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4.02 14:52 수정 : 2014.05.02 15:42

“여기가 공연장 맞아요?”

야광 팔찌를 손에 든 중년 남성이 멋쩍은 얼굴로 내게 물었다. 컴컴한 지하로 유유히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에 어색함이 왈칵 밀려왔다. 어색함도 잠시, 한 손에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40~50대 중년 여성들이 모여들었다. 곧이어 파릇한 얼굴의 10대 소녀들이 늦을세라 공연장으로 달려 들어간다. 담배를 비벼 끈 20대 청년들도 그 행렬에 동참한다. 순식간에 눈앞을 스쳐지나간 이들의 연령대를 곱씹어봤지만, 도대체 이 공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감잡을 수 없었다. 공연장에 들어서자 굳이 그들의 나이를 따져볼 필요도,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국악, 록, 힙합, 트로트, 탱고까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공간에서는 남녀노소 구분이 무의미했다.

해금 반주에 비트를 입힌 힙합과 발라드의 합동공연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공연의 막이 올랐다. 무대 위, 전통 악기는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국악의 향취를 진하게 풍기는 공연이었다. ‘거문고팩토리’의 전자거문고와 첼로거문고 이중주는 몽환적인 일렉트릭 음악을 듣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넓은 음역대를 표현하기 위해 개조한 25현의 가야금 3대로 연주한 ‘가야금빛’의 힙합은 경쾌했고, 현을 뜯는 어깻짓은 우아했다. 현대식 트로트는 구성진 판소리를 넘나들었다. 어울리지 않을 법한 것들의 어울림. 그 기묘한 역설이 만들어낸 협연은 국악이 생경한 대중의 청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도구의 경계와 음악의 한계를 무너뜨린 이들의 노력이 소리의 빛으로 살아났다.

공연 중반쯤 되었을까? 제법 익숙한 선율이 난생처음 마주한 악기를 통해 흘러나온다. 피아졸라의 <리베르 탱고>다. 여러 개의 피리를 붙여 만들었다는 생소한 악기는 마치 가우디가 설계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축소판처럼 보였다.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동양의 악기 ‘생황’은 동서양의 조화를 묘하게 이뤄내는 신비로운 악기였다. 피리 소리 같기도, 아코디언 소리 같기도 한 생황의 연주에 피아노 선율이 덧대어지며 한 편의 환상적인 탱고가 완성된다. 악기를 어루만지는 10개의 손가락은 강약을 조절하며 몸체 위에서 춤을 춘다. 관객은 순식간에 신비로운 생황의 음색에 매료된다. 몰아치듯 강렬했던 연주 뒤, 입을 뗀 생황 연주가 김효영씨. 무대 위 그녀의 모습에서 정열적인 탱고 무희가 오버랩됐다.

3월23일 저녁 서울 홍익대 앞 예스24무브홀에서 열린 제3회 ‘Club 나·들’ 콘서트에는 ‘넘침’이 없었다. 어느 것 하나 어색하게 튀거나 겉돌지 않았다. 처연하고도 강렬한, 애잔하고도 폭발적인 국악의 가락은 어떤 음악적 변주에도 이질감 없이 어우러졌다. 그럼에도 제각각의 개성을 잃지 않은 무대였다. ‘나’의 주체성을 잃지 않은 개별자의 ‘들’이라는 <나·들>의 모토에 꼭 어울리는 공연이 아니었을까. 무대가 비워지고 조명이 꺼졌어도 보이지 않는 선율의 잔상은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도 모르게 ‘춘향전’의 장단을 흥얼거렸다. 다음에 이어지는 곡은 피아졸라의 <리베르 탱고>였다.

글 이지희 인턴기자 amour.fati@hanmail.net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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