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03 15:25 수정 : 2013.07.05 10:30

지난 2월 초, <뉴스타파>1 ‘시즌3’ 사전 기획회의에서 김용진 대표는 국정원 선거 개입 문제를 다시 정리해보자 고 제안했다. 사건 발생 2개월이 지났고, 이미 경찰 수사 결 과마저 발표된 때였다. 난색한 기자들이 새로 발굴한 아이 템을 꺼내 보이며 누가 더 바쁜지 겨뤘다. 그 게임에서 패배 한 건 뒤늦게 <뉴스타파>에 합류한 최기훈 사회팀장이었 다. 준비한 기존 아이템은 ‘킬’2 당했고, 그는 국정원 건 취재 로 ‘좌천’되고 말았다.

 

최기훈 ‘할 게 없는데 뭘 하라는 거냐’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김용진 대표는 “해야 돼”라고만 말했고.

김용진 “해야 돼”라고 안 했어요. “찾아내”라고 했습니다.

 

지난 3월 초, 최기훈은 대선 당시 ‘오늘의 유머’ 사이트 에 국정원 직원이 남긴 게시물을 찬찬히 읽어나갔다. 그리 고 수백여 개 게시물을 구절 단위로 분할해 검색 사이트에 하나씩 집어넣어보았다. 작업은 오전부터 늦은 오후까지 계속됐다. 걸리는 게 전혀 없었다.

 

최기훈 마지막 즈음 ‘48번째 해외 순방’이란 구절에서 트위터 검색 결과가 떴어요. ‘taesan4’라는 트위터리안이었는데, 시기를 보니 ‘오늘의 유머’ 게시물과 딱 하루 차이가 나는 겁 니다. 검색에 잡힌 계정의 트윗들을 쭉 읽어봤어요. 전부 북한과 김정은을 비난하는 내용이더라고요. 리트윗하거나 팔로잉한 계정을 들어가봐도 마찬가지였죠.

 

지난 3월 15일, <뉴스타파>는 이 내용을 보도했다. 국 정원 연계 계정이 아닐 수도 있었다. 검증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계정 사용자가 항의해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반응 은 없었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보도된 계정 대부분이 조용 히 삭제된 것이다. 3월 18일, 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국정원 장 지시 사항이 담긴 내부 문건을 공개했다. 지시 사항 중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언급됐다. 최기훈은 IAEA 사무총장을 언급한 트위터 계정을 검색해봤다.

 

최기훈 taesan4란 이름이 또 튀어나왔습니다. 확신이 들었 죠. 의심 가는 계정의 목록을 만들기로 했어요. 팀원 2명이 더 투입됐습니다. 사용한 표현, 리트윗 횟수, 팔로잉 관계 를 살펴봤는데 공통적으로 지난해 12월 11일까지만 활동했 더군요. 한 달 가까운 시간을 들였습니다. 300개, 400개, 500개, 마지막으로 660개가량 계정을 찾아냈죠. 우리가 쓴 건 ‘매직아이 기법’입니다. 뚫어지게 들여다보고 있으면 결국 찾게 된다는 원리를 이용한 기술이죠.

 

<뉴스타파> 시즌3에 새로 합류한 정보전문가 권혜진 리서치 팀장에겐 매직아이 기법이 꼭 신통해 보이지만은 않 은 모양이다. 권혜진은 ‘관계망 분석’이라는 좀더 진보한 기 법을 써보겠다며 최기훈의 매직아이 데이터를 인수해 컴퓨 터에 털어넣었다. 이제 작업은 눈동자 대신 컴퓨터를 10대 넘게 돌리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권혜진 이미 삭제된 데이터가 많아 단순한 검색만으로는 어려 웠어요. 프로그램을 짜서 해외 데이터베이스(DB) 사이트에 남아 있는 기록 28만여 건을 크롤링했죠. 국내의 트윗 전수 DB를 가진 업체들을 접촉해봤지만 국정원과 관련해 엮이 기 싫다는 태도를 보여 해외 DB 사이트를 이용한 겁니다.

리서치팀은 660여 개 계정의 관계망 지도를 그렸다. 눈으로는 파악 하기 어려운 패턴이 드러났다. 트윗 계정은 10개 정도의 독립된 그 룹 단위로 움직이고 있었다. 대장 역할을 맡은 핵심 전파자가 바로 ‘nudlenudle’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국정원 개입이 ‘추정’된다는 표 현을 쓸 수밖에 없었다. 조사는 벽에 부딪힌 것처럼 보였다. 그때 개 인적인 ‘수사’를 벌이던 네티즌이 아이디어를 냈다. 트윗 계정과 동일 한 이름의 포털 계정이 존재하지 않을까.

최기훈 그 생각을 왜 못했을까? 우리 모두 감탄했죠. 결국 100개 이상의 포털 아이디를 발견했어요. 그중 20여 개 계 정에서 사람 이름을 찾았고, nudlenudle을 포함해서. 실명 만으로 가입되는 싸이월드에서 생년월일 색인으로 연령대 를 좁혀 nudlenudle의 이름을 다시 검색했습니다. 1970년 2월생인 사람은 한 명뿐이었죠. 모 정보원에게 이름과 생년 월일로 신원 확인을 부탁했더니 동일인이 국정원에 소속되 어 있다고 하더군요.

 

지난 5월 17일, <뉴스타파>는 이 내용을 방송했다. 다 음날 아침 최기훈은 전화를 받았다. 국정원 대변인이었다. 남자는 점잖게 말했다.

“보도는 잘 봤습니다. 부탁 말씀이 있어요. 저번 방송에 서 저와 전화 통화한 내용을 내보냈던데 제 목소리를 그대로 내보내는 건 안 돼요. 앞으로 신경 좀 써주시기 바랍니다.”

그게 끝이었다. 대변인은 보도 사실에 대해 아무런 부 인도 하지 못했다. 한 편의 추리 스릴러를 연상시키는 두 달 간의 집요한 취재가 마침내 막을 내렸다. 2013년이 아직 절 반 남았지만 이 사건 보도는 ‘올해의 뉴스’로 기억될 가능성 이 높다. 탐사보도 전문 매체를 표방한 <뉴스타파>의 진가 가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기성 저널리즘의 탐사보도에는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는가. <뉴스타 파>와의 차이는 무엇인가.

권혜진 정파성도 그렇지만, 크게 보면 결국 저널리즘이 견뎌 낼 수 없는 미디어 비즈니스 산업 구조가 문제라고 봐요.

김용진 <뉴스타파>가 비영리·비당파 독립언론을 표방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산업적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매체를 만 들자는 게 우리 목표입니다. 기존 언론이 골대를 먼저 정해 놓고 공을 몰아간다면, 우리는 골대 같은 건 상관 안 합니 다. 공을 찾는 데만 신경 쓰죠. 그래서 재정적 독립을 위해 광고를 배제하고 시민 후원으로만 운영하고 있어요.

결국 기성 매체가 권력이나 상업성에 침윤되었다고 보는 셈인데, 기 성 매체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구체적으로 평가해보면 어떤가.

김용진 이번 조세회피처와 국정원 건을 두고 보지요. 기성 언 론의 탐사보도팀은 조세회피처 건은 열심히 인용하면서 국 정원 건은 외면하고 있어요. 메인 뉴스에서조차 거의 다루 지 않습니다. 우리는 국정원 건에 큰 의미를 두고 훨씬 비중 있게 보도했는데 인용 빈도가 확연히 다릅니다. 용기가 없 거나 다루기 싫은 거죠. 탐사보도팀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 는 겁니다. 이름만 탐사보도인 셈이죠.

 

예를 들어 SBS TV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탐사보도 프로그램은 형식상의 완성도로 호평받기도 하지만, 접근 각도부터 상당히 탈정치되어 있는 것 같다. 이름 그대로 알 고 싶은 것만 시청자에게 보여주는 느낌이랄까.

김용진 특정 프로그램에 대해 거론하진 않겠습니다. 다만, 기 성 매체에서 탐사보도 형식을 취하는 건 일종의 ‘분식’(粉飾)이라 부를 수 있어요. 탐사보도가 저널리즘의 가장 큰 무기이기 때문에, 그걸 하면 저널리즘의 역할이 잘 수행되 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그렇다면 주권을 가진 국민이 알아 야 할 사실을 탐사보도가 들추고 있는가? 아니거든요. 과 정이 흥미로울 뿐이에요. 결국 상업적 이윤 동기를 비롯해 서 여러 압력이 작용하는 거죠.

 

한때 KBS 탐사보도팀에 몸담은 최경영 경제팀장이 말 을 이어받았다.

 

최경영 아까 언급한 국정원과 조세회피처 건 경우만 봐도 그 렇습니다. 저 역시 김용진 대표와 똑같이 조세회피처 건보 다 국정원 건이 훨씬 중요하다고 평가해요. 왜 기성 언론은 국정원 건 취재 사실을 받아 보도하는 걸 피하고 조세회피 처 문제에는 열광할까요? 비겁함이죠. 정권에서 의제 설정 을 먼저 해주지 않았습니까? 지하경제의 양성화인지 활성 화인지 정책 드라이브를 미리 내걸었죠. 부자들의 편법적 세금 회피는 거기에 깊은 연관성이 있거든요. 그래서 기성 언론이 정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도 묻어갈 수 있어요. 국정원 건은 여전히 ‘임금님의 콧털’이니 조심하는 거죠. 하 지만 이제 정권이, 삼성이, 한 언론사가 의제를 설정하는 시 대가 아니에요. 그래서 <뉴스타파> 같은 매체를 벌써 대중 이 알아준다는 데 의미가 있어요. 의제 설정이 통하는 건 결국 신뢰를 받는다는 뜻이거든요.

 

결은 달라도 ‘위키리크스’ 같은 비영리 기관 역시 기능적으로는 <뉴스 타파>와 맞닿은 부분이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위키리크스가 공개 한 문건이 거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곧 지나갈 음모 취급을 받았다.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김용진 대표가 직접 저서 <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을 집필하기도 했고. 그런 현상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김용진 문건에 ‘무기를 팔아먹으려면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는 내용까지 있는데 <한겨레>조차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죠. 언론의 무관심과 자료의 난해함도 있지만 결국 정파성이 드러났다고 봐야죠. 위키리크스 문건 가운데 조·중·동과 공중파 방송은 북한 관련 내용을, <한겨레>와 <경향신문> 은 쇠고기 협상 등 MB 정권 관련 현안을 집중적으로 보도 했습니다. 자료를 대하는 태도부터 극명하게 갈린 거죠.

 

위키리크스가 국내에서는 인용 출처로서 권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는 느낌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 저널리즘 윤리가 특별히 경직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최경영 심리적 저항이 있었을 거라 봅니다. 워낙 레드 콤플렉스 가 심한 나라 아닙니까. 미국에 불리하고, 한-미 관계에 부 정적 영향을 끼치는 자료에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니까요.

김용진 미국은 믿으면서, 미국이 직접 작성한 외교 문건은 믿 지 않는 난센스가 벌어진 거지요.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손아람 힙합 그룹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의 멤버로 활동했다. 그룹 이름과 같은 제목의 소설을 써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용산참사를 소재로, 정통 법 정소설인 <소수의견>을 썼으며,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을 찾아다니 며 인터뷰해 <너는 나다-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하다>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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