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2.04 14:27 수정 : 2014.03.02 14:23

KT 직원인 장교순씨의 일상은 ‘민영화’가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T 민영화 이후 동료를 잃었고, 기술직이던 그는 갑자기 영업직으로 바뀌었다. 오늘도 그는 ‘영업’을 위해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민자구간을 이용하고, 민간자본으로 건설된 ‘의정부경전철’에 몸을 싣는다.한겨레 박승화
장교순(52). 그는 ‘영업맨’이다. ‘KT 동두천지사 Mass고객1팀 매니저’가 공식 직함이다. 집 전화, 인터넷 전화, 인터넷 통신망, 텔레캅(무인경비시스템), 키봇(유아 교육용 컴퓨터), IPTV 등 KT의 모든 상품을 판매하고, 고객을 관리·유치하는 일을 한다. 아파트 단지 안에 일정 기간 홍보 부스를 만들어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업무도 그중 하나다.

아침 7시. 그의 고된 하루가 시작된다. “최선을 다하자! 아자! 아자!” 최면을 걸듯, 기합을 불어넣는다. 3년여 전 영업 파트로 보직이 바뀐 뒤부터 생긴 습관이다. “그렇게라도 해야 버틸 수 있겠더라고요.” 1986년 KT에 입사한 그의 ‘본업’은 전봇대에 올라가 망(네트워크)을 개보수하는 일이었다. 생전 해보지 않은 일을 하는 요즘엔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느낌이다. “영업은 수완인데…. 힘들지만 그래도 해야죠.”

그의 표정이 시쳇말로 ‘웃퍼’(웃기고도 슬퍼) 보였다. 장씨의 일상을 바꿔놓은 건 2002년 단행된 KT 민영화다. 견디다 못한 그의 오랜 동료이자 초등학교 동창은 지난해 자살을 택했다. “그 친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던 이유를 지금은 알 것 같아요.” 또 다른 동료는 두 달 전 암으로 세상을 떴다.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그는 추측한다.

장씨를 만난 건 지난 1월14일 오전 10시30분 의정부경전철 경기도청북부청사역 인근이었다. 그는 이미 이곳에서 ‘영업’ 한 건을 끝낸 뒤였다. “민영화 이후 달라진 일상을 취재하고 싶다”는 요청에, 이날 흔쾌히 동행을 허락했다.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공공재 민영화는 직원들한테도, 시민들한테도 악의 축입니다. 효율성과 경쟁력 강화? 방만 경영 해소? 웃기는 소리 마세요. 재벌 배를 불리고, 직원의 삶은 파괴하고, 요금만 올리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KT가 그랬어요. 물, 가스, 전기라고 다르겠어요?”

가장 궁금했던 건 민영화된 KT 조직 내부의 변화였다. “부서나 업무와 상관없이 매출 위주로 인사고과와 연봉을 책정하는 경영 방침”이라며 “영업·비영업을 떠나 KT 상품을 얼마나 많이 파느냐를 가장 중시하는 문화가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노조 탄압, 인력 감축과 원칙 없는 전직 때문에 힘들어하는 동료도 많습니다. 2010년 이후 1년여 만에 20명이 사망해서 ‘죽음의 기업’이라고 불리기도 했어요. 제 친구도 그래서 자살했어요. 기술직이었는데, 매출 압박을 힘들어하더니 결국….”

장씨의 눈이 촉촉히 젖어들었다. 20년 넘게 KT에 몸담은 친구였다. 성격도 좋아 동료들한테 인기도 많았다. 하지만 친구의 마지막 길, 동료들은 그를 찾지 앉았다. 친구의 장례식장은 휑했고, 장씨는 절망했다.

“언제부터인가 취미 생활을 공유하거나 개인적인 고민을 나누는 인간관계, 끈끈한 동료애가 사라졌어요.”

그는 “명퇴와 감원 바람이 휘몰아칠 때면 동료애나 친분이 되레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 살겠다고 후배 뒤통수 치는 이를 워낙 많이 봤으니까요. 함께 사표 쓰자고 후배 꼬여놓고 막판에 자기 것만 슬쩍 빼고 제출한 선배, 팀원의 과오를 꼬투리 잡아 사표를 강요하던 팀장이 수두룩했거든요. 저도 입사 초기부터 교류했던 몇 명과 어울릴 뿐이에요. 외근이 잦은 편이기도 하고. 사내 동호회도 유명무실해졌다더군요. 예전엔 야유회나 등산도 자주 갔는데…. 옛날이 좋았어요.”

“KT 성과요? ‘통신 푸어’들 좀 보세요”

KT 민영화 성과로 꼽는 것들 중에는 인터넷 속도와 서비스 개선이 있다. 직원에게도 그렇게 보일까.

“요금이 그만큼 인상됐잖습니까? 과거엔 9900원, 1만8천원짜리 기본요금이 있었는데, 지금은 49(4만9천원)~79(7만9천원) 요금제가 다수입니다. 통신요금이 쌀값보다 3배나 비싸요. 휴대전화 요금을 내기 버겁다는 이들이 주변에 널려 있어요. 반면 KT는 어떻습니까? 매년 수조원의 이익을 내고도 요금 인하는 절대 하지 않아요. 그러면서 외국인 주주들한테 배당금을 펑펑 쏘죠. 그게 본질입니다.”

한국의 가구당 통신비 지출액은 연간 200여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장씨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 달 실급여 300여만원 중 장씨 세 식구 통신비 지출액이 10%(30만원)에 육박한다. 스마트폰 요금만 20만원이다. “스마트폰, 인터넷, TV, 인터넷전화, 홈패드(태블릿PC) 등을 없앨 수 없으니 딜레마죠. 통신요금을 대느라 허리가 휘는 ‘통신 푸어’가 따로 없습니다. (웃음) 그런데도 100만원짜리 신형 휴대전화만 나오면 유혹을 참기 힘들어요. ‘휴대전화는 매년 교체하는 것’, 통신회사들이 이렇게 고정관념을 심어버린걸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잽싸게 우리 집 통신요금을 계산했다. 30만원! 석 달 전 초등학교 3학년 딸에게 휴대전화를 사준 뒤로 4만원이 추가됐다.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가계 지출에서 통신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마어마하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점심 먹고 합시다!”

약자에겐 더 가혹한…

이민영(50·가명·경북 문경)씨는 2년 전 자신이 지은 수련관에 전화를 놓으려다 KT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설치 지역이 기존 전화선로와 너무 떨어져 있어 전화 개설이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굳이 전화를 놓으려면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통신주(전봇대)를 심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이씨는 “수백만원에 이르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결국 포기했다”고 말했다.

얼마 전 강원도 영월로 귀농한 최하민(37·가명)씨는 지난달 날아온 수도요금 고지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서울에서 살 때보다 요금이 3배나 더 나왔기 때문이다. 최씨는 “그렇지 않아도 석유 난방을 해서 지출이 늘었는데 수도요금까지 올라 당혹스러웠다”며 “도시에서 살 때보다 광열비 지출액이 더 커 당황했다”고 말했다.

공공부문 민영화가 사회적 양극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경영 효율화를 명분으로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장애인·이주노동자·노약자·한부모가정·노인 등 저소득층이 도로, 가스, 전기, 수도, 철도 등의 서비스에서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취업준비생 김경희(29)씨는 “한 달 60만원을 버는 형편인데, 시간 단축을 이유로 편도 1만4300원(할인가 8천원)짜리 서울역~인천공항 직통열차를 탈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장교순씨는 “전남 강진, 강원도 속초 등 지방을 다닐 일이 많은 편인데 서울~춘천, 천안~논산 등 민자도로를 탈 때마다 버겁다”며 “계약직이나 비정규직 등 소득이 낮은 사람들이 느끼는 통행료 부담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도농 격차가 공공부문 민영화로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상수도 및 도시가스 보급률을 보면, 도시와 수도권이 농촌과 비수도권에 비해 높다. 우리나라 전체 상수도 보급률은 98%인 반면 읍·면 단위는 각각 94.9%, 86.7%에 그쳐 농촌 지역이 열악하다. 물 민영화가 논산·정읍·사천·고령·금산·거제·나주·단양·통영·고성·완도·진도·장흥 등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추진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 1월9일 발표한 코레일의 경영 효율화 방안은 농촌 소외를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경춘선·장항선 등 적자 노선 감축, 이용객 저조 역사의 무정차 통과, 소규모 화물역 폐쇄 등이 농촌 지역 위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충남 서천에 사는 전순석(60)씨는 “그렇지 않아도 운행 횟수가 줄고 열차도 낡아 장항선에 대한 서비스의 질이 점점 나빠져왔다”며 “운행 감축과 일부 역사 무정차 통과는 시골 오지에 사는 노약자와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제한하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공공부문 민영화는 장애인의 이동권과 건강권을 제약하게 될 거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코레일 민영화로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 요금 인상 등이 단행될 경우 빈번한 안전사고는 물론 장애인을 위한 각종 서비스와 혜택, 의료 접근성이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 1월21일 발표한 성명에서 “원격진료 및 의료법인 자회사 허용 등 의료 민영화 역시 명목상으로 장애인과 노인 등 의료 취약계층을 위한 것이라는 정부 쪽 주장과 달리 오진과 의료사고, 의료정보 유출 위험성, 의료분쟁 등의 소지가 있다”며 “장애인을 포함한 취약계층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혀 검증되지 않은 민영화가 아닌 공공의료 강화가 대안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유나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은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는 공기업이 민영화되면 효율성을 이유로 공공성을 포기하게 된다”며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부문 민영화는 약자들의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현주 민중의집 사무국장은 “전기·가스·수도·도로·철도·통신 등 공공재는 인간의 기본적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적 토대”라며 “공공부문은 민영화가 아니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보편적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오다인 인턴기자(경북대 신문방송학과)

분위기를 전환시킨 건 장씨의 이 한마디였다. 어느덧 시계는 오후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중국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짬뽕 국물을 입에 넣는 순간, 의문이 생겼다. ‘수도·가스 요금이 오르면 원가 인상을 이유로 짬뽕 요금도 올리겠지?’ 공공요금이 오르면 이와 관련된 모든 제품의 가격도 인상될 것이다. 생각을 중단하고 식사를 계속했다.

그의 주 관할 지역인 동두천과 양주는 대표적인 물 민영화1 지역이다. 각각 2007년, 2008년부터 한국수자원공사(수공)에 상수도 관리를 위탁했다. 상수도 관리 위탁은 지방자치단체와 수공 사이의 계약으로 이뤄진다. 이곳 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회사에서 민영화를 겪고 삶이 근본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민영화 문제에 민감한데, 동두천으로 출퇴근하면서도 물 민영화에 대해선 무감각했어요. 동두천 주민들도 덤덤한 편이고. 반면 양주시는 달라요. 시끌시끌하거든요.”

2012년 양주시가 수공에 계약 해지를 통보한 것이 발단이다. 양주시는 직영 때보다 2193억원의 예산을 더 투입해야 하는 반면, 유수율(정수장에서 가정까지 도달하는 물의 비율)이 90.5%에서 84.4%로 떨어지는 등 운영 효과가 미미하다고 판단했다. 수공은 반발했다. 지난해 여름 양주시와 수공은 시민을 상대로 대대적인 여론전을 펼쳤다. 시내 곳곳에 ‘물 민영화 결사 반대’ 대형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집집마다 “수도요금 인상의 주범, 수자원공사와 상수도 위탁계약 해지합니다”(양주시), “상수도 위탁으로 양주시민들은 저렴하고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수공) 같은 상반된 내용의 홍보물이 수시로 배달됐다.

“양주 시민들 반응은 어떻습니까?”

“잠시만요.”

대답을 대신해 그가 직접 양주의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를 한참 듣더니, 이렇게 전했다. “시장뿐 아니라 주민들도 친여 정서가 강한데 물 민영화만큼은 반대 여론이 높대요. 민영화된 이후에 물값이 오른 걸 경험했으니까. 양주시는 산과 저수지 물을 활용한 자체 취수 능력이 있었는데, 위탁 이후 이 시스템이 붕괴됐다며 분개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그나마 민영화 폐해를 몸소 경험한 양주 시민들은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두천 주민들 태반은 상수도 민영화가 뭔지도 모를 테니까요. 알고 당하는 것과 모르고 당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죠.”

동두천은 상수도 민영화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인터뷰를 마치고 자료를 뒤졌다. 애초 동두천은 상수도 보급률 97%, 유수율 72% 수준으로 위탁 지자체들과 비교할 때 사정이 상당히 좋았다. 상수도 총공급량의 87%를 자체 생산할 능력도 갖추어서 굳이 수공에 위탁할 이유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상수도 위탁이 동두천에 이득을 가져다준 것도 없다. 자체 동두천 정수장은 없어졌고, 대신 광역상수도에서 물을 구입해 공급하면서 매년 60억원에 이르는 정수구입비가 나가고 있다. 수도요금 단가가 올라 주민 처지에서도 손실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양주시 사례에서 보듯, 민영화는 일단 한번 추진되면 되돌리기 쉽지 않다. 스멀스멀 파고들지만, 알아챌 때쯤이면 모든 것이 바뀌어 있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민영화의 본질적인 특징인지 모른다.

“통신, 석유, 물, 도로 할 것 없이 민영화가 되면 가장 먼저 요금이 올라요. 양주시도 물이 민영화되고 가장 먼저 수도요금이 올랐다더군요. 공공요금이 오르고 도미노처럼 물가가 올랐을 때, 저 같은 ‘하층민’은 버텨낼 수 있을까요?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힘든 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하마터면 이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북부 외곽순환로 톨비 3천원 “사람 잡네”

장씨의 일과는 의정부·동두천·양주·일산·파주 등지로 쉼 없이 이어졌다. “드라이브 좀 하실래요?” 그의 차가 일산과 퇴계원을 잇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북부도로에 진입했다. 급하게 일산 일정이 잡혔다고 했다. 의정부IC와 통일로IC까지 가는 내내 도로는 한산했다. ‘3000원’. 톨게이트 요금 표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왕복이면 6천원이다.

“요금이 왜 이렇게 비싸죠? 1천원쯤 나오는 거리인데요.”

“허허, 모르셨구나. 여기 이 구간이 민자도로여서 그렇습니다. 억울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의정부와 일산을 잇는 최단코스인걸요. 왜 굳이 민자도로를 만들어 시민들을 역차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한국도로공사가 운영 중인 남부 구간에 비해 거리당 2.6배 비쌌다. 우면산터널, 천안~논산고속도로, 인천공항고속도로, 서울~춘천고속도로 등의 공통점은 민자도로라는 것이다. 요금도 비싸다는 공통점이 있다.

“민자사업자들은 전혀 손해가 나지 않는 장사죠. 언론 보도를 보니까, 최소운영수입보장(MRG)이라고 해서 적자분을 국가와 지자체에서 보전해준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국민을 위해 도로를 개설한다면, 서비스나 복지 차원에서 지어 이용하도록 하는 게 맞죠.”

오후 4시께, 이번엔 의정부경전철에 몸을 실었다. 역시나 업무 때문이었다.

“자주 이용하는 편이세요?”

“집 근처에 곤제역이 있어서 서울 갈 때, 아내와 스포츠댄스를 배우러 갈 때 종종 이용합니다.”

개통한 지 1년여, 내부는 쾌적하고 한산한 편이었다. 열차 크기가 작고 객차가 2량뿐이어서인지, 놀이기구(부상열차)를 타는 기분이었다. “신기한데요.” 나도 모르게 여기저기 둘러봤다. 그가 ‘뭘 모른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수시로 덜컹거리고, 급정거도 잦고…. 무인운행 시스템이거든요. 운행 중에 사고가 날 수도 있어서 늘 긴장해야 합니다. 적자 노선이라는 것도 문제고요.”

이것도 민자라고 했다. 적자가 누적되면….

“민자사업자가 손을 떼겠죠. 결국 의정부시가 부실을 떠맡을 거고요. 시민들만 손해 보는 거죠.”

한창 대화가 무르익어가던 오후 4시30분께 그의 전화벨이 울렸다. 동두천지사 동료였다.

“원래 4개 팀이 있는데, 팀장 중 1명을 보직해임시키고 직원으로 강등시키겠다고 했답니다.”

그의 표정은 어두웠지만, 딱히 놀라는 눈치는 아니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곳이 오늘날 KT입니다.”

“경쟁력 강화? 웃기는 소리 마세요”

오후 6시, 회사에 들러 업무보고를 마친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하루 일과가 끝났다. “아침에 주문을 외운 보람이 있어요.” 그가 웃는다. 온종일 춥고 바람이 찼다. 그래서 장씨의 14평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 내심 기대했다. ‘이제 따뜻하겠지.’ 예상은 빗나갔다. 집 안에 온기는 없었다.

“낮엔 난방을 거의 안 해요. 가스요금을 감당하기 벅차고, 저 혼자 집에 있을 때도 많아서….”

장씨의 아내가 말끝을 흐렸다.

“지난해 12월 청구서에 9만2520원이 찍혔더군요. 아내의 노력 덕분이지요. 여름철에는 전기료를 아낀다고 에어컨도 안 틀어요. 지독하게 아끼죠. 보세요. 매년 이맘때 도시가스 요금이 16만~18만원이었거든요. 많이 줄었죠? 지난해 3월엔 26만원이나 나왔는데 말이죠. 암막 커튼 달고, 뽁뽁이(에어캡) 붙이고, 내복 껴입은 보람이 있네요.”

장씨가 몇 해째 모은 도시가스 요금 청구서를 일일이 보여준다.

“도시가스도 그렇고 전기도 그렇고, 모두 민영화 수순을 밟고 있는 건 아시죠?”

“네, 뉴스랑 신문을 봐서 알아요. 지난여름 전력난 때 전기 민영화가 알려졌잖아요. 앞으로 대기업들이 자체 발전량을 늘릴수록 요금 현실화 문제가 불거질 것이고, 점점 요금이 오를 수 있겠구나, 그 정도는 압니다.”

“도시가스 요금이 지역별로 다른 건 아세요?”

“그건 몰랐어요.”

전기와 달리 도시가스 요금은 지역별 차이가 있다. 1999년부터 민영화가 시작된 가스의 경우, 전국 32개 소매도시가스 회사가 소비자에게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구조다. 지역별로 요금 격차가 3배 이상 나는 물과 달리 유의미한 차이가 나지 않는 건 한국가스공사가 도매를 통해 수급과 가격 조절을 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정부의 방침대로 민자기업이 도소매에 참여할 길이 열린다면, 이런 구조가 순식간에 무너질 뿐 아니라 요금 폭등까지 우려된다. 가스 민영화로 도시가스 회사가 200여 개에 이르는 일본의 경우 루베(m³)당 가격이 2400원꼴로, 850원 수준인 우리나라보다 3~4배 비싸다.

‘전기료를 못 내 전기가 끊겼고, 촛불 생활을 하다 화마에 휩싸인 사연’은 겨울철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뉴스다. 장씨는 “전기요에 누울 때마다 전자파, 화재 걱정을 안 할 수 없다”면서도 “그나마 값싼 전기 때문에 한기를 녹일 수 있어 다행인데 이마저도 불가능해질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회사가 적자 냈다고 해서 잘릴까 불안해”

이야기의 내용이 보험으로 옮겨갔다. 가입자가 3천만 명으로 국민의 60%가 가입하고 있는 실손 의료보험은 의료 민영화의 한 단면이다. 그는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민간보험은 매달 얼마나 부으세요?”

“한 50만원쯤…?”

월소득의 18%니까, 적지 않은 금액이다. 하긴 개인별로 실비보험 하나씩 들지 않은 이를 주위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식구도 각자 명의의 실비보험이 한 개씩 있다. 매달 불입액이 25만원쯤 된다. 그에게 가입한 보험 수를 물었다. “개인별 4~5개는 된다”고 했다. 그가 보험증권들을 찾아 안방에 펼쳐놓았다. 암, 치아, 실손, 건강, 운전, 재해 등 종류가 다양했다.

“8개월 전 아내가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이라는 희귀병 진단을 받았어요. 그래서 더 보험에 집착하게 된 것 같아요. 이제 아내는 보험 가입이 안 돼요. 건강할 때 하나라도 더 들어야겠다 싶었던 거죠. 가정에 환자가 있으면 집안이 풍비박산되는 건 시간문제라고들 하잖아요. 어쨌든 가장으로서 가족이 아플 때 돈 없어 치료를 못 받게 하는 불상사는 만들고 싶지 않아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처럼 돈 많은 사람들도 보험에 가입할까. 서민들이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갖가지 보험에 가입하는 건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금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매달 1인당 실손보험료로 5만~7만원을 부담한다. 가구당 민간보험 납입액이 23만원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하지만 민간보험이 ‘안전빵’ 노릇을 할까. 미국의 의료 민영화 현실을 다룬 영화 <식코>가 떠올랐다. 아파도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 보험에 가입했어도 보장받지 못해 고통받거나 죽어가는 사람들…. 우리의 미래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보험 혜택을 받은 적 있으세요?”

“없어요. 아 참, 얼마 전 치질수술을 했는데, 신청하면 30만원이 나온다고 합디다. 아들 대학 등록금으로 적립하려고요.”

대학 등록금이라…. 사립대 중심인 우리나라 고등교육 체계도 일종의 교육 민영화라고 볼 수 있다.

“아들 꿈이 파일럿이 되는 건데, 그러려면 대학에 진학해야 돼요. 등록금을 떠올리면 벌써부터 골치가 아픕니다. 지난해 4분기 KT(통신 부문)가 적자를 냈다고 해서 더 불안합니다. 명퇴, 감원 광풍이 몰아치지 않을까…. 요즘 잠을 잘 못 잡니다.”

정부는 지난 1월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수서발 KTX 분리를 단행했다. 투자 활성화를 빌미로 의료·교육 분야에서 민영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여론은 잠잠하다. 이런 추세라면 물, 가스, 전기, 교통도 줄줄이 밀어붙일 게 뻔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장씨는 “시민들이 민영화와 관련해서는 끝까지 관심을 갖고 여론을 주도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끓는 물에 개구리를 넣으면 펄쩍 뛰어오르지만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 속 개구리는 저항도 못하고 죽음을 맞는다잖아요. 지금 민영화가 꼭 그 꼴인 것 같거든요. 지난 연말 코레일 파업과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 때처럼 부당한 민영화와 관련해서는 분노하고 저항해야지요.”

그의 집에서 나와 곤제역에서 회룡역으로 가는 의정부경전철에 오르자마자, 취재수첩에 이렇게 적었다.

‘공공재 민영화는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할 수밖에 없다.’

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1 물 민영화와 관련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국의 상수도는 전국 162개 지방자치단체로 나뉘어 소유·운영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지자체의 상수도 사업을 한국수자원공사와 한국환경공단에 위탁한 경우도 ‘민영화’ 범주에 포함시켰다. 현재는 공기업 위탁 형태이나, 2001년 수도법 개정으로 언제든 민간기업이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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