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4.02 14:43 수정 : 2014.05.02 15:41

“이런 나쁜 놈 같으니!”

<나를 찾아줘>를 읽던 마태우스는 자신도 모르게 꽉 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책의 전반부로 보건대 에이미의 남편인 닉은 천하의 몹쓸 놈이었다. 절세미녀인 에이미와 결혼했으면 성심성의껏 아내를 모셔야 할 텐데 그러지 않았으니까. 잡지사 불황의 여파로 해고된 거야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중요한 것은 그 후. 다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대신 에이미가 “둘이 너무 친한 거 아니냐”며 견제하는 여동생과 같이 술집을 내고, 거의 한량으로 지내는 건 문제가 있지 않은가? 그러던 어느 날, 에이미는 실종되고, 남편 닉은 가장 강력한 용의자가 된다.

아내가 살해된 대부분의 사건에서 범인은 남편이다. 가장 사랑해야 할 둘 사이가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사이가 되는 경우는 흔하디흔하며, 닉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예컨대 다음 구절. “에이미는 때때로 죽이고 싶을 만큼 화를 돋우었다.”(78쪽) 게다가 수사 과정에서 놀라운 일이 계속 드러난다. 닉은 에이미가 실종되기 전부터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던 것. 아내의 실종 전 닉이 1시간 동안 고함치는 것을 목격한 이웃도 있다. 모든 정황이 닉이 범인임을 가리키고 있으니, 다음 구절을 읽을 때는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기술팀이 루미놀 검사를 했거든요. 부엌 바닥에서 형광 반응이 일어났어요. 상당한 양의 피가 그곳에 쏟아져 있었습니다. 다량의 피였어요.”(274쪽)

그러다 에이미의 일기가 발견된다. 무능력하고 성격도 안 좋고 바람까지 피우는 남편에게 에이미는 시종일관 헌신적이었다.

“그만, 그만. 밝은 면을 봐야 한다. 나는 예전만큼 그를 좋아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한다.”(220쪽)

결혼기념일마다 선물을 숨겨놓고 남편에게 찾게 하고, 무너져가는 결혼생활을 살리기 위해 아이를 갖자는 제안도 한다.

“지금이 적당한 때인 것 같아. 새 식구를 맞이하기에.”(290쪽)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내라니! 그럼에도 일기 마지막 대목에는 남편이 자기를 죽일 것 같아 불안하다는 내용이 나온다. 마태우스는 결혼 사실도 잊은 채 하늘을 보며 탄식했다.

“에이미, 차라리 나랑 결혼하지 그랬소! 정말 잘해줬을 텐데.”

이제부터 스포일러. 이 책에는 두 부분으로 나누는 검은 간지가 있는데, 그 간지를 넘기자마자 전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죽은 줄 알았던 에이미는 사실 외딴곳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부엌의 피는 에이미가 자해한 것이었다.

“자기 몸을 칼로 그으려면 아주 특별한 극기심이 필요하다. 피를 많이 흘려야 하지만 의식을 잃을 정도로 흘려서는 안 된다. 헝겊 조각을 입에 물고 팔죽지에 칼을 찔러넣었다. 그런 다음 10분 동안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큰 웅덩이가 생길 때까지 피가 흐르게 내버려두었다.”(338쪽)

자신이 죽고 난 뒤 닉이 받을 생명보험금을 증액하는 등 여러 가지 단서들을 만들었고, 그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경찰에게 발견되도록 만든다. 남편에게 헌신적인 것처럼 보이는 일기장도 사실은 다 조작일 뿐, 에이미의 속마음은 이랬다. ‘바람을 피워? 그래, 너 한번 맛 좀 봐라. 널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야!’

결혼 5주년 기념일에 에이미는 머리를 자르고 금발을 갈색으로 염색한 뒤 평소 봐둔 한적한 오두막으로 들어간다. 1년간 모은 현금 뭉치를 들고.

에이미의 복수극이 펼쳐지는 후반부를 읽다보니 자연스레 유우성씨 생각이 났다. 에이미가 바람을 피우는 남편이 미웠던 것처럼, 국가정보원은 탈북자 출신임에도 서울시 공무원으로 있는 유씨를 증오했던 모양이다. 에이미가 부엌에 핏자국을 남기며 남편을 살인범으로 몰았듯, 국정원은 유씨의 여동생을 협박해 “오빠가 간첩이다”라는 허위 자백을 하게 만들었다. 에이미가 남편이 범인이라는 심증을 굳히게 만들려고 일기장을 조작한 것처럼, 국정원은 1심에서 간첩 행위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은 유씨의 출·입경 기록을 위조함으로써 그가 수시로 북한에 드나드는 간첩인 것처럼 만든다. 아내한테 함부로 하는 것도 모자라 바람까지 피운 남편은 혼이 나야 마땅하다. 하지만 남편에게 살인죄를 뒤집어씌우는 행위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아무리 남편이 밉더라도, 그리고 에이미가 아무리 미녀라고 하더라도, 남편이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죄로 잡혀가게 만드는 것은 파렴치한 범죄다. 마찬가지로 유씨가 설령 간첩이라는 심증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중국 공공기관의 서류를 위조하면서까지 유씨에게 간첩죄를 씌우려는 행위는 그게 아무리 국가안보를 위한 일이었다고 해도 파렴치하기 그지없다.

스포일러 하나를 더 투척하자면, 남편을 살인죄로 몰고 잠적한 에이미는 일이 여의치 않자 다시 남편 품으로 돌아온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희생양을 찾아낸 탓에 에이미는 처벌받기는커녕 “납치됐다가 겨우 살아 돌아온 가련한 여인”이 된다. 잔머리 굴리는 데 에이미 못지않은 국정원은 지금 “그 서류가 위조된 걸 나도 몰랐다”며 희생자임을 자처하고 있다. 여기에 에이미가 갖지 못한 권력자의 총애까지 받고 있으니, 국정원이 처벌받을 리는 없어 보인다. 조작에 관여한 국정원 직원들에게 <나를 찾아줘>를 권한다. 자기들의 무용담과 비슷한 얘기가 계속 나오니, 일반인들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글 서민 수줍음이 너무 많아, 같은 사람을 다시 볼 때도 매번 처음 보듯 쭈뼛거린다. 하지만 1시간 이상 대화하다보면 10년지기처럼 군다. 기생충학을 전공했고, 현재 단국대 의과대학에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기생충의 변명>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대통령과 기생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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