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3.04 14:13 수정 : 2014.03.30 14:06

나, 이미양의 동갑내기 남편 박철민의 최대 장점은 하고자 하는 일은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안 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 딸들이 그런 아빠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2010년,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을 찍고 있는 박철민.한겨레 자료
가끔은 그를 노총각으로 보아주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결혼한 지 만 22년 된 남편이며 두 딸의 아버지다. ‘카메라 샤워’라고 하던가. 그와 나는 동갑임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대여섯 살은 더 들어 보이는 영락없는 아저씨였건만 언제부터인가 역전돼 ‘남편이 젊어서 좋겠다’는 말을 듣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배우로서 다행스러운 일이긴 하다.

그는 배우다. 타고난 유머 감각과 순발력, 유연성이 있긴 하지만 일에서만큼은 성실한 노력파다. 한창 작품을 준비할 때는 외출을 삼가고 연습에 집중한다. 대사를 외우고 입에 붙이느라, 더 적합한 애드리브를 연구하느라 스케줄을 조정하고 배치하느라 바쁘다. 딸들이 대사를 외울 정도로 반복 또 반복. 이럴 때는 집에 있어도 유령이다.

직업이 배우이다보니 생활이 불규칙하다. 식구들과 생활리듬이 달라 무엇을 함께 하기는 어렵다. 남들처럼 주말에 쇼핑을 한다거나 나들이를 한다거나 가족행사에 참여하는 일 등. 그런 건 주로 우리 집 세 여인의 몫, 그중에서도 나의 일이다. 어쩔 수 없는 일…, 그러려니 하고 산다. 우리 모녀뿐만 아니라 양쪽 집안에서도 으레 그런 줄 안다. 가끔은 약 오른다. 왜냐하면….

늘 그렇게 바쁜 것은 아니다. 여유가 있을 땐 가장 먼저 야구장을 찾는다. 새벽부터 혹은 며칠을 촬영하느라 피곤해서 돌아온 날도 웬만하면 야구장으로 직행이다. 어찌나 야구를 사랑하는지 집 안에서도 야구방망이를 휘두르고, 야구공을 손에 꼭 쥐고 잠들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그는 언제나 무언가에 빠져 살았다. 어떨 땐 ‘인형뽑기’에 빠져 살았고- 지금도 그때 가져온 인형이 서너 상자쯤 남아 있다- 한때는 컴퓨터 게임에 빠져 날밤을 새우기도 했고, 건강에 이상이 생긴 이후로는 틈만 나면 산에 오르다가 무릎 연골에 이상이 생기고 나서야 멈춘 적도 있다.

먹는 것도 그렇다. ○○ 중국음식점의 짬뽕, ○○ 냉면집의 평양냉면, 성남 ○○의 치킨, ○○ 선술집의 골뱅이무침 , ○○의 참치집, ○○의 맥주 등 어디 하나에 푹 빠져서 최소한 1년 이상을 집중 공략하는 집요함이 있다. 음식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는 전라도 사람답게 맛에 예민하고 관심도 많다. 나같이 세 끼 배 채우면 그만인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맛있는 걸 발견하고, 찾아가고, 평가하는 걸 좋아한다. -일이 많아지면서 접은 건지 미룬 건지 애매하지만, 그는 음식과 그에 깃든 추억을 엮어 책을 쓰려고 한 적이 있다. 그때 제대로 진행됐더라면 그의 풍성한 입심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았을까?- 그는 하고자 하면 한다. 최대의 장점이다. 반대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안 한다.

그가 자신에게 몰두하느라 소홀한 어떤 부분 때문에 섭섭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 딸들이 아빠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원대한 꿈이든 사소한 개인의 취향이든 스스로를 실현하면서.

그는 자식 욕심이 많았다. 야구팀 하나는 꾸릴 수 있을 정도가 좋지 않으냐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곤 했다. 하지만 결과는 딸 둘! 딸들은 아빠에 대해 무슨 할 말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아버지 박철민에게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훌륭한 아버지라고 자화자찬할 때만 빼고. 그는 군림하지 않는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겠다는 굳은 신념(!)이 있었고, 어느 정도 성공한 듯싶다. 때로는 개구쟁이처럼 집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기도 하고,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는 확신에 찬 사자후로 믿음을 주기도 한다.

지금도 그는 머리가 복잡하다. 큰딸의 진로가 큰 숙젯거리인 게다. 어느 날 그는 약간 취기 어린 모습으로 귀가했다. 큰소리로 맏이를 부른다. “큰딸! 큰딸! 내가 해결했어. 완벽해. 신문사 외신부 기자를 하는 거야. 사회정의를 외치면서도 위의 눈치 안 보고 맘대로 일할 수 있어! 너한테 딱 맞아. 이제 한 놈은 해결했고, 한 놈(둘째딸) 남았네.” 이날 그는 술집에서 우연히 젊은 외신부 기자를 만난 터였다. 앞뒤 상황을 들으며 우리는 자지러졌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만나 딸의 장래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하고 오다니.

신나게 웃으면서 딸들은 미래를 설계해볼 수 있는 힌트를 얻었을 것이고, 진로에 대해 고민하라는 무언의 압박과 동시에 아버지의 사랑을 느꼈을 것이다. 이게 바로 아버지 박철민의 힘이다. 틈만 나면 안마를 해달라고 들이대서 딸들을 괴롭히기도 하지만 그는 입버릇처럼 “자식은 태어날 때 이미 모든 효도를 했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100% 동감이다. 사랑하지만 집착하지 않고 주지만 받으려 하지 말 것. 그것이 부모와 자식 사이를 아름답게 만든다고 그와 나는 생각한다.

그도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있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제는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오는 나이다. 그는 반찬 투정이 없다. 잔소리가 없다. 마누라 없이도 밥 잘 차려먹고 아이들 밥도 챙긴다. 옷도 알아서 챙기고 촬영 때문에 잦은 여행 짐도 스스로 챙긴다. 당연한 일인 것 같지만 주위의 많은 아내들이 남편을 아들처럼 보살펴야 하는 어려움을 토로하는 걸 보면 후한 점수를 줘야 할 것 같다. 청소랑 설거지, 빨래 같은 집안일에는 손도 대지 않고, 마누라의 생활수다에 귀기울여주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다. 나에게서 포기를 배웠을 것이다. 스스로에 대해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듯이, 내게도 그런 점이 있다는 것을 그는 충분히 이해한다.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알콩달콩 지지고 볶으며 사는 부부들의 생동감이 예뻐 보일 때도 있지만, 그냥 놓아두는 것, 자기 모습대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조용히 봐주는 것도 좋다. 뻗어나가는 것이 청춘들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며, 뻗어가봐야 서로의 손바닥 안에 있을 것임을 알기에.

잡지라는 특성상 모든 사안을 긍정적으로 해석해서 담으려고 했다. 그래도 그렇지, 내가 남편을 이토록 훌륭히 여겼던가? 새삼 행복하게 살고 있는 나를 본다. 고맙다.

글 이미양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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