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4.01 14:23 수정 : 2014.04.03 15:23

한겨레 박승화
20세기 초반 영국의 항공공학자인 프레더릭 랜체스터는 두 병력의 교전 결과를 예측하는 수학적 모형을 고안했다. ‘랜체스터 법칙’으로 일컫는 그의 이론에 따르면, 근대의 원거리 전투에서 교전 결과는 두 군대의 병력 제곱의 차에 따라 결정된다.

인류의 전쟁 지휘관들 역시 경험을 통해 랜체스터 법칙의 효과를 체득했고, 교전에서 최대한의 이득을 취하기 위한 병법을 고안해왔다. 열세 병력이 정면에서 맞붙을 경우 제곱 차이의 법칙에 따라 적에게 화력만큼의 피해를 주지 못하고 압패당하는 결과가 나타난다. 따라서 열세 병력의 지휘관은 지형과 대형을 이용해 전투 면적을 넓혀 제곱 차이의 법칙을 극복하거나, 적군이 합류해 화력의 우세를 확보하기 전에 빠르게 각개격파하는 기습 전략에 의지해야 한다.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은 적의 분산을 틈타 주둔지를 기습하고, 해협과 학익진 대형을 활용한 전투 면적의 최대화로 상대를 궤멸시킨, 열세 병력의 모범적 승전으로 전쟁사에 기록돼 있다.

<스타크래프트> 같은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은 개발 단계부터 랜체스터 법칙에 따라 전투 밸런스를 조정한다. 이 게임에서 ‘저그’는 원시의 외계 종족이다. 몸으로 싸우는 저그는 현대 원격 화기를 갖춘 적군과 비슷한 조건에서 교전하면 크게 손해를 본다. 원거리 교전의 제곱 차이의 법칙을 완전히 적용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타크래프트> 개발자들은 저그가 인해전술로 불리함을 극복하도록 게임을 디자인했다.

홍진호는 그러한 틀을 깨고 저그 종족에 ‘이순신적 해법’을 제시한 프로게이머다. 그는 끊임없는 분산 전투를 통해 병력 차이를 최소화하고, 적이 제곱 차이의 법칙에 따른 규모의 이익을 누리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역발상의 접근을 시도했다. 전쟁광처럼 쉴 틈 없이 소모전을 벌이는 홍진호의 전략적 호전성에 매료된 게임 팬들은 그에게 ‘폭풍’이라는 별명을 내렸다. 홍진호는 자신의 전략적 스타일을 고수하며 e스포츠의 황금기 동안 긴 전성기를 누렸으나, 그 기간 내내 2인자에 머무른다. 1인자는 대개 홍진호의 유인에 말려들지 않고 방호벽 뒤에서 웅크리고 기다리는 적의 몫으로 돌아갔다.

2인자의 경력이 길어지면서 그는 ‘폭풍’보다는 ‘2등’의 아이콘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결국 ‘2의 홍진호’는 인터넷 하위 문화의 보편적 코드가 됐다. 이제는 더 이상 홍진호가 숫자 2로 표상되지 않는다. 숫자 2가 홍진호로 표상된다. 네티즌들이 2월22일마다 그를 기리는 글을 쓰고, 게시물에는 똑같은 댓글이 2개씩 달릴 정도다.

서바이벌 게임쇼 <더 지니어스>에서 홍진호가 마침내 2등 경력을 털고 우승했을 때, 네티즌들은 인생 역전의 카타르시스를 느낌과 동시에 막을 내린 2등 신화에 대한 아쉬움을 표출했다. 프로게이머 시절 그는 1등보다 유명한 2등이었고, 방송인이 된 지금은 주류 문화를 전투적으로 침범하는 하위 문화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삶과 존재 자체가 특수 사례인 사람. 호기심이 끌린다.

- 목이 마르다는 홍진호에게 아이스커피 ‘2’잔을 가져다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자신의 정체성을 ‘2등’으로 몰아붙이는 유머 코드에 불편한 감정을 느끼진 않았나.

홍진호 - 군대를 제대할 즈음부터 받아들였죠. 즐길 뿐만 아니라 활용도 합니다. 나에게 긍정적 에너지가 돼요. 만족합니다. 그 전엔 항상 나 자신을 프로게이머로만 여겼기 때문에, 내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과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내 모습의 차이를 인정하기가 어려웠어요. 프로게이머로서 세운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하면서 시각의 변화를 겪었습니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아니라 남들이 보고 싶어 하는 내 모습을 인정하게 된 거죠. 그러고 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고요.

- 1등만 기억되는 세상이라고들 한다. 1등은 고유명사를 부여받는다. 2등은 영광의 제물이 된 대명사로 격하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스타크래프트>라는 e스포츠 종목이 사라진 지금, 고유명사를 남긴 쪽은 2등 홍진호다. 오히려 지나간 1등들이 그를 짓누르고 한때의 영광을 쟁취한 대명사로 밀려났다. 특수한 현상이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홍진호가 수립한 ‘2등’의 신화에 열광하는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홍진호- 내 의도에 따라 일어난 현상은 아니죠. 준우승에 머문 게 한두 번이면 그냥 잊혔을 거예요. 나는 유독 결승 문턱 근처에서 좌절한 경험이 많아요. 결승까지는 누구보다 자주 올라갔는데, 우승은 한 번도 못한 거죠. 내 팬은 ‘까’와 ‘빠’가 한 사람 안에 공존해요. 종이 한 장 차이로. 결승에 올라가면 응원하고 지면 위로하는 일이 반복되다보니, 나보다 팬이 먼저 지쳐서 “이제 그만 은퇴해라. 너는 안 될 것 같아”라며 체념하고 안티로 돌변한 거죠. 그런데 1등을 못해서 가루가 되도록 까이다보니, 언젠가부터 1등이 되지 못한 나머지를 대변하는 존재로 인식돼버린 것 같아요.

- 맞다. 감정이입하기 참 쉬운 경력이다!

홍진호 - 하하, 친근감이 들죠?

- 하지만 2등만 하던 당시에 느꼈을 감정은 잘 상상이 안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무대 위에서 패배자의 역할을 맡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가.

홍진호 - 표현하기가 힘들어요. 아마 겪어본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감정일 거예요. 한번은 결승전에서 졌을 때 이런 말을 들었어요. “결승전의 패배자가 진정한 패배자다.” 예선에서 조용히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보는 앞에서 무너지는 것, 그게 바로 진짜 패배란 뜻이죠. 승부욕도 워낙 강한 편이라 그렇게 지고 나면 하루 종일 침묵했죠. 술을 퍼마시거나, 아예 게임을 안 건드리고 잠을 자거나. 감정 관리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분노로 동기부여를 했던 셈이죠. (선수를 은퇴한 요즘도 그는 종종 온라인에서 익명으로 일반 유저들과 게임을 하는데, 가끔 지기라도 하면 격렬한 분노에 휩싸인다고 한다!)

- 구체적으로 상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홍진호의 선수 시절 경기 가운데 임요환 선수에게 벙커링이라는 극단적인 전략에 세 번 연속 패배한 것이 가장 유명하다. 바로 3연벙.

홍진호 - 아니, 대체 오늘 인터뷰 주제가 뭡니까?

- 게이머 홍진호보다는, 현상이 된 인간 홍진호를 조명해보고 싶다. 상처의 기억을 헤집고 싶어서 이것저것 던져보는 중이다. 그래서 던져보려 한다. 3연벙!

홍진호 - 글쎄, 이제 와 상처가 되기에는…. 그 질문은 하루 한 번씩 지금까지 1만 번쯤 받은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큰 상처를 입었죠. 승리는 못하더라도, 승리를 위해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그 경기들은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시작하자마자 져버렸어요. 경기 결과에 대해 엄청난 질타를 받았고요. 억울했던 건, 내 노력을 보여주지도 못한 채 경기가 끝나버렸단 사실이에요. 이미 몇 해가 지난 일이니까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게 지금은 아프진 않지만, ‘귀찮은 추억’이 된 거죠.

- 큰 무대에서 호되게 당하고 나면 상대 선수에게 적대감이 생기진 않는가? 나라면 임요환이 미웠을 것 같다.

홍진호 - 하하, 이건 팬미팅에서나 받던 질문인데…. 인간이니까 당연히 화가 납니다. 감정이 컨트롤되지 않죠. 순간적으로 별 생각이 다 들어요. ‘아 열받아.’ ‘아니, 이렇게 이기고 싶냐?’ ‘마우스를 집어던져버릴까!’ 하지만 참는 거죠. 프로선수니까. 팬들이 보고 있으니까. 다음번에는 꼭 이겨주겠다는 복수심으로 승화시키는 수밖에 없지요.

- 한채윤이 물었다. “패배하고 나면 감정을 어떻게 해소했나.”

홍진호 - 해소했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까맣게 타서 문드러진 속을 그저 견뎌왔다고 해야겠죠. 고통스러워도 계속 해야 하는 일이고, 멈출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제가 단지 2등에 머물렀기 때문이 아니라, 상처 입은 채 바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1등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사람들이 결국엔 2등의 경력을 긍정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그런 성격을 장점이라 믿고요.

- 게임 안에도 그런 성향이 드러난다. 연거푸 실패하더라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몰아붙이는 공격성으로 ‘폭풍’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지 않나.

홍진호 - 그런 스타일 덕에 우승 문턱까지 올라갈 수 있었고, 그런 스타일 탓에 우승 문턱을 넘을 수 없었죠. 게이머 시절에는 “홍진호가 게임하는 스타일로는 우승자가 될 수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어요. 오히려 오기가 생겼죠. 사람들이 우승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바로 그 스타일로 꼭 우승을 해내고, 제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결국 우승에 실패했죠. 그런데 우승이란 건 사회적 기준이잖아요? 저는 제 기준으로 저를 평가해요. 모든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저는 스스로를 우승하지 못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아요. 우승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요.

- 한채윤이 물었다. “메이저 대회가 아닌 비공식 대회에서는 우승 경험이 많지 않았나. 우승을 우승으로 쳐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불만은 없었나.”

홍진호 - 굉장히 불만이 많았죠. 비공식 대회도 똑같은 프로게이머들이 출전하거든요. 하지만 남들이 저를 2인자로 보는데, 제가 우승한 적이 있다고 주장한들 인식이 바뀌지는 않잖아요. 우승의 기억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스스로 떳떳하게 사는 데 만족하기로 했어요.

- 프로게이머로서는 2인자의 꼬리표가 자랑거리가 아니었겠지만, 인간 홍진호의 삶에는 결국 커다란 자산이 됐다. 만약 덜컥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해 2인자 꼬리표를 떼어버렸다면, 홍진호는 진작 사람들에게 잊혀졌을지도 모른다.

홍진호 - 이제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한때는 아픈 상처였지만, 극복하고 나니 무기가 되어버린 거죠. 꾹 참고, 소신을 지키면서, 성실히 앞으로 나아가면, 결국은 좋은 때가 온다. 그 경험을 통해 삶을 공부한 것 같아요.

- 게임스포츠 산업 쪽으로 화제를 바꿔보자. 과거 <스타크래프트> 게임 종목에서 프로선수의 조작 경기가 논란이 됐고, 얼마 전 홍진호가 감독을 맡은 게임 종목인 <리그 오브 레전드> 경기에서도 조작 경기 의혹이 일었다. 게임스포츠 시장이 양적으로는 빠르게 팽창하고 있지만, 시장 주체인 젊은 프로게이머들은 여전히 소모품으로 불안정한 지위에 놓여 있어 탈선의 유혹에 흔들리기 쉬운 구조는 아닌지.

홍진호 - 일단은 조작에 가담한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가장 크다고 봅니다. 1등에게는 큰 보상이 주어지지만, 신규 진입자의 지위가 불안정하다는 점은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스포츠 선수의 목표는 프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중에서도 상위 5%에 드는 것일 수밖에 없어요. 그 바깥의 사람들은 직업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경제적으로 어렵죠. 다른 스포츠와의 차이라면 선수들이 인격적으로 미숙한 어린 나이에 프로가 된다는 점을 들 수 있겠죠. e스포츠는 아직은 과도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선수들의 실력뿐만 아니라 정신적 부분도 중요하게 봐요. 팀 차원에서 선수들의 소양을 관리하고 교육하는 데 비중을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프로야구에선 최소연봉제도로 선수들의 처우를 보장하고 있다. e스포츠는 어떤가.

홍진호 - 아직 체계를 잡아가는 과정이죠. 프로팀이 굉장히 많은데, 스폰서가 있는 팀에는 최저연봉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최저연봉이란 게 겨우 생존을 가능케 하는 수준이에요. 스폰서를 가진 팀은 50팀 중 10팀 정도에 지나지 않고요. 모든 프로선수에게 당장 경제적 보장을 해줄 수 있다면 정말 좋겠죠. e스포츠 자체가 급격하게 성장해왔기 때문에,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봐요.

- 한채윤이 물었다. “여성 프로게이머를 보기 어려운데, 단순히 여성 게이머의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인가. 혹시 e스포츠 내부에 여성이 참여하기에 불리한 구조가 있는 건 아닌가. 예를 들어 여성 선수의 외모를 중시한다거나.”

홍진호 - 절대 외모를 보진 않습니다. 무조건 실력이죠. 서지수라는 프로게이머는 실력이 남자 선수 못지않았어요. 실제 많은 남자 선수들이 졌고, 저도 진 적이 있어요. 그래서 실력으로 더욱 주목받았죠. 여성 게이머가 드문 이유는 저도 정확히 모르겠어요. 너무 아쉽기도 하고요.

- 한채윤이 물었다. “홍진호가 서지수 선수에게 진 뒤 여러 가지 소문이 돌았던 걸로 안다. 팀에서 녹화방송의 방영을 취소시켰다거나, 컨디션이 나빠서 졌다고 변명한다거나.”

홍진호 - 루머만 무성했죠. 그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가 변명이라 생각해요. 남녀를 비교할 이유가 없어요. 실제 서지수 선수는 게임을 잘해요. 그래서 제가 진 거죠. 이후로도 제가 질 뻔한 적이 여러 차례 있었고요. 여자이기 때문에 패배가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느끼지는 않았어요. 사람들이 시합 결과를 받아들인 관점이 저와는 달라서 루머가 양산된 것 같은데, 저는 시합 결과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특별히 대응하지 않았을 뿐이죠.

- 한채윤이 물었다. “홍진호에 대한 많은 인터뷰가 19살 때 서울로 올라왔다는 데서 시작한다. 그 이전 이야기는 찾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프로게이머의 학창 시절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 홍진호는 어땠는가.”

홍진호 - 편견과는 많이 달라요. 실제로는 프로게이머들이 머리가 굉장히 좋거든요. 한국 사회에서는 머리가 좋다는 말이 공부를 잘한다는 뜻으로만 쓰이는데, 프로게이머 중에 공부를 잘하던 친구도 많고… 사실 저도 아주 잘했어요. 어릴 때부터 뭔가 만들어내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공부보다는 기술을 배우고 싶어서 제 의지로 공고에 장학금을 받고 들어갔죠. 목표는 얼른 자격증을 따는 것이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PC방에 들렀다가 우연히 <스타크래프트>를 만난 거죠. ‘이게 뭐지?’ 하고 의자에 앉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서울에서 프로게이머를 하고 있더라고요.

- 한채윤이 물었다. “프로게이머들의 직업 수명은 대개 10년을 넘기지 못할 정도로 짧다. 직업에 대해 이야기해본다면.”

홍진호 - 지금은 그나마 프로게이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직업을 말하는 걸 삼갔어요.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한다는 건지 이해조차 못했거든요. 팬이 생기고 산업이 커지다보니, 이 직업의 선구자 대열에 속한 사람으로서 책임감과 자부심을 느꼈어요. 내가 만들어가는 길, 내가 내린 선택이 후배들에게는 이 직업의 기준이 될 테니까요. 은퇴를 늦게까지 미루고 최대한 오랫동안 현역 선수로 활동하려 했던 것도 그 이유에서였죠. 아직까지 프로게이머의 수명은 몇 년쯤이라는 기준이 없어요. 후배들을 위해 그 기준의 폭을 넓히고 싶었어요.

- 한채윤이 물었다. “프로게이머의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홍진호 - 하나만 고르자면, 자신감이죠. 근자감, ‘근거 없는 자신감’이오. 게임을 좋아했기에 열정과 동기부여가 자동적으로 됐어요. 사실 프로게이머를 시작했을 때 정말 힘들었어요. 그걸 자신감으로 극복했기에 이제는 어떤 일을 해도 잘할 수 있다고 믿어요.

- 프로게이머를 은퇴한 뒤 방송 활동을 하고 있는데, 방송인을 직업으로서 염두에 두고 있는가.

홍진호 - 지금은 그래요. 저는 계획을 세우는 타입이 아니에요. 하고 싶은 것을 바로 합니다. 일단 방송이 재밌어요.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느꼈던 재미를 지금 느끼고 있어요. 19살 때 프로게이머를 시작했기에 게임 아닌 일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아르바이트조차 못해봤죠. 그래서 방송의 익숙지 않음이 정말 재밌어요. 컴퓨터가 아닌 현실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를 통해 어떤 일을 한다는 것. 처음부터 알아가는 느낌이에요. 방송이 아닌 어떤 일을 했어도 똑같은 재미를 느꼈을 거예요. 저에겐 모두 처음 하는 일일 테니까요.

- 프로게이머로서는 ‘폭풍처럼 공격한다’는 뚜렷한 전략적 스타일이 있었다. 방송인으로서도 자신을 포지셔닝할 전략을 구상하는가.

홍진호 - 그게 방송이 게임과는 다른 부분이죠. 컴퓨터 안에서 하는 게임은 주어진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어요. 방송은 현실에서 이뤄지잖아요. 현실은 그렇지가 않죠.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가 없어요.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도 제각각이고요. ‘어떻게 보일 것인가?’ 그게 새로운 숙제인 것 같아요.

- 이지희 인턴기자가 물었다. “<더 지니어스> 시즌2에서 홍진호가 탈락했을 때 지켜보던 시청자들의 불만이 컸다. 스스로는 어떻게 느꼈는가.”

홍진호 - 사실 <더 지니어스>의 게임은 배신과 졸렬함이 허용되는 게 매력이에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추악한 승리. 사회에서는 범죄이지만 게임 안에서는 룰로 통용되죠. 그런 배신이 있어야 게임의 판세가 흥미로워지고요. 그런데 시청자들이 너무 몰입한 것 같아요. 참가자들도 배신을 당하면 순간적으로 화가 나지만, 그래서 더욱 그 게임이 재미있다고 느끼거든요. 오히려 시청자가 폭발할 줄은 몰랐어요. 시청자의 반응 때문에 출연자들이 위축됐다는 게 아쉬워요. 게임 안과 밖을 구분해서 받아들이면 좋겠어요. 어디까지나 예능 프로그램이잖아요.

- 이지희 인턴기자가 물었다. “<더 지니어스>를 통해 홍진호는 배신과 타협을 하지 않는 정의로운 게이머의 이미지로 각인됐다. 그것이 본래 자신이 추구하는 게임 스타일인가.”

홍진호 - 네. 프로게이머 때부터 고수해온 스타일이죠. 정통한 승부만을 선호하는, 어찌 보면 고지식한 스타일이에요. 편법적인 전략을 존중은 해도 인정은 못해요. 그런 스타일로 2등만 하다가, <더 지니어스>에서 프로게이머 경력 10년 동안 달성하지 못한 우승을 했잖아요. 저도 당황했지만, 시청자가 오히려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것 같아요. 갑자기 긍정적인 이미지를 얻었죠. 시즌2에서 제가 탈락하고 나니 누군가 악당이 되고 반대로 저는 절대선으로 인식됐죠. 사실 저도 모순이 있고 약점이 많은 사람인데. 요즘 말을 함부로 못하겠어요. 시청자가 기대하는 방송에서의 이미지가 부담이 돼요.

- 모든 프로게이머가 홍진호처럼 살 수는 없을 터다. 후배 프로게이머들은 라이프 플랜을 어떻게 짜야 하는가.

홍진호 - 자기 인생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먼저 해야겠네요. 프로게이머가 꿈이라는 어린 학생들에게 저는 언제나 이렇게 충고해요. “하지 마라.” 게이머를 직업으로 선택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봐야 해요. 게임이 재미있는 것과 게임을 직업으로 갖고 싶은 것을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선택을 했다면, 열악한 현실과 충분한 보상을 받는 극소수에 끼지 못할 가능성까지 스스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해요. 이 직업은 삶을 올인하는 승부와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버틸 수 있어요. 현역 선수의 종착역은 군대인데, 거기서 또 다른 삶의 선택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와요. 그 선택의 결과 또한 자신의 몫이죠.

- 마치 프로게이머의 삶은 그 자체가 전략 게임이라는 말처럼 들린다.

홍진호 - 인생이 다 전략이죠!

인터뷰는 매우 산만했다. 받은 답변은 성실했지만, 던진 질문은 계통이 없었다. 그의 게임 스타일을 묻고, 그의 2등 경력을 묻고, 그를 요소로 사용하는 하위 문화에 대해 묻고, 그가 몸담았던 게임스포츠 산업의 구조에 대해 묻고, 그가 출연한 방송 프로그램에 대해 물었다. 홍진호가 살아온 서사 파괴적인 삶의 이력을 탓해본다! 그는 미지의 영역에서 돋아난 존재다. 이제 누구나 홍진호를 알지만, 그를 부양해온 하위 문화의 성격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여전히 소수다. 그가 문화적 아이콘임은 분명하지만, 그가 왜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는가를 말하기 위해 ‘3센치 드랍’과 ‘3연벙’이 무엇인지를 쓰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는 사라진 스포츠 종목의 선수 한 명일 뿐인데, 이제 사라진 스포츠 자체보다 훨씬 유명해졌다. 비주류 영역에서 툭 튀어나온 주류. 관심 바깥의 영역에서 형성된 대중의 관심사. 홍진호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개척했던 때보다 훨씬 더 알기 어려운 길을 개척해가고 있다. 방송인 홍진호가 ‘살아 있는 하위 문화’로서 주류에 안착한다면, 문화연구자들도 곤경을 느끼지 않을까. 최근에는 방송인 김구라가 비슷한 아이러니를 겪었다. <더 지니어스>에 동반 출연했을 때 “내가 홍진호를 다시 볼 일이 어디 있어. PC방도 안 가는데”라고 말했다는 김구라는, 얼마 전 자신이 진행하는 방송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의 ‘내 위주로 해주세요’란 코너에 홍진호를 게스트로 맞아들였다. 그는 ‘다시 볼 일이 없는 사람’ 위주의 방송을 진행하느라 진땀을 뺐다.

글 손아람 힙합 그룹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의 멤버로 활동했다. 그룹 이름과 같은 제목의 소설을 써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서울 용산 참사를 소재로 정통 법정소설인 <소수의견>을 썼으며,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해 <너는 나다-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하다>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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