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1.04 13:04 수정 : 2013.11.11 13:48

박근혜 대통령은 패션을 잘 이용하면 정치적 야심을 감출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정치인이다. 부드럽고 화사한 패션으로 여성적 포즈를 취하다가도 강한 이미지가 필요하면 언제든 바지 정장을 입는 식으로 여성성과 남성성의 규범을 교란시킨다. 지난 9월7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뉴시스
몇 회 졸업생인지는 잊어버렸지만 나는 1991년 2월 성심여고를 졸업했다. 그러니까 박근혜 대통령의 후배인 것이다. 고등학교 내내 가장 전설적인 졸업생 박근혜 선배 얘기를 선생님이나 수녀님(성심여고는 가톨릭 학교라 학교 뒤편에 아주 오래되고 기념비적으로 작은 성당이 있었다)들에게서 자주 들었다. 성심여고 재학 시절 박근혜의 교복 소매 끝이 낡고 해져 실밥이 터져 있었다는 얘기며, 심지어 육영수 여사가 기워준 낡은 교복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새 교복 입기를 거부했다는 얘기, 무엇보다 성심여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우리의 선배님께서 1968년 박정희 대통령 내외와 함께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를 방문했을 때 자주색 성심여고 교복을 가지고 가서 뉴질랜드 총독 내외를 만나는 자리에서조차 입으셨다는, 믿을 수 없이 감동적이어서 한창 감수성 만발한 나이에 하마터면 눈물을 터뜨릴 뻔한 스토리. 무엇보다 그토록 자랑스럽게 예쁜 성심여고 교복을 입을 수 없다는 사실이 분해서도 난 정말 눈물이 났다. 이제 막 복장자율화를 맞은 첫 번째 세대로서 2학년, 3학년 언니들이 입고 다니는 자주색 교복이 부러워 기꺼이 ‘자유’를 반납하고 ‘구속과 억압’의 은혜를 입고 싶다고 남몰래 마음속으로 시위하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은 가난했고 내 사복에 우리 집의 시원찮은 경제 사정이 은연중에 드러나곤 했기 때문에 더욱더 교복을 열망했던 것 같다. 게다가 그것은 ‘대통령의 딸’이든 서울 용산의 ‘마산 아구탕집(당시 우리 엄마가 운영하던 식당) 딸’이든 평등하게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해주는 영예로운 교복이 아닌가?

패션 정치의 꽃? 연분홍 재킷

앗, 그런데 변해도 너무 변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서 지난 6월 말 중국을 방문한 우리의 각하께서는 3박4일 동안 무려 9벌의 의상을 선보였다고 한다. 황금색·빨강·분홍·하양 등 다채로운 색깔의 한복과 양장을 골고루 선보였는데, 신문·방송 할 것 없이 미디어마다 그 의상 색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거의 코미디 수준의 야단법석을 피우고 있는 게 아닌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부부와 만난 자리에서 입었던 라운드 네크라인의 연분홍색 재킷이 패션 전문가들로부터 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대통령이 무슨 패셔니스타냐? 게다가 너무 화사해서 어딘지 촌스럽게 느껴지는 패셔니스타라니!” 하고 못된 훈수를 두고 말았다. 정말 그랬다. 중국의 퍼스트레이디 펑리위안 여사와 비교하니 우리 대통령의 화려한 옷들이 사치스럽기는커녕 어딘지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같은 옷을 여러 번 입는 ‘근검절약 스타일’을 고수하지만 미국의 대표적인 연예지 <배니티페어>가 선정한 ‘2013년 세계 베스트 드레서 44인’에 선정될 정도로 패션 감각이 탁월한 펑 여사는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멕시코 방문 때와 같은 흰색 재킷을 입고 있었다. 재킷 안에는 중국의 전통 의상 치파오를 모던하게 톤다운시킨 듯한 원피스를 몸매가 드러나도록 타이트하게 입은 채 말이다. 그런데 우리 각하는 무안할 정도로 화사한 연분홍 재킷에 특유의 어정쩡한 길이의 통 넓은 무채색 바지를 입고 있다. 바지통이 어찌나 넉넉해 보이는지 너구리 한 마리를 숨겨 가지고 다닐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모습이 솔직한 심정으로 패션잡지 에디터로 무려 17년을 일한 내 눈에 조금도 우아해 보이지 않았고 되레 촌스럽게 보였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9월 초 러시아와 베트남을 순방하며 5일 동안 또다시 총 9벌의 의상을 선보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취임식 날부터 온갖 매체들이 ‘패션 정치’니 ‘패션 외교’니 하며 만사 제쳐놓고 대통령의 패션 감각을 칭찬하고 의미를 부여하니 진정 춤을 추는 지경에 이르렀다. 의상이 점점 화려하고 대담해진 나머지 대통령께서 정말 패션니스타가 다 된 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예컨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입은 프릴 달린 파란색 재킷이라든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입은 칼라와 단추에 금박 장신을 준 도도하게 빛나는 초록색 재킷 같은 거. 물론 가장 압권은 황금으로 유명한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갔을 때 입은 노란색 투톤 원피스였는데 그 모습이 과연 일국의 여왕 폐하 같았다. 하지만 이건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다. 뭐랄까? ‘경제 분야에선 유능할지 몰라도 패션은 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메르켈 총리에 비하면 우리의 각하는 5년 내내 ‘외교나 정치적 성과는 거의 없지만 그래도 패션만큼은 화려했던’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것 같다고 할까?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누구를 위해 옷을 입느냐고요? 때와 장소에 맞게 잘 입는 것은 국가가 제게 부여한 임무 중 하나입니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임무지요.” 맞는 말이다. 특히나 자국의 럭셔리 브랜드를 즐겨 사용했던 대처 총리나 ‘갭’ ‘제이크루’ 같은 자국의 다양한 브랜드로 훌륭한 스타일을 보여준 미셸 오바마가 불러일으킨 경제 효과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그 많은 옷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른다. 서울 강남의 한 의상실에서 만들어진 맞춤복이라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 그 의상실의 정체는 철저히 극비에 부쳐져 있다. 그러니 대통령의 의상이 아무리 화제가 돼도 그로 인한 국내 패션 업계의 경제 효과라는 걸 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한 패션평론가는 박근혜의 ‘패션 정치’가 국내 패션산업의 활기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서 ‘직무유기’라고 꼬집기도 했다.

외국 갈 때 교복 꺼내 입던 소녀 어디에

넓게 보면 패션은 국경을 초월한 문화적 요소고 전세계적으로 전개되는 광고와 기성복을 만드는 대기업부터 작은 디자이너 숍, 도매시장까지 거대 경제구조를 지탱하는 산업이기도 하다. 유행을 만들어내고 마케팅을 통해 그것을 소비시킴으로써 몇백만 명의 고용과 몇십억달러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거대한 경제 효과를 창출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의 패션 정치는 여전히 상류층 여자들만 상대하는 1970년대 ‘양장점 시대’에 머물러 있다.

보통 사람들은 유행을 통해 현재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래서 유행에 민감한 거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의복이나 스타일 속에 과거나 현재, 미래를 압축해서 담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박근혜는 아니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여전히 과거뿐이다. 과거의 패션은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지적한 대로 ‘사회에서 어떤 사람의 지위를 분명히 자리매김하는 시스템’이었다. ‘하층 집단으로부터 자신의 지위를 구별하고 같은 수준의 사람들과 연대하는 것이 그 목적’. 하지만 박근혜의 패션은 옷을 통해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선전하고 싶은 마음만 있지 대한민국의 그 누구하고도 연대할 마음이 없다. 그래서 아무도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자기만의 양장점 옷을 고집하는 거다. 그게 바로 패션을 통해 보는 ‘불통 박근혜’의 정체성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왠지 가슴 아프다. 아버지의 외국 순방길에 따라나설 때조차 교복을 꺼내 입던 그 소박하고 겸손하게 순진했던 소녀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국민적 영웅이 된 아버지는 물론 국민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그 어머니까지 총탄에 죽었다. 5·16 쿠테타 지지 시위를 벌여 박정희의 총애를 받던 육사 11기 전두환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권을 쥐자 그녀는 전두환에게서 엄청난 경제적 원조와 정수장학회를 물려받고 비로소 정치라는 비정하고 비열한 세계의 비밀을 터득했을 터이다. 아마 그때부터 변했을 거다.

어느새 박근혜는 패션을 잘 이용하면 정치적 야심까지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정치인이 됐다. 한 예로 2004년 이회창 후보가 대선에 연패하고 불법 대선자금이 드러나 당의 지지율이 추락했을 때를 떠올려보자.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천막당사로 이전하고 그 자신도 이때부터 ‘전투복’이라고 불린 바지 정장을 고집했다. 이미지 개선을 위해 ‘당의 옷’은 물론 머리 모양만 빼고 이른바 ‘육영수 스타일’인 단아한 여성의 옷을 모두 벗어버렸다. 필요할 때면 언제든 다시 꺼내 입을 수 있는 전술이긴 했지만 말이다.

아마 정치인들 중에서 박근혜만큼 패션을 통해 여성성과 남성성을 교묘하게 잘 이용한 예가 없을 거다. 예컨대 강한 이미지가 필요할 때는 바지 정장을, 부드러운 화합의 이미지가 필요할 때는 스커트 정장을 입는 식이었다. 더 중요한 점은, 자신의 의복에 표현된 남성다움과 여성스러움의 규범을 그런 식으로 교란시키고 약화시킴으로써 머리와 심장은 고집스럽게 과거 속에 있는 인물이 사회적 변화나 진보의 기호를 가진 매우 현대적이고 합리적인 여성 리더의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는 거다.

군복 같은 카키색 코트는 뭐야~

옷은 자아를 반영하는 거울 정도가 아니다. 드러내거나 감추는 방식으로 옷은 정치적 주장, 인간적 가치, 세계관, 성적 기호나 열망, 그 이상의 것을 표현하는 훌륭한 시각 언어가 될 수 있다. 취임식 날 군복을 연상시키는 카키색 코트를 입은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뿌리가 박정희의 유신체제에서 만들어져 지금까지 계속 이어진 철저한 유신의 잔재이자 정치적 유산임을 명백히 밝힌 거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자국 동포들을 만나거나 공식 만찬 행사 때면 단아하면서도 화사한 한국 전통 의상 차림을 고집하는 의도, 그리고 어떤 옷을 입든 육영수 여사의 올림머리를 고수하는 전략, 그 의도와 전략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군부독재’를 의미하는 유신이 자신의 인간적·정치적 뿌리임을 부드럽고 화사한 여성적 포즈로 교묘히 감추고 싶고, 감출 수 있으며, 당신들은 감히 그걸 읽어내거나 흉내내지 못할 거라는 모태(母胎)적 오만함.

박근혜 대통령의 현기증 나는 의상쇼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심지어 조금씩 진화할 거라고 믿는다. 현란하면 할수록, 변화무쌍하면 할수록 패션은 뭔가 생동감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그 생동감으로 사람들 시선을 빼앗아 감추고 속여야만 하는 것이 많을 테니까. 무엇보다 옷처럼 쉽게 입고 벗을 수 없는 그 자신의 고착화된 그 태생적 본질 말이다.

글 김경 패션지 에디터로 17년을 살았다. 2003년부터 <한겨레21>에 ‘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를 연재하며 칼럼니스트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지금은 강원도 평창에서 살며 생애 첫 번째 소설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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