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8.06 12:06 수정 : 2013.08.07 20:17

2011년 3월이었네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국세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습니다. 요지는 이 랬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역대 기관장이 감옥에 가장 많이 가는 데가 농협중앙회와 국세청이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하 는 데 대해 많은 의미가 있음을 이해해줄 것으로 안다.” 실 제로 농협중앙회장 직선제가 도입된 1988년 이후 농협을 이끌었던 한호선(1988년 3월 23일~1994년 3월 18일)·원철 희(1994년 3월 24일~1999년 3월 1일)·정대근(1999년 3월 19일~2007년 11월 30일) 등 3명의 전임 회장은 모두 감옥 을 다녀왔습니다.

역대 농협 회장들이 도덕성이나 투명성과 거리가 멀다 거나 정권의 향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우리 사회의 인 식은 뿌리 깊습니다. ‘농협중앙회장=감옥’을 떠올리는 이 전 대통령의 공개 발언도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취 임 1년여 뒤인 2009년 5월 최원병 농협중앙회장과 함께 경 기도 안성의 고삼농협 현장을 방문한 자리였습니다. “역대 농협회장 감옥 가고 그랬는데 이번엔 제대로 해봐. 난 믿고 있다.” 최 회장은 이 전 대통령의 포항 동지상고 5년 후배입니다. 이 전 대통령의 당선 8일 뒤인 2007년 12월 27일 첫 임기를 시작한 최 회장은 다행히 대통령이 바뀐 뒤에도 지 금까지 자리를 잘 지키고 있습니다.

민선 농협중앙회장들은 비리로 줄줄이 감옥에 갔다. 한호선 초대 민선 회장은 ‘농협신문고’를 설치하고(왼쪽), 남해화학의 주식 지분을 인수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나 초대 감옥행 회장이 되고 말았다.한겨레 자료
민선 회장들 임기 끝나면 쇠고랑

흔히 농협중앙회장을 ‘농민 대통령’이라고 부릅니다. 전국 농촌에 실뿌리를 내리고 있는 1100여 개 단위농협 조 직과 여러 대규모 사업체가 농업 정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 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도 우리의 농업이 길을 잃고 헤매는 데는 농협이 제구실을 못한 탓이 큽니다.

지금처럼 신용사업을 합친 거대 농협중앙회 조직의 탄 생은 5·16 국가재건최고위원회의 작품이었습니다. 1961년 8월 옛 농협중앙회와 국책은행인 옛 농업은행을 통합해 새 농협중앙회를 발족시키고, 임지순 육군 대령을 첫 회장으 로 임명했습니다. 그 뒤 16년여 동안 대통령이 임명하고 대 통령의 뜻을 따르는 10명의 농협중앙회장 시대가 이어졌습 니다. 전국의 단위농협 조합장도 임명직이었습니다. ‘관제’ 농협중앙회는 농민의 고리채를 해소하고 비료와 종자, 농 약 등을 저렴하게 공급하는 구실을 했지만, 농협 직원이 농 민 위에 군림하는 반협동조합적인 조직과 문화로 굳어져 갔습니다.

농협중앙회장 직선제는 1987년 6월 항쟁과 대통령 직 선제의 산물이었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8년 취임 과 함께 농협중앙회장 직선제를 단행했습니다. 한호선 초 대 민선 회장은 지금도 배짱 두둑한 인물로 농협 사람들 사 이에 기억되고 있습니다. 강원 양구농협의 서기로 시작한 입지전적 인물로, 협동조합 운동가적 기질이 다분했습니 다. 하급 직원일 때 전대(돈주머니)를 차고 전북 김제평야로 가서 기차로 대량의 쌀을 양구까지 사왔다는 등의 일화를 많이 남겼습니다. 고려대 출신인 한 회장은 대학 후배들을 요직에 기용해, 농협의 고려대 전성시대를 열기도 했습니 다. 한 회장은 연임에 성공했지만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 자마자 자리에서 물러나 곧바로 비리 혐의로 감옥에 갔습 니다.

김영삼의 사람으로 농협중앙회장에 당선된 원철희는 농협중앙회의 엘리트 직원으로 잔뼈가 굵었습니다. 고려 대 출신의 한 회장이 뚝심 있는 협동조합 운동가형이었다

면, 서울대 출신의 원 회장은 똑똑한 최고경영자(CEO)형 이었습니다. 신용사업과 경제사업(농산물 판매 사업)을 망 라한 농협 사업의 전체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유일한 중앙회 장이었다는 일부 평가도 받고 있습니다. 원 회장은 1993년 이마트가 대형마트(창동점)를 여는 것을 보고, 지체 없이 양재하나로클럽(서울 서초구 양재동)을 개점하는 역량을 발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농협중앙회처럼 ‘단위 조합의 농산물만 판매’하는 대규모 소매사업체 운영의 성 공 사례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당시 농림부 도 농협의 소매사업 진출을 반대했지만, 원 회장이 밀어붙 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원 회장 또한 연임에 성공했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회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감옥에 들어가는 것까지, 전임 한 회장과 판박이 길을 걸었 습니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김현대 <한겨레> 경제부 기자 koala5@hani.co.kr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