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04 11:04 수정 : 2013.07.04 14:12

1. 혼거방의 식물

법무부 로고송이 들리면 고개를 든다. 밥이 식구통으로 들어오면 흡수한다. 교도관이 문 을 따면 공터에서 햇볕을 쬔다. 텔레비전이 꺼지면 수의를 벗고 몸을 누인다. 삶을 주관하는 원 리는 방 바깥에 있었다. 운동과 정지의 원리는 내 안에 없었다. 외부에서 힘이 가해져야 운동 이 가능했다. 나는 식물이었다.

식물의 삶은 같은 하루의 반복이었다. 하루는 그냥 하루였다. 요일과 날짜는 의미를 상실 했다. 그러니까 이 하루의 반복에는 시간이 흐르거나 쌓인다는 감각이 빠져 있었다. 시간은 내 적 감각이 아닌 외부의 사물을 통해 이따금 환기되는 방식으로 존재했다. 교도관이 오후 점검 을 돌지 않으면 일과의 종료를 믿을 수 없었다. 내 옆의 식물은 혼거방에서 시간의 존재양식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시간 참 안 가네.” 그는 날마다의 차이를 인식하기 위해 달력을 그려놓고 글자를 지워나갔다.

교도관의 보이지 않는 손에 들려 햇볕을 쬐고 들어올 때였다. 힐끔 곁눈질을 했다. 세 칸 떨어진 방에는 ‘강도·강간’, 그 옆방에는 ‘마약’이라고 쓰여 있다. 가깝고도 먼 또 다른 식물의 세계였다. ‘경제’방 한 칸이 내가 관여하는 세계의 전부였다. 식물의 삶은 영양을 섭취해서 생명 을 유지하도록 되어 있었다.

2. 교도관이 나를 옮겼다

반복은 쇠창살 사이에 낯선 교도관이 등장하면서 끝났다. 취사장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갇혀 있는 형벌(감금형)에 노동하는 형벌(징역형)이 보태졌다. 본격적인 징역살이의 시작 이었다. 그의 명령으로 나는 짐과 함께 사동 건물 밖의 통로로 옮겨졌다. 통로와 사동의 배치는 E자 모양이다. 통로는 세로줄, 사동은 가로줄의 자리에 있다. 사동은 여섯 채가 있다. 그러니까 E자 두 개를 세로로 붙여놓은 꼴이다.

사동 입구를 제외한 통로의 양쪽에는 쇠창살이 가로세로로 길게 질러 있다. 창살 틈은 물 결 모양의 플라스틱판으로 채워져 시선을 차단한다. 통로를 지나도 사동과 사동 사이의 공간은 안 보인다. 진행 방향을 제외하면 시선은 좌우 2m, 위 5m에서 막힌다. 다른 사동에 있는 취 사장 방에 짐을 부린다. 아무도 없다. 작업장으로 갈 차례다.

나는 일직선 동일한 보폭으로 걷는다. 이 문장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걷는다’의 주체는 ‘나’가 아니다. 교도관이 나를 옮기고 있다. 얼마 있다가 정지. 교도관은 왼쪽 회색 철문에 달린 자물쇠를 연다. 몸을 왼쪽으로 틀자 통로의 폭이 반으로 줄어든다. 열댓 걸음 후 다시 정지. 몸 을 왼쪽으로 틀고 열댓 걸음 후 다시 정지. 원형 철근을 접합해서 만든 초록 문이 있다. 자물쇠 부분을 제외하면 이 문에도 구불구불한 플라스틱판이 끼워져 있다. 교도관은 또 한 번 열쇠를 빼든다. E자 구역을 벗어나려면 이런 식으로 철문과 자물쇠를 마주쳐야 한다. 감옥의 통로는 통하지 않고 막혀 있다. 통로는 또 다른 감금장소로서 거대한 체계의 일부를 구성한다. 자물쇠 너머로 두 개의 눈이 왔다 갔다 하더니 문이 열린다.

3. 취사장의 동물

두 개의 눈이 얼굴을 드러냈다. 그는 재소자인데 한쪽 입꼬리에서 귀까지 칼로 그은 듯한 흉터가 있다. 지금 내 머릿속에서 그의 흉터가 왼쪽 뺨과 오른쪽 뺨을 번갈아 오간다. 그는 나 를 쳐다봤지만 나는 그를 보지 못한다. 겁에 질렸기 때문은 아니다.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따로 있었다.

수레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 오른편 공간에는 천장이 없다. 위가 뻥 뚫려 있다. 그 건너편 에는 철문을 사이에 두고 넓은 운동장이 있다. 운동장에도 천장이 없다. 시야가 트이면서 공간 감이 천 배로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천장, 담장, 창살, 어느 것에도 막히지 않은 온전한 하늘이 펼쳐 있었다. 초록 철문을 넘어 도착한 취사장의 절반은 하늘이 굽어보는 자리에 있었다. 어느 방향에서도 만리 너머 하늘을 볼 수 있다.

그 하늘 아래, 취사장 재소자들이 움직이고 있다. 왼편의 건물 안에서도 분주한 움직임이 있었다. 기이한 사실은 방향과 속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앞뒤, 좌우, 빠름, 느림에 얽매 임이 없는 몸놀림처럼 보였다. 교도관 한 사람의 명령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개별성과 복잡 성이 있었다. 운동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다른 것을 통해 움직이거나, 아니면 스스로 운동 하는 것이다. 내가 이곳에 올 수 있는 것은 교도관이 옮겼기 때문이다. 그동안 만난 재소자들 은 모두 그렇게 하나의 방향과 속도로 움직였다. 하지만 이 낯선 광경은 그 자체로 운동과 정지 의 원리를 갖는 몸이 아니고서는 구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동물이었다.

4. 진화의 과정

노파심에서 말하면 내가 ‘식물’과 ‘동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재소자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생물학 지식과 어긋나는 부분도 있지만, 나는 급격한 생활의 변화를 부각하기 위한 전략으로 식물과 동물이라는 구도를 채택했다. 이제 취사장이란 이름의 생태계를 고찰 해야 한다.

취사장에서 생존하려면 식물 상태에서 벗어나 동물로 진화해야 했다. 식물의 몸에는 없 는, ‘두뇌’와 ‘내장’이라는 계기가 필요했다. 첫째, 취사장에서는 ‘판단’을 해야 한다. 무엇을 할지 의식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했다.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하면서 몸을 움직이고 다음 상황을 예상하면서 목표를 정해야 했다. 반응을 멈추거나 긴장을 풀 수 없었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현민 자존심이 강하고 자존감은 낮은 사람, 거기서 자의식이 생긴다. 자의식이 한낱 자의식에 그치지 않고, 머무른 자리를 통해 내 면성을 갖추기 바란다. 그 내면성에 대한 고찰이 사회에 대한 공부가 될 것이라 믿고 있다. 병역을 거부해 1년6개월간 옥살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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