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04 10:57 수정 : 2013.07.04 14:12

지난 5월 말, 라오스에 머물던 탈북자 9명이 북한에 강제송환되었다. 이를 두고 남한에서 는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이 안이하게 대응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런가 하면 틀림없이 극 형에 처해질 거라고 예상한 9명은 평양에서 북한 당국과 함께 한국을 비난하는 일이 벌어졌 다. 한편 라오스의 한국대사관은 다른 탈북자들까지 송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보 호에 나선 것 같다.

이 모든 상황은 두 정부의 정치적 행동에 따른 것이다. 제3국의 탈북자들은 그때마다 생 존 조건이 흔들리는 위기를 맞는다. 이번 사태를 지켜본 내 주위의 탈북자들은 “한국대사관은 목숨 걸고 몇 년씩 떠도는 이들을 진짜 국민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들을 꽃제비라고 무시했 는지 모르지만, 좋아서 꽃제비가 되었겠는가”, “그 탈북자들 중에 자기 가족이 있으면 똑같이 했겠나” 하고 입을 모은다. 모두 옳은 말이다. 비슷한 고생을 한 끝에 남한에 온 탈북자들은 이 9명을 가족이나 다름없다고 여기는 것 같다.

탈북자 강제 북송과 단식

지난해 3월, 탈북자 강제 북송 사건이 있었을 때 북한 인권 관련 단체들이 모여서 “탈북자 인권을 지키라”며 서울 중국대사관 앞에서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당시 박선영 국회의원(자 유선진당)이 무기한 단식(실제로는 11일)을 해서 그 후 단식 릴레이가 이어졌다. 나도 11일간 릴 레이 단식에 동참했다. 탈북자 문제를 중심에 두고 동북아시아 평화에 기여하자는 생각 때문 이었고, 일본인이 행동에 나서는 걸 보고 이런 문제에 새롭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단식을 시작하자마자 언론이 관심을 보였다. “일본인이 어째서 북한 인민 인권 옹호 운동 에 참가되었습니까?” 내 인터뷰 기사가 잡지와 인터넷 사이트에 올랐다. 직접 보지 못했지만 텔레비전에도 나왔다고 한다. 내가 아는 사람도 시위에 동참하는 등 언론 보도의 효과가 적지 않았다.

단식 5일째 되던 날, 한국 보수파 정치인 한 사람이 내게 “단식은 현장에서 하지 않으면 안된다. 신빙성도 효과도 떨어진다”고 충고했다. 역시 정치인다운 말이었다. “그렇네요” 하면서 받아넘겼다. 하지만 내겐 학교가 있고 일도 있다. 농성 현장에 들어앉아 단식하는 건 불가능했 고, 그렇게 할 뜻도 없었다. 나는 자신의 일을 하면서 문제에 임하는 게 일반 시민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각자 나름대로 진지하게 단식에 참여하면서 탈북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바 라는 것이 자연스럽다.

단식 9일째, 이번에는 진보계 언론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다. “와다씨, ‘일본인까지 북한 인 권 문제에 대해 행동에 나서고 있는데 어째서 민주당은 이를 무시하는가’ 하는 보수 쪽의 주장 에 힘을 실어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양쪽 얘기를 탈북자들에게 전하면 이런 반응이 나온다. “정치가들은 자기 활동에 때마침 탈북자 인권을 이용하는 자들이다.” 탈북자들은 일반 시민에 비해 정치인들의 행동에서 자기 중심적인 의도를 더 민감하게 읽어내는지도 모른다.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인권 문제로 현장에서 활동하니까 여러 가지 느끼는 게 많죠?” 내 답은 언제나 같다. “저는 인권운동하고 있지 않거든요. 인권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기 때 문에 별로 쓰지도 않아요.” 내 생각에 인권이라는 말은 한국이나 일본 등 동아시아 사람들의 정서에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일본 통계수리연구소(www.ism.ac.jp)의 정기 조사에 이런 것이 있다. 20살 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하는 무작위 조사인데, ‘자신의 생명·건강, 자식, 가족, 돈·재산, 정신·애정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을 선택하라’고 한다. 1980년 이후 계속해서 1위는 가족이고, 이어서 자신의 생 명-정신-지식-재산으로 순서에도 변동이 없다. 가족을 선택하는 비중은 계속 높아지고 있 고, 1990년 이후로는 40%를 넘어섰다. 다른 네가지는 증감이 없거나 감소 경향을 보인다. 2위 인 자신의 생명은 20% 정도다. 이런 경향이 한국에서도 똑같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 족을 중심에 두는 태도는 한국 사람이 일본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 1위 비중도 그만큼 더 높을 것이다. 내가 아는 한국인들도 이런 생각에 동의한다.

지난 5월 하순, 한 북한 인권 관련 세미나에서 ‘인권대사’라고 불리는 한국 박사가 “인간에 게는 인권이 가장 중요하고, 개인과 국가와의 관계는 계약관계이다. 따라서 개인의 인권을 국 가가 침해하는 경우 그것을 수정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자신만만하게 하는 걸 보았다. 서 양적 관점에서는 옳은 것 같지만, 내게는 잘 다가오지 않았다.

앞의 일본 데이터가 진실이고 한국에서도 들어맞는다고 하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권’이라는 인권대사의 인식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인권과 가족, 둘 다 사회에서 긍정적 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양쪽을 비교하면서 토론하는 경우가 거의 없을 뿐이지, 우리가 먼저 지켜야 하는 것은 개인 인권이 아니라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개인 인권보다 중요한 건 가족

일반적으로 인권이란 생존권·발언권·참정권 등 개인의 권리로 인식된다. 그러나 가족은 자신을 포함해서 2명 이상의 개념이며 자기보다 오히려 상대를 의식하는 것이다. 만약 ‘권리’라 는 말을 사용하고 싶으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할 권리와 사랑받을 권리, 즉 ‘애정권’ 이라고 하는 게 좋을지 모른다.

인간의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그것은 생명에 관한 태도이기도 하 지만, 자신의 생명보다 사랑하는 상대의 생명에 더 많은 가치를 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부모

가 자식의 생명을 소중히 하는 것은 자식이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내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이 다. 사형당할 처지에 있는 아들을 앞에 두고 아버지가 ‘제가 대신하겠습니다’라고 호소하는 것 을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 건 누구나 그 아버지의 마음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일본에서 엄마와 아이가 강에 빠져 숨진 사건이 있었다. 어머니의 주검은 양손을 머리 위로 올린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자신은 질식사하면서도 아이를 물 밖으로 내보내려고 한 것이다. 이 모습을 본 많은 사람들이 울었다. 이처럼 가족 사랑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 는 사례는 한이 없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관계가 가족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 다. 사람은 성인이 되면 가족을 꾸려 자신이 그동안 사랑받은 것처럼 가족을 사랑하려고 한다. 부모와 형제에게서 받은 사랑이 배우자와 아이에게 주는 사랑으로 성장한다. 그 사랑은 자식 에게 계승된다. 그런 관계를 반복하고 연결하는 것이 혈통이다. 한국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혈 통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그런 애정의 연결을 더욱 강하게 느끼기 때문 아닌가 싶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와다 신스케 일본 교토대학에서 삼림학을 전공하고 동국대 북한학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학자가 되려는 목적이 아니라 인맥을 만 들기 위해 학생 신분으로 한국에 왔다. 미식축구 전 일본 우승 두 번, 2011년 미식축구 한국대표팀 코치를 지냈다. 일본 사람으로서 탈 북자를 통한 남북통일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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