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9.02 11:38 수정 : 2013.09.02 14:29

‘유능제강’(柔能制剛),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한다는 뜻이다. 흔히 유도 같은 격투기에서 스트레이트로 부딪혀오는 선수와 이를 받아넘기면서 자신의 실리를 추구하는 선수를 비교할 때 쓴다. 최근 들어 유도(柔道)와 비슷한 ‘유술’(柔術)이라는 단어를 자주 보게 된다. 유술은 ‘부드러운 기술’이라는 뜻으로 흔히 ‘주짓수’로 불리는 브라질 대표 무술이다. 주짓수는 일본어에서 파생되어 브라질에 정착한 표현이다. 일본어 본래 표기는 ‘주주츠’인데, 브라질에서 포르투갈어 발음으로 바뀐 것이다. 브라질 사람에게는 일종의 외래어인 셈이다.

 

유도에서 태어나 브라질서 정착

주짓수는 일본의 마에다 미츠요가 고전 유도와 양심류 유술을 익힌 상태에서 브라질로 건너가 독립적으로 체계를 완성한 무술이다. 당시 그를 후원한 그레이시 집안에 주짓수를 전수하면서 오늘날의 주짓수의 근간을 만들었다. 이후 그레이시 주짓수는 1993년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를 탄생시키면서 자신의 무술을 세상에 알렸다. 국내에는 이종격투기 붐이 일어나기 이전부터,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존 프랭클(‘블랙 벨트’) 사범이 서울 신촌동 연세대 체육관에서 취미교실로 시작한 것이 모태라 할 수 있다.

국내에 주짓수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3년이다. 국내 최초 이종격투기 대회를 표방한 스피릿MC 64강 토너먼트에서 사용한 무술이 주짓수라고 밝힌 선수들이 마지막 결승 라운드에 대거 남았다. 또 때마침 일본에서 열린 프라이드(PRIDE) 대회에선 주짓수의 그랜드 마스터 격인 힉슨 그레이시(400전 무패)와 타카다 노부히코의 대결도 주짓수 세상에 알리는 데 일조했다.

평균 수련 10년 이상 되어야 블랙 벨트를 받을 수 있을지 말지로, 승급과 승단에 유달리 인색한 이 스포츠에 여성 파워가 서서히 불고 있다. 한국 여성 주짓수계의 1세대이자 명실상부한 에이스라고 할 수 있는 이희진 관장이 그 중심에 있다.

‘퀸 오브 주짓수’, 주짓수의 여왕으로서 그녀가 운영하는 도장의 이름이기도 하다. 도장 로고에는 체스 말에서 퀸을 상징하는 모양의 심벌마크가 새겨 있다. 이희진 관장이 주짓수계에 뛰어든 것은 2003년이다. 그 무렵 이미 남성 수련생은 충분히 많았지만 여성 수련생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더구나 꾸준히 수련해서 실력을 향상해가는 여성 선수는 더욱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이희진은 격투기 선수 지망자도 아니었고, 극소수에 불과한 일반 수련생이었다. 그런 그녀가 시간이 흘러 현재 경력 10년을 넘어섰고, 드디어 지난 8월 국내 여성 주짓수 선수 가운데 최초로 블랙 벨트를 받았다. 주짓수의 승급 체계를 고려하면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국내 여성 선수 첫 블랙 벨트 주인공

주짓수의 승급 체계는 도제식 시스템에 기반해서 엄정하고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블랙 벨트가 없는 나라에서는 ‘브라운 벨트’나 ‘퍼플 벨트’가 승급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어 상대적으로 승급이 수월하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블랙 벨트가 탄생하면서부터 승급이 더욱 어려워졌다. 도장에 출석을 많이 하고 오래 다닌다고 해서 자동으로 승급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스승에게서 실력을 갖췄다고 인정받아야 다음 단계로 진급할 수 있다. 가르치는 사람의 성

향에 따라 더 인색할 수도 있다. 그래서 실제 경기에서 블루 벨트가 블랙 벨트를 잡는 일이 벌어진다. 이미 윗단계의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 많다는 얘기다.

이희진 관장이 운동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운동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것은 1997년이었다. 당시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몸 상태도 좋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운동을 시작했다. 합기도였다. 합기도를 수련하고 나서 건강이 좋아졌다. 뭔가 이뤄냈다는 성취감도 얻었다. 합기도를 5년간 수련한 뒤 이어서 태권도를 5년간 수련했다. 서울 신림동에 있던 합기도 도장에는 심야 시간에 낯선 무술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의 스승이자 합기도 선수 출신 이수용 사범이 새로운 무술을 주도하고 있었다. 주짓수였다. 그녀도 뒤를 따랐다.

입문하자 마자 미처 생각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당시에는 여성 주짓수 수련자가 없었다. 그래서 언제나 남성 수련자도 아닌, 남성 격투기 선수들과 운동해야 했다. 주짓수를 수련하는 이들 가운데는 처음 생겨난 종합격투기 쪽으로 진출하려는 선수가 많았다. 모두 힘과 기량이 출중했다. 여성으로서 이런 남성 선수를 상대하는 일은 매우 어렵고 힘들었다. 무지막지한 수련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덕분에 지금 그녀가 자랑하는 ‘디테일’을 기를 수 있었다. 국내에 주짓수 기술이 충분히 전수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남성 선수들은 힘으로 밀어붙였다. 그녀는 그 완력을 넘어설 기술을 개발할 수밖에 없었다.

이희진이 주짓수에 뛰어든 지 2년이 지난 2005년, 그녀는 종합격투기에 도전할 기회가 생겼다. 일본 나고야 만국박람회에서 코리안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격투기 한·일전 행사가 마련됐다. 이희진은 이 대회를 통해 처음으로 종합격투기 무대를 경험했다. 그녀의 상대는 엘리트 스포츠인 유도 선수 출신 야마다 치사토. 전 일본 유도선수권대회 5위에 오른 강자였다. 소속팀 관장은 첫 출전하는 이희진에게 부담이 될까봐 일부러 상대방의 전력을 알려주지 않았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천창욱 어려서 프로레슬링을 탐닉하면서 삶이란 피와 땀과 쇼가 뒤섞인 것임을 직감했다. 프로레슬링과 종합격투기 전문 해설자로 활약하면서, 최무배 선수를 한국인 최초로 프라이드(PRIDE)에 출전시키고, 김동현 선수를 UFC에 최초로 출전시키는 등 세컨드 활동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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