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6.06 12:16 수정 : 2013.06.12 10:48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이다. 전국 곳곳에서 문화행사가 쉴 새 없이 펼쳐진다. 지역 축제 덕분에 가는 곳마다 절로 어깨에 흥이 실린다. 밝은 기운이 넘쳐나는 전국의 축제를 보면 그야말로 ‘한국 참 많이 좋아졌고, 살 만한 곳이다’ 싶다. 덕분에 나 역시 살 만해졌다. 내가 바로 그 축제를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에게 함박웃음을 선사하는 전국의 축제장이 바로 내 직장이다. 노트북만 있으면 차 안이나 기차 안이 내 사무실이 된다. 늘 여행하는 기분에 젖을 수 있다. 전국 각지의 지역 터미널에 도착하면 곧바로 흥청거리는 축제장으로 직행하니 잠시도 심심할 겨를이 없다.

한편 이토록 흥겨운 축제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저 웃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우아한 백조가 물밑에서 버둥거리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축제의 본모습이다. 물갈퀴로 버둥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목구멍으로 밥이 안 넘어가는 복장터짐이랄까. 한 사회와 시대의 문화가 압축되어 있는 축제의 필요성과 유용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 이면엔 어떤 사연이 숨어 있는지 뒷이야기를 나눠볼까 한다. 그것도 아주 조금.

흥겨운 축제의 뒤에서는 살벌한 생존경쟁이 펼쳐진다. 그러나 치적 홍보에만 관심을 두는 지자체장 앞에서는 먹이사슬 전체가 ‘을’의 처지에 놓인다. 사진은 ‘잘 놀자’는 축제의 본래 기능에 가까운 전통문화 축제로 꼽히는 ‘안동 국제탈춤페스티벌’. 한겨레 자료
“시장님 임기 곧 끝나서” 졸속이 문제

이웃 나라 일본은 오래전부터 지역민들의 통합과 문화 보존의 수단으로 축제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마츠리(축제)의 천국’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한국은 한국전쟁 이후 한동안 전통을 잇는 지역 축제들이 종적을 감출 수밖에 없었다. 40년 남짓 축제 암흑기가 이어졌다. 그러다 1995년 지방자치단체 시대가 열리면서 축제의 시대도 함께 열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축제가 지자체와 단체장들이 손쉽게 지역의 민심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자 자신의 치적을 만천하에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별볼일 없는 이벤트성 축제가 우후죽순 생겨나 ‘부실 축제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낳았다. 축제의 취지와 성격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거나, 관객 동원이나 만족도 면에서 낙제점을 받은 축제가 부지기수로 생겨났다. 많은 축제가 선심성 전시 행정의 전형으로 낙인 찍혔다. 요즘에도 몇몇 지역 축제에 조언을 하러 가보면 심심치 않게 이런 대화가 오간다.

“꼭 이번 연도 안에 치러야 합니다.”

“왜요?”

“시장님 임기가 얼마 안 남아서… 다 아시면서!”

이것은 딱 5년쯤 전 얘기다. 그러다 3년 전쯤부터 지역 축제의 통·폐합이 논의되면서 축제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모양새다. 그러나 취지나 내용 면에서 좋고, 알찬 축제로 성장할 싹 좋은 행사도 많았다. 부실 축제 논란 탓에 우리의 지역 축제 전체가 부실한 것처럼 통째로 폄하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유경숙 세계축제연구소 소장,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2007년부터 74개국 380개의 축제와 콘텐츠를 찾아내 국내에 소개해왔다. 저서로는 <유럽축제사전> <카니발로드> <혼자 떠나는 유럽>이 있다. 한 해의 반은 축제장에서, 반은 학교에서 지내며 한국의 축제와 콘텐츠 고민에 흠뻑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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