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0.07 17:14 수정 : 2013.11.11 13:51

한국문학에 한 획을 그은 대작가가 “무려 20여 년을 꾸준히 고민해온 결과”라니, <정글만리>가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쉬운 부분은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소 비현실적이고, 그래서 그런지 등장인물 간의 유기적 연계가 부족해 보이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이 책에는 2명의 절세 미녀가 등장한다. 먼저 리옌링. 중국 베이징대 학생인 리옌링의 미모는 “정신이 혼미해질 만큼 아름답고 신비스러웠다.”(1권 133쪽) 심지어 이런 대목도 있다. “얼굴만… 예쁜 것이 아니었다. 가슴은… 잘쏙한 허리는 엉덩이의 윤곽을 더욱 확대시키면서….”(1권 194쪽) 여기다 리옌링의 아버지는 엄청난 재벌이기까지 한데, 이런 여자가 별로 볼 것 없는 한국 남자를 왜 열렬히 사랑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그 한국 남자가 주인공이니까 그냥 넘어가자.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골드그룹 회장 왕링링 또한 절세 미녀다. “그녀 얼굴을 봤느냐”는 질문에 일본 회사원은 이렇게 대답한다. “미인이야. 누구 거든 발딱 서게.”(1권 263쪽) 가슴은 당연히 크고 몸매는 날씬한데다 독신인 재벌그룹 회장, 이런 건 무협지에나 나오는 인물이 아닐까? 그녀가 뭔가 중요한 역할을 하면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니, ‘대체 왕링링은 왜 나온 거야?’라는 의문이 강력하게 든다. 혹시 남성 독자들의 판타지를 위해서 이런 설정을 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야기로만 따지면 다소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이 책이 좋았던 건 중국에 대해 많은 지식을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옛 소련과 달리 같은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이 왜 점점 잘나가는지, 중국에서 사업하려면 어떤 게 유망하고 어떤 점을 조심해야 하는지, 중국에서 볼 만한 관광지는 어디인지, 중국인이 좋아하는 숫자와 색깔, 미신은 뭔지 등에 대해 <정글만리>만큼 잘 알려주는 책이 또 있을까? 책을 읽고 난 뒤 중국에서 학위를 딴 우리 학교 교수와 40분간이나 중국에 관해 토론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그만하면 책값이 아깝진 않다.

이 책을 소설이 아닌 다큐멘터리로 가정하고 읽다보니 중국과 우리나라 사이에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남성을 위한 밤문화가 기형적으로 발달한 것, 성형 열풍과 명품 선호가 엄청난 게 공통점이라면, 다음은 우리나라 남자들이 들으면 충격을 받을 만큼 큰 차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이런저런 방법으로 해치는 경우가 많은데 중국에서는 여자에 대한 보복이 전혀 없었다. 여자를 받들고 아내를 섬겨야 한다는 사회적 가치관 때문이었다. 그 가치관에 따라 남자가 음식도 하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는 것이 중국의 일반적 세태였다.”(2권 102∼103쪽)

남자가 혼자 돈을 버는 외벌이 가정은 물론이고 맞벌이 가정에서도 남자들이 집안일을 거의 안 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이러다 한국 여자가 중국 남자랑 우르르 결혼하는 게 아닐까 걱정되기도 한다. 심지어 “여자가 남자를 때리면 아무 문제가 안 되고, 남자가 여자를 때리면 즉각 구속하는 현행법 때문에 마누라한테 얻어터지면서 사는 남편들이 숱한 것이 중국”이란다. 그러니 주인공에게 한국 친구들이 이렇게 핀잔을 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얼굴 좀 반반하다고 뿅 가지 마라. 얼굴은 10년이면 주름 잡히는데 노예 생활은 평생이다.”(2권 107쪽)

하지만 결정적 차이는 부정부패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인이 5천만원 정도를 받으면 다들 이럴 거다. “저런 나쁜 놈!” “어떻게 그렇게 큰돈을 받을 수가!” 하지만 중국 관리들은 “사업비의 5%를 잡숫는 것은 지극히 양심적인 것이고, 10%를 잡숫는 것은 보통 양심”(1권 281쪽)일 정도로 부정부패가 심하고, 거기에 더해 얼나이(첩)까지 둔다.

“중국 천지의 예쁜 여자들 절반은 부자나 관리의 얼나이가 된”다니, 놀랍지 않은가?(3권 161쪽)

그럼에도 중국 인민은 왜 이런 현실에 불만을 안 갖는지 기이하기까지 하다. 3권 막판에 그 해답이 나온다. 85%가 농민인 중국인은 수천 년 동안 소작인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마오쩌둥이 토지개혁을 실시해 소작인 신세를 면하게 해줬으니 그를 신으로 모실 수밖에. 그렇게 공산당에 대한 믿음이 큰데, 관리들은 모두 공산당원이니 그들이 돈을 좀 먹는다고 해서 뭐라고 하지 않는단다.(3권 377~378쪽)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지금 중국 얘기를 할 처지가 못 된다. 우리나라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분들을 보라. 정부가 무슨 짓을 해도 맹목적인 지지를 해댄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댓글 사건도 별거 아닌 사건이고, 복지 공약을 모조리 뒤집어도 그저 좋단다. 중국 공산당이야 소작인을 토지 소유자로 만들어주었지만, 새누리당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분들은 대체 어떤 혜택을 받아서 저러는 걸까? 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60%라니, 중국인이 부정부패에 빠진 관리들에게 분노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놀랍지 않은가.

글 서민 수줍음이 너무 많아, 같은 사람을 다시 볼 때도 매번 처음 보듯 쭈뼛거린다. 하지만 1시간 이상 대화하다보면 10년지기처럼 군다. 기생충학을 전공했고, 현재 단국대 의과대학에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기생충의 변명>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대통령과 기생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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