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1.05 17:00 수정 : 2014.02.04 10:48

2013년 12월10일 주현우(27·고려대 경영대)씨가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신호를 보내자 수많은 사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안녕하지 못합니다’라고 응답하고 있다. 그들의 대자보 내용은 과거 운동권 학생들이 주장했던 ‘학도들이여, 앞장서 나가자’식의 선동이 아니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눈감은 자신들에 대한 성찰이며 양심의 목소리다.

학생과 시민들이 칼바람 부는 세밑에 양심의 옷을 입기 시작했다. 동토의 땅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일찍이 ‘몸에 꼭 맞는 옷을 입기보다는 양심에 꼭 맞는 옷을 입으라’고 조언했던 것처럼 그들은 가죽을 덮는 대신 마음을 덮으려 한다. 그리고 그들의 양심의 명령은 ‘정의가 숨쉬는 사회’라는 소박한 믿음 위에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른다면 성찰과 양심이 봇물처럼 줄을 잇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이기에 “지금이 과연 21세기가 맞는지”(주현우), “1+1을 3이라고 말하고 있는 한국 사회”(영국 유학생)에서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느낌”(1인시위 안혜련)이라고 의문을 표한다. “침묵을 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대구대 권현철)에 분노하고 “민주주의가 뒷걸음치는 모습”(경희대 명교)을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정녕 희망은 있을까요”(강태경)라고 되묻는다.

만일 우리 사회의 학생과 시민들이 양심을 저버리고, 소수를 차별하고 약자를 착취하며 경쟁과 성공지상주의의 과실만 따먹고 산다면 그것이야말로 미래가 없는 엄청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양심의 발로로 나타난 대자보는 부도덕한 정치권력에게는 도덕적 사망 선고를, 법을 위반한 경제권력에게는 법적 제재를, 그리고 아직도 침묵하는 다수의 시민권력에게는 양심적 행동을 요구하는 사회에 대한 청원서일 것이다.

‘하 수상한’ 한국 사회

대자보가 본 현실은 한마디로 ‘하 수상한 시절’이다.

첫 대자보에서 언급된 ‘철도 민영화 반대와 철도 노동자의 직위해제’라는 목소리가 보수 언론과 정치인들에 의해 ‘근거 없는 선동’이라든지 ‘잘못된 팩트’로 매도당하는 현실만 봐도 수상한 한국 사회다. 약자의 목소리를 듣는 시각은 다르더라도 의미까지 매도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의 의견 수렴 방식은 다양한 목소리를 배제하고 반대 의견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귀기울이고 경청해서 사회적 합의를 이끄는 데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사회적 합의 없이 민영화 추진은 하지 않겠다”고 강조하지 않았는가. 페이스북에서 수십만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좋아요’를 누르고 있는 것만 봐도 어떤 목소리가 더 사회적 합의에 이른 것이고 객관적인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수상한 시절은 “경제를 예측했다고, 투표를 독려했다고, 방사능이 온다고 했다고 검찰에 불려가는 것을 보았다”는 고등학생의 글에서도, “대운하사업? 내부 양심선언이 나오고 전문가들이 반대할 때 그칠 줄 알았습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람이 24명이나 죽었으니 국정조사는 할 줄 알았습니다”라는 대학생의 글에서도, “부정선거 의혹, 국정원 댓글, 철도 파업 등 나라가 어수선한데도 아기엄마라는 이유로 멀찍이 떨어져 바라만 보던 제가 의료 민영화에 결국 움직이고 말았습니다”라는 주부의 글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대자보의 말대로 수상한 시절을 맞고 있는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는 퇴보했다.

‘철도 민영화 반대’라는 시의성 있는 소재가 방아쇠를 당긴 것은 강자들의 약자들에 대한 끊임없는 착취와 구조적 문제에 대한 주체들의 인식이다. 이를 대자보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를 안녕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근원적 물음에 대한 결론일 것이다. 과거 대통령 선거에서 ‘살림 좀 나아지졌습니까’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구조적 문제로 인식의 확산을 도모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대자보는 약자들이 주체적으로 나서면서 민주주의를 퇴보시킨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회의를 하고 있다.

불평등 구조가 가져온 민주주의 후퇴

현 정권은 과거 군대를 이용한 피 묻은 권력이 아닌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권력이지만 민주주의의 회복을 낙관하는 국민의 희망을 저버리고 있다. 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국민 행복’에서 정작 국민은 누구인가. 지난 1년간 박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국민의 입을 틀어막고 불통과 외길의 통치를 해왔다.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서릿발 같은 호통은 필시 군사독재 시대의 총칼보다 무섭다. 모든 국민이 사상의 자유 없이 사상의 통일을 하는 것이 ‘국론 통일’이며 ‘국민 행복’이라면 이는 곧 ‘새로운 유신’이며 ‘재갈 물린 정의’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대자보는 이런 현 정부의 실정에 대해 비판한다.

“쌍용차, 콜트·콜텍, 현대차 비정규직 등 헌법에 규정된 기본권마저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들”(고려대 춘희)을 탄압하는 것도 모자라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의 벌금을 물리고, “이데올로기 밖을 상상하는”(중앙대 상) 국회의원들과 국민의 안위를 위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서울대 김재운) 양심적 종교인들을 ‘종북몰이’하며, 인간적인 삶을 위해 “목숨을 걸고 고압 송전탑 건설을 반대”(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하는 경남 밀양의 할머니·할아버지들의 터전을 오염시키고, 그들을 돕는 시민단체를 현 정권의 국론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도덕하고 폭력적인 인간으로 매도하고 있다고 말한다. 마치 “가난한 사람에게 빵을 주면 성인이라 부르지만 왜 빵이 없느냐고 물으면 공산주의자라고 한다”는 브라질 대주교의 말처럼, 현 정권은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약자들의 모든 입에 재갈을 물린다.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지상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라고 했음에도.

하지만 현 정권은 대자보가 부도덕하고 폭력적으로 여기는 위정자들, 즉 불법 대선 개입 의혹이 짙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주도한 국정원 심리전단, 군 사이버사령부, 국가보훈처 등 국가기관의 수뇌부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신상을 영장 없이 불법 조회한 행정부의 공안세력, 밀양 송전탑 건설을 강행한 한국전력, 철도·의료 민영화를 주도하는 세력 등에 대해서는 “권력과 자본의 이해에 따라 불법과 합법을 결정”(고려대 학생)하고 있다.

국가의 존재 이유가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지만 현 정부가 생각하는 ‘국민 행복’에서 국민은 권력자와 자본가들뿐이다. 국가는 이제 이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노동자·농민·서민 등 약자들은 계속 빼앗기고, 일부 권력자와 자본가들은 계속 착취하는 구조적 불평등 문제가 쌓여간다. 대자보로 모인 사람들은, 마르크스의 말을 빌리자면, 착취하는 세력들을 타도하기 위해 ‘단결’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한 대학생이 미국의 진보학자 하워드 진의 “내가 사랑하는 건 조국, 국민이지 어쩌다 권력을 잡게 된 정부가 아니다”라는 말을 인용했던 것처럼 정권을 부정할지언정 국가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현 정권의 주장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으려는 불신이 대학가를 나와 중·고등학교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회사 정문까지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많은 곳으로 퍼져나간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불평등뿐만 아니라 일상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도 고발한다. 그들은 삶의 현장에서, 취업 시장에서, 입시 지옥 등에서 겪은 존재에 대한 회의를 토로한다.

삶에서의 존재에 대한 회의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 좋은 인생을 좇아 끝없는 트랙을 달리도록 강요받고 있다”는 고등학생, “아무리 공부해도 계약직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어 편입을 준비하고 있다”는 전문대생, “‘의식 없는 세대’라는 조롱에도 묵묵히 할 일을 했지만 보장되는 것은 없다”는 서울대생, “이공계생들이 전문대학원으로 발길을 돌리고, 대학원 선배들은 술을 사줄 때마다 대학원은 오지 말라고 권하고, 랩 박사님들은 생활고 때문에 퇴근 후 몰래 고등학생들을 가르친다”는 포항공대생, “예술 쪽에 있는 사람들은 근로자로서도 인정받기 어려우며, 기성 작가 밑에서 보조작가로 활동하며 자신의 크레디트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며, 예술가를 꿈꾸던 친구들이 졸업 시기가 되면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소망”이라는 서울대 졸업생, “고추농사가 풍년이지만 중국산 고추 때문에 빚이 풍년”이라는 초보 농부, “일부 언론은 사회의 목탁이 아닌 독이 된 지 오래고 오히려 권력의 무기가 되어 약자를 공격하는 수단이 되었다”고 한탄하는 언론노조 간부 등의 글이 그것이다.

1장, 2장 대자보가 쌓여가듯 10명, 100명 주체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들의 글은 공손했지만 한국 사회의 현실을 보는 눈은 날카로웠다.

사회 전 분야에서 점화된 구조적 모순에 대한 저항은 굳이 2000년대 이전까지 가지 않더라도 미선·효순이 사건, 미국산 쇠고기 반대 운동, 고려대 김예슬의 자퇴 선언, 반값 등록금 투쟁, 희망버스 동행 등으로 이미 그 전주곡을 울린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형태로 다시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즉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노동자와 정권, 학생과 정권, 국민과 정권 사이의 적대적 긴장 상태의 연속선상에서 나온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과거 화염병을 던져봤던”(광주 한기석) 사람도 “청소년 운동을 했던”(3년차 직장인) 사람도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어봤던”(상명대) 사람도 “진보적 시사주간지를 구독하고, 선거에서 야당을 찍은 ‘개념 대학생’이라고 생각했던”(고려대 강훈구) 사람도 다시 성찰하고 대자보 운동에 동참한다.

하지만 대자보 행렬이 이전 저항과 뚜렷이 다른 점은 “잘못된 현실을 외면”했던 고등학생부터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시험공부”한 대학생, “북한을 싫어하는” 취업준비생,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직장인, “아기엄마라고 멀찍이 떨어져 바라만 보던” 주부까지 모두가 주체가 되어 참여했다는 것이다. 이는 순식간에 불타오른 2002년·2008년 ‘촛불’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과거 이들이 정치권의 참여와 수많은 군중 속에서 주체화되지 못하고 객체화됐다면 지금 대자보 행렬에서는 의식화된 주체로 당당히 섰기 때문이다.

주체화된 시민의 소리 무시하는 정권

하지만 주체화된 학생과 시민들의 소리를 듣는 현 정권과 보수신문의 판단은 다르다. ‘정치적 목적이 의심된다’며 견강부회하고 최초 대자보를 쓴 주현우씨를 특정 정당 소속이라며 그 뜻을 평가절하한다.

그 선두에는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이 있다. 김 의원은 마치 자신이 대자보 행렬에 동참해 양심 있는 의원이라도 되는 듯이 행세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다시 한번 힘을 모으고 함께 뜁시다.” 현대판 ‘용비어천가’에 가깝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대자보 문구에 꼬투리를 잡는다. “요즘 대학생들이 안녕하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가 기본자세가 안 돼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며 흠집내기에 열중한다. 코레일 최연혜 사장도 할 말이 있는가보다. “대학교 벽보 등에서 직위해제를 해고로 오해하고 있는데, 직위해제는 인사대기 명령이지 해고가 아니다”라는 말로 그들의 의도를 감춘다. 또한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은 “‘철도 민영화’라는 주제와 추상적인 ‘청년의 삶’이라는 주제를 놓고, 사실 하고 싶은 얘기는 전자가 아닌가”라며 대자보의 순수성마저 의심한다.

이는 대자보 행렬을 희화화하고 우발적인 행동으로 규정함으로써 현 정권의 폭력적인 실정을 은폐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수법은 과거 군사정권이 행해온 물리적 폭력 방법은 아니지만 보수언론과 한패가 되어 고도의 여론전으로 대자보 행렬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한 시민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2항의 구절을 호명했다. 영화 <변호인>에서 송강호가 울부짖던 것과 같은 울림이다. 그리고 지금 대학생과 시민들이 이 구절을 실천하려 하고 있다. 만약이라는 전제는 의미가 없지만, 만약 학생과 시민들이 정권에 침묵하면 한국 사회는 어떻게 변할까. 지구 반대편 칠레의 대학생이 보내온 글귀가 침묵의 미래를 펼쳐 보여준다.

“한국에서 민영화가 이뤄지지 않도록 싸우시기 바랍니다. 현재 칠레는 이미 민영화가 많이 이루어져 있고, 그 결과 건강보험·교육·주거지·물·대중교통 등 수많은 부문에서 많은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가 얻는 것이라고는 사회 불평등뿐입니다.”

글 김원일 기자 nirvana@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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