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6.03 12:17 수정 : 2014.07.03 11:16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을 까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누워서 침 뱉기’인데다 ‘너는 뭐 그렇게 잘났느냐?’는 동료들의 비판에 대응할 말이 없을 수 있어서다. 특히 학계를 비판하는 일은 더 어려운데, 그 안에 몸담고 있는 교수들이 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분들 아닌가? 그래서 우리나라 학계의 내부 비판은 은퇴한 원로교수가, 그나마 아주 두루뭉술하게 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보니 그 비판에 신경 쓰는 이가 아무도 없었던 것이 그간의 현실이다. <공부논쟁>은 법 관련 저술로 유명한 김두식 교수의 형이자 현재 서울대 물리학과에 몸담고 있는 김대식 교수가 학계의 문제점을 제대로 짚어낸 책이다. 퇴임을 하려면 아직도 14년이나 남은 분이 작정하고 쓴소리를 한 배경이 궁금했지만, 동생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형은… 옳다고 믿으면 누구와의 싸움도 피하지 않습니다.”(6쪽)

게다가 책날개에 나온 김대식 교수의 업적은 학계 최고 수준이니, ‘교수가 연구나 하지’ 같은 비판도 먹혀들기 어렵다. 하지만 살살 형을 부추기며 센 발언을 유도한 김두식 교수가 아니었다면 이 책이 학자들이 한번쯤 새겨들을 고발서가 되지 못했으리라.

김대식의 문제의식은 서울대 이공계 교수의 대부분이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땄다는 데서 출발한다. 과학이 가장 발전한 나라가 미국이니 유학의 필요성이 전혀 없진 않겠지만, “우리나라 정도의 국력을 가지고 아직도 우르르 미국으로 몰려가는 건 이상한 일”(116쪽)이란다. 일본의 경우 과학 발전의 초창기 때 수십 명 정도가 유럽에서 배운 뒤 유학 가는 길을 아예 끊어버렸고, 그 결과 일본이 자기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고 노벨상도 탈 수 있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노벨상을 탄) 15명 중에서 13명은 일본에서 박사를 딴 사람들이고… 200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는 노벨상을 탈 때까지 외국을 다녀온 적이 없어서 아예 여권이 없었잖아요.”(129쪽)

이런 식으로 자기 나라만의 독특한 학문 세계를 구축하는 것을 김대식은 ‘자기 집을 짓는다’고 표현하는데, 그에 따르면 ‘자기 집’은 연구자의 국적과는 아무 상관이 없단다. 즉 우리나라 사람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그 뒤에도 미국에서 계속 연구해서 노벨상을 받는 것은 우리나라 학문의 발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그보다는 인도에서 유학을 온 학생이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노벨상을 받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는 것. 그런데 일본이 일찍부터 일본 박사들을 중심으로 자기 집을 짓기 시작한 것과 달리 한국은 해외 박사만 우대함으로써 자기 집을 짓는 데 실패했다.

“자기가 하버드대 박사 출신 서울대 교수면서 자기 제자인 서울대 박사를 서울대 교수로 뽑지 않는 거예요. 대신 서울대 학부를 나와서 하버드대에서 박사를 딴 후배를 서울대 교수로 뽑는 거지.”(141쪽)

이런 풍토의 폐해는 심각하다. 서울대 박사과정 학생들은 서울대 교수 자리가 물 건너갔으니 의욕이 꺾일 테고, 서울대 교수들 역시 해외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학생들에게만 신경 쓸 뿐 자기 밑에서 박사를 하는 학생들을 챙기려 들지 않는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누구도 목숨 걸고 공부를 하지 않아서 문제예요. 목숨을 건다는 건 자기 자식에게 먹을 것을 만들어주기 위한 노력이거든.”(149쪽)

심지어 자신의 박사학위를 지도한 교수가 혹시 노벨상을 타면 거기 묻어서 자신들도 같이 타보려고 미국 지도교수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간다. 거기서 하청을 주는, 전혀 창의적이지 않은 일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다보니 ‘기러기아빠’가 만들어졌다.

“기러기아빠 중 가장 두꺼운 층이 대학교수일 거예요. 상당수의 대학교수들이 미국서 학위를 받았고, 공부하는 중 낳은 자녀가 미국 시민인 경우가 많아요.”(151~152쪽)

그런데 그 아이들이 기대만큼 공부를 못하면 미국으로 보내 공부를 시킨다. 김대식은 이런 풍토가 도무지 말이 안 된다고 열변을 토한다. 왜? 우리 교육 시스템의 정점에서 일하는 대학교수들이 “우리 아이들은 미국 명문대학을 다녀요. 그런데 당신 애는 한국의 우리 학교에 보내주세요”(153쪽)라고 호소하고 있으니 이게 말이 되는가? 게다가 지도교수도 찾아뵙고 자기 애도 볼 목적으로 방학 때마다 교수가 미국으로 사라지니, 이런 실험실에서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올 리 없다.

김대식 교수는 지난 대통령 선거 때 현 대통령에게 투표한, 이른바 ‘보수’다. 보수 하면 탈세와 병역 비리, 위장 전입, 색깔론 등 부정적 이미지만 떠오르겠지만, 그래도 보수층이 망하지 않는 이유는 김 교수 같은 제대로 된 보수가 있기 때문이다. “천재들이 과학계를 이끈다는 건 증명이 안 된 신화”라면서 특목고와 과학고의 해체를 주장하고, 교수가 장관이나 국회의원을 하면서도 사직을 안 하는 풍토가 잘못됐다고 통렬히 지적하는 보수라니, 정말 멋지지 않은가? 우리 사회가 ‘자기 집을 짓자’는 김대식 교수의 주장에 귀기울였으면 좋겠다.

글 서민 수줍음이 너무 많아, 같은 사람을 다시 볼 때도 매번 처음 보듯 쭈뼛거린다. 하지만 1시간 이상 대화하다보면 10년지기처럼 군다. 기생충학을 전공했고, 현재 단국대 의과대학에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기생충의 변명>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대통령과 기생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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