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9.01 16:48 수정 : 2013.09.02 14:09

북향민이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인상 깊게 생각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해외 입양인이 출연한 뉴스나 토크쇼·정보 프로그램 등이다. 수년에서 수십 년 전 해외로 입양돼 성장한 이들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때론 서툰 한국말로, 때론 유창한 외국어로 자신의 뿌리를 찾는다며 간절히 호소한다. 해외 입양인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태어났고 조국을 떠나야 했다. 그들은 내 한 몸 가누기 버거운 모진 세월의 쓰라림을 견뎌야 했던 슬픈 운명의 주인공이다. 그런 해외 입양인들이 몸도 마음도 훌쩍 자라 의젓한 모습으로 자신이 태어난 한 국을 찾았다. 그들은 자신을 해외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부모를 용서한다며 사랑한다고 가슴 절절히 고백한다. 부모를 찾겠다는 해외 입양인의 모습을 보면 어느새 내 눈시울은 촉촉이 젖 는다. 어느 날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입양 관련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느닷없이 떠오른 책이 있다. 오래전 북한에서 읽은 해외 입양을 주제로 한 소설이었다. 사실 남한의 해외 입양은 북 한이 ‘부익부 빈익빈의 썩고 병든 자본주의 세상=남조선’에 대해 비난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들 먹이는 말 중 하나이다. 북한 당국은 “남한 정권이 오갈 데 없는 가련한 고아를 ‘입양’이라는 허 울 좋은 이름으로 해외에 팔아넘겨 돈벌이에 혈안이 돼 국제적 망신을 자처하고 있다”며 강도 높은 비난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당시 북한 학생에게 남한의 사회상을 보여준 그 소설을 이 기 회에 좀더 상세히 소개하려 한다.

남한 비판 소설 <머나먼 나라>

남한의 해외 입양에 대한 눈물겨운 현실을 다룬 소설의 제목은 <머나먼 나라>다. 지금 대 략 기억나는 줄거리는 이렇다. 아득한 수평선 너머 갈매기가 정답게 날아예고(날아가고), 하얀 파도가 끊임없이 출렁이는 동해 어느 한적한 어촌에 선희와 남수 남매가 사랑하는 부모와 단 란하게 살아간다. 어느 날 선희와 남수 남매에게 갑작스런 불행이 연이어 닥친다. 모두 어려운 시절, 먹고살기 위해 남매의 부모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한다. 그러나 선희 엄마는 병이 들고, 돌 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병세가 깊어진다. 선희 아버지는 아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거액의 빚 을 내어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다니며 병간호에 전념한다. 이런 남편의 노력도 아랑곳없이 결국 선희 엄마는 어린 남매를 남기고 세상을 등진다. 설상가상으로 빚 독촉에서 벗어나기 위해 동 분서주하던 아빠는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악질 선주의 꼬임에 넘어가 원양어선을 탄다. 하지만 돌아오기로 약속한 날짜가 훌쩍 지나도 아빠는 감감무소식이다. 남매는 하루아침에 오갈 데 없는 고아의 처지가 된다. 불쌍한 선희·남수 남매를 보다 못한 동네 사람들이 십시일반 돌봐주 었다. 그러나 워낙 너나없이 빠듯한 살림이라 더 이상 동네 사람에게 신세 지면서 머물 수 없게 된 남매는 결국 거리로 나와 이리저리 떠돌게 된다.

하루하루 구걸하며 살아가던 선희·남수 남매는 아버지가 돌아올 때까지 먹고 자게 해준 다는 누군가의 꼬임에 따라 ‘홀트아동복지회’의 문을 두드린다. 이곳에서 누나 선희는 프랑스 로, 동생 남수는 단마르크(덴마크)로 입양(책에는 말이 좋아 해외 입양이지 결국 아이들을 팔 아먹는 것으로 상세하게 묘사했다)된다. 동생과 헤어져 각기 다른 나라로 입양된다는 날벼락 같은 사실을 뒤늦게 안 선희는 동생과 함께 아버지를 기다려야 한다며 복지회에서 내보내 달 라고 몸부림치지만 아무도 선희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선희는 자신을 데리러 온 양부모에게 동생 남수도 함께 입양해주면 뭐든지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간청하며 눈물을 흘렸 다. 하지만 양부모는 여자아이 한 명만 필요하다며 매정하게 거절한다. 동생 남수와 함께 서로 의지하며 언젠가 돌아올 아버지를 기다리려던 선희의 가냘픈 소망은 고아들의 해외 입양을 둘 러싸고 벌어지는 이권 다툼의 희생양이 되어 여지없이 짓밟힌다. 결국 선희는 하나뿐인 어린 동생 남수와 기약 없는 생이별을 강요당한다. 선희·남수 남매의 해외 입양 날짜를 며칠 앞둔 어느 날 풍랑에 밀려 소식이 끊긴 아버지가 구사일생으로 고향에 돌아와 남매의 행방을 수소 문한다. 아버지는 아이들이 홀트아동복지회에 머물고 있음을 알게 된다. 물어물어 홀트아동 복지회를 찾아온 아버지는 선희·남수 남매를 돌려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자녀를 찾으려면 거액의 위약금을 내놓으라는 입양기관 관계자의 적반하장식 태도에 아버지는 끓어오르는 분 노를 참지 못하고 폭력을 행사한다. 업무방해죄로 경찰 조사까지 받은 선희 아버지는 두 눈 뜨 고 자식을 뺏기는 비참한 현실에 절망하며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동명숙 함경북도 청진 출신. 한국에 온 지 10년이 됐다. 경북 안동에서 7년 동안 식당일을 하고, 그사이 결혼해 가정을 꾸렸으며, 2010년 동국대 북한학과에 입학해 늦깎이 대학생 생활을 하고 있다. 생활력 강한 함경도 ‘또순이’와 아무리 힘들어도 웃음을 잃지 않는 ‘캔디’가 동시에 있는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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