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6.06 12:09 수정 : 2013.06.12 13:52

“자, 이제 시작합니다.”

문기주(54)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비지회장이 솔벤트(휘발성 세척액) 분사기를 들고 나타났다.

분해된 2003년식 코란도 승용차 몸체와 부품에 쌓인 묵은때가 요란한 솔벤트 분사 소리와 함께 한 꺼풀씩 씻겨나갔다. 순간 역한 솔벤트 냄새가 확 퍼졌다.

“다들 괜찮아? 머리 안 아파?”

“고향에 온 기분이네. 친근하고 좋기만 하구먼.”

지난 5월 12일 오전 10시, 경기도 용인의 어느 공업사 안. 세상에서 단 한 대뿐인 자동차 조립인, ‘H(Heart)-20000 프로젝트’를 위해 쌍용차 해고 노동자 20여 명이 모였다. ‘시민 2만 명의 마음을, 부품 2만 개에 담아 자동차를 만들어 해고자들이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사다리를 놓자’는 의미로 기획된 행사다. <나·들>이 이날 이들과 함께 했다. 조립한 자동차는 쌍용차 법적 정리해고(2009년)가 시작된 날인 6월 7일, 서울광장에서 일반에게 공개된다.

“4년 만에 공구를 잡으니 어때? 기술과 손놀림이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자. 차를 조립하고 정비하는 노동자, 일상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담아 잘 만들어보자.”

조립에 앞서 김정우(52) 쌍용차지부 지부장이 특유의 넉살로 조합원들을 격려한다. “우리 걱정일랑 말고 지부장님이나 잘하세요.” “그러게. 연로하셔서 어쩔랑가 몰라.” 오가는 농 속에서 어느새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지난 5월 12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경기도 용인의 한 공업사에서 세상에서 단 한 대뿐인 ‘코란도’를 만드는, ‘H-20000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조립을 무사히 끝내고 서로 끌어안고 좋아하는 해고노동자들. 한겨레 박승화 기자

AM 10시 30분 엔진 조립 시작… “4년 만인데 몸이 기억하네”

오전 10시 30분부터 본격적인 조립에 들어갔다. 김 지부장은 “일정이 빠듯하다. 서둘러달라. 밤새 작업해야 할지도 모른다”며 혹여 있을지 모를 사고(?)에 대비해 동료들을 단도리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겠지?”

“당연한 거 아냐? 우리가 누군데!”

호언장담과 달리 막상 작업에 들어가려 하니 다들 긴장되는 모양이다. ‘30년 베테랑’ 문기주 지회장이 작업반장을 자처했다. 고공농성 116일 만인 지난 3월 15일 건강악화로 내려온 터라 후유증이 남아 있을 텐데, 그의 목소리는 힘찼다.

“작업장과 장비 등 어려운 조건이지만, 일상으로 돌아가고픈 염원으로 여기 모인 것 아닌가? 우리가 이 일을 하겠다고 지금껏 싸운 것 아닌가? 혹시라도 차가 나중에 멈춰선 안돼. 조립 순서는 엔진-미션-바디-도어-대시보드-시트. 핵심은 엔진. 한치의 실수도 없도록 다들 화이팅! 아자, 아자!”

‘윙~, 위~이~잉.’

임팩트 렌치(볼트 조이는 기계) 소리가 굉음을 냈다. 엔진 조립 시작을 알리는 소리다. ‘정비의 달인’ 이현준(45)씨와 윤충열(45)씨가 전담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만져보네.” “그러게. 걱정했는데, 까먹지 않은 게 신기하네 그려.” 긴장을 풀려는 듯 대화가 오간다. 이들의 손길도 분주해졌다. 망설임과 어색함이 전혀 없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배운 기술이라서 몸이 먼저 기억하는 것 같아요. 너무 오래 쉰 게 아닐까 했는데, 자신감이 붙네요.” 충열씨 고백에 땀 뻘뻘 흘리며 볼트를 조이던 현준씨도 거든다. “정말 감회가 새롭네요. 땀 냄새, 기름 냄새….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 바로 여긴데, 하루 빨리 돌아가야 할 텐데.”

해고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인 현준씨의 삶을 짓밟았다. 경제적 고통보다 더 힘든 건 현준씨의 노숙투쟁과 이로 인한 가족과의 이별이다. “집 팔아 전세로 옮기고, 아내가 아이돌보미를 하는 데도 먹고살기가 빠듯해요. 아내는 이제 그만하랍니다. 올해까지만 하기로 했는데…. 억울하고 분한데 어떻게 포기해요.”

현준씨는 목이 메어왔다. “이제 그만하자”며 서둘러 공구를 집어들고 자리를 피한다. 충열씨는 “나 역시 올해만 하겠다고 한 게 벌써 4년째”라며 “어린이날뿐 아니라 가족 생일, 기념일도 못 챙긴 지 오래”라고 토로했다. 충열씨의 가세도 32평 아파트(자가)에서 24평 아파트 전세, 20평 빌라 전세로 쪼그라든 지 오래다. “집 얘기 하면 가슴 아프죠. 어디 나뿐이겠습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마찬가지죠.”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자꾸 물어보면 비참해집니다. 그만합시다.”

AM 11시 40분 완벽 팀워크… “아들아 좀 봐, 신기하지”

“꼭 공장에 복귀해서 일하는 기분입니다.”

김남오(42)씨가 활짝 웃었다. 잠깐 짬을 내어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작업장에 막 들어서는데 (기자에게) 딱걸렸다. 금발로 염색한 머리만큼이나 표정이 밝다. “삭발한 뒤 머리를 기르고 있다”는 그는 “기분 전환차 머리색을 바꿨다”고 했다. 좀 전까지만 해도 남오씨는 ‘왜 이런 걸 하나’ 싶었다고 한다. 괜히 마음에 상채기만 내는 꼴이 아닐까’ 해서다. 기우였다. 김정우(42)씨 소감도 다르지 않았다. “공구 잡는 것이 어색할 것 같아 오고 싶지 않았는데, 작업복 입고 동료들과 도란도란 함께하니 좋네요. 아,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말이죠.”

시간이 흐르면서 마치 라인을 타듯 부품을 옮겨 끼우고 맞추고, 볼트와 너트를 조이는 움직임이 빨라졌다. 예전 감각을 되찾는 듯했다. 업무를 상의하고 분담하니, 오래전부터 호흡을 맞춘 것처럼 완벽한 팀워크가 이뤄졌다. 동시에 버려진 고철 조각, 보잘것없는 쇳덩이에 불과하던 부품들이 존재 의미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선택아! 이리 와서 이거 엔진 조립하는 것 좀 봐. 신기하지?”

바퀴를 몸체에 연결할 차례다. 이내 김덕중(45)씨가 함께 온 중학교 2학년 아들의 손을 자동차 쪽으로 잡아 끈다. “실은 제가 사무직 출신이어서….” 아버지의 표정에 어색함이 묻어나기가 무섭게 선택군이 입을 열었다. “자동차에 관심이 많아 함께 왔어요. 아버지가 회사에서 잘린 뒤 처음엔 막연히 두렵고 불안했어요. 지금은 신경 안 써요. 아버지는 해야 할 일을 하시는 거고, 그래서 응원해드리고 있어요.” 덕중씨의 눈시울이 불거졌다.

분위기를 띄우려는 듯, 옆에 있던 김정운(38)씨가 입을 열었다. “몸은 고되지만, 기뻐요. 지금 이 순간이 계속됐으면 좋겠네요. 공장에 빨리 돌아가고 싶어요. 오늘 일을 안주 삼아 얘기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합니다. 사실 우리는 길거리가 아니라 공장에 있어야 하고, 경찰이 아니라 자동차를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4년.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복귀투쟁을 벌여온 시간이다. 지난 3월에 휴직자 450여 명이 복귀했지만, 아직도 희망퇴직자 1904명과 정리해고자 159명 등 2천여 명이 복귀하지 못했다. 해고자들은 대한문, 평택역 광장 등지에서 천막농성 등을 벌이고 있다. 기대를 모았던 ‘여야 6인 협의체’는 성과 없이 5월 말 종료했다. 정리해고를 불러온 회계조작과 기획부도 의혹도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약속한 ‘쌍용차 국정감사’ 역시 요원하다.

PM 2시 프레임-몸체 연결… “우리 복귀해야 회사 산다니까”

간단한 중국 음식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오후 2시부터 작업이 재개됐다. 본격적으로 프레임(자동차 아랫부분)과 몸체를 연결하는 작업이었다. 가장 염려한 엔진 조립을 오전에 마무리해서인지 한결 여유가 있었다. 대화량이 절대적으로 늘었다. 묵묵히 조립에만 열중하던 문 지회장도 입을 열었다. “말도 말아. 좀 전까지 이 프로젝트 괜히 한 거 아닌가 싶었다니까.” 지친 내색을 보이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사람들 표정 좀 보세요. 우리가 공장에 복귀해야 쌍용차도 산다니까요.” 이갑호(44)씨의 말이다.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자동차도 제 형태를 서서히 찾아가고 있었다.

이들 중에서도 편도원(40)씨가 가장 신이 난 듯했다. 두 달 전 게실염 진단을 받고 대장의 일부를 절제한 상태다. 아직 회복이 덜 된 몸을 이끌고 동료들과 함께 자동차를 조립하고 싶어서 왔단다. “대개 약으로 치료가 가능한데 내 경우는 심각해서 대장을 30cm 잘라냈죠. 해고 스트레스와 노숙농성 등이 원인이죠. 뭐, 우울증이 다 나았나 했더니 다른 병이 찾아온 거죠. 오늘 이곳에 와서 힘 많이 받았어요.(웃음)”

도원씨는 자살을 두 번 기도한 전력이 있다. 한 번은 베란다에서 투신하려 했고, 또 한 번은 욕조에서 손목을 그을 뻔했다. 가족의 발견으로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다. “노조도 투쟁도 몰랐는데 해고라니,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그는 “동료들이 많이 사는 평택을 떠나 용인으로 이사한 뒤 안정을 찾았다”고 했다. “왜 굳이 쌍용차에 다시 들어가려고 하냐고? 사랑해서죠. 안 그랬으면 불매운동부터 했죠. 적어도 우리 자식들이 정리해고자가 되는 걸 막아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후 4시 즈음, 자동차 몸체에 도어를 연결하는 공정이 시작됐다. “아휴~ 힘드네.” 한숨이 곳곳에서 터졌다. 육중한 문짝을 직접 손으로 들고 연결해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제법 덩치가 있는 박정만(49), 이갑호(44), 고동민(39)씨도 힘들어했다. 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우리 힘 센데…, 거참.” 안타까운 표정이 역력했다. 도어를 달고 나니, 제법 그럴싸한 코란도가 되어 있었다.

PM 5시 미션 배선 작업… “부릉부릉~ 소리 좋은데”

오후 5시쯤 앞뒤 범퍼를 연결했다. 서맹섭(38)씨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기분이 어떠냐고 슬쩍 물었다. “어서 복귀해야죠.” 맹섭씨에겐 11살, 7살, 3살, 2살의 네 자녀가 있다. “가끔 집에 들어가니 그때마다 아이가 생겼다”는 그는, 한창 아빠의 손길이 필요할 때라 더 마음이 아려온다고 했다.

“요즘처럼 날씨가 좋을 땐 아이들과 뛰어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요. 아이가 넷이라 아내 혼자서는 집 밖 외출도 쉽지 않을 텐데…. 아내한테 많이 미안하죠.” 순간 맹섭씨의 입술이 떨렸다. 그는 “보증금 없이 월세 15만 원짜리 집에 살면서도 날 믿고 불평 한번 하지 않아 미안한 마음뿐”이라며 “아내와 아이들한테 자랑스러운 남편, 아빠가 될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가 질 무렵, 공정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막바지에 이르자, 수다파티가 한바탕 펼쳐진다. 이 남자들, 접시를 깨고도 남을 것 같다. “점심시간에 끓여 먹은 라면이 정말 맛났는데….” “오늘 우리 특근한거야. 야근까지는 못해!” “아까 점심시간에 외출할 걸 그랬어.” 해고 전 일할 때 에피소드에 빗댄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이내 화두가 H-20000 프로젝트에 참여한 소감으로 이어졌다. “사람이 많으니까 빠르네, 놀랍다.” “다음엔 아예 버스를 조립해볼까? 버스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김 지부장이 마지막으로 정리 멘트를 날린다. “차 한 대 뜯었다 만드는 일 아무것도 아니지.”

오후 5시 30분쯤 자동차 내부 계기판과 시트 등의 조립이 마무리됐다. 이어 차체를 리프트로 들어올렸다. 미션과 사이드브레이크의 배선을 연결할 참이다. 브레이크 오일도 주입했다. 오후 6시, 충열씨가 시동을 켠다. 조립의 성공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부릉, 부~르릉, 부릉.”

경쾌하고 우렁찬 소리가 울려퍼졌다. 성공이다.

“와~!”

모두 일제히 박수와 함성으로 환호했다.

“소리 좋은데, 완전히 새 차가 됐네.” 김대용(43)씨의 감탄사가 이어졌다. “개인택시하던 아버지 덕분에 어릴 때부터 차에 관심이 많았고, 차 관련 일을 하는 것이 꿈이었다”는 그는, 1995년 쌍용차에 입사하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어요. 오죽하면 지금껏 연애뿐 아니라 소개팅 한번 안 했겠어요. 지금은 이런 처지지만…. 내겐 차가 애인이고 아내입니다.”

PM 7시 드디어 완성… “빨리 현장으로 돌아가자”

저녁 7시 무렵, 모든 공정이 마무리됐다. (중간에 홍어 파티가 없었다면 한두 시간 전에 완료됐을 것이다.) 김 지부장이 엔진오일을 주입한 뒤 시동을 걸었다. 차가 움직였다! 김 지부장 입에서 감탄사가 쏟아졌다. “감동적입니다. 빨리 현장으로 돌아가서 고객을 만족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데, 고급 인력을 썩히고 있으니.”

도원씨도 소감을 밝힌다. “볼트 하나 조이는 일은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일인데, 어색하대요. 감이 더 떨어지기 전에 복귀해야 할 텐데, 꼭 그렇게 되겠지요?”

기자가 물었다. “복귀하면 어떨 것 같으세요?”

“그냥 말 없이 웃을 것 같아요. 눈물도 나오겠죠? 회사 작업복을 입게 된다면 아마 안 벗을 것 같아요. 동료들이 더 다치기 전에, 아파하기 전에 잘 해결됐으면 합니다.”

“자, 이제 끝입니다! 박수치고, 마무리 합시다.”

김 지부장이 동료들을 불러모았다. H-20000 프로젝트가 10시간 공정 끝에 성공적으로 끝났다. 박수소리가 우렁차다. 덕담을 건네며 악수와 포옹을 나누는 이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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