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8.06 11:47 수정 : 2013.08.07 17:53

능청스럽게 보이던 포물선이 갑자기 나를 향했 다. 얼른 한 컷 찍은 다음 카메라를 품고 등으로 물 을 맞았다. 바로 옆에서 누군가 가슴을 움켜쥐며 쓰 러졌다. 다른 이들이 부축해 뒤로 옮겼다. 늘어진 오 른손에 캠코더가 들려 있었다. 나도 뒤따라 나왔다. 수건으로 카메라의 물기를 닦아내며 주변을 살폈다. 카메라가 고장난 사람이 여럿이었다. 물이 뚝뚝 떨어 지는 카메라를 들고 망연자실, 화조차 못 내고 있었 다. 스멀스멀 퍼져가는 연기 속에서 머리에 피를 흘 리는 이가 걸어나왔다. 자신이 무엇에 맞았는지조차 몰랐다. 정면에서 쏘아대는 소방 호스 물줄기와 소 화기 분말은 산에서 만난 비구름처럼 시야를 가렸 다. 맞은편에서 휘두르는 막대기와 날아드는 돌멩이 는 눈 대신 몸으로 감각할 수밖에 없었다. 부상자가 속출했다.

애초 그들은 현대자동차 하청업체 직원들이었 다. 현대자동차는 그들을 생산라인으로 불러들여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시켰다. 정규직이 오른쪽 바퀴를 달 때, 비정규직은 왼쪽 바퀴를 달았다. 차이라면 차이였다. 임금이 반이었다. 차이가 아니라 차별이었다. 2010년 대법원은 이를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현대자동차는 정규직 전환을 거부했다. 대신 ‘계약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재판소가 3년을 붙들고 있는 사이, 두 사람은 300일 가까이 철탑에서 농성 중이고, 한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시민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왔다. 수십 개의 콘테이너 벽이 길을 막았다. 정몽구 회장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대답은 물벼락과 소화기 분말 세례였다.

자본의 탐욕은 지치는 법이 없다. 깊은 밤까지도 온갖 제도와 폭력이 자본을 엄호한다. 노동의 자유를 향한 희망도 꺾이지 않는다. 하지만 노동자의 반이 비정규직인 지금, 모든 노동은 고단하다. 달빛 아래 저 철탑처럼.

글·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