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5.08 09:27 수정 : 2014.05.08 13:36

강용석은 분명 한 사람이지만 정치인 강용석과 방송인 강용석은 전혀 다른 페르소나를 뒤집어쓰고 있다. 정치인 강용석이 진실성의 표현 양식처럼 보이는 거친 막말 뒤에 기만성을 숨기는 위선자였다면, 방송인 강용석은 자신의 속물성을 까발려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는 현실주의자다. tvN 제공
그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포털 사이트 구글의 검색어 ‘폴리테이너’에도 ‘유명 정치인’에도 쉽게 발견되지 않는 얼굴, 하지만 신기하게도 ‘정치인과 연예인’을 치면 가장 먼저 검색되는 얼굴, 바로 강용석이다. 강용석은 표현 그대로 정치인과 연예인, 좀더 명확히 말해 정치인과 방송인 그 어디 즈음에 위치한다. 정치인 강용석은 100만 안티를 양산했지만 방송인 강용석은 열광적인 팬덤을 창조했다. 그렇게 강용석은 ‘폴리테이너’도 ‘유명 정치인’도 아닌 채로 정치와 방송의 영역을 능수능란하게 넘나들었다.

자칭 ‘듣보잡’ 정치인이던 강용석은 방송인 강용석을 통해 ‘대세’로 거듭났다. 베테랑 PD이자 <썰전>의 기획자인 여운혁 PD가 “방송인으로서 강용석은 뛰어나다”고 평가할 정도다. 정치인 강용석이 그토록 원했던 인지도 지수를 따져봐도 크게 성공한 셈이다. 정치인 시절 강용석이 어땠는지는 그의 이름 뒤에 도열한 10개가 넘는 별명에서 드러난다. 고소·고발 집착남, 찌질이, 모두까기 인형 등 스스로를 ‘디스’(Disrespect·상대방을 폄하하거나 공격함)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인지도에 목말라하는 정치인이었다.

종잡을 수 없는 수식어만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발언은 때론 졸렬함을, 때론 통렬함을 내포한 채 대중에게 각인됐다. 안티와 팬덤은 그에 따른 부산물이었다. 그 경계엔 강용석 특유의 ‘솔직함’이 자리하고 있다. 방송인 강용석에게 열광하는 이들은 세속적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그의 솔직함에 환호한다. 안티 군단을 양산한 정치인 강용석은 솔직하지 않았던 걸까? 대답은 ‘아니요’다. 그렇다면 정치인 강용석과 방송인 강용석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상으로 포장된 기만, 정치인 강용석

강용석의 공식적인 정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참여연대, 소액주주운동 등 재야 생활을 청산한 뒤 강용석은 자신의 새로운 보금자리로 한나라당을 선택해 2004년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2008년 18대 총선에 도전한다. 당시 정치 신인 강용석의 인터뷰는 ‘가능성’ ‘희망’ ‘긍정’ ‘이상’ 같은 추상적인 수사들로 채워지곤 했다. 그럼 정치인 강용석의 지향점이 정말 가능성과 희망을 찾아가는 이상적인 정치였을까. 그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는 있다. 하지만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자수성가한 그였기에 처음부터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말자. 정치인 강용석 스스로가 불가능을 딛고 탄생한 성공의 대표작이지 않은가.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한 시도였을까. 정치인의 영역으로 진입한 강용석은 ‘정치 귀족’에게 대물림되는 특권에 유독 격한 반응을 보였다. 물론 바닥부터 차근차근 사다리를 밟고 올라온 그에게 정치판은 기득권 세력에 장악된 부조리한 세상으로 비쳤을 수도 있다. 국회의원 시절 그가 로스쿨 관련 법안을 반대한 이유만 봐도 그렇다. 그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길을 원천봉쇄하는 제도’라고 비난했다. 병역 비리나 위장 전입 같은 정치인 단골 리스트에는 병적인 집착을 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정의’라고 공언했다. 정의! 이 얼마나 이상적인 단어인가. 박원순 서울시장도 안철수 대선 후보도 그 집요한 정의의 심판대를 거쳐가야 했다. 강용석의 질타 대상은 적군만이 아니었다. 때론 내부의 아군에게도 서슴없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다.

그간 강용석의 발언들을 나열해보면 ‘미스터 쓴소리’라는 표현도 아깝지 않다. 서울시장 이명박을 ‘무데뽀 이명박’으로 평가하고(<한나라칼럼> 2005년 5월1일), 대권 후보 박근혜를 콘텐츠 없는 후보로 혹평하기도 했다(<박봉팔닷컴> 2011년 12월23일). 같은 당 나경원 의원에겐 “출마하고 싶으면 미국 보낸 아들 도로 데려와서 중구에 있는 중학교에 집어넣어 왕따도 당하고 일진한테 맞기도 하고 학교에 가서 눈물도 흘리라”며 비판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강용석에 대한 호불호는 명확히 갈렸다. 속 시원한 입담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이가 있는가 하면, 정치인답지 않은 저속함에 혀를 내두르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분명 강용석은 고상한 정치 귀족들과는 다른 부류였다.

막말 퍼레이드는 정치인 강용석이 권력의 세계에 가졌던 경멸감을 여과 없이 투사해낸 과정이었다. 동시에 자신의 이상이 사실은 불가능한 허구였음을 고백하는 장이기도 하다. 그는 권력의 하부부터 최상위까지 경험했다. 권력의 세계가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작동되는지 몸소 체득한 이다. 정치인이라는 지위 때문에 쉽게 분출하지 못한 감정은 주로 취중진담 중에 튀어올랐다. “정치 ×나게 해봐야 부모 잘 만난 박그네 못 쫓아가” “아나운서 하려면 다 줘야 한다”는 발언 등은 모두 술로 인해 등장한 사건이다. 취중진담 속 강용석은 이렇게 읊조린다. ‘권력은 원래 그런 거야!’ 여기서 또다시 드는 의문점. 권력의 생리를 이렇듯 잘 아는 그가 진정 이상적인 정치를 꿈꿨던 것일까.

정치인 강용석은 끊임없이 기성 정치인과의 구분짓기를 시도해왔다. 그것이 이상적인 정책이든, 통쾌한 촌철살인이든 자신은 기득권 세력과 다르다는 암묵적인 몸부림이었다. 그 이면에는 출신 성분 때문에 소유하지 못했던 권력을 경멸하면서도 그 권력의 정점에 오르고 싶은 욕망이 혼재돼 있다. 한국 최고 권력의 상층부에서 자신의 고유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한 그만의 몸짓은 그렇게 분출됐다. ‘이상적인 수사와 돌출적인 행동을 통해 정치인 강용석의 돌파구를 찾으려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물음을 조심스레 던져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가 설파한 이상주의가 실은 기만이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스치듯 지나친 그의 발언에는 기만의 속살이 숨겨져 있다. “(청년 일자리 대책이 쇼 안 되게 적극적으로 문제제기 한 적 있나?) 그걸 내가 어떻게 해결하겠나. 대통령도 해결 못하는데.” “(한나라당 위장 전입 혐의자는 고발 안 하나?) 난 정치적 이유로 한다. 정의 실현보다 정치적 이유가 더 크다.”(이상 <박봉팔닷컴> 2011년 12월23일) 정치적 이상이나 대의보다 개인의 욕망을 풀어내기 위한 수단으로서 정치, 바로 그 지점에 정치인 강용석의 기만이 위치한다.

솔직함은 정치인의 미덕이다. 가식이 덧대어진 미소와 공허한 약속에 대중은 코웃음을 친다. 이상적인 정치는 모든 국민이 지향하는 정치다. 구태를 반복하는 정치인에게 대중은 냉소를 보낸다. 정치인 강용석은 이 공식에 따라 가식 없이 솔직하고 이상적인 정치를 꿈꾼다고 선언했다. ‘솔직’을 넘어 발칙할 정도로 정치의 이면을 공개했고, 신인다운 정치 설계도를 펼쳐놓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인 강용석에 대한 대중의 호의는 거기까지였다. 대중은 그의 정치적 이상, 쓰디쓴 비판,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이 결국 보기 좋게 포장된 기만이었음을 발견했다. 거대한 안티가 형성됐다.

현실로 치환된 속물, 방송인 강용석

이번에는 브라운관에 비친 방송인 강용석의 모습을 조명해보자. tvN <화성인 바이러스>에서 고소·고발을 예찬하고, Mnet <슈퍼스타K 4>에서는 엉성한 노래 실력을 보여줬던 그가 JTBC의 간판 예능인이 되었다. 거침없는 입담으로 <썰전>을 주도하는가 하면 <유자식상팔자>에는 아들까지 데리고 나와 너스레를 떤다. 잘 나가는 방송인 강용석과 못 나가던 정치인 강용석. 동일 인물이지만 판이한 두 캐릭터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숨어 있을까. 변화의 핵심은 이상과 기만의 공모가 또 다른 조합으로 대체됐다는 점이다. 정치적 이상의 자리에는 대중 지향적 속물성이, 수사적 기만의 자리에는 냉소적 현실감각이 들어섰다.

방송인 강용석은 데뷔 이후 줄곧 예능인 김구라를 롤모델로 꼽는다. 김구라는 통쾌한 직설화법을 통해 비호감 이미지를 탈피한 인물이다. 현재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강용석의 언변에서도 가식적인 수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방송인 강용석은 돈, 성공, 명예 등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지향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썰전>에서 유명 인사들의 패션을 분석하던 강용석은 명품 브랜드의 가격대를 술술 늘어놓았다. <유자식상팔자>에서는 그가 아들의 출연을 거래 조건으로 MC 자리를 낚아챘던 비화가 나오기도 했다. 현실적인 비유법에서도 세상을 보는 그의 냉소적인 시각이 엿보인다. 지난해 9월, <썰전>에서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과 관련한 3자회담을 가격 흥정에 비유한 것이 한 예다.

방송인 강용석이 보여주는 속물성과 냉소의 근원은 과연 무엇일까. 보통 속물성은 물질적 결핍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그 기저에는 남들만큼 가지지 못하면 무시를 당할 것이라는 생각이 도사리고 있다. 자존감 혹은 인정 욕구의 문제다. 물론 강용석은 남들이 인정하는 엘리트다. 그의 이름 뒤에는 MBC <장학퀴즈> 장원, 서울대 재학 중 사법고시 패스, 미국 하버드대학 로스쿨 합격 등 화려한 이력이 따라다닌다. 유일한 결핍은 최고급 스펙과 거리가 먼 성장 환경이다. 그는 공동화장실을 쓰는 주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아버지의 전과 기록 때문에 판사 임용에서 떨어졌다. 혼자 힘으로 엘리트 사회에 진입해온 과정에는 상대적 박탈감과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배제된 엘리트’의 입장은 기득권층을 동경하면서 냉소하던 ‘태도의 이중성’과도 연결된다.

그런 태도가 폭발적으로 분출된 계기는 전략적 측면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아나운서 비하 발언’ 이후 정치인 강용석의 이미지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더 이상 여론을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 남은 것은 수습뿐이다. 이때 강용석은 흥미로운 전략을 택했다. 대중 앞에 더욱 과감하게 자신의 욕망을 까발렸던 것이다. 카메라와 마주 본 강용석은 대중을 향해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왜 나만 갖고 그래? 원래 현실이 다 그렇지, 뭐!” 대중의 내밀한 속물근성을 자극하던 그의 전략은 결국 성공을 거뒀다.

방송인 강용석의 모습은 우리 중의 하나다. “시청자에 대한 예의로 보톡스 시술을 받았다”(<강용석의 고소한 19> 2013년 1월4일), “대출받아 집을 샀는데, 하우스푸어가 됐다”(<유자식상팔자> 2013년 10월22일), “과거에 엑셀 차에다 벤츠 마크를 달고 다녔다”(<썰전> 2013년 12월12일) 등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소시민의 욕망을 대변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강용석은 ‘새누리당 디스 공모전’을 앞두고 자신이 속했던 정당을 향해 “작작 누리고 민생이나 챙겨!”(<썰전> 2013년 8월29일)라며 돌직구를 던지기에 이른다. 할 말이 없어서 팝송 가사를 넣은 자서전이 냄비 받침으로 쓰이고 있다는 대목(<썰전> 2014년 2월28일)에서는 가벼운 자조마저 느껴진다.

강용석의 욕망, 대중의 욕망

방송인 강용석은 정치인 강용석처럼 밝은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다. 그는 대중의 세속적인 욕망을 대변하는 동시에 일상적인 냉소의 대열에 끼어든다. 방송인 강용석의 매력은 소시민적인 꿈과 좌절이 만나는 지점에서 나올 것이다. 바로 그 중심에는 ‘끝없이 욕망하지만 결국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가 자리한다. 정치인들의 뜬구름 잡는 이상과 말뿐인 가식은 이미 오래전에 설득력을 잃었다. 대중에게는 방송인 강용석의 현실적인 메시지가 훨씬 더 가깝고도 신선하다. 몰락한 정치인의 소탈함과 진솔함. 그게 바로 돌아온 강용석이 대세가 된 비결이다.

지금까지 정치인 강용석 대 방송인 강용석을 비교해본 결과는 이렇다. ‘솔직함’이라는 공통된 키워드를 가졌지만 정치인 강용석은 버림받았고 방송인 강용석은 선택받았다. 정치인 강용석의 기만성이 아우팅(outing)당한 것이라면, 방송인 강용석의 속물성은 커밍아웃(coming out)한 것이다. 정치인 강용석은 정치권과 대중으로부터 ‘팽’당하는 결과를 원치 않았을 테니 말이다. 대신 방송인 강용석은 자기 내면의 속성을 적극적으로 공표했다.

이렇듯 서로 대칭을 이루는 강용석에게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전략적인 플레이를 구사한다는 점이다. 정치인 강용석의 전략은 기성 정치인과의 철저한 거리두기였다. 이상으로 포장하고 직설로 무장한 언변은 듣는 이의 귀를 솔깃하게 만든다. 반면 방송인 강용석의 전략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뼛속까지 속물적인 내면을 ‘까발리는’ 것이다. 과감하고 화끈한 입담은 비호감을 호감으로 바꾼 결정적 장치였다.

강용석과 대중의 화학작용은 뜬금없는 결과물이 아니다. 인간 강용석이 정치인에서 방송인으로 변태(變態)해가는 과정에서 3가지 형태의 욕망이 부딪친다. 정치인 강용석의 욕망, 방송인 강용석의 욕망, 그리고 대중의 욕망이다. 권력을 경멸하면서도 끊임없이 그 권력을 탈환하려 했던 정치인의 욕망은 대중에겐 기만으로 비칠 뿐이었다. 대신 생계를 위해 더 큰 부와 명예를 좇는 방송인의 욕망은 별다른 거부감 없이 흡수됐다. 그 너머에는 ‘그 또한 우리와 다를 바 없다’고 외치는 대중의 욕망이 맞닿아 있다.

대중에게 이미지를 소구하고 그들의 반응으로 먹고산다는 점에서 정치인과 방송인은 비슷한 직업이다. 강용석은 각각의 영역에서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했다. 한 번의 실패와 한 번의 성공(처럼 보이는), 아직 스코어는 1 대 1 무승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정치에 대한 미련을 남겨놓는다. “궁극적으로는 정치가 지향점”이라거나 “모든 정치인에게 최종 꿈은 대통령”이라는 원대한 목표도 숨김없이 드러낸다. 속물이지만 현실적인 이미지가 거의 완성된 시점에서 또다시 기만적인 정치인으로의 전환이 성공할지는 의문이다. 대중은 정치를 얼마나 예능으로 볼까, 혹은 얼마나 속물적 욕망이 쟁투하는 전쟁터로 볼까. 정치인 강용석에게 등을 돌렸던 대중의 선택에 그의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

글 이지희 인턴기자 amour.fati@hanmail.net·김효정 인턴기자 genu2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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