치인이 대부분이다. 언론 인터뷰에 익숙한 정치인들도 다큐멘터리 인터뷰는 부담스러워했다. 섭외에 애먹었다. 3~4시간이 넘게 진행되는 인터뷰에 힘들어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시간을 더 연장하기 원했고, 어떤 이는 따로 인터뷰를 더 청하기도 했다. ‘말’의 정치 속에 사는 그들이 ‘대화’에는 목말라 있는 듯했다.

 <거대한 대화>는 연작으로 기획하고 있다. <스타워즈>를 패러디해 부제를 붙여보려고 한다. 이번 것은 ‘거대한 대화: 새로운 희망’, 다음은 ‘보수의 역습’, 3편은 ‘진보의 귀환’… 이런 식으로. 하! 하! 그러고 나서 분단 상황, 통일 문제로 마무리할까 한다. 아직까지는 구상 중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박세호

박승화기자eyeshoot@hani.co.kr

* <거대한 대화>는 11월 29일부터 12월 7일까지 열리는 ‘서울독립영화제 2012’ 개막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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