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03 17:15 수정 : 2013.07.05 18:25

이승욱 원장은 “지금 힐링 열풍은 신자유주의에 살기 적당한 인간으로 힐링해줄 뿐”이라고 비판한다. 사진은 닛부타숲 정신분석클리닉 상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이 원장.
옆집 아저씨 같은 말투는 편안하고 경상도 사투리는 구수하다. 편집없이 1시간 내내 때론 심각하고, 때론 웃고 떠든다. 교육·관계·실존·발달심리 등 상아탑에서나 들어 봄직한 골치 아픈 주제를 대본도 없이 술술 잘도 풀어간다. 지난해 말 ‘시즌1’을 마친 상담과 심리학 전문 팟캐스트 ‘이승욱의 공공상담소’ 이야기다.

공공상담소는 뒤늦게 입소문을 타고 다운 수가 급증했다. 6월 현재 팟캐스트 순위를 집계하는 한 사이트에서 200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시사·외국어 분야가 상위권을 장악하는 팟캐스트계에서 6개월 전 끝난 방송 치고 꽤 선 전이다. 공공상담소의 위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봄에 하려던 ‘시즌2’는 왜 늦어지는 것일까? 공공상담소의 주인장 이승욱 닛부타숲 정신분석클리닉 원장을 만나 상담의 세계로 동행해봤다.

 

세션3: 2013년 7월 시즌2- 늦어서 미안하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정신분석클리닉은 조촐한 한옥에 있다. 개보수한 상태이고, 흙 냄새 나는 마당이 있는 집이다. 내담자들이 편안하게 상담받을 수 있게 하려는 주인장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한옥은 사무실로 들어서자 원룸으로 변했다. 가지런한 싱크대와 단출한 응접세트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사무실이라고 하기에는 허전하고, 상담실이라고 하기에는 호젓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은 상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내 뱉지 않았다. 내가 편안함을 느꼈으니 내담자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데는 제격일 것이라고 넘겨짚었다. 대화가 무르익자 조심스레 시즌2가 늦어지는 이유를 물었다.

“박근혜 정부 때문이에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정치를 못하잖아요. 개인적으로 너무 힘이 빠졌어요.”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시즌1의 인기로 부담을 느끼고 주제 선정 때문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으리라는 지레짐작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지난해 대선 때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자 주위에서는 ‘이민이라도 가야 하느냐’며 푸념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도 그중 한 명이었다.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뉴질랜드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했다” 고 한다. 참고로 그는 10년 넘게 뉴질랜드에서 학교를 다녔고, 가족도 현재 그곳에 살고 있다.

“이제는 좀 벗어났어요. 7월 말을 목표로 시즌2를 준비 중 입니다.”

이 원장은 현재 시즌2의 주제를 세 가지로 압축한 상태다. 프로이트 정신분석 전집 강독, 심리학 서적 리뷰, 그리고 소수자들 상담이다. 프로이트 전집 강독은 48회의 대장정으로, 대학원생 등 비전문가 패널이 질문하고 이 원장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한다. 심리학 서적 리뷰는 소자본 출판사가 발행해 인기를 얻지 못하고 초야에 묻힌 책이 대상이다. 그는 이탈리아의 정신분석가 루이지 조야가 쓴 <아버지란 무엇인가>가 그중 하나라고 귀띔했다. 국내 저자라면 직접 초청해 얘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김난도, 법륜, 혜민이 쓴 ‘마시멜로’ 같은 서적은 대상이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마 지막 주제인 소수자 상담은 희망사항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망명자, 시민단체, 미혼모, 가출팸 청소년 등을 모셔서 상담하는 방식이 유력한 포맷으로 올랐어요. 하지만 신변 노출 등 개인 정보문제와 제작 비용 등 경제적 문제가 걸리더군요.”

“기부받는 방식은 생각해보셨나요?”

“후원하겠다는 출판사가 있는데, 책 소개 해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난처해질 거라는 패널들의 의견을 듣고 거절했습니다.”

“소수자 상담은 상담의 공공재화에도 딱 맞는데요.”

“그래서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고민을 붙들고 있습니다.”

 

세션1: 2012년 4월 시즌1- 상담의 공공재화

이 원장이 공공상담소 시즌1을 계획한 것은 2011년이다.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이 사회면 머리기사를 장식하던 때다. 대구의 한 청소년 자살을 계기로 ‘베르테르 현상’ 마냥 청소년들은 몸을 던졌다. 그는 교육과 청소년 문제를 화두로 잡았다.

“청소년을 학교폭력에서 구해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었어요.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을 골방에서 끌어내 좀 더 나눌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한 거죠.”

그리고 상담의 공공재화를 위해 팟캐스트 방식을 빌렸다.

“개인 상담료가 시간당 10만 원이 넘어요. 길게는 2년에서 짧게는 몇 개월씩 하는데 중산층 이상은 돼야 상담받을 수 있죠. 몇 개 문장만으로 성찰되는 사람도 있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거창하게 말하면 공유하자는 것이고, 사적인 방식을 공적으로 돌리자는 것이었습니다.”

시즌1은 48회 동안 청소년, 관계의 고통, 존재와 의미, 치유, 대중을 위한 발달심리학 등을 소화했다. 시사 영역에서 학문 영역까지 두루 섭렵하는 과정이었다. 초창기에는 일반 패널을 섭외해 그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상담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주제를 객관화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시행착오였다. 그 뒤 패널의 중요성을 직시하고 고정했다. 상담서 <대한민국 부모>를 함께 펴낸 신희경 한정신건강연구소 소장과 프리랜서 김은산씨, 집필노동자 라이더(필명)가 그들이다.

“주제의 문제가 아니라 패널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인식했어요. 이들로 고정하니까 숙성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대본도 없이 주제만 던져주고 편안하게 녹음했어요.”

그가 방송을 시작하며 가장 경계한 것은 계몽적 방송이었다. 그는 “상담은 해결책을 주는 것이 아니다”라며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그것을 견딜 수 있는 내성을 기르게 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상담자를 곧잘 ‘셀파’에 비유했다. 산(문제)을 오를 때 등반가(내담자)와 셀파(상담자)의 역할은 다르다. 셀파는 등반가의 짐을 들어주고 길에 대해 조언할 뿐이다. 결국 산을 오르는 것은 등반가의 몫이다.

“우리는 각각의 레퍼런스(검증된 지식)일 뿐이에요. 그런 포지션에서 이야기를 해야지,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으려고 주의했습니다.”


세션2: 2013년 12월 종방- 성취 반, 아쉬움 반

회를 거듭할수록 청취자는 늘어났다. 지금은 회당 1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다운받거나 청취했다. 단순 계산으로도 48만여 명이 공공상담소의 상담을 받은 것이다. 겉으로 보면 그들의 캐치프레이즈인 ‘고통 속으로’는 잘 이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팟캐스트 성격상 정신분석적인 걸 다 담을 수 없었습니다. 한계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공공상담소의 이야기는 ‘보편적’인 지점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사람마다 삶이 다르기 때문에 본질에 도달하는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팟캐스트 성격상 불가능했다. “본질과 개인의 삶을 연결하는 고리를 보여주는 것이 너무 어렵더라고요.”

방송을 듣고 많은 청취자가 이메일을 보냈다. A4 용지 10장 분량의 사연을 빼곡히 적어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일일이 답장하지 못했다. 휴식 시간을 빼서 개별적으로 이메일 상담까지 하는 것은 자신에게 가혹한 일이었으리라. “그래서 이들에게 신분을 노출하지 않는 범위에서 방송해도 되느냐고 물었어요.” 상담의 공공재화에 부합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10명 중 8명은 거부하더군요.” 나머지 2명은 허락해서 방송할까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 상담을 중계하는 것은 항상 신분 노출의 위험이 있다. “결국 그 방법도 포기했습니다.”

정신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꿈 분석’도 마찬가지였다. 영화에서 내담자는 소파에 누워 있고 상담자는 의자에 앉아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서로 눈을 마주 보지 않고 꿈을 분석하는데, 이를 ‘카우치 분석’이라고 한다. 닛부타숲 정신분석클리닉에도 유사한 방이 2개 있다. 클리닉에서 자주 하는 분석 방법이지만 팟캐스트에서는 역시 ‘신분 노출’이라는 이유로 불가능했다.

이 원장은 TV 출연을 자제하는 편이다. 특히 녹화방송은 출연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의 방송 데뷔작인 MBC TV <생방송, 오늘 아침>은 생방송이기 때문에 대본에 없는 말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녹화방송에는 좋지 않은 추억이 있다.

“녹화가 편집되다 보니 내가 바보 같은 말을 하고 있더군요. 예전부터 ‘전문가들이 왜 비전문가도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내가 그렇게 하고 있더라고요, 하하.”

최근에는 EBS TV <파더쇼크> <학교를 말한다>, KBS TV <사랑과 전쟁>에서 출연 제의가 왔지만 거절했다. 조언만 해줬다.

“팟캐스트와 방송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공공상담소 청취자 중에는 상담 전공자들이 많다. 강연이나 대학원 수업 때 ‘방송 잘 들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한다. 공공상담소의 인기를 실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은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됐다”는 후배들의 말이다. 그럴 때면 공공상담소가 전혀 꽝은 아니라고 자평한다.

 

세션4: 2014년 혹은 먼 미래, 혁명을 꿈꾸다

정신 분석은 때가 되면 낡은 집을 개보수하듯, 정신 구조를 끊임없이 재배열·재배치하는 과정이다. 한마디로 확정된 답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빨리 해결하고 인생이 ‘룰루랄라’해지기만 바란다. 정신분석학을 잘못 이해하기 때문이다. 힐링·치유 열풍을 조장하는 유사(類似) 심리학 서적이나 언론 탓이 크다.

“요즘 힐링이나 치유 열풍은 링거 한 대 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 원장은 유사 심리학을 ‘야전병원’에 비유했다. 전쟁 중 야전병원에서는 근본적인 치료를 할 수 없다. 다친 병사가 오면 최소한의 의술로 상처를 봉합할 뿐이다. 그리고 병사들을 다시 전장으로 내보낸다. 그는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일명 ‘치유강사’, ‘힐링강사’들을 비난한다.

“지금 세상은 지치면 힐링하고, 또 지치면 힐링하는 것의 연속입니다. 이렇게 소모적으로 살다 죽는 거죠. 지금 유명 인사들이 그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세상을 갑으로 살아온 분들이니 을의 마음을 모르는 거예요. 이 체제, 즉 신자유주의에 살기 적당한 인간으로 힐링해줄 뿐입니다.”

힐링·치유 열풍의 문제점은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데 있다. ‘네가 문제다’, ‘너를 돌이켜봐라’, ‘아픈 건 당연하다’처럼 고통을 개인화한다. 그리고 개인의 고통을 시스템의 문제로 승화하려는 노력을 차단해버린다. 그는 이런 현상에 대해 “유사 심리학뿐만 아니라 정통 심리학의 체제순응주의와 상업성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유럽에 비해 훨씬 상업적인 미국의 심리학 전통이 한국 심리학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자라면 시대적 소명이 있어야 합니다. 프로이트는 단순 정신분석학자가 아니라 혁명가였어요. 성적 억압을 통해 인간을 억압하는 시대의 모습을 까발렸습니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 역시 68혁명 때 앞장서서 플래카드를 들고 나갔어요. 시대의 억압을 밝혀내고 끊임없이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거야?’, ‘바뀌어야 되는 거 아냐?’, ‘혼자 안 되면 연대해야 하나?’ 하는 자연스러운 성찰 과정이 생기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게 힐링과 정신 분석의 차이죠.”

공공상담소의 지향점도 여기에 있다.

“개인·사람·사회·체제의 고통을 단순한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하는데, 그것으론 안 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겁니다. 유사 상담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방식도 적당히 알고 치유하고 괜찮다고 넘어가는 방식은 아니라는 거죠.”

그는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항상 구조적 문제에 질문을 던졌다. ‘관계란 개인적 경험 속에서 발생한 결핍과 왜곡일 수 있지만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지는 부분도 있다’ ‘분노가 개인적인가, 공공적인가?’ 수위를 조절했음에도 청취자 중에는 ‘정치투쟁하려고 만들었느냐’며 타박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승욱 원장은 라캉의 ‘과잉이 곧 결핍이다’는 말처럼 ‘힐링 과잉 시대에 진정한 힐링의 결핍’에 주목한다. 그리고 오늘도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다.

글 김원일 기자 nirvana@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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