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6.11 10:14 수정 : 2013.06.12 11:42

어머니는 어릴 때 ‘대통령이란 직책은 죽을 때까지 하는 건 줄 알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1955년생인 어머니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대통령이던 박정희는 어머니가 결혼할 때까지 대통령을 하다가 죽고 나서야 대통령에서 물러났다. 박정희뿐이겠는가. 저 북녘 땅 김일성은 어머니가 태어나기 전부터 국가주석에 있다가 아들인 내가 중학생이던 어느 토요일, 역시나 죽으면서 국가주석 자리에서 물러났다. 반면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노태우에서 김영삼으로…, 대통령이 선거를 통해서 바뀌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봐온 나는 대통령은 임기가 있고, 임기가 끝난 다음에는 다른 대통령을 뽑는 건 당연한 상식이었다. 대통령 임기는 알고 있었는지 몰라도, 어린 시절 나도 ‘저 사람은 죽을 때까지 평생 저 자리에 앉아 있겠구나’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해태 타이거즈 김응용 감독이다. 다른 팀 감독이 바뀌어도, 김영덕 감독, 강병철 감독이 팀을 바꿔가며 감독할 때도, 김응용 감독은 늘 공포의 검빨(검정과 빨강) 유니폼을 입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중에 해태의 원년 감독이 김응용이 아니라 김동엽 감독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을 정도니까.

김응용 시절의 해태 야구는 정말이지 야구 보는 재미가 있었다. 지금의 한화처럼 이기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거나, 기아처럼 이기고 있어도 불안하지 않았다. 김응용이 해태 감독인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하듯이, 해태가 경기에서 이기는 것 또한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 경기에서 혹 졸전을 펼친다 지더라도, 한국 시리즈만 올라가면 절대 지지 않을 거라는 확실한 믿음을 팬들에게 줬다. 선수층은 얇았지만 선동열이 부상당해도, 한대화가 트레이드돼도, 김성한이 은퇴해도, 그래서 야구 관계자들이 올해만큼은 해태가 어렵다고 해도 시즌이 끝나고 보면 김응용 감독의 우승 횟수가 또 하나 늘어나 있었다.

성적만 놓고 보면 해태 타이거즈 시절 김응용 감독과 한화 이글스 김응용 감독은 완전히 딴사람 같다. 그러나 그는 변하지 않았다. 변한 건 야구 환경이다. 팔방미인 선수 몇 명으로 야구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김응용 감독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한겨레 자료, 뉴시스
동열이·종범이도 없고 vs 현진이·찬호도 없고

김응용 감독은 통산 최다 1476승, 한국 시리즈 10회 우승, 통산 최다 18회 퇴장 같은 굵직굵직한 기록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감독이었지만, 기록에 드러나지 않는 대단한 면도 꽤나 많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김응용 감독은 쇼맨십에 능한 감독이었다. 프로야구는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종의 쇼다. 김응용 감독의 수많은 유행어와 약간 엉뚱한 언론 인터뷰는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래서 나는 김응용 감독이 한화 감독으로 다시 현장에 돌아온다고 했을 때, 솔직히 그를 반겼다. 그만큼 재미있게 야구를 하며 팬을 즐겁게 해주는 감독을 나는 아직 못 봤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이미 이룰 것 다 이룬 노감독이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경력에 흠집만 날 게 분명한 최약팀 감독을 맡는 것이 내게는 일종의 도전정신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김성한·김종모·이종범·이대진 같은 ‘해태의 전설’들을 코치로 한데 모은 것은 김응용의 카리스마를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동시에 (특히 타이거즈) 팬들을 위한 자그마한 선물 같았다.

하지만 김응용이 아무리 뛰어난 감독이더라도 전년도 꼴찌팀을 맡아서 좋은 성적을 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류현진이라는 걸출한 에이스마저 미국으로 가버렸다. 그나마 꽤 많은 이닝을 책임지던 박찬호와 양훈도 각각 은퇴와 군입대로 팀을 떠났다. 가뜩이나 전력이 약한 한화는 정현욱·김주찬처럼 팀에 꼭 필요한 FA(Free Agent·자유계약선수) 선수들을 한 명도 붙잡지 못한 채 FA 시장에서 철수했다. 전년도 꼴찌팀은 전력 보강 없이 전력 누수만 안은 반면, 다른 팀들은 필사적으로 전력을 보강해 시즌을 맞았다.

개막 13연패. 한화 팬들은 놀리기도 미안한 얼굴을 하고 다녔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 이해해줄 거 같아서, 나중에 한화 팬과 결혼할래요’ 같은 글들이 넘쳐났다. ‘김응용 감독의 퇴진을 요구한다’는 말머리를 다는 한화 팬들이 인터넷에서 늘어나기 시작했다. 패배도 패배지만 과정이 너무 좋지 않았다. 과거 한국 시리즈에서 빙그레가 해태에게 8회까지 퍼펙트로 이기다가 아쉽게 역전패한 짜릿하고 수준 높은 경기는 없었다. 그냥 경기 시작부터 지면서 시작해, 끝까지 지는 경기를 했다. 일부 선수들에 대한 혹사 논란도 일어났다. 유창식은 선발투수로 나와 50개가량 던지고, 이틀 뒤에 중간으로 다시 나와 20개 넘게 던지고, 그다음 날은 60개를 던졌다. 송창식 투수는 한동안 한화의 모든 경기에 나왔다. 현재 20경기에서 27이닝을 던져 9개 구단 불펜 투수 가운데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하고 있다. 오승환이 13이닝, 상대적으로 많은 이닝을 던지는 기아 앤서니가 22이닝을 던진 걸 감안하면 송창식이 엄청 많이 던진 것이다.

그는 변하지 않았다

아무리 현장을 떠난 지 오래되고 약팀을 맡았다 해도 통산 1476승, 한국시리즈 10회 우승 감독이 어떻게 신생팀과 꼴찌 경쟁을 해야 할 정도로 성적이 안 나올 수 있을까? 어떻게 그런 식으로 투수를 운용하면서 팀을 오랫동안 이끌 수 있었지? 사람들은 서서히 김응용 감독의 과거 업적조차 의심하기 시작했다. 과연 김응용은 과거 김영덕·강병철 감독에 비해 운이 좋았을 뿐인가? 아니면 지금 김응용은 해태 시절 김응용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인가? 프로야구 최고의 명감독이 프로야구 최고의 미스터리가 돼버렸다.

사실 감독 김응용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해태 감독 김응용과 한화 감독 김응용의 다른 점은 세월에 따른 외모의 변화 정도다. 흰머리와 주름이 늘어난 것 외에 야구에서 크게 변한 것은 없다. 팬들에게 어필하는 쇼맨십도 그대로였다. 한화가 우승 전력이 아니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데, 시즌 시작 전 언론 인터뷰에선 “모든 프로팀은 우승이 목표”라며 큰소리를 떵떵 쳤다. 그게 허세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왠지 싫지 않은 재미를 줬다. 팀을 운영하는 방식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응용 감독은 원래 전성기가 지난 베테랑을 트레이드시키면서 신인급 선수들에게 기회를 많이 줬다. 조계현·이순철·장채근·한대화 선수가 그렇게 해태를 떠났고 그 자리에 홍현우·장성호·이대진·임창용 같은 선수들이 꾸준히 기용됐다. 한화 감독이 되고 나서 장성호를 송창현과 트레이드 시킨 건 전형적인 김응용 스타일이다. 가장 큰 논란이 되고 있는 투수 혹사도 해태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동열은 선발-중간-마무리를 오가는 전천후 투수였고, 1993년에는 중간 계투 송유석과 마무리 선동열이 동시에 10승 투수가 되기도 했다. 등판할 계획이 없던 선동열을 불펜에서 몸을 풀게 해 상대팀의 추격 의지를 꺾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 시절에는 투수 혹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지금과 많이 달랐고, 투수들의 보직 분업 같은 것도 지금과 사뭇 달랐기 때문에 김응용식 투수 운용이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야구 환경

변한 것은 김응용이 아니라 김응용을 둘러싼 모든 것이다. 김응용과 함께하는 선수들이 변했고, 팀이 변했고, 야구 환경이 변했다.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김응용과 함께하는 선수들이 변한 것이 가장 큰 변화라 한다. 이종범·조계현·이대진·이강철 선수에다 마무리는 선동열 선수인데 우승을 못하는 게 더 이상하다. 이 말은 반만 옳다. 분명 좋은 선수가 있어야 감독은 우승할 수 있다. ‘공포의 외인구단’ 같은 이야기는 만화에서나 가능하다. 쌍방울이나 태평양을 맡은 감독들에 비해 운이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스타플레이어를 모아놓는다고 다 강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구기 종목에서는 선수 한 명 한 명의 능력만큼이나 선수들이 만들어내는 조직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이너마이트 타선과 레전드급 투수 여럿을 지닌 빙그레나 국가대표 군단 삼성이 해태에 밀려 우승을 못한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좋은 선수들과 함께 우승을 일궈내는 능력은 확실히 김응용 감독을 따라올 사람이 없다. 하지만 약팀을 맡아 강팀으로 만들거나 리빌딩하는 데에는 김응용 감독의 능력이 사실 부친다. 모기업의 재정난으로 이종범을 일본으로, 임창용을 삼성으로, 홍현우를 LG로 보내고 난 뒤 해태는 계속 추락했다. 이미 기울어진 분위기 탓도 있지만, 김응용 감독은 그때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한화가 올 시즌 우승 후보였다면 김응용은 최고의 감독일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한화는 꼴찌 탈출이 목표인 팀이다. 한화에 즐비한 스타 군단 김성한·김종모·이종범·이대진·장종훈·송진우·정민철은 선수가 아니라 코치다. 통산 최다승, 최다우승이라는 업적에 가려 한화도 김응용도 ‘감독 김응용’의 능력과 역할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선수단 구성보다 김응용 감독에게 더욱 뼈아픈 것은 바로 한화라는 팀이다. 한화는 선수단 관리가 허술하기로 소문난 팀이다. 한화는 한창 시즌일 때 아무 대안 없는 상태에서 주전 3루수가 군대 가는 걸 지켜보기만 할 정도로 팀 관리가 허술했다. 그런 반면에 야구에 관심이 많은 김승연 회장 탓인지, 야구단 외부 모기업에서 잔소리와 참견이 많은 팀으로 알려져 있었다. 감독에게 전권을 주던 해태, 선수 관리에서 최고의 시스템을 자랑하던 삼성과는 완전히 다른 팀이다. 사실 프로야구 구단에서 프런트 역할은 굉장히 중요하다. 프런트가 현장에 직접 개입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자기 역할을 명확히 하고 현장과 잘 맞춰야 한다는 말이다. 해태·현대·삼성·SK처럼 우승을 수차례 한 팀은 현장과 프런트의 역할 구분이 명확하고 자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유능한 프런트가 있은 반면, 한화는 프런트 또한 큰 약점인 팀이었다. 김응용 감독은 여기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프로야구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 요즘 선수들의 기량이 전체적으로 하향평준화라고 걱정하지만, 선수층의 두께는 몰라 보게 달라졌다. 주전 한 명이 부상당하면 전전긍긍해야 할 정도로 선수층이 얇은 해태가 우승할 수 있던 시절은 끝났다. 해태의 후신인 기아만 해도 2군을 넘어서 3군(재활군)까지 운영하고, 구단마다 2군 전용 연습 시설을 갖춰가고 있다. 한정된 선수 자원을 잘 활용하는 것만큼이나, 계획과 육성을 통해 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게 되었다. 또한 야구 문화가 바뀌었다. 투수들은 더욱 철저한 분업 시스템 속에서 관리받으면서 던지고 있다. 과거 선발과 중간 마무리를 종횡무진하는 에이스는 이제 리그에 없다. 보통 1.1이닝을 던지는 앤서니 같은 선수가 중무리라고 불리니, 2~3이닝은 기본으로 던지던 임창용이나 구대성이 중무리로 활약하던 시절과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리고 팬과 구단의 관계나 팬들이 선수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과거에 비해 지금 팬들은 단순히 좋은 성적만 요구하는 게 아니라, 팀의 지속 가능성을 중요하게 본다. 그래서 당장의 승리를 위해 팀의 미래인 유망주가 혹사당하는 것이나, 팀의 미래 가치를 훼손한다고 여기는 트레이드에 굉장히 민감해 과거보다 훨씬 더 강하게 의견을 피력한다. 때로는 직접 행동에 나서기도 한다. 김응용 감독 처지에서는 차라리 과거 운동장으로 술병을 집어던지고 참외로 목덜미를 맞힌 팬들이 오히려 대화하기 쉬울지도 모른다.

이젠 김응용이 변해야 할 차례

1983년 처음 해태에 부임했을 때 김응용 감독은, 굉장히 선진적인 야구 감독이었다. 흔히 자율야구 하면 1990년대 LG와 이광환 감독을 떠올리지만, 김응용이야말로 진정한 자율야구의 시조다. 그렇기 때문에 한때 야구를 그만두려던 한대화가 김응용 감독 아래서 간염에 무리 가지 않는 정도로 훈련하면서 해결사로 거듭날 수 있었다. 또한 그의 철저한 프로 의식은 전근대적인 선·후배 질서나 사제 질서로 얽힌 한국 프로야구에선 꽤 앞섰다. 지연·학연이 아니라 감독과 코치와 선수로 관계를 맺고, 철저하게 실력과 성적으로 이야기하는 면은 분명 아직도 많은 야구인이 배워야 할 점이다.

하지만 2013년의 김응용은 세상의 변화를 전혀 따라잡지 못하는 낡은 지도자의 상징이 되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변했다고 해도, 프로가 세상을 탓할 수는 없다. 성적이 나쁜 데에는 어떤 변명도 의미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것은 김응용 감독이 가장 잘 알 것이다. 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통산 1476승도, 한국시리즈 10회 우승도 소용없다. 김응용이 변하지 않으면 성적도 리빌딩도 불가능하다. ‘코끼리’ 김응용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새로운 김응용을 기대하는 건 정녕 무리일까? 아니면 타이거즈 팬의 버리지 못한 미련일까?

이용석
이용석 스포츠를 좋아한다고 우기지만, 사실은 한국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것이며 프로야구보다는 타이거즈를 좋아하는 편파적인 야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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