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5.07 00:11 수정 : 2013.06.11 11:20

1. <나·들>의 제안, 낯익은 화장실

지인에게서 <나·들>에 글을 써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 며칠 뒤,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공덕시장 생선구이집에서 나는 편집장이 건네준 명함을 받아들고 어색한 자기소개를 하고 있었다. 곧이어 상에 오른 막걸리는 분위기를 돋우기 위한 배려였을 텐데, 아쉽지만 반주 삼아 곁들인 술은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속을 예민하게 만들어서 대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예쁘게 보여야 하는 자리인데.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집을 나선 게 잘못이었나 보다. 결국 실례를 무릅쓰고 잠시 자리를 비워야 했다.

허름한 화장실. 그곳은 쪼그려앉기 외에 다른 포즈는 허용하지 않았다. 예의 그 포즈를 취하려 하자 변기의 물 내리는 부품의 모양새가 도드라져 보였다. 특이하게도 레버가 아니라 가스밸브처럼 돌려서 여닫는 식으로 되어 있었다. 나는 그 밸브를 계속 바라보다 무심코 손을 대고 만지작거렸다. 금속성의 차가운 감촉이 몸에 서서히 전해졌다. 그 촉감과 함께 바닥에 깔려 있던 타일이 시멘트로 변했다. 처음 온 공간이 낯설지 않았다.

2. 징역 경험 인정받고 싶은 욕망

앞으로 내가 할 이야기는 감옥과 관련된 것이다. 나는 정치범(부연설명이 필요하지만, 일단 정치범이라고 해두자)으로 징역을 살았다. 내 이야기는 엄혹했던 민주화 시절의 회고담이 아니다. 재작년에 출소했다. 최근이라면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시기다. 한때 한국 사회에는 감옥에 관한 글이 ‘감옥문학’이라는 별도의 장르를 형성할 정도로 많았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세상이 좋아졌기 때문일까. 그래도 감옥이 사라지지 않은 것을 보면 아주 좋은 세상은 아닌 것 같다. 사람들에게 오늘날의 감옥을 소개하는 작업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수형자가 그렇듯이 나 또한 감옥생활 중 적잖은 시간을 감옥 밖을 상상하면서 보냈다. 감옥 밖의 세상은 ‘자유’와 동의어였다. 그렇지만 출소 뒤 만끽한 자유로운 세상은 더없이 공허했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실질적 수단과 자원이 없었다. 전과자라는 신분은 직업 선택을 통해 경제적·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삶을 꾸려갈 수 있는 기회를 제한했다. 세상 속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아니 그렇기 때문에 역으로 출소 뒤에 나는 감옥의 경험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가끔씩 나는 “여러분, 나는 모든 사람들이 꺼려하는 감옥에 다녀왔지만 사실 그 경험을 통해 뜻밖의 배움을 얻었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꼈다. 계속 감옥에 관한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나는 (감옥을 포함해서) 감당하기 쉽지 않은 경험에 대해 의미나 가치를 부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게 되었다. 그런 마음에는 나쁜 의도가 숨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 강박관념의 배후에는 계산된 조바심이 있었다. 징역이라는 흔치 않은 경험을 글로 드러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그것이야말로 출소한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현민 자존심이 강하고 자존감은 낮은 사람, 거기서 자의식이 생긴다. 자의식이 한낱 자의식에 그치지 않고, 머무른 자리를 통해 내면성을 갖추기 바란다. 그 내면성에 대한 고찰이 사회에 대한 공부가 될 것이라 믿고 있다. 병역을 거부해 1년6개월간 옥살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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