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04 12:12 수정 : 2013.07.04 14:06

격투기는 친구의 아픔을 헤아릴 수 있게 한다. ‘왕따’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2인1조로 ‘양다리 먼저 만지기’ 놀이를 하고 있는 AACC팀의 아이들.
종합격투기의 근간이 되는 스포츠로는 복싱, 레슬링, 주짓수(브라질 유술), 삼보(러시아 격투기), 무에타이(타이 전통 무술) 등을 들 수 있다. 국내에도 유소년들에게 복싱이나 주짓수, 삼보, 무에타이 등을 가르치는 도장이 많다. 그런데 유독 아마추어 레슬링을 가르치는 도장은 찾아볼 수 없다. 프라이드(PRIDE) 선수였던 최무배 선수가 2003년 레슬링협회의 지원을 받아 만든 ‘팀태클 도장’과 이후 생겨난 ‘KTT’, 그리고 일반인에게 레슬링을 지도하는 서울 구로구청팀 등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인 가운데 수련 인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아마추어 레슬링은 고대 올림픽과 연관이 깊다. 양정모 선수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한국인 최초로 금메달을 딴 종목이기도 하다. 지금은 올림픽에서 존폐의 위기에 처한 상황이지만, 여전히 기초종목으로서 강점을 많이 갖고 있다. 북미 지역에서는 미국과 캐나다를 필두로 학교에서 기초적인 아마추어 레슬링을 가르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전문 교육기관이 있고, 정기적으로 키즈레슬링대회가 열리는 등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일본의 키즈레슬링은 비영리민간단체(NPO)인 전국소년소녀레슬링연맹이 관장하고 있다. 이 단체는 미취학 어린이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아마추어 레슬링을 보급·발전하기 위해 설립됐다. 현재 일본 열도를 7개 지역으로 나눠, 총 236개 소속 클럽을 보유하고 있다. 첫 전국대회는 1972년 6월 11일 도쿄 아오야마 레슬링회관에서 1개 클럽, 3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이듬해 6월에는 5개 클럽, 10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지금은 176개 클럽에서 1186명의 선수가 참가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나는 그중 하나인 골드짐 오오모리의 AACC팀을 찾아가보았다.

AACC는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이자 종합격투기 팀을 이끌고 있는 아베 히로유키가 창설한 팀이다. 현재 7개 지점에서 격투기와 레슬링을 가르치고 있으며, 이 중 두 곳은 아예 키즈레슬링만 운용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두 단계로 나누어 진행하는데, 평균 하루 참가 인원은 40여 명이다. 프로그램의 특성상 기초운동·매트운동·준비운동을 가장 중점적으로 하는데, 어린이들이 놀이처럼 생각하며 즐겁게 운동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놀이 같은 소년 소녀 레슬링

모든 훈련이 그렇듯, 이들도 준비운동으로 시작한다. 뜀틀을 가볍게 뛰어넘고, 평균대를 걷고, 종종걸음으로 사다리 모양의 바닥 장애물을 뛰어넘어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그러고 나면 다시 뜀틀 형태가 바뀌고, 평균대를 뒤로 걸어가고, 조금 전과 달리 바닥 장애물을 옆으로 뛰어가는 식으로 한 번 돌 때마다 훈련의 구성이 바뀐다.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고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 뒤 두 명이 조를 이뤄 서로 밀어내는 놀이를 한다. 밀려난 어린이는 파트너를 바꾸는 사이 잠깐 동안 제자리뛰기, 팔굽혀펴기, 높이뛰기 등의 근력운동을 한다. 자칫 벌칙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을 가벼운 운동으로 바꿈으로써, 아이들이 지더라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다같이 즐겁게 놀이한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이런 구성으로 훈련하며, 금요일에는 운동 후 스파링하는 식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평균 수업시간은 오후 5시 30분~7시 30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가지 프로그램을 쉬지 않고 2시간 동안 반복하는 것은 좀 지루해 보일 수 있다. 어린이들이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미취학 어린이들이 운동에 집중하는 모습은 놀라웠다. 오히려 매트 주변에 모여 앉은 보호자들이 더 지루해하는 것 같다.

아이들의 수준은 놀랍다. 일부 어린이들은 아직 어리고 수련 기간이 길지 않은데도 성인 레슬링 선수 못지않은 움직임과 기본기를 보여주었다. 특히 저학년 어린이들이 움직임이나 자세에서 탄탄한 기본기를 보여줬고, 고학년을 상대로 기술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레슬링이 유소년 체육 활동으로 적합하다는 걸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부모들은 어떻게 아이를 생소한 레슬링 수련장으로 데려오게 되었을까?

도장에서 최연소인 마리아와 부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초등학교 1학년인 이토 마리아(6)의 부모는 원래 마리아에게 체조를 가르치고 싶었다. 그런데 인근의 어린이 체육을 가르치는 곳에서 아마추어 레슬링을 가르치고 있었다. 던지고 메치는 레슬링의 이미지와 달리 매트에서 구르기 등 체조에 필요한 운동을 많이 해서 입문하게 되었다.

아이는 레슬링을 배우면서 성장과 인성 발달에 큰 변화를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신체 저항력이 높아지고 잔병치레를 하지 않았다. 특히 체구가 작은 편인데도 건강하게 학교 생활하며, 성격도 밝아지고 활발해졌다. 현재 삼남매가 모두 다니는데 가능하면 계속 가르치고 싶다. 특히 코치진이나 이곳에서 사귄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점이 가장 맘에 든다. 학교보다 도장 친구가 더 많은 것 같다.” 마리아의 어머니는 이곳의 운동 시스템이 무척 마음에 든다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모로 아야노(8)는 이곳에서 5년간 아마추어 레슬링을 배웠다. 레슬링과 유사한 삼보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며 전국 삼보선수권 38kg 이하급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이미 5년차에 접어들다 보니 고학년들도 아야노와 스파링할 때 신중해진다. 탄탄한 기본기에 상대를 밀어내는 파워 등에서 상당히 뛰어나다. 상대의 포지션을 컨트롤하는 것은 조금 부족하지만 태클 싸움과 포지션 차지에서 좋은 면을 보여주었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천창욱 어려서 프로레슬링을 탐닉하면서 삶이란 피와 땀과 쇼가 뒤섞인 것임을 직감했다. 프로레슬링과 종합격투기 전문 해설자로 활약하면서, 최무배 선수를 한국인 최초로 프라이드(PRIDE)에 출전시키고, 김동현 선수를 UFC에 최초로 출전시키는 등 세컨드 활동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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