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5.06 21:45 수정 : 2013.05.07 10:52

세상에 알려진 스물네 명의 처참한 사연. 혹시 소리 없이 스러진 스물다섯 번째는 없을까? 동료는 그 얼굴을 다 떠올리기에는 가슴에 묻은 상처가 너무 컸다. 그래서 하얀 종이에 검은 그림자로 그의 얼굴을 대신했다.

그는 서울 대한문 앞에 있다. 이리 밀리고 저리 팽개쳐지는 수모를 당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람들은 그를 못 본 척 지나간다. 무심한 건지, 무서운 건지. 작은 손짓이라도 그에게 말을 붙이면 그는 뜨겁게 대답한다.

얼마 전 서울 중구청은 그가 있는 자리에 ‘꽃무덤’을 만들었다. 그는 ‘난 아직 죽지 않았다’고 몸부림쳤지만 제의를 치르지도 않고 무덤을 만들어버렸다.

그는 이제 꽃무덤 위에 앉아 있다.

눈이 없는 그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싶어 한다. 입이 없는 그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

그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한문 앞에 가면 언제나 그를 만날 수 있다. ‘언제나’가 ‘언제까지나’가 되지 않기 바라는 마음이 그 위에서 펄럭이고 있다.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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