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6.11 11:21 수정 : 2013.06.12 10:47

1. 노역과 직입

노인은 고함을 지르면서 교도관에게 달려들었다. 라이터 때문이다. 감옥에 입소한 사람들은 파란색 수의로 옷을 갈아입었다. 감옥 밖의 물건은 모두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는다. 그의 소지품 중에 라이터가 있었다. 라이터는 화재의 위험 때문에 반입은 물론 교도소에서 보관하지 않는 물품이다. 교도관은 규정대로 폐기하려 했다. 1940년대생의 노인은 라이터 한 개를 지키기 위해 악다구니를 퍼붓는다.

그가 구속된 사유를 들었을 때,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는 벌금 9만 원을 내지 못해서 감옥에 끌려왔다. 내 주머니에는 10만 원 남짓 현금이 있다. 한 출판사에서 영치금으로 사용하라고 지원해준 돈이다. 그의 감옥행은 내가 가진 돈과 교환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내 돈은 한 사람의 몰락을 막을 수 있는 가치를 지닌 것처럼 보였다. 제 주제도 모르고 주머니에 있는 지폐를 만지작거리면서 나설 타이밍을 고민했다. 그러나 고민의 시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나머지 여덟 사람도 그와 다름없었다. 벌금형이 많은데 100만 원은 넘지 않았다. 가족이 한 명도 없거나, 양말을 신지 않거나, 계속 이상한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이름은 ‘노역’(노역수)이고 나만 따로 ‘직입’(직입소)이라고 불렸다. 노역에게 감옥은 익숙한 곳이었다. 직입인 나만 겁먹은 것처럼 보였다. 노인의 드센 표현이 자신의 욕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몸에 밴 삶의 형태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2. 지문, 날인

그간 살면서 겪은 문제는 많은 부분 인간관계에서 비롯되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북적대면서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나를 포함해서) 주변에 입방아를 찧거나 호들갑을 떨지 않는 사람은 드물었다. 요컨대 관심과 다정이 병이었다. 여기서 상황은 정반대다.

‘정상적인’ 절차에는 입소자 개개인이 들어설 틈이 없다. 무엇을 묻거나 따지려면 30초든 1분이든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물리적으로 그만큼의 시간이 없었다. 모든 절차를 중단시켜야, 즉 문제를 일으켜야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다. 60대 노인의 방법처럼 악다구니가 아니면 안 되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교도관 개개인의 문제는 아니었다. 지문을 날인할 때,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교도관은 “손에 묻는 게 싫어요?” 하고 묻는다. 제대로 답변하려면 아주 긴 이야기를 해야 했다. 그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더 이상 대화가 불가능한 눈이었다. 그사이 내 입소 동기 한 사람은 인주를 닦는 수건에 ‘퉤’ 하고 가래를 뱉었다. 벌건 눈의 교도관은 그를 제지하고 자리에 앉아 다시 내게 묻는다. “빨간색이 싫어요?”

그는 이미 내가 챙겨온 도서, 수건, 칫솔의 반입을 허가했다. 거기서 만족하거나 큰 불화에 진입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내가 입을 떼고 말을 시작하면 그의 눈이 ‘펑’ 소리를 내면서 터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잠자코 지문을 날인한다. 입소 절차가 마무리되자 그는 나를 건물 맨 끝 방으로 집어넣는다. 그래도 마음씨가 고운 사람이었다. 문을 닫으면서 “마음 잘 추스르고 있어요”라고 인사를 한다. ‘덜커덩’ 소리를 내면서 철문이 잠긴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현민 자존심이 강하고 자존감은 낮은 사람, 거기서 자의식이 생긴다. 자의식이 한낱 자의식에 그치지 않고, 머무른 자리를 통해 내면성을 갖추기 바란다. 그 내면성에 대한 고찰이 사회에 대한 공부가 될 것이라 믿고 있다. 병역을 거부해 1년6개월간 옥살이했다.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