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욱 원장은 “지금 힐링 열풍은 신자유주의에 살기 적당한 인간으로 힐링해줄 뿐”이라고 비판한다. 사진은 닛부타숲 정신분석클리닉 상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이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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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2: 2013년 12월 종방- 성취 반, 아쉬움 반 회를 거듭할수록 청취자는 늘어났다. 지금은 회당 1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다운받거나 청취했다. 단순 계산으로도 48만여 명이 공공상담소의 상담을 받은 것이다. 겉으로 보면 그들의 캐치프레이즈인 ‘고통 속으로’는 잘 이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팟캐스트 성격상 정신분석적인 걸 다 담을 수 없었습니다. 한계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공공상담소의 이야기는 ‘보편적’인 지점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사람마다 삶이 다르기 때문에 본질에 도달하는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팟캐스트 성격상 불가능했다. “본질과 개인의 삶을 연결하는 고리를 보여주는 것이 너무 어렵더라고요.” 방송을 듣고 많은 청취자가 이메일을 보냈다. A4 용지 10장 분량의 사연을 빼곡히 적어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일일이 답장하지 못했다. 휴식 시간을 빼서 개별적으로 이메일 상담까지 하는 것은 자신에게 가혹한 일이었으리라. “그래서 이들에게 신분을 노출하지 않는 범위에서 방송해도 되느냐고 물었어요.” 상담의 공공재화에 부합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10명 중 8명은 거부하더군요.” 나머지 2명은 허락해서 방송할까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 상담을 중계하는 것은 항상 신분 노출의 위험이 있다. “결국 그 방법도 포기했습니다.” 정신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꿈 분석’도 마찬가지였다. 영화에서 내담자는 소파에 누워 있고 상담자는 의자에 앉아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서로 눈을 마주 보지 않고 꿈을 분석하는데, 이를 ‘카우치 분석’이라고 한다. 닛부타숲 정신분석클리닉에도 유사한 방이 2개 있다. 클리닉에서 자주 하는 분석 방법이지만 팟캐스트에서는 역시 ‘신분 노출’이라는 이유로 불가능했다. 이 원장은 TV 출연을 자제하는 편이다. 특히 녹화방송은 출연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의 방송 데뷔작인 MBC TV <생방송, 오늘 아침>은 생방송이기 때문에 대본에 없는 말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녹화방송에는 좋지 않은 추억이 있다. “녹화가 편집되다 보니 내가 바보 같은 말을 하고 있더군요. 예전부터 ‘전문가들이 왜 비전문가도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내가 그렇게 하고 있더라고요, 하하.” 최근에는 EBS TV <파더쇼크> <학교를 말한다>, KBS TV <사랑과 전쟁>에서 출연 제의가 왔지만 거절했다. 조언만 해줬다. “팟캐스트와 방송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공공상담소 청취자 중에는 상담 전공자들이 많다. 강연이나 대학원 수업 때 ‘방송 잘 들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한다. 공공상담소의 인기를 실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은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됐다”는 후배들의 말이다. 그럴 때면 공공상담소가 전혀 꽝은 아니라고 자평한다. 세션4: 2014년 혹은 먼 미래, 혁명을 꿈꾸다 정신 분석은 때가 되면 낡은 집을 개보수하듯, 정신 구조를 끊임없이 재배열·재배치하는 과정이다. 한마디로 확정된 답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빨리 해결하고 인생이 ‘룰루랄라’해지기만 바란다. 정신분석학을 잘못 이해하기 때문이다. 힐링·치유 열풍을 조장하는 유사(類似) 심리학 서적이나 언론 탓이 크다. “요즘 힐링이나 치유 열풍은 링거 한 대 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 원장은 유사 심리학을 ‘야전병원’에 비유했다. 전쟁 중 야전병원에서는 근본적인 치료를 할 수 없다. 다친 병사가 오면 최소한의 의술로 상처를 봉합할 뿐이다. 그리고 병사들을 다시 전장으로 내보낸다. 그는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일명 ‘치유강사’, ‘힐링강사’들을 비난한다. “지금 세상은 지치면 힐링하고, 또 지치면 힐링하는 것의 연속입니다. 이렇게 소모적으로 살다 죽는 거죠. 지금 유명 인사들이 그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세상을 갑으로 살아온 분들이니 을의 마음을 모르는 거예요. 이 체제, 즉 신자유주의에 살기 적당한 인간으로 힐링해줄 뿐입니다.” 힐링·치유 열풍의 문제점은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데 있다. ‘네가 문제다’, ‘너를 돌이켜봐라’, ‘아픈 건 당연하다’처럼 고통을 개인화한다. 그리고 개인의 고통을 시스템의 문제로 승화하려는 노력을 차단해버린다. 그는 이런 현상에 대해 “유사 심리학뿐만 아니라 정통 심리학의 체제순응주의와 상업성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유럽에 비해 훨씬 상업적인 미국의 심리학 전통이 한국 심리학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자라면 시대적 소명이 있어야 합니다. 프로이트는 단순 정신분석학자가 아니라 혁명가였어요. 성적 억압을 통해 인간을 억압하는 시대의 모습을 까발렸습니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 역시 68혁명 때 앞장서서 플래카드를 들고 나갔어요. 시대의 억압을 밝혀내고 끊임없이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거야?’, ‘바뀌어야 되는 거 아냐?’, ‘혼자 안 되면 연대해야 하나?’ 하는 자연스러운 성찰 과정이 생기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게 힐링과 정신 분석의 차이죠.” 공공상담소의 지향점도 여기에 있다. “개인·사람·사회·체제의 고통을 단순한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하는데, 그것으론 안 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겁니다. 유사 상담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방식도 적당히 알고 치유하고 괜찮다고 넘어가는 방식은 아니라는 거죠.” 그는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항상 구조적 문제에 질문을 던졌다. ‘관계란 개인적 경험 속에서 발생한 결핍과 왜곡일 수 있지만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지는 부분도 있다’ ‘분노가 개인적인가, 공공적인가?’ 수위를 조절했음에도 청취자 중에는 ‘정치투쟁하려고 만들었느냐’며 타박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승욱 원장은 라캉의 ‘과잉이 곧 결핍이다’는 말처럼 ‘힐링 과잉 시대에 진정한 힐링의 결핍’에 주목한다. 그리고 오늘도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다. 글 김원일 기자 nirvana@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