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5.08 09:23 수정 : 2014.06.13 11:36

박은선 선수 사태는 개인에게 가해진 폭력을 넘어 한국 스포츠계는 물론 한국 사회의 우경화와 퇴화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겨레 박승화
박은선 선수 사태가 대강이나마 수습되는가 했더니 박종환 감독의 구타에 의한 사퇴가 발생했고, 또 엄청난 비극이 발생했다. 각각은 다르지만, 그 아래에 칭칭 엮인 뿌리는 같은 맥락이라서, 착잡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더듬어보니, 지난해 말 20세기 후반의 축구사를 통해 나 자신의 기억과 그 당시의 집합적 열정을 복기해보는 글을 한 편 썼는데, 디자인문화 전문지 에 게재한 ‘박종환구락부해단식전말기’라는 글이다.

요약하건대 1970∼80년대의 축구 문화, 곧 ‘하면 된다’ ‘악으로 깡으로’ ‘안 되면 되게 하라’ 식의 정념이란 그 당대의 사회 정서였으며 거칠고 성마른 통치 이데올로기이기도 하였으나, 어떤 점에서는 신생 독립국가가 취할 수 있는 거의 유일무이한 팀 전술이었고, 이로써 어떤 성취를 거둔 사실도 있다. 다만 이미 그것은 한 세기 저편으로 저장된 과거의 기억이며 또한 그래야 마땅하고, 다시 말해 ‘빠따 박종환’ 식 축구는 씁쓸히 종언되었노라는 논변이었는데, 며칠 뒤, 그러니까 12월23일에 시민구단으로 전환한 성남 FC가 초대 감독으로 박종환 감독을 선임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때 불현듯 스친 생각은 박종환 감독의 나이가 78살이라는, 그런 ‘자연수’가 아니라 ‘아니, 이것은 성남 구단의 무리수?’라는 생각이었다.

물론 박종환 감독이라고 해서 전술이 없을 리 없다. 그는 1983년 멕시코청소년대회 세계 4강을 이뤘고, 천안 일화 시절에 시즌 3연패를 했으며, 여자축구팀을 이끌거나 취약한 구조를 가진 대구 FC를 이끌었는데, 그때마다 강도 높은 훈련과 기강에 더해 촘촘한 공간을 압박하면서도 동시에 활짝 펼쳐나가는 숨가쁜 전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강과 기율이 우선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으며 그것이 때로는 물리력으로 전화돼 언필칭 ‘빠따 박종환’이 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팀이 공중분해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렵사리 시민구단으로 거듭난 성남 FC가 조만간 축구장 바깥의 일로 어수선해지리라, 그리 짐작했었다. 결국 취임 4개월 만에 박종환 감독은 연습경기 도중 두 선수를 폭행한 것과 관련해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다.

폭력 시비가 불거진 이후 박종환 감독이 취한 행동은, 대체로 이러한 사태, 즉 서열 상위자가 하위자를 폭력 또는 성폭행 했을 때 대응하는 일정한 패턴을 고스란히 반복했다. 처음에는 때린 게 아니라 꿀밤을 줬다는 식이다. 몇 가지 증언이 잇따르자 때리기는 했지만 잘하라고 격려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원만한 구단 운영을 위해 물러난다고 했다. 이런 식의 언어 구조는, 세월호 참사에 따라 정홍원 국무총리가 사퇴를 하면서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부담을 줄 수 없다”고 한 파렴치한 발언을 비롯해 그동안 숱하게 보아온 이 사회의 퇴행적인 사고체계를 되풀이해 보여준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박은선 사건에서 ‘빠따’ 박종환 감독의 사퇴에 이르는 사건을 도드라지게 표현하면서 ‘스포츠계의 인권유린’이라거나 ‘축구계의 후진성’이라는 식으로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착시 현상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 한국 사회가, 저돌적으로 맹진해온 이 사회가 그와 같은 수준이며 최근 몇 해 동안 급격한 우경화와 퇴행화로 인해 오히려 더 형편없는 차원으로 전락했고, 다만 스포츠계는 이를 극명히 보여줄 따름이다.

2013년 4월, 프로축구 포항 스틸러스의 노병준 선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일 경기 뛰다가 카누테 한번 물어버릴까? 완전 이슈 되겠지? 새까매서 별맛 없을 듯한데”라고 썼다. 카누테는 베이징 궈안의 흑인 선수다. 인종차별의 극한을 달리는 이 글에 수많은 팬들이, 심지어 포항의 팬들마저 비난을 하자 노병준은 ‘사과’의 글을 올린다. “웃자고 던진 말에 죽자고 덤비면 ㅠ.ㅠ 아무튼 뭐 오해의 소지가 있다니 삭제는 해야겠네요. ㅎㅎ.” 사과이기는커녕 아예 조롱이고 희롱이다. 그로부터 두 달 뒤, 2013년 6월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김태균 선수가 “(롯데의 외국인 투수) 셰인 유먼은 얼굴이 너무 까매서 마운드에서 웃을 때 하얀 이와 공이 겹치기 때문에 타격하기 어렵다”고 발언했다. 롯데 팬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까지 했고 국가인권위원회는 구단과 선수에게 공식 경고를 했다. 구단과 김태균 선수가 ‘사과’를 했지만 궁여지책으로 내보낸 행정 서식에 가까웠다.

최근의 일로는 지난 2월, 프로농구 울산 모비스 유재학 감독이 작전타임 도중 함지훈 선수의 입에 테이프를 붙인 사건이 있었다.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유재학 감독은 “야, 테이프 줘봐. 입에 붙여”라고 했고 함지훈 선수가 머뭇대자 “붙여 이 ××야”라고 욕설을 했다. 선수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고 이 모든 장면이 생중계로 방송됐다. 문제가 불거지자, 역시 같은 맥락의 데자뷔가 반복된다. “미워서 그런 게 아니다. 경각심을 가지라는 의미였다. 우리 팀에서는 평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선수나 팬들에게는 미안하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엄청난 비극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던 스포츠계의 극단적인 사태로는 올봄 각 대학교의 체육 관련 학과에서 벌어진 ‘기강 확립’ 사건이다. 숭실대, 서울여대, 덕성여대 등의 체육 관련 학과 선배들이 신입생들의 ‘기강’을 잡기 위해 복장·말투·행동 등의 수칙을 거의 군대 내무반 수준으로 맞춰놓고 이를 어긴 신입생에게 직간접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게 밝혀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공론화되자 ‘최초 발설자 색출’ 같은 무서운 단어가 20대 초반의 학생들 입에서 거침없이 나왔다는 점이다.

이런 정황 속에 박은선 선수가 있다. 지난 시즌 WK리그 득점왕에 이어 올 시즌도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지난해 10월 6개 구단 감독들이 “여자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성별 진단을 실시하라”는 비열하고 파렴치한 결의를 한 것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이제는 수습 국면에 들어갔지만, 그사이에 선수가 겪었을 고통의 무게는 짐작하기도 어렵고, 앞으로도 박은선을 둘러싸고 수군거리는 수준 낮고 비열한 냉소가 들리는 듯하다.

되풀이해 말하건대 박은선 선수의 사안을 비롯해 앞서 열거한 스포츠계의 모든 사건은, 스포츠라는 고립된 섬에서 벌어지는 행태가 아니라, 우애와 공감이라는 최소한의 윤리적 제동 장치마저 박살난 이 사회의 우경화와 퇴행화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1990년대의 이탈리아는 유럽 축구를 이끌었던 최상위 리그였고, 사회의 정치적·윤리적 장치도 어느 정도 작동됐다. 그랬는데 축구와 미디어와 팬덤을 결합해 정교하면서도 격렬한 우경화 전략을 추구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에 의해 광기 어린 정념이 축구장 안팎으로 넘실대기 시작했다. 지금 이탈리아 축구장은 인종차별의 격전장이 되었고, 그 바깥의 사회 또한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 혼란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지금 우리는 이탈리아의 전철을 밟고 있다. 국가는 실종됐고 사회의 윤리적 브레이크는 고장났다. 이런 판국이니 스포츠계에 ‘기강 확립’이니 ‘사랑의 매’니 ‘성별 검사’니 하는 말들이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듯이 횡행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비극적 퇴행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글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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