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0.07 14:09 수정 : 2013.10.07 14:09

뙤약볕이 내리쬐는 7월 중순의 오후, 서울 종로구 북촌의 한 언덕길에서 말끔한 셔츠 차림의 한 중년 남성이 지나는 사람들에게 서명을 요청하고 있었다. 앞에 놓인 책상엔 ‘북촌 화동고갯길을 보존하라’는 글귀와 함께 ‘북촌을 아끼는 사람들의 모임’(북아사)이라는 소속 단체가 명시돼 있었다. 이 남자는 ‘화동고갯길’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정독도서관에서 재동초등학교로 가는 이 언덕길은 겸재 정선이 18세기 중순 <인왕제색도>를 그리기 위해 오르던 곳입니다. 여기서 보이는 저 봉우리가 그림에 나오는 인왕산이에요. 이 언덕은 북촌의 고즈넉함을 상징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 고갯길을 깎으면 어떤 비용으로도 그 모습 그대로 복원할 수가 없어요.”

전국 객실 2300여 곳 확보 ‘빈방 공유’

언뜻 시민단체 소속으로 보이는 이 남성은 지난해 초 대기업인 LG유플러스 임원을 그만두고 벤처업체를 차린 조산구(49) ‘코자자’ 대표다. 조 대표가 북촌을 위해 하는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북아사’에서 조 대표는 최근 ‘오픈화장실’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북촌에 밀려오는 관광객을 감당하기 위해 종로구청이 화동고갯길을 깎아 그 옆에 공용화장실을 짓겠다는 계획을 세우자, 인근 가게에 있는 화장실을 관광객이 이용하도록 하고 정부가 일부 예산을 지원하자는 대안이다.

북촌 한옥마을로 기자를 안내한 조산구 ‘코자자’ 대표는 “이 안에 들어오면 도심에 있다는 것을 잊는다. 고즈넉한 한옥에서 하루 머물면 어지러운 일상을 잊고 여유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화장실을 공개한 가게가 14곳이에요. 20여 곳 더 참여시키고, 찾기 쉽게 안내판을 설치해 관광객을 맞자는 거죠. 정부가 새 화장실을 만들 예산으로 기존 화장실 청소를 도와주고 내부를 갤러리처럼 꾸미면 서로 일석이조 아니겠어요.”

물론 이 아이디어는 아직 구상 단계다. 하지만 ‘북아사’ 회원들의 열렬한 지지로 조 대표는 이 제안을 종로구청과 서울시에 전달했다. 결국 조 대표를 비롯한 북아사 회원들의 열정적인 활동으로 화동고갯길 개발 사업과 화장실 건립 계획은 백지화됐다.

벤처기업 설립 2년째를 맞아 자기 사업을 하기에도 바쁜 조 대표가 북촌을 위해 이렇게 발 벗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9월16일 오후, 북촌인 서울 종로구 재동에 있는 코자자 사무실에서 조 대표를 만났다. “코자자는 여행객과 집주인을 연결해주는 서비스예요. 집주인은 빈방을 이용해 돈을 벌 수 있고, 여행객은 값싸고 질 좋은 숙소를 찾을 수 있어요. 코자자는 모든 종류의 빈방을 중개하지만, 한국 특유의 문화적 체험을 할 수 있는 한옥에 집중하고 있어요.”

코자자는 지난해 1월에 설립돼 6월부터 누리집을 열어 사업을 시작했고, 1년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전국에 객실 2300여 곳을 확보했다. 이 중에 1500여 곳이 한옥이다. 처음부터 한옥에 집중한 것은 아니다. “사업을 시작했을 땐 객실 수를 늘리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어요. 객실을 확보하려고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이 사업이 지속 가능하려면 여행객에게 좋은 경험을 선사해야 하거든요. 무조건 방을 늘릴 것이 아니라, 하나라도 확실한 브랜드를 구축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한옥에 집중하겠다는 목표가 분명해지자 서울 홍익대 앞에 있던 사무실을 지난해 5월 북촌으로 옮겼다. 조 대표는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북촌에 있는 한옥 게스트하우스 80여 곳을 모두 코자자에 등록시켰다. 국내외 관광객이 언제든 코자자 누리집에 들어가 북촌에 있는 한옥의 사진과 설명을 살펴보고 원하는 날짜에 예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약이 이뤄지면 결제 금액의 10%를 코자자가 수수료로 가져간다.

“한옥에 집중하게 된 배경엔 여러 전략적인 판단이 있었어요. 일단 ‘빈방 공유’라는 사업이 한국에서는 낯선 모델이 아니에요. 한국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집을 빌려주는 것에 익숙지 않아요. 기존에 민박이나 펜션 사업을 하던 사람이 아니면 더욱 힘들죠. 또 한국의 주된 주거 형태인 아파트는 현관문을 열면 모든 것을 개방해야 하는 구조예요. 현관문을 여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있죠. 하지만 전통가옥인 한옥에서는 현관문을 열어도 사랑채와 안채, 건넌방 등 독자적인 생활을 할 수 있어요. 대청마루와 부엌, 정원만 공유하고 각자 생활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함께 생활하기에 적합한 주거 형태죠.”

일본엔 료칸스테이, 한국엔 한옥스테이

빈방 공유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에어비앤비’가 만든 사업모델이다. 요즘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공유경제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 에어비앤비의 창업자 브라이언 체스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디자인 관련 세미나의 참석자들이 숙소가 없어 곤란을 겪는 것을 보고 자신의 집을 내주고 돈을 받기 시작했다. 이 일이 단초가 돼 2008년 에어비앤비를 설립했다. 처음엔 실리콘밸리의 벤처 투자자들도 “누가 낯선 사람을 자기 집에 들여놓겠느냐”며 사업 전망을 어둡게 내다봤지만, 에어비앤비는 불과 5년 만에 세계 192개국에서 사업을 하는 숙박업체로 성장했다. 에어비앤비는 현재 3만4800여 곳의 숙소를 확보했고, 지난해까지 예약된 누적 숙박 일수가 1천만 일을 돌파했다. 지난해 실리콘밸리의 유명 투자자 피터 티엘은 에어비앤비의 기업가치를 25억달러(약 2조7천억원)로 평가하기도 했다. 이렇게 된 데는 집주인과 관광객들이 트위터·페이스북 등을 통해 서로의 신원과 평판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 큰 영향을 줬다. 또한 관광객에게 실명으로 신용카드를 등록하게 하고 집주인에겐 후불결제를 유도함으로써 양쪽에 신뢰를 줬다. 관광객이 자기 이름의 신용카드를 에어비앤비에 맡긴 것이기 때문에 기물을 파손하거나 돌발적인 행동을 하기가 어렵다. 집주인도 자신의 집에 계속 손님을 받으려면 평판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우리 같은 벤처업체가 에어비앤비와 경쟁하려면 무언가 차별화할 수 있는 지점이 필요했어요. 그게 한옥스테이, 템플스테이, 서울스테이라고 봤죠. 일본에서는 전통가옥인 료칸스테이에 머물면 음식, 차, 복식 등 여러 생활문화를 함께 경험할 수 있어요. 한옥스테이도 그렇게 가야 한다고 봐요. 북촌을 지금 모습 그대로 간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이곳엔 전통 다기와 가구를 만드는 공방들이 있고, 참기름과 들기름을 짜는 방앗간, 1970~80년대 동네에서나 볼 수 있던 목욕탕, 동네 서점 등 옛 모습을 간직한 곳이 꽤 있어요.”

설명이 이어진 뒤에야 조 대표가 왜 북촌 보존 활동에 적극적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기존 모습을 간직한 북촌은 코자자의 대표 브랜드였던 것이다.

인터넷에 빠진 목수 아들의 도전

조 대표가 지난해 코자자를 설립하자 여러 언론이 주목했다. 대기업 임원이라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배고픈 벤처의 길로 뛰어든 ‘이례적인 도전정신’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 대표는 “기득권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대기업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표현했다. 그가 살아온 궤적을 보면 수긍이 간다.

조 대표는 광운대 전자계산기공학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1988년 지금의 KT인 한국통신에 입사했다. 당시 한국통신은 ISDN(Integrated Service Digital Network)이라는 종합정보통신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기존 구리선으로는 전화만 할 수 있었지만, 이 통신망으론 데이터 통신이 가능했다. 휴대전화를 예로 들면, 피처폰으로 통화만 하던 시절에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하는 시기가 오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엔 이 통신망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마치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만들기 전에 3세대(3G) 이동통신망 서비스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KT는 사람들이 ISDN을 활용할 수 있는 표본 서비스를 만들려고 했다. 이때 조 대표가 회사에 제안해 만든 서비스가 바로 ‘키즈비비에스’(KIDS BBS·Korea Internet Data Service Buletin Board Service)였다.

“당시엔 PC통신도 초창기였어요. 대부분 전화선으로 PC통신을 하던 시절이었죠. 그때 전화선뿐 아니라 인터넷망으로 전세계 어디에서나 접속할 수 있는 게시판과 채팅 서비스를 만들었어요. 국내 최초의 인터넷 커뮤니티였던 셈이죠. 그곳에서 수많은 교류가 이뤄지는 것을 보고서 분명히 느꼈어요. 인터넷이 세상을 바꾸겠구나.”

조 대표는 키즈를 운영하던 1990년대 초 <인터넷 길라잡이>라는 책을 집필하고 있었다. 하지만 출판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1994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집필한 내용은 키즈 게시판에 올려 필요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토록 했다. 조 대표는 버클리대학의 컴퓨터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2000년, 실리콘밸리에서 재미 한국인 사업가 마이클 양과 함께 넷지오(Netgeo)라는 벤처업체를 설립했다. 누리꾼들이 접속한 위치를 파악하는 기술을 개발해 명성을 얻은 기업이었다. 2000년 대선 때 조지 부시 후보 캠프의 누리집이 이 기술을 활용해 누리꾼이 어느 지역에서 접속하느냐에 따라 다른 정보를 제공했고, 은행 등의 금융기관도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이 기술을 사용했다. 조 대표는 넷지오의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다가 2007년 귀국해 KT에서 신사업추진단장(상무)을 맡았다. KT와의 인연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왔다.

“KT의 혁신기획실장이던 김태호 실장이 제가 쓴 <인터넷 길라잡이>를 통해 공부를 했다며 한번 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분이 지금 미래창조과학부 차관인 윤종록 당시 KT 부사장을 소개해줬고, 만난 자리에서 신사업 아이템 50여 개를 제안했습니다. 그랬더니 대기업의 자본과 인력을 가지고 그 아이디어를 실현해보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KT에 합류했습니다.”

KT에서 포털 사이트 파란닷컴을 개선하는 작업과 소셜미디어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맡았지만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의사결정 단계가 길고 복잡한데다 개발을 외주업체에 맡기는 등 제약 조건이 많았다.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승부를 걸기엔 어려운 여건이었다. 50억원을 들여 개발한 소셜미디어 서비스 프리안(Freean)이 출시도 못한 채 좌절되자, 그는 마음을 접고 있었다. 이때 그에게 LG유플러스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왔다. 2010년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이 직접 조 대표를 설득했다. LG로 옮겨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와글’ 등을 만들었지만, 시장은 이 서비스를 외면했다.

“제 역량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대기업에서 하기 어려운 사업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어요. 대기업이 진짜 신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완전히 독립적인 의사결정 시스템과 예산을 가지고 빠르게 움직여야 해요. 서비스 개발을 외주에 맡길 것이 아니라, 핵심 인력을 내부에 두고 일해야 하고요.”

북촌에 한옥 게스트하우스 200여 채 목표

조 대표는 40대 후반에 대기업 임원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가족이 걱정이었다. 마침 회사 책상에서 지난 생일 때 아들에게 받은 편지를 발견했다. 미국에서 공부한 아들은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Dad, chase your dream.”(아빠, 꿈을 좇으세요)

조 대표의 아들 남현(19)군은 올해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캠퍼스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남현군은 현재 코자자에서 ‘북촌앱’을 개발 중이다. 외국인들에게 북촌의 여러 명소를 알려주는 앱이다.

“그 편지를 본 순간 나도 힘을 냈고, 또 위안을 얻었어요. 아들이 이제 어딜 가서든 세상을 잘 살겠구나라는 믿음이 생긴 거죠. 아들이 만드는 북촌앱도 잘 나올 것 같아요.”

조 대표가 사무실 한켠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을 소개했다. 코자자의 직원은 남현군 말고도 풀타임으로 6명, 파트타임으로 2명이 있었다. 조 대표는 한국에 관광을 오는 외국인들의 증가 추세를 볼 때, 빈방 공유 사업의 전망이 밝다고 내다봤다.

“한국에 오는 외국인 관광객이 1천만 명을 넘었고, 매년 10% 넘게 증가하고 있어요. 지금 서울에 객실이 2만 개 이상 부족하다고 하지만,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에요. 좀더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죠. 코자자는 지금 한옥스테이 외에 템플스테이도 운영하고 있어요. 나중엔 도심 밖 시골에서 ‘팜스테이’ 등의 상품도 만들 거고요. 한국에서 제대로 자리잡으면 전세계로 뻗어나가 ‘전통가옥 체험’ 시장을 잡을 겁니다.”

한옥스테이는 외국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조 대표는 도심 속 한옥에서의 고요한 휴식에 매료된 한국 사람들도 꽤 있다고 전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지난 9월3일 코자자를 통해 북촌의 한옥에서 하루 머문 뒤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북촌에서의 하룻밤, 몸과 마음을 함께 비우고 채웁니다. 서울시장 박원순.”

조 대표는 사무실을 나와 한옥이 밀집된 곳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북촌에 2년여 거주한 기자도 잘 알지 못하는 곳이 많았다. 최초의 한옥 체험관이라는 ‘서울게스트하우스’에 들어서자 도심에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고즈넉한 정원과 한옥이 눈앞에 나타났다. 조 대표는 자신 있게 말을 이어갔다. “지금 북촌에 한옥 게스트하우스가 80여 채밖에 없지만, 이 인근에 200여 채로만 늘어나도 분명 한옥 체험 붐이 생길 겁니다.”

글 윤형중 <한겨레> 토요판팀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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