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2.04 12:11 수정 : 2014.03.02 14:22

서문탁. 이름마저 범상하지 않다. 알고 보니 성이 서고 이름이 문탁이 아니라, 서문이 성이고 이름이 탁이다. 본명은 이수진. 예명을 쓰면서도 굳이 본명을 밝히는 것도 특이하다. 인터뷰하는 중에 의문은 풀렸다. 그는 끊임없이 서문탁이라는 이름과 이수진이라는 이름을 구분하고 있었다. 서문탁은 서문탁이고 이수진은 이수진이라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을 좀 빌려오자면, 서문탁은 이수진의 ‘자아-이상’이었다. ‘자아-이상’은 되고자 하는 나를 의미한다. 서문탁이 되고자 하는 것, 그이가 이수진이었다.

인터뷰를 위해서 조사를 좀 해보니, 역마살이 대단했다. ‘역마살’이라고 하니 나쁜 뉘앙스를 느낄지 모르겠지만, 현대 용어로 바꾸면, ‘창조적인 도약’에 항상 목말라 있는 존재가 서문탁이었다. 흥미롭게도 그는 항상 ‘도약’을 위해서 서문탁을 버리고 이수진으로 돌아갔다. 말하자면, 그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서문탁과 이수진을 오가는 삶을 즐겼던 것이다. 자신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는 가수. 그 존재 이유는 음악이다. 그 역시 자신의 음악을 위해 연예인의 정체성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가수였다.

도플갱어, 두 이름을 오간 삶

처음에 “돈을 많이 벌고자” 가수가 되었지만, 정작 돈을 벌 수 있게 되었을 때 모든 것을 버리고 일본으로 가버렸다. 평범한 이수진으로 돌아가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면서 일본어를 공부했다. 언뜻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원래 가수가 되려 했던 목적이 돈을 벌기 위한 것이었으면서 스스로 돈을 벌 수 없는 길로 나아갔으니 말이다. 여기에서 이미 이름만큼 범상하지 않은 서문탁의 세계관이 드러난다. 외유는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2010년에 집까지 팔고 유학비를 마련해서 미국 버클리 음대로 떠났다.

그가 말했던 “돈을 많이 벌고자” 가수가 되었다는 진술은 틀린 것인가. 아니 진실이었을 것이다. 다만 서문탁의 일에서 우선순위는 돈이 아니라 음악이었을 뿐이다. 가수에게 돈이라는 것은 그냥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기 위한 장식품이 아니다. 자신의 음악을 생산할 수 있게 만드는 수단이 바로 돈이다. 문화산업만큼 돈이 ‘생산수단’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무대 하나를 꾸미기 위해 필요한 것도 바로 돈이니까 말이다.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나 <위대한 탄생>에 대한 비판도 없진 않지만 ‘생산수단’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이들에게 화려한 무대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기능도 있는 것이다.

서문탁을 다시 돌아오게 만든 것이 <나가수> 무대였다는 사실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음악이었지만, 그 음악을 펼쳐 보이려면 무대가 마련돼야 했던 것이다. 여하튼, 그는 자신의 음악만을 고집스레 추구하는 예술가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가 한국을 떠난 것은 음악 이외에 다른 무엇으로 자신이 불리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음악을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는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에게 음악은 무엇일까. 이름 뒤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여성 로커’다. 마치 ‘여류 작가’의 경우처럼 별로 마음에 드는 작명은 아니다. ‘여성 로커’에서 중요한 것은 ‘로커’일 것 같다. 서문탁에게 중요한 것은 록이라는 음악이다. 한때 힙합 가수였던 손아람이 “요즘 록은 죽은 것이 아닌가”라고 질문하자, 서문탁은 대뜸 “그럼 힙합은 살았나요”라고 묻는다. 그의 말인즉슨, 음악 전반이 침체인 것 같고 딱히 록이라고 해서 ‘죽었다’고 단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도 손아람은 계속 “다른 장르를 해볼 생각이 없는가” 물었다. 다른 장르를 해보고 싶긴 하지만, 록에 최적화돼 있는 것 같다는 대답이었다.

솔(Soul)을 불러보긴 했는데, 반응이 신통찮았다는 것. 그런데 얼마 전에 선보인 컴백 콘서트에서 그는 다른 장르에 대한 시도도 무리 없이 소화했다는 중론이다. <나가수>는 다양한 서문탁의 가능성을 보여준 무대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로커’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지금은 록의 타이밍이 아니다”라는 서문탁의 진단은 설득력이 있었다. “록이 죽었다”라기보다 그냥 변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는 말이었다. 시대별로 음악은 변한다. 장르는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음악의 정수는 하나로 모일 수 있다는 진부하지만 언제나 명확한 이야기.

록을 무엇이라고 정의하는 것 자체가 록에 대한 위반이라는 서문탁의 말은 그의 삶을 닮아 있었다. 이 말이 진리라면, 어떤 것도 완성되는 것은 없다. 지금까지 보여준 그의 삶도 그런 것 같다. 그의 꿈은 “세계적인 로커”였지만, 그것 역시 어떤 확고한 표상으로 등록돼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세계적인’이라는 단물 다 빠진 수식어와 달리, 그가 꿈꾸는 로커의 모습은 국경을 넘어선 어떤 보편의 존재였다. 그 표상이 록에 대한 그의 정의와 닮아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에게 록은 보편성의 다른 이름인 것 같았다. ‘록 정신’이라고 일컫는 ‘저항’이나 ‘자유’라는 것은 일시적으로 록의 성격을 규정하는 시대정신이었을 뿐이라는 것.

시대가 바뀌었으면 록에 대한 규정도 바뀌어야 하는 것. 그는 좀더 멀리 내다보고 있었다. 인간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음악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그 흐름에 록도 있을 거라는 낙관주의가 마음에 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무대를 두 번이나 떠났다. 무엇이 그의 마음을 다잡지 못하게 했을까. 분명히 그에게도 고민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댄스음악과 아이돌 문화가 대세를 이룬 세상에서 고독한 로커로 살아간다는 것에 일말의 회의라도 없었을까. “너무 일찍 데뷔해서 멋모를 때였죠.” 의외로 담담했다. 가수 생활 자체에 회의를 느꼈다는 말이다. 가수가 정말 내가 갈 길인지 회의했고 그 결과가 일본행이었다. 첫 번째 외유였다. “서문탁인가, 이수진인가” 스스로 물었다고 한다.

음악은 삶을 즐기는 방식

“일본에 가서 부딪혀보고, 안 되면 배운 일본어로 번역이나 하면서 살 생각이었죠.” 뜻밖의 발언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가수’가 있을까. 가수로서 창창한 앞날이 막 펼쳐질 무렵이었다. 자신이 원했던 것처럼 돈을 많이 벌진 못했지만, 이름도 알려졌고 연예인 대접도 받던 시절이었다. 진정 그가 가수로 연예인으로 성공하려 했다면 굳이 고민할 필요는 없었을 테다. 왜 돈을 많이 벌고자 했던 것일까. 근본적인 물음으로 다시 돌아가봤다. “어머니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머니를 사랑하기에 당신을 편하게 해주기 위한 방편으로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 처음에 공부를 열심히 해서 어머니를 도우려고 했지만, 가수가 더 나을 것 같아서 선택했다는 이야기는 여느 ‘효녀’의 미담 못지않았다.

말하자면, 그가 돈을 벌려 했던 것은 일신의 안녕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 배경에 어머니가 있었다. 물론 그의 어머니가 호락호락 ‘효녀’ 노릇을 허락할 것 같진 않았다. 서문탁의 이야기에서 묻어나는 어머니는 그 자신의 롤모델이었다. 돈을 벌어서 어머니에게 가져다준다고 ‘효녀’ 났다고 칭찬해줄 어머니가 아니라는 것.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 사시라고 집을 사드렸는데도 결과적으로 서문탁 자신이 그 집에서 살았다고 실토했다.

돈을 번다는 것이 가수의 목적일 수 없음을 어머니도 아셨고, 그렇다면 더더욱 돈을 벌기 위해 연예인 생활을 지속할 이유는 없다. 더 끌리는 쪽으로 삶을 밀어가면 될 일이다. 서문탁만 이런 갈등을 겪은 것은 아니다. 연예인이 아니라 ‘음악인’으로 남기 위한 가수의 선택은 이전에도 많이 있었다. 인터뷰 도중에 가수 김수철의 예를 들어줬다. 김수철 역시 한창 인기가수로 잘나갈 때 홀연 모든 것을 접고 미국으로 음악 공부를 위해 떠나버린 경우이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가 아닐까.

다시 돌아와도 기억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경고’를 뿌리치고 일본으로 서문탁은 떠났다. 후회가 없을까. “돌아와보니 정말 설 무대가 없었어요.” 결과는 그의 예상보다 더 참담했다. “매니저가 미사리 라이브클럽에 가자는 것이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비참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면 이상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도 적응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삶이 이런 것인가 싶더라”는 이야기였다. 노래 부르고 돈 벌고, 그 돈으로 집도 사고, 일상의 재미가 그를 침잠하게 만들기도 했단다.

그렇다고 건성건성 노래를 부른 것은 아니다. 비록 라이브카페에서 부르는 것이지만 공연 때마다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팬들도 많이 생겼다고. 과거 데뷔 시절과 다른 팬들인 셈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때 서문탁을 발견한 팬들이 평생 함께할 이들인지도 모른다. 프랑스 영화감독 장 뤼크 고다르의 말처럼, 예술의 기원은 평범성에 있다. 평범성의 예술화가 있을 때, 지속성은 가능하다. 우리에게 예술은 대체로 모방의 문제이지만, 일상의 삶은 감각의 문제다. 느끼고 감동하고 전염시킨다. 음악의 힘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단순하게 현실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느끼고 감동하게 만들고 전염시키는 행위가 음악이다.

서문탁의 장점은 여기에 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스스럼없었다. 그가 상대방과 가까워지는 방식은 친근함이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가 왜 가수 서문탁과 인간 이수진을 구분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에게 둘은 불가분의 관계였다. 결코 분리시킬 수 없는 두 범주였다. 그에게 음악은 삶을 즐기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확실히 음악과 서문탁은 내밀한 관계로 엮여 있었다. 그도 어쩔 수 없는 충동의 동기화. 음악은 가수 서문탁의 것이면서 동시에 인간 이수진을 이수진에 머물지 못하게 만드는 기제였다.

“가수가 스스로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서문탁. 힘들다는 이야기를 함부로 할 수 없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인기 없는 가수라는 사실을 자인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는 뜻이다. 항상 ‘인기 가수’라는 타이틀은 필요했다. 그것이 자존심일 수도 있지만, 또한 음악을 하는 목적이기도 하기에. ‘인기’라는 말을 잠깐 돌아보면 그 이유를 알 만도 할 것이다.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인기’를 얻는다는 것은 실제로 어렵다. ‘인기’ 얻기가 쉽다면 왜 그렇게 모두 ‘인기’에 목을 매겠는가. 독일의 철학자 막스 베버는 이런 인기를 ‘카리스마’라고 부르기도 했다. 카리스마는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노력의 산물이긴 하겠지만, 아무나 쉽게 카리스마를 가질 수는 없다. 그래서 ‘인기의 비결’이라는 말도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요즘은 카리스마보다 그냥 돈으로 가수를 찍어내는 ‘비즈니스’가 더 흔하다. 가수의 카리스마 따위는 필요 없는 것이다. 돈을 들여서 가수를 만들고 그를 통해 원금을 회수한다는 투자가 횡행한다.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서문탁 같은 가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방법은 하나일 뿐이다. ‘본업에 충실하는 것.’ 가수의 본업은 음악이다.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만들고, 그것이 가수의 본업이다. 그가 미국 버클리 음대에 간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버클리 음대에서 그는 음악 프로듀싱도 배웠다. 나름대로 이 업계의 현실에 대비한 것이다. 음악계를 떠나지 않겠다는 각오가 읽힌다. 집까지 팔아서 유학길에 나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앞길이 창창할 때도 아니고 편안한 일상에 젖어 있을 때, 과감하게 모든 것을 던지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결단이 아니다. 이런 생각은 서문탁을 직접 만나보니 해소됐다. 그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용기의 화신이었다.

남들이 보면, 그의 꿈은 현실적이지 않을지 모른다. 내가 물었다. “예능프로그램에 자주 나갈 생각인가?” 부른다고 아무 곳에나 나가지는 않을 거란다.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곳이라면 나갈 거라고. 본업에 충실하려는 그의 의지는 강해 보였다. “세계적인 가수의 꿈을 버리진 않았어요.” 그의 대답도 명쾌했다. 그것이 그의 꿈이라면 꿈이었다. 물론 무엇이 ‘세계적 가수’인지 아무도 모른다. 서문탁 자신도 모를 것이다. 다만 그에게 ‘세계적인’이라는 수식어는 자신의 음악을 계속해나갈 수 있는 기반이었다. 그 기반은 오직 음악성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고집이었다.

그의 공연에 갔다온 손아람은 다양한 관객들에 놀랐다고 거듭 말했다. 의외의 관객도 많았단다. 록이라면 젊은 세대를 떠올리지만, 청년들만 콘서트장을 수놓았던 것이 아니라는 말. 다양한 팬들을 확보한 이유가 그의 진술에 들어 있다는 생각이다. 1990년대 초반 팬부터 미사리 라이브카페 팬, 그리고 <나가수> 팬까지 모두 그의 콘서트장을 채웠다. 그냥 온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을 대동했다. 흥미로운 것은 오히려 나이든 세대야말로 록 공연에 익숙하더라는 것. 모두 일어나서 호흡을 맞추는 쪽은 젊은이들이 아니라 마음만 젊은 중·장년들이었다는 것. “록은 죽었다”는 선언을 무색하게 만드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서문탁이 말했듯이, 록은 다른 모습으로 지금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다만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가 많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개념화 거부하는 삶의 내재성

서문탁에게 록은 사라질 수 없는 음악의 정신이었다. 음악의 정신이라는 점에서 록은 보편적이다. 그가 국내 활동을 접고 두 번 외국에 나간 것도 자신의 인기가 사라지더라도 음악의 정신은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철저히 준비해서 나갈 생각”이라는 말은 앞으로도 그의 외유는 계속될 것임을 암시한다. ‘허벅지 사이즈’를 예로 들면서 유쾌하게 설명했지만, 한국의 감수성만이 음악의 척도는 아닐 테다. 낯선 감각과 조우할 수 있는 용기가 두터운 문화를 보장한다. 문화가 두텁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만큼 타자에 대한 이해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이 풍부해지는 것은 낯선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달려 있다. 낯선 것에 배타적이라면, 그는 유연하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 변화야말로 삶의 본질인데, 그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배척한다면 결코 제대로 산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자신의 음악을 좋아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가수에게 어디 있겠는가. 모든 예술의 조건은 실제로 ‘장소의 이동’을 의미한다. 예술은 원래 장소에 다른 장소로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다. 그것이 곧 독특성을 생명으로 하는 예술이 보편성을 획득하는 방식이다. 아름다움은 보편적이긴 하지만 개별적인 것이다. 한국의 음악 환경이 서문탁을 반기지 않는다고 해도 외국에 그를 좋아할 팬들이 분명히 있다. 여기가 아니면 어떤가. 저기에서 자신을 발견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예술의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진술에서 알 수 있듯이, 서문탁이 단순하게 록에 경도돼 있는 가수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음악으로 인정받고 싶은 가수였다. 그렇기에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갈 수 있다는 태도를 지녔다. 마치 미사리 라이브카페에서 최선을 다해 노래했던 것처럼, 지구상 그 어디도 허투루 대하지 않겠다는 투였다.

그에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소탈함이었다. 보통 소탈함은 파격성과 함께 온다. 그는 연예인이라는 정형성을 필요로 하면서도 거기에 얽매이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새해 벽두에 독도 콘서트를 기획한 것을 두고 너무 민족주의적 바람에 편승한 것 아닌지 손아람이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덤덤했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추상적인 민족주의에 기대기보다 구체적인 문제와 정면 승부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서문탁은 록이 정치적 문제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선입견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걸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것이지, 록이라면 꼭 이런 걸 해야 한다는 편견에 그는 저항했다. 록은 자유롭기 때문에 아무것이나 할 수 있는 것이지, 특정한 무엇을 해야 록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어떤 개념화를 거부하는 삶의 내재성 자체로서 록에 대해 그는 말하고 있었다.

<아메리칸 아이돌> 출연 사실 아시나요

생명력이라고 해두자. 어려운 말도 아니다. 록은 생명력이다. 생명력의 분출이 음으로 표현된 것이다, 이런 말인 것 같았다. 이런 서문탁의 입장은 버클리 음대에 재학할 때 <아메리칸 아이돌> 오디션에 참가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나이 제한에 걸려서 예선 통과가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는 일단 질러보자는 심정으로 신청했다고 한다. 물론 예상대로 나이 제한 때문에 본선 진출은 불가능했지만, 그때 받은 자신의 노래에 대한 평가는 힘이 되었다. 일단 부딪혀보자는 것은 시종일관 드러나는 그의 대범함 때문인 것처럼 보였다. 문제는 이런 대범함이 아니다. 록 정신을 이야기하는 가수가 <아메리칸 아이돌>에 출연할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다.

아마 록 정신을 이러이러하다고 미리 규정하고 있는 이라면 서문탁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신성한 록 정신을 훼손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서문탁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록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음악의 일종이다. 대중이 먼저이지 록이 먼저가 아닌 것이다. 서문탁에게 록 정신은 신전에 모셔둔 불상 같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가수> 출연에 대해서도 초연했다. 이미 프로페셔널인 가수를 다시 평가한다는 것이 자존심 상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는 반면, 서문탁은 ‘음악에 순위를 매길 수 없다’는 생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그렇다면 프로페셔널 가수가 아마추어 가수의 순위를 매기는 것도 잘못이라는 말. 아마추어 가수라고 가수가 아닌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결과적으로 노래의 테크닉만 좋다고 가수인 것은 아니고, 이런 까닭에 가수가 된다는 것은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음악은 평가 가능하지만, 그런 평가만으로 음악이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새로운 의견이었다. 가수를 노래 말고 방송이나 예능으로 몰아가는 현실에 분명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음악이 고고하게 세속과 섞이지 않는 것도 문제다. 절충주의 같지만,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리는 것이기도 했다. 서문탁은 말하자면, 음악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가수라기보다 음악을 통해 자신의 삶을 즐겁게 살려는 ‘인간’인 것 같았다. 한동안 그를 붙잡고 있었던 ‘가수 서문탁이냐, 인간 이수진이냐’는 고민은 일정하게 해소됐다고 한다. “둘 다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가수 서문탁은 인간 이수진이기도 하다. 이수진의 ‘자아-이상’이 곧 서문탁이라는 말처럼 들렸다.

서문탁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은 실제로 인간 이수진이었다. 그에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환경이 계속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그가 꿈꾸는 가수의 세계도 여전해야 할 것이다. 그는 여전히 꿈을 꾸는 로커였다. 록이 음악의 정신이라면 그 정신의 완성태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의 매니저도 그 꿈을 나눠가졌다는 점에서 그는 결코 불행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매니저는 서문탁의 팬으로 출발해서 그 꿈을 같이 나누는 사업 파트너가 되었다. 그의 주변에는 이렇게 서문탁의 꿈에 기꺼이 동참하려는 이들로 붐볐다. 작은 사무실이었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민 ‘회사’의 모습은 기획사라기보다 공방처럼 보였다. <도전 1000곡>(SBS)에서 우승한 트로피가 눈에 띄었다. 록만 부르는 가수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가 록을 고집하는 까닭은 바로 그것이야말로 음악의 정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 목소리는 록에 더 맞다”

<사미인곡>을 우연히 들은 적이 있다. 고색창연한 가사에 강렬한 록 사운드가 특이한 느낌을 자아냈다. 그의 음악을 잘 몰랐지만, 그 음악에서 느껴지는 어떤 통합은 서문탁이라는 이름 석 자를 선명하게 기억하게 만들었다. 분명 그의 음악은 호소력을 지녔다. ‘가창력’이라는 범주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테크닉을 넘어서는 영혼이 그의 음악에 있었다. 꼭 “이것이 진짜 록이다”는 거드름 없이도 그의 음악은 록의 느낌을 전달하기에 손색없었다. 솔을 한번 불러보라는 손아람의 회유(?)에 “내 목소리는 록에 더 맞다”고 겸손해하는 그의 모습에서 더 나은 음악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것 같은 자신감을 읽었다면 과장일까. 그는 확실히 범상한 가수가 아니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명쾌했고, 전망은 확실했다. 이제 시간을 견디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일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이수진은 서문탁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서문탁은 이수진과 함께 나아갈 것이다. “보는 음악이 아니라 듣는 음악”을 하겠다는 서문탁의 바람은 결코 무모한 욕심이 아니다. 그가 아우를 수 있는 세계는 넓어 보였다. 부디 그가 꿈꾸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사무실 창문 너머로 솜털 같은 눈송이가 내려앉고 있었다.

글 이택광 영국 셰필드대학 문화학 박사. 경희대 영미어학부 교수. 다양한 문화 분석을 통해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코드를 찾아내는 작업을 한다. 저서로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가이드> <이것이 문화비평이다> <한국문화의 음란한 판타지> <인상파, 파리를 그리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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