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0.07 15:22 수정 : 2013.10.09 20:11

‘세월이 약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을 꼽아보라면 아마 오랜 세월 어머니가 정성껏 해주신 음식에 길들여진 입맛일지 모른다. 60년이 넘는 오랜 분단 세월은 남북한 사이 음식문화에도 변화를 가져왔음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경제적 풍요로움을 이루어낸 남한에서는 음식 메뉴에 따라 쓰는 조미료와 양념만 수십 가지에 달한다. 간장만 하더라도 조림·국·볶음에 따라 쓰는 종류가 다르다보니 헷갈릴 때가 빈번하다. 남한 음식을 처음 대했을 때 들었던 느낌은 반찬에 단맛이 강하다는 것이다. 태어나 지금까지 반찬은 소금이나 간장으로 간을 맞춘다는 고정관념이 박혀 있던 터라 다른 것은 몰라도 생선 요리에 단맛을 내는 설탕이 들어간다는 것은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웠다.

남한에선 언제부터 이렇게 반찬에도 설탕을 넣게 되었는지 궁금하지만, 음식문화라는 것이 원래 자연지리적 조건에 따라 지역마다 다양하게 생산되는 재료나 조리법과 시대별 상황에 따라 변화를 거듭하게 마련임을 감안하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북한에서는 원재료 고유의 맛을 최대한 살리느라 기본적으로 간장·된장·소금으로만 간을 맞추어 맛을 낸다. 또한 냉장고가 없다보니 장기간 보관을 위해서라도 말리거나 절이는 등 전통적인 방법을 이용한다. 그래서인지 내게 북한 음식은 기본적으로 ‘짜다’는 기억이 남아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경제적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북한이지만 시대에 따라 변화돼가는 먹거리의 유래와 이와 연관된 일화들을 간략하게 소개해보려고 한다.

북에선 귀한 함흥·평양냉면… 귀한 손님에겐 국수

남한 사람의 흔한 오해 가운데 하나가 북향민이라면 누구나 ‘함흥냉면’ 혹은 ‘평양냉면’을 만들 줄 알 거라고 짐작하는 것이다. 말이야 바른 대로 말이지, 만들 줄 알기는 고사하고 북한에 살면서 함흥냉면이나 평양냉면을 먹어본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도 의문이다. 운이 좋아 평양이나 함흥에서 살지 않는 한 접하기 어려운 일임은 불 보듯 뻔하다. 동서남북 발길 닿는 대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남한에서야 맛집이 있다고 하면 일부러라도 물어물어 먼 곳까지 찾아가지만 북한에서는 특권층이 아닌 다음에야 맛있는 음식을 동네방네 찾아다니며 먹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또 놀라웠던 일은 함경도 음식점이 오히려 남한이 북한에 비길 수 없을 정도로 월등히 많다는 것이다. 특히 남한에는 냉면이 마치 북한의 별미처럼 알려져 있다. 그러나 북한의 냉면은 한국전쟁 이후 남쪽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된 실향민들이 북한식 조리법에다 주 고객층의 입맛을 고려한 남한식 조리법을 한데 어울러 전수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고향이 함흥인 북향민들의 말을 들어보면, 대한민국 어디서나 널리 알려진 함흥냉면은 놀랍게도 정작 함흥에는 없다고 한다. 아마 중국 음식으로 알려진 자장면이 정작 중국에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 경우가 아닌가 싶다.

북한 음식의 대표주자로 널리 알려진 두 냉면의 차이점은 주재료인 면에 있다. 함흥냉면은 주로 감자전분을 재료로 쓰고 평양냉면은 메밀을 쓴다. 둘 다 북한 냉면이지만, 태생이 함북이라 그런지 내 입맛엔 담백한 평양냉면보다는 매콤한 함흥냉면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

북한에서는 결혼식에 초대한 손님들에게 반드시 대접하는 것이 국수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집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국수 등급도 상·중·하로 나뉘는데 농마국수, 밀국수, 옥수수국수가 그것이다. 잔치에 다녀온 사람들이 어떤 국수로 대접받았느냐에 따라 잔치를 평가할 만큼 북한에서 국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농마(감자전분)국수로 손님상을 차렸다면 정말 잘 치른 잔치로 두고두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반면 옥수수국수로 손님 대접을 하면 ‘성의가 부족하다’ 또는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남한에서는 생일이면 꼭 미역국을 먹지만, 북한에서는 특별히 정해진 형식 없이 형편에 따라 맛있는 음식을 해준다. 하지만 생일상에 꼭 빠지지 않는 음식이 있는데 바로 국수다. 기다란 국수 가락처럼 장수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당면순대의 낯섦, 향수 달래는 두부밥

남북한에서 유사한 형태로 먹지만 조리법이 다른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김치볶음밥을 들 수 있다. 남한에서는 이미 해놓은 밥과 잘게 썬 김치를 함께 볶아 조리하지만 북한은 이와 정반대다. 잘게 썬 김치를 기름에 볶다가 가마 밑바닥에 잘 펼쳐놓고 그 위에 미리 불린 쌀을 안쳐서 끓여낸다. 김치볶음밥을 앞에 놓고 북향민들이 낯설어하는 이유가 이런 조리법의 차이 때문이다.

상당수 북향민들이 좀처럼 익숙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한 음식으로 순대가 있다. 나도 정착 초기에 처음 남한의 순대를 보고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엄연히 모양은 순대인데 그 맛은 도저히 순대라고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 같은 경험을 한 북향민이 한둘이 아니란다. 떡볶이, 튀김, 어묵 등과 더불어 대표적인 국민 간식 중 하나로 손꼽히는 순대이지만 말이다.

남한에서는 깨끗이 씻은 창자 속에 당면을 넣어서 만드는데, 북한에서는 쌀과 채소를 넣어서 만든다. 남한에서는 당면순대가 길거리 어디에서나 사먹을 수 있을 정도로 값싸고 흔하지만 북한에서 순대는 환갑상이나 큰상(신랑·신부가 결혼식 날 받는 상) 차림에서 어쩌다 구경할 수 있을 정도로 흔치 않은 음식이다. 갓 잡은 돼지의 창자를 된장과 소금을 이용해 깨끗이 씻은 다음 신선한 피와 불린 쌀, 잘게 다진 내장과 배추시래기, 파, 소금, 된장 등을 고루 버무려 창자 속으로 밀어넣는다. 그다음 물이 끓는 가마솥에 넣어 일정 시간 푹 쪄내는 것이 북한식 순대인데, 워낙 쉽게 대할 수 없는 귀한 음식이다.

남한에서 산 세월이 제법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북한식 쌀순대와 달라도 너무 다른 당면순대에 젓가락이 잘 가지 않는 것을 보면 입맛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닌 듯하다. 남한 당면순대의 유래에 대해 알아보니 과거 당면 공장에서 당면을 뽑아내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스러기 당면을 어디에 넣을지 고민하던 중 우연히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는 남한도 먹거리가 귀했던 터라 버리기 아까워 당면으로 순대를 만들었는데, 의외로 사람들의 반응이 좋아서 오늘날처럼 쉽게 접할 수 있는 길거리 대표 간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당면순대의 유래를 듣다보니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남한에도 제법 알려진 ‘두부밥’인데, 북한의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이다. 북한의 시장에서 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두부밥의 유래는 ‘사회주의 조국으로의 귀환’으로 온 세상에 널리 알려진 ‘귀국자’(일본에서 귀국한 북송 재일동포를 일컫는 말)들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북한에서 살게 된 이후 일본에서 먹던 유부초밥을 만들어 먹으려 하니 마땅한 재료가 없어서 대체재로 찾은 것이 바로 두부였다. 두부를 삼각형으로 얇게 잘라 기름에 노릇하게 튀긴 다음 칼집을 넣은 뒤 미리 준비한 쌀밥으로 속을 꽉 채우고 그 위에 짭조름하게 만들어놓은 고춧가루 양념을 바른 것이다.

귀국자들이 향수를 달래며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 만들어 먹던 두부밥이 1990년대 즈음부터 시장에 진출해서 북한 사람들의 허기진 배를 달래주었다. 용도에 따라 술안주로, 간편한 식사 대용으로 쓰이기 때문에 손님 접대에 더할 나위 없이 무난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워낙 빠듯한 살림살이에서 밥과 반찬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두부밥은 서너 개를 먹으면 한 끼 식사가 될 정도로 든든한 장점도 있다. 북한 고유의 전통음식이라고 하기엔 부족해 보이지만 매콤한 북한식 두부밥을 한번 맛본 사람은 유부초밥과 유사하면서도 특유한 맛 때문에 다들 좋아한다. 그래서 남북한 출신이 함께 어우러지는 모임을 할 때면 반드시 준비해 가는 것이 두부밥이다.

변변한 대접음식 없을 때 ‘속도전가루’

음식문화가 발달한 남한에서는 가는 곳마다 지역을 대표하는 맛집, 수십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원조 음식점을 만날 수 있다. 남한에 와서 더없이 부러운 것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하나원’(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시설)에서 교육받을 당시 1박2일 일정으로 홈스테이를 나간 적이 있다. 노래 <소양강 처녀>로 유명한 강원도 춘천이었는데, 춘천 하면 닭갈비가 명물이라고 했다. 춘천에 온 이상 반드시 맛보아야 한다며 집주인이 데려간 음식점은 아담한 기와가 인상적이었다. 그때 처음 경험한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남한에 살면서 편한 것 중 하나가 손님 대접이라 할 수 있다. 한식·양식·중식 등 식성대로 음식점을 선택할 수 있거니와 부득이한 경우엔 전화 한 통으로 배달시켜 대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의가 부족하다고 보일 수도 있겠지만 워낙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모양새다. 북한은 남한만큼 외식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까닭에 불쑥 손님이 찾아오면 내놓을 음식이 변변치 않아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북한에서는 이런 때를 대비해서 나름대로 빠른 시간 안에 손님 대접을 할 만한 식재료가 공공연하게 쓰이고 있다. 본래 공식적인 이름은 ‘펑펑이가루’이지만 민간에서는 흔히 ‘속도전가루’라고 부르는 옥수수변성가루가 그것이다.

음식 이름이라기엔 다소 생뚱맞을지 모를 속도전가루의 유래는 짧은 시간 안에 먹음직스러운 떡으로 변신한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 아닐까 그저 짐작해볼 따름이다. 미숫가루처럼 집에서 개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허락한 조합 형태의 식량 임가공 업체를 통해 만들 수 있다. 속도전가루는 통옥수수에 기계로 압력과 열을 가해 1차로 튀겨낸 다음 다시 분쇄기에 넣어 보드랍게 갈아낸 가루인데, 여기에 물을 적당히 넣어 칼국수 반죽을 만들듯이 잘 이겨주면 금세 쫄깃하고 먹음직스러운 떡으로 변신한다. 이것을 먹기 좋게 적당한 크기로 동그랗게 말아 기름을 바르거나 콩이나 팥고물에 묻혀 먹는다. 만든 즉시 먹어야지 시간이 지나면 돌멩이처럼 딱딱하게 굳는 것이 단점이다. 속도전가루로 떡을 만들어서 먹으려면 평상시 끼니 마련에 필요한 알곡량의 두 배(옥수수 1kg에 800g 비율로 교환 가능) 정도가 들기 때문에 손님을 접대하거나 집안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부들이 선호하지 않았다.

즉석식품으로 유용한 속도전가루의 필요성은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1990년대 중반부터 급격히 부각됐다. 북한에서는 타지로 여행을 떠날 때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것이 바로 ‘도중식사’다. 당시만 해도 전력 사정이 악화돼 열차가 정시에 오는 때가 거의 없었다. 운 좋게 출발하더라도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보니 하루면 도착할 거리도 며칠씩 걸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언제 도착할지 모를 기차를 기다리느라 역에서 꼬박 날밤을 새워야 했다. 그러다보니 미리 준비한 도중식사를 출발도 하기 전에 먹어치우고선 다시 집으로 들어가는 웃지 못할 일도 생겼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 어렵사리 도중식사를 준비하더라도 기껏해야 하루나 이틀 정도 먹을 분량인지라 차츰 선호하게 된 것이 속도전가루였다. 식사 준비에 별도로 필요한 것 없이 물만 있으면 되니 이름 모를 산골짜기에 기차가 멈추더라도 능히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집을 떠나 타지에서 장기간 배고픔과 싸우며 생활해야 할 때도 보관이 용이한 속도전가루는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보충식량이 되었다.

남에서 먹는 북 음식, 어머니 손맛은 어디에

속도전가루, 두부밥의 뒤를 이어 2000년대부터 북한에서는 ‘인조고기’가 시장에 등장했다. 고기가 귀한 북한에서 콩에서 기름을 뺀 나머지를 가지고 압력을 이용해 만든 고기 대용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단백질이 풍부한 콩 부산물로 만들어서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할 수 있는데다 비싼 물가에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양도 많아 인기가 높다. 간식처럼 그냥 먹기도 하고, 물에 불려 반찬으로 볶아 먹기도 하고,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다음 칼집을 내고 밥을 넣은 뒤 매콤한 양념을 발라서 먹는 등 다양하게 조리해 먹는다. 북향민 수가 해가 갈수록 늘다보니 두부밥이며 인조고기밥, 북한순대 등 고향 음식들을 소규모로 만들어 파는 곳도 생겨났다. 가끔 고향의 맛이 그리워 만들어 먹기도 하지만 예전 어머니의 손맛은 도저히 느낄 수 없어서 아쉽다. 원재료의 차이 때문인지, 아니면 예전처럼 배고픔에 시달리던 때가 아니어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럴지언정 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달래주는 데는 음식만 한 것이 없다. 음식 관련 전문가가 아닌 까닭에 설명이 부족했지만, 이번에 소개한 북한 음식에 깃든 유래와 차이점을 통해 북한 주민의 고단한 삶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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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동명숙 함경북도 청진 출신. 한국에 온 지 10년이 됐다. 경북 안동에서 7년 동안 식당일을 하고, 그사이 결혼해 가정을 꾸렸으며, 2010년 동국대 북한학과에 입학해 늦깎이 대학생 생활을 하고 있다. 생활력 강한 함경도 ‘또순이’와 아무리 힘들어도 웃음을 잃지 않는 ‘캔디’가 동시에 있는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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