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8.06 13:17 수정 : 2013.08.07 18:00

1. 근대 정치 체제와 주권의 신화

‘각 국가는 동등한 주권을 갖는다.’ 주권국가(Soverign State)를 단위로 하는 근대의 전 지구적 정치 체제는 이 명제에 기초해서 성립했다. 이 명제는 17세기 말 이른바 ‘웨스트팔리아 (Westphalia) 체제’로 통칭하는 유럽 내 정치 질서의 근대적 재편을 통해 실정화됐으며, 20세 기 중·후반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된 아시아·아프리카 신생국가의 등장으로 전 지구를 아우르 는 국제질서가 됐다.

이렇듯 주권국가 체제가 약 300년에 걸쳐 전 지구적으로 확장되면서 공간적 넓이를 획득 했다면, 19세기에 등장한 ‘민족주의’(Nationalism)는 국가가 주권을 가진다는 관념이 과거로 소급되어 시간적 깊이를 획득하게끔 했다. 다시 말해 민족주의 운동과 담론을 통해 주권은 17 세기에 탄생한 관념이란 역사적 한계를 넘어서 고대에서 현재까지 존속해온 ‘민족·국가’의 독 자적 생존 권리 따위를 지시하는 초역사적 관념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권 과 민족주의의 상호연동이야말로 근대의 글로벌 정치 체제 형성의 근원이다. 민족주의 운동으 로 추동되어 궁극적으로 주권국가의 수립으로 완수되는 20세기의 식민지 해방 프로세스는 이 러한 상호연동의 압축적 파노라마와 다름없으며, 오랜 기간에 걸친 ‘주권의 신화’ 주조 작업에 마침표를 찍은 사건인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권은 17세기 유럽의 고유한 역사적 상황에서 발생한 정치적 관념이 라기보다, 고대로부터 민족·국가에 내장되어온 불변의 실체인 것처럼 사념되기 마련이었다. ‘근대 학문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역사학에 힘입어, 현재 존립해 있는 국가를 기준으로 과거로 소급해 주권을 초역사적 실체로 자연화하는 것이 19세기 이래 정치적 사유의 주된 패러다임 을 형성해왔다. 그런 까닭에 근대의 정치 체제나 질서가 파국을 맞이할 때마다 근원적 성찰이 나 비판의 화살이 ‘주권의 신화’를 겨냥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카를 슈미트, 한 나 아렌트, 미셸 푸코, 조르조 아감벤 등 주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 인물이 모두 유 럽의 정치적 파국 속에서 스스로의 사유를 제시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유럽 근대의 정치 질서가 파국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민족주의적 상상과 감정을 통해 ‘각국이 동등한 주권을 갖는다’는 주권의 신화를 급진적으로 문제 삼아야 함을 주장했던 것이다. 제1차·제2차 세계대 전, 냉전 체제, 68혁명, 그리고 코소보전쟁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주권의 신화로 인해 온갖 비 판적 정치 행위가 결국에는 파국을 주도한 주권국가 체제로 환류되는 역설적 비극을 지긋지긋 하게 목도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구의 주권 이론·비판을 살펴본 까닭은 주권에 대한 근본적 사유를 위해서는 주 권을 국가나 민족에 귀속시키지 않는 관점이 필요함과 동시에, 근대의 글로벌 정치 체제란 주 권의 신화에 토대를 두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즉 국가나 민족이 주권을 보유한다는 관점을 정치적 사유의 출발점에 두는 것이 아니라, 주권이 파국을 맞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국 가나 민족 등의 제도·관념이 고안되었음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의 민족국 가 체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주권을 자연화해온 온갖 장치를 어떻게 탈자연 화할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대체해야 한다. 그것이 슈미트, 아렌트, 푸코, 아감벤 등이 주권을 근대의 글로벌 정치 체제의 한계로 문제화한 함의이다. 즉 현재 동아시아만이 아니라 글로벌 차원에서 인간의 일상적 삶을 위태롭게 만드는 영토 분쟁이나 원전 문제 등에 대처하기 위해서 는 주권 관념을 탈자연화해, 다시 말해 주권이 국가나 민족에 귀속된다는 불변의 전제를 상대 화해, 근대의 글로벌 정치 체제의 기본 문법을 재서술하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아래에서는 이상의 논의를 염두에 두면서 일본과 한국의 두 명민한 지성을 소환하여 동 아시아에서 이러한 주권 관념이 어떻게 변주되어 착상되면서 어떤 문제 상황을 낳았는지 살펴 보려고 한다. 두 지성이란 마루야마 마사오와 최인훈인데, 이들은 각각 일본과 한반도의 상황 속에서 주권을 문제화한 인물이다. 이들은 동아시아에서 주권 관념이 내적인 분열을 끝내 극 복하지 못한 채 근대적 정치 체제의 원천적 실패를 드러냈다고 파악했다. 이 실패를 사념하는 과정에서 마루야마와 최인훈은 각기 모종의 정치적 주체를 형상화했는데, 후술하겠지만 그것 은 주권의 내적 분열을 극복할 ‘공공적 주체’의 모습과 다름없다. 즉 이들은 일본과 한반도에서 주권의 신화가 어떻게 변주되어 전개되는지 추적하면서, 주권의 불안과 분열이 초래한 다양한 비극과 희극을 넘어서는 주체의 형상을 ‘공공성’이라 부를 수 있는 비판 기획 속에서 주조해냈 고, 그 실패를 목도하며 깊은 절망에 빠졌던 것이다. 이제 그 과정을 마루야마와 최인훈의 사 상영위의 윤곽을 부조하면서 추적한 뒤, 그들을 깊은 회의에 빠뜨린 ‘공공적 주체’의 창출 가능 성을 다시 한 번 타진해보려 한다.

2. 근대 일본과 주권의 내적 균열

“‘국제사회’는 즉자적으로 지구에 존재한 것이 아니라 발생의 유래(기독교 공동체)로부터 봐도, 또 근대 국제사회의 구조(주권적 국민국가가 평등한 입장과 권리를 갖고 ‘외교관계’를 맺 는 사회)로부터 봐도 원래 유럽 문화권을 전제로 한 역사적 범주이다. 동양에는 예로부터 인 도·이슬람·중국 등 몇 가지 문화권의 병존과 그사이의 이른바 우연적 교섭과 접촉은 있었지 만, 유럽 세계와 병치될 수 있는 의미에서의 통일적 ‘아시아 문화’ 같은 것도, ‘국제관계’도 19세 기 말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기사 전문은 <나·들> 인쇄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김항 연세대 국학연구원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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