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5.06 21:29 수정 : 2013.05.07 14:10

가수 장기하가 “미지근한 싸구려 커피를 마시며 눅눅한 비닐 장판에 발바 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고 노래할 때, 나는 우리나라 대중가요에 이 이상 의 가사는 나올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의 노래 ‘싸구려 커피’는 마치 벼룩시 장 허접스러운 고물더미에서 오래된 유물을 찾아낸 것 같은 충격을 주었다. 갈 곳 없이 방구석 비닐 장판 위를 허우적거리는 실업청년의 일상과 감수성을 여지 없이 드러낸 리얼리즘이 바로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대중가요가 삶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음이 놀랍고 반가웠다.

‘K팝 스타 2‘에서 우승한 악동뮤지션의 노래는 사실적이지만 전형적이지는 않다. 시험·진학·학교폭력에 찌든 우리 10대들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 강재훈 기자
하지만 남매 듀오 악동뮤지션(SBS TV <일요일이 좋다: K팝 스타 2> 우 승)이 “발가락부터 시작된 성장판 닫히는 이 기분”을 이야기하고 “나의 미래가 being like 띵띵 불어버린 라면인 건가”라고 말할 때의 충격 또한 ‘싸구려 커피’ 못지않았다. 악동뮤지션은 10대의 감수성으로 일상을 노래한다. 예전에도 10대 의 감수성을 노래한 밴드가 있었다. ‘선생님 사랑해요’와 ‘오락실’을 부른 한스밴 드가 그랬다. 하지만 “단 한번이라도 나 그분 앞에서 여자이고 싶어”(‘선생님 사 랑해요’)라고 말하는 혹은 “어른들은 아직 몰라 내가 어린 줄로만 알아”(‘호기심’) 라고 말하는 한스밴드는 악동뮤지션과 시선을 함께하지 않는다. 한스밴드에게 10대의 삶은 선생님(‘선생님 사랑해요’), 어머니(‘어머니의 일기’), 아버지(‘오락실’) 같은 어른과의 관계 속에 있었다. 한스밴드의 음악은 10대의 노래라기보다 어른 이라는 대타자의 시선이 내재된 자아 이상의 산물이었다. 그러므로 같은 또래 에게 보내는 이들의 메시지는 교훈적이다. 그러나 악동뮤지션의 노래 속 10대는 지금 여기서 그들의 삶을 살고 있다. 10대다운 생각을 그 나이답게 노랫말에 실 어 부르는 그들은 노래하는 어린 홍상수 같기도 하고, 거꾸로 10년을 지나친 장 기하 같기도 하다. 서태지가 ‘교실 이데아’에서 “좀더 비싼 너로 만들어주겠어. 네 옆에 앉아 있는 그 애보다 더”라고 노래할 때의 통렬함과 카타르시스는 없지만, 다른 차원에서 결코 덜하지 않은 울림을 낸다.

악동뮤지션의 자작곡‘라면인건가’는 그룹 ‘어떤날’의 노래‘오후만 있던 일요일’을 떠올리게 한다. 오후에야 잠에서 깬 일요일은 오후 밖에는 없다. 늦은 잠에 머리는 무겁고 온몸은 늘어진다. 날마다 겪는 하루지만 생경하고 어색하다. 현실감 없는 이 하루는 마취된 몸뚱이마냥 내게 맞서 소외된 영혼을 잠식한다. 하지만 ‘라면인건가’는 ‘어떤날’과 결이 다른 감수성으로 같은 하루를 노래한다. 일상에서 겪는 비현실이 ‘오후만 있던 일요일’이라면, ‘라면인건가’의 하루는 직접적이고 현실적이다. 미칠 것 같은 나른함, 그 느낌을 촉각적으로 표현한 ‘오후만 있던 일요일’은 패닉의 노래‘달팽이’ 그리고 앨범 <밑>의 노래들 같은 초현실적 감수성과 잇닿은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의미를 채우지 못해 공허하게 남은 하루, 날마다 하는 후회와 자책은 ‘오늘도 라면인건가’라는 노랫말 속에서 현실과 마주한다. 같은 시공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은 재미있다.

 일상의 세세한 결을 따라 가사를 짓고 가락을 얹는 악동뮤지션의 노래는 그러므로 10대의 일상을 삽화적으로 그려낸다. 한국인을 사랑하게 된 외국인의 사랑 고백을 10대의 상상력으로 수다스럽게 풀어낸 ‘외국인의 고백’은 그들이 던지는 호기심의 경계를 확대한다. 놀라운 건 가사나 음율 자체의 완성도와 미학적 가치가 아니라, 그런 호기심 그리고 그것을 노래로 만들려는 생각이다. 이런 참신함은 그들 노래의 세세한 표현 속에서도 발견된다. 이를테면 ‘매력 있어’는 내 눈앞의 그/녀를 ‘다이어트할 때 마주친 치킨’, ‘대기업 회장 비서’, ‘겨울밤 뜨끈한 오뎅 국물’보다 매력 있다고 표현한다. 얼토당토않게 부조리스럽지 않지만 통상의 어법과 관용에서 벗어난 이들의 표현은 마치 관련 없는 일상의 조각을 한데 모아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하는 조르주 브라크의 ‘파피에 콜레’(유화의 한 부분에 신문지 등의 인쇄물을 자유롭게 붙이는 회화 기법)를 닮았다.

악동뮤지션은 놀라운 친구들이다. 시간이 흐르고 공부가 쌓였을 때, 이들이 들려줄 음악과 이야기는 상상하기 힘들다. 천부적 재능과 감수성을 바탕으로 세상에 대한 통찰과 음악적 훈련이 더해진다면 나름 일가를 이룰 만한 재목으로 성장할지 모른다. 이들의 등장을 보고 사람들은 기획사가 해야 할 인재 발굴과 선발을 방송사가 대신한다고 비판한다. 는 확실히 개인의 피눈물 나는 노력을 곶감 빼먹듯 하는 대기업의 채용 전략을 기획사에 적용하는 효율적 플랫폼으로 보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상업적 시스템에 따라 악동뮤지션의 재능과 능력이 훼손될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악동뮤지션의 감성과 음악은 양현석(YG엔터테인먼트 대표· 심사위원)이 “어렵다” 혹은 “대중적이지 않다”고 평했듯, 소수적 음악 코드를 지닌다. 악동뮤지션의 음악은 ‘K팝’이라고 부르는 우리나라의 주류 대중음악과 거리가 있다. 이 음악의 감수성은 인디 장르에 가깝다. 그러므로 주류 시장에 맞는 대량소비상품의 기획을 최우선으로 하는 대규모 기획사는 이들과 궁합이 맞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악동뮤지션의 출발점은 장기하가 ‘붕가붕가레코드 가내수공업 프로젝트’로 시작한 것과 다르다. 악동뮤지션은 텔레비전 오디션 프로그램의 우승자 출신이다. 이미 ‘네임드’가 되었다. 굳이 SM·YG·JYP 엔터테인먼트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어떤 기획사를 선택하든 지금보다 훨씬 성장할 것이다. 그만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악동뮤지션의 노래는 사실적이지만 전형적이지 않다. 몽골에서 홈스쿨링을 하고 기타와 노래를 배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하는 남매가 우리 10대들의 전형일 리 없다. 자주색 버스에 실려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오락가락하는 아이들의 고단한 일상은, 그러므로 악동뮤지션의 음악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이들의 노래에는 시험, 진학, 학교폭력에 대한 걱정이나 부담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라면 반 쪽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어떤 하루, 아니꼬운 친구와의 신경전에 희생된 저릿한 다리, 사람들 앞에서 점점 더 나아지기 바라는 내 모습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또 다른 차원의 괴리와 소외를 낳는다. 악동뮤지션의 등장이 놀랍도록 반갑지만 그저 좋을 수만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저마다의 끼와 재능을 살려 하루하루 즐겁고 행복하게 살려면 이 나라 이 학교를 떠나지 않고서는 안 될 것 같으니 말이다.

박근서
글 박근서 대구가톨릭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나름 학생 들의 좋은 친구가 되려고 애쓰고 있다. ‘텔레비전 코미디’ 로 학위를 받았고, 요즘 주된 관심사는 비디오게임이다. 닌텐도에게 우리를 구원할 영성이 있을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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